그는 멜버른 정착에 성공한다. 브리즈번에서는 쓰리잡을 했다면, 멜버른에서는 투잡을 한다. 의도치 않았지만 브리즈번에서는 키친핸드 일만 했고, 멜버른에서는 건설현장 일이 다수다. 개인적 경험을 바탕으로 그는 브리즈번을 요리와 카페의 도시로, 멜버른을 건설의 도시로 인식한다.
그는 나레 워른의 중국인 쉐어하우스에서 계속해서 지낸다. 집주인은 그에게 살갑게 대하고, 무엇보다 집에서 사는 이들과 접촉이 없으니 갈등이나 스트레스가 아예 없다. 외로움을 느낄 정도다. 그는 이후 몇 차례 정도 검트리를 통해 집을 알아보고 직접 다녀왔지만, 오히려 그가 지내고 있는 집보다 조건이 열악하다. 그는 더 나은 조건의 집을 찾는 일을 포기하고 그냥 지낸다.
그는 새벽 6시쯤 일어나, 양치와 세수만 하고 옷을 입는다. 작업화를 챙기고 밖에 주차한 캠리로 향한다. 캠리는 간밤에 추위에 떨었는지, 유리창에 온통 성에가 껴있다. 그는 이제는 쓸 일이 없는 교통카드로 유리창 바깥을 전부 긁어낸다. 긁어내도 시야가 조금 나아질 뿐, 말끔해지진 않는다. 캠리에 타고 시동을 건다. 캠리는 털털거리다가 시동이 걸린다. 엔진 소리가 이전에 비해 시원치 않다. 시동을 걸 때, 주행을 할 때도 떨림이 심하다. 무엇보다 그의 캠리는 냉각수를 하마처럼 들이마신다. 그는 거의 매일, 텅 비어있는 냉각수 통에 수돗물을 한 가득 채운다.
그는 철거 현장까지의 길을 외워 네비를 보지 않고 운전해서 간다. 앞유리창에 계속 김이 서려서 운전이 쉽지 않다. 한 손으로 유리창을 닦아가면서 운전한다. 그의 캠리는 에어컨은 잘 나오지만 히터는 문제가 있어서, 김을 제거하는 데도 문제가 있다. 처음엔 불편했지만 계속 반복되다 보니, 그도 어느덧 익숙해진다. 후리스를 껴입고, 한 손으로 유리창을 닦아가면서도 운전을 잘 해낸다. 멜버른 외곽의 새벽 공기는 차다. 그는 해가 아직 떠오르지 않은 검푸른 하늘을 본다. 그와 캠리 옆에도 출근하는 차량들이 많다. 어딘지는 모르겠지만, 다들 각자의 직장을 향해 출근한다. 아직 해가 완전히 뜨지 않아서, 가끔씩 지나가는 화물 트럭의 라이트가 눈부시다.
철거 현장에 도착해서 시동을 끈다. 일은 7시나 8시부터 시작이다. 조쉬와 일했을 때처럼, 그와 데이빗도 일을 시작하는 시간까지 차에서 나오지 않는다. 서로 나란히 차를 세워두고, 차 안에서 마지막 1분까지 쉰다. 철거 일은 재밌지만, 아직 몸이 데워지지 않은 처음이 가장 나가기 싫다. 정각이 되면 누가 먼저랄 것 없이 밖으로 나온다.
벽돌벽을 망치로 부수고, 콘크리트를 부수고, 데이빗과 이야기하고, 비가 오면 잠시 피하거나 부슬비를 맞으면서 일하고, 골조와 벽돌 등을 치운다. 데이빗의 말을 들어보면, 철거 현장이 마냥 늘어져도 되는 일정을 가진 것은 아닌 듯하다. 그렇다고 빡빡한 일정도 아니다. 데이빗은 그에게, 무언가 진척되어가는 상황이 보이기만 하면 된다고 말한다. 그가 잭드릴로 콘크리트를 남김없이 철거하려 하자, 며칠 더 일을 남겨두자고 말리기도 한다.
철거 일은 4시에 끝난다. 그와 데이빗은 철거 현장을 감싸고 있는 철문을 잠그고 퇴근한다. 그는 곧바로 숙소로 돌아와 씻는다. 그의 머리와 몸에는 먼지, 진흙, 톱밥 등이 묻어있다. 손은 공구의 기름과 먼지 등으로 새까맣다. 샤워를 하면서도, 손을 가장 신경써서 씻는다. 손의 기름때는 완전히 없어지지 않아, 그의 손이 조금 까맣게 물든다.
