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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얀 얼굴 학생 Dec 29. 2021

0번째 기업, 0번째 면접

1 - 서류, 정장, 준비

 대학교 3학년 1학기를 마친 그는, 슬금슬금 취업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다. 그는 학점이 좋은 것도 아니고, 별다른 스펙도 없다. 그렇지만 그는 스스로에 대한 근거 없는 자신감이 있었으며, 회사 인턴으로 실무 경험을 쌓는다면 스펙 없이도 쉽게 취업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아직 3학년이므로, 설렁설렁 구직 사이트를 살펴보던 그의 눈에 어느 기업의 '하계 여름방학 인턴' 공고가 보인다. 처음 들어보는 화학 회사다. 그는 회사 웹사이트에서, 인적사항을 기재하고 생전 처음 '자기소개서'라는 것을 작성한다. 자기소개서 문항은 넷으로, 성장 과정 / 현재 자신의 역량 / 도전 사례 / 미래 포부다. 그는 붙어도 그만 떨어져도 그만이라는 심정으로, 가볍게 자기소개서를 작성한다. 그의 개인사, 군대 이야기, 미래에 더 큰 인물이 되겠다는 등의 뻔한 내용이다. 


 첫 이력서와 자기소개서이므로, 그는 워드 파일로 만들어 보관해두었다. 시간이 지난 후 자신의 첫 이력서와 자기소개서를 다시 보았을 때, 그는 얼굴이 화끈거림과 함께 운이 좋았음을 알게 된다. 이력서는 중구난방식의 관련 없는 사항이 가득했고, 자기소개서는 가독성이 떨어졌다. 취업 준비를 해보지 않은 티가 나는, 자기 할 말만 늘어놓은 지원서였다. 당시 회사에서는 사람이 급하게 필요했거나, 여름방학에만 시행하는 인턴이니 취업 준비가 조금 덜 되었더라도 뽑을 생각이 있었던 모양이다.



 지원서를 보냈다는 사실이 기억에서 흐릿해질 무렵, 그에게 메일이 도착한다. 서류 전형에 합격하여, 면접 전형을 진행하겠다는 메일이다. 기억이 잘 나지 않았지만, 어쨌든 면접을 보러 오라는 메일에 기분이 좋다. 주변에서 취업이 힘들다는 소문을 항상 들어온 그다. 모두들 어려워하는 취업이지만, 그는 처음 시도 한 번에 인턴 자리를 꿰찰 기회가 왔다. 여차하면 인턴 활동 중에 발탁되어 정규직으로 전환될지도 모른다. 아직 대학교 3학년도 다 끝마치지 않은 그는 혼자서 상상의 나래를 펼친다.


 면접 안내 메일을 받았고, 당연히 그는 면접에 참석할 생각이다. 면접 때 입을 정장을 구매해야 한다. 그는 어머니와 함께, 정장을 구매하기 위해 이곳저곳을 돌아다닌다. 백화점을 먼저 가보았지만 가격이 너무 비싸다. 옷에 관심이 없는 그는, 백화점 양복점에서 가격을 보자마자 기겁을 한다. 이렇게까지 비싼 양복은 필요 없다.


 반나절 정도 돌아다닌 끝에, 백화점이 아닌 어느 아울렛의 양복점에서 괜찮은 정장을 발견한다. 백화점 정장보다는 훨씬 저렴하지만, 그래도 정장이니 가격이 꽤 나간다. 그는 10만 원이 넘지 않는 가격대를 찾지만, 10만 원이 넘지 않는 정장은 찾아보기 힘들다. 그는 정장의 가격대를 전혀 모른다.


 그는 새까만 정장을 구매하고 싶었지만, 점원의 생각은 다르다. 너무 새까만 정장은 상복 같은 느낌이 있으니, 회사 면접을 위해서는 짙은 남색을 추천한다고 한다. 점원은, 요즘 면접철이라 많이들 정장을 구매하러 오는데 짙은 남색이 가장 잘 나간다고 한다. 그가 입어보니, 짙은 남색도 나쁘지 않다.


 그는 짙은 남색의 정장을 구매한다. 점원의 추천도 있고, 그의 어머니도 동의했고, 막상 입어보니 남색이 너무 짙어서 육안으로는 검은색과 별 차이가 없다. 정장에 더해 넥타이와 와이셔츠도 구매한다. 점원은, 묶음으로 해서 조금 깎아줬다고 말한다. 정장, 와이셔츠, 넥타이 모두 합해 약 13만 원에 구매한다. 그의 생각보다 약간 비싸지만, 그래도 이 정도면 나쁘지 않다. 13만 원짜리 정장도 그의 눈에는 너무 멋있어 보인다. 그는 정장 문외한이어서, 비싼 정장의 고급스러운 멋스러움을 알아차리지 못하는 것일 수도 있다. 그렇다 하더라도, 더 비싼 정장은 입사해서 돈을 벌고 난 뒤에 구매해도 늦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그다.



 입고 갈 정장도 생겼다. 면접 준비를 할 차례다. 그런데 어떻게 준비해야 하는지를 잘 모르겠다. 그보다 나이가 한 살 위인, 이미 취업 전선에 뛰어든 친구에게 물어본다. 친구는 그에게 이런저런 어플과 웹사이트 링크를 보내주며, 회사에 대해 미리 조사해가면 좋다고 말한다. 재무제표도 봐 두면 좋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는 너무 들뜬 데다, 아는 것이 너무 없어서 친구의 말을 들어도 감이 잘 오지 않는다. 더군다나, 친구의 마지막 말이 그를 안심시킨다. 


 인턴 면접이니, 별다른 것 물어보지 않을 것 같다. 보통 인턴 면접에서는 취미가 무엇이냐, 가족들 뭐하시냐 같은 쉬운 것만 물어보고 하하호호 끝난다더라.


 그는 친구가 앞서 이야기한 어플과 웹사이트는 깡그리 잊어버리고, 듣기 좋은 마지막 말만 기억한다. 인턴 면접은 별 것 아닌 가족사항만 묻고 하하호호 끝난다고 마음대로 단정해버린다. 그는 면접 준비를 거의 하지 않는다.



 하지만 면접 날짜가 시시각각 다가올수록, 그는 불안한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이대로 가도 되는 것인지, 왠지 준비를 해야 할 것만 같은 느낌이다. 결국 그는 컴퓨터 앞에 앉아, 재무제표를 볼 수 있는 Dart라는 웹사이트를 검색해 들어간다. Dart 웹사이트의 한글 이름은 전자공시시스템으로, 기업들의 재무제표를 볼 수 있는 웹사이트다. 


 그는 경영학도이긴 하나, 이 Dart라는 웹사이트를 이용해 보는 것도 기업의 재무제표를 보는 것도 처음이다. 재무제표는 몇십 페이지가 넘는 상당한 분량이며, 글자와 숫자가 빼곡히 들어차 있다. 그는 재무제표를 훑어보려 했으나, 무엇을 봐야 하는지 / 무엇이 중요한지 /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도무지 모르겠어서 포기한다. 보지 않아도 괜찮겠지, 가족 사항이나 취미 같은 쉬운 것만 물어보겠지 생각한다. 부디 그러길 바란다. 그는 자신이 재무제표를 살펴보지 않은 것이 실제 면접에서 어떤 파장을 일으킬지 이 때는 전혀 알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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