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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얀 얼굴 학생 Dec 24. 2021

n번째 면접

 어느 회사의 면접 대기실, 정장 차림의 그가 앉아 있다. 구매했을 당시 빳빳하고 몸에 딱 맞아 갑갑했던 그의 정장은, n차례의 면접을 거치면서 그의 체형에 알맞게 늘어나 편안해졌다. 많이 입어서 맞춤 정장이 되어버린 셈이다.


 언제나 그렇듯, 면접을 보러 가면 인사과 직원이 그를 맞이한다. 이름을 묻고, 신분증을 확인하고, 면접 대기실로 안내해서 빈자리 중 편한 곳에 앉으라고 한다. 그는 자신을 안내하는 인사과 직원을 볼 때마다, 자신보다 나이가 많은지 적은지 가늠해보곤 한다. 아마 그와 비슷하거나 더 어릴지도 모른다.


 인사과 직원은 면접자들에게 긴장하지 말라며,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보여주고 나오면 좋은 결과가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상투적이고 뻔한 말이지만, 같은 말이더라도 이미 입사에 성공한 선배인 인사과 직원이 말하면 왠지 더 신뢰가 간다. 그는 이번에야말로, 자신감 있게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당당히 보여주고 어필할 것이라 생각한다.


 

 그는 이미 수차례 면접을 경험했기 때문에, 면접이 시작한 뒤로는 결코 떨지 않는다. 오히려 편안하다. 문제는, 면접이 시작하기 전 대기하는 시간이다. 면접장에 들어가기 직전까지 그의 몸은 긴장으로 인해 경직되어 있다. 이미 n차례 반복하며 겪었지만 면접 대기실에서 기다리는 시간은 도무지 적응이 되질 않는다. 오히려 면접 횟수가 늘어날수록, 면접 대기실에서 기다리는 시간에 그를 찾아오는 긴장과 떨림은 점점 가중된다. 손과 발이 차가워지고, 속도 부글거린다.


 이러한 긴장과 떨림은, 면접 자체로 인한 것이라기보다 이전의 탈락 경험들로 인한 것이다. 코앞에 닥친 면접 때문에 긴장한 것이 아니라, 또 떨어지면 어떻게 하나 하는 생각 때문에 긴장하게 되는 것이다. 그는 이러한 긴장이, 운전면허 시험을 봤을 때와 비슷하다고 생각한다. 운전면허 시험을 봤던 때의 그는, 운전면허 시험 자체보다는 떨어져선 안된다는 부담으로 인한 걱정이 더 컸다. 누구나 다 따는 운전면허인데, 그 혼자서만 떨어진다면 망신스럽고 창피할 것이다. 이러한 측면에서 그는, 아예 어려운 것을 시도할 때는 오히려 마음이 편안했다. 절대적으로 어려운 것은, 어차피 대부분의 사람들 모두에게 똑같이 어려울 것이다. 그러니 떨어지더라도 크게 창피할 것은 없다. 반면 다른 사람들 모두가 쉽다고 하는 것을 시도할 때 오히려 그는 긴장했다. 다들 쉽게 해내는 것을 혼자 해내지 못한다면, 그보다 더 당황스럽고 창피한 일은 없을 것이므로.


 이미 면접에서 n-1차례 떨어졌으니, 이러한 부담감에 무뎌질 수도 있으련만 그는 그렇지 못했다. 무뎌진 것은 떨어졌다는 통보를 받는 순간의 충격뿐이다. 이제 그는 면접에 떨어져도, 별로 충격받지 않는다. n-1번이라는 면접 탈락 횟수에, 단지 1이 더해질 뿐이다. 하지만, 면접 탈락으로 인한 창피함 / 당혹감 / 좌절감은 오히려 탈락 횟수가 더해질수록 배가된다. 그리고 바로 이 부분이, 면접 대기실에서 그를 찾아오는 긴장과 불안의 원인이다.

 


 그는 손끝이 차가운 상태로, 준비해온 자료를 계속해서 이리저리 넘기며 본다. 제대로 읽힐 리가 없다. 그냥 눈으로 훑는 수준이다. 그래도 준비해온 자료를 읽는 척이라도 하면, 긴장과 불안이 더 증폭되지는 않는다.


 인사과 직원이 들어온다. 면접장으로 이동할 시간이다. 그는 때로는 혼자서, 때로는 다른 면접자들과 일렬로 줄을 서서 인사과 직원을 따라간다.


 문득 그의 머릿속에서 의문이 피어난다. 도대체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어떻게 했으면 지금과 같은 상황에 처하지 않을 수 있었을까. 어떻게 대답했으면 면접을 합격할 수 있었을까. 이러다가 영영 취업을 못 하고 낙오되는 것은 아닐까. 또 한 번의 면접 횟수가 추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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