샤워를 끝내고, 옷을 입는다. 이번에는 검은 바지에 검은 작업화다. 그는 원래 꾸미는 편이 아니고, 가뜩이나 철거 일을 끝낸 직후다. 자신의 스타일이 굉장히 세련되게 변했다고 느끼며, 자부심을 갖는다. 건설현장 작업복도 멋있고, 웨이터 옷도 멋있다. 캠리를 몰아 레스토랑으로 향한다. 아침에는 새벽 해를 보며 운전하고, 이번에는 노을을 보며 운전한다. 그가 레스토랑을 향해 캠리를 몰 때는, 해가 점점 황금빛으로 변하며 저물어가는 시기다. 외곽이어서, 건물이 적고 대부분 평지다. 황금빛으로 물든 해, 연보라색으로 바뀌어가는 하늘을 보며 운전한다. 탁 트인 시야, 아름다운 색의 해와 하늘 덕에 그는 레스토랑으로 운전하는 동안 머릿속이 차분해지고 편안하다.
레스토랑 뒤편의 공용 주차장에 주차한다. 그가 일하는 Frankston의 철판요리 레스토랑은 바다 가까이 위치해 있고, 공용 주차장에서는 약 30m 거리의 바다가 보인다. 그는 가끔씩 일찍 도착해서 시간이 남을 때나, 웨이터 일이 끝나고 생각이 나면 바다를 보러 간다.
레스토랑의 노란색 간접 조명 아래, 까만 옷을 입은 그가 서 있다. 그는 손님들이 즐기는 모습을 구경하고, 철판 요리사들의 쇼도 구경한다. 웨이터 일은 돈은 많이 주지 않지만, 노동 강도가 약하고 쉽다. 웨이트리스들도 돈은 적지만 일이 쉬워서 이곳에서 일한다고 한다. 대학생인 웨이트리스들은 모두 Frankston의 모나쉬 대학에 다니고 있다. 그는 모나쉬라는 이름의 어감이 멋있다고 생각한다.
웨이터 일은 보통 9~10시에 끝난다. 가끔 예외가 있다. 8시나 9시에 예약한 마지막 손님들의 식사가, 끝나지 않고 늘어지는 경우다. 철판요리도 있고, 술도 있고, 노래방 기계도 있다. 밤에 놀 곳이 별로 없는 호주인들에게는 최적의 장소다. 남사장과 여사장도, 마감 시간을 정해두지 않았다. 마지막 테이블 손님들의 분위기가 무르익어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으면, 남사장과 여사장은 웨이터와 웨이트리스들에게 추가적인 술 주문을 권유하라고 말한다. 그가 다가가서 물어보면, 이미 오를 대로 오른 분위기의 테이블은 술을 추가로 시킨다. 손님들은 마이크를 잡고 노래하기도 하고, 가끔씩 일어나서 춤을 추기도 한다.
어느 날, 마지막 테이블의 술 주문이 끊임없이 이어진다. 9명의 단체 손님들은 세네 명씩 끼리끼리 이야기하고 있고, 몇몇은 아예 테이블에서 이탈해서 남사장과 여사장, 심지어 그와도 이야기하고 있다. 10시가 되자, 남사장과 여사장은 그와 쉐프 1명을 제외한 나머지 인원들은 먼저 퇴근시킨다. 테이블에서 이탈해서 그와 이야기하던 수염 덥수룩한 손님이, 자신들 때문에 너무 늦어지는 것 아니냐고 묻는다. 그는 손님에게, 시간당 페이를 받기 때문에 늦게까지 일하면 더 좋다고 말한다. 수염 덥수룩한 손님은 그의 대답에 표정이 환해진다.
그는 멜버른 외곽에서의 투잡 생활이 즐겁다. 그는 직접 몸을 움직이는 노동, 손으로 익히는 기술을 동경하기 때문이다.
그가 동경하는, 되고자 하는 모습은 이렇다. 낮에는 건설현장에서 기술자로 일한다. 조쉬처럼 금속과 배관을 잘 다루고, 데이빗처럼 철거와 석공 일을 잘하는 등 만능 멕가이버다. 건설현장 일은 해가 지기 전에 끝난다. 그는 샤워하고, 옷을 갈아입은 뒤 요리사로 변신한다. 소유한 레스토랑이 있다면 좋겠지만, 크게 상관은 없다. 그가 소유한 레스토랑이던 고용된 것이던, 칼질하고 웍을 돌리며 요리한다.
건설현장 기술자, 요리사 모두 그가 동경하는 직업이다. 그는 두 직업 모두에서 성공을 거두고, 성공에 걸맞는 금전적 보상도 받고, 무엇보다 본인 스스로가 자부심을 느끼면서 떳떳한 인생을 산다.
사실 그가 제대로 된 기술을 배우고 있는 것은 아니다. 특히나 웨이터 일이 그렇다. 그도 이 점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그는 현재의 투잡 생활이 자신이 꿈꾸는 모습의 초기 단계인 것처럼 느껴진다. 철거와 웨이터 일을 병행하면서, 자신이 꿈꾸는 상상의 모습을 이룰 수도 있으리라는 가능성, 새로운 삶의 모습이 조금이나마 엿보인다. 그는 상상 속 완벽한 자신의 모습을 꿈꾸면서, 투잡 생활을 즐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