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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얀 얼굴 학생 Jan 02. 2022

0번째 기업, 0번째 면접

3 - 면접, 거짓말

면접자 : 그 혼자


그의 시점에서 왼쪽부터

면접관 1 : 몸집이 크고, 머리가 조금 벗겨졌으며 안경을 낀 40대 중후반 남성

면접관 2 : 피부가 까맣고, 눈이 크고 매서우며 전반적으로 꼬장꼬장한 분위기를 풍기는 40대 중후반 남성

면접관 3 : 면접관 1과 비슷한 느낌이지만 머리가 벗겨지지 않았으며 안경을 낀 40대 초반 남성




 면접장 문은 원목 느낌의 나무로 되어있으며 커다랗다. 인사 담당자의 안내에 따라, 노크를 하고 안으로 들어간다. 면접장 내부 벽면은 베이지 톤이었으며, 바닥은 전형적인 도끼다시 바닥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면접관들은 책상과 의자가 일체인 듯한, 학원에서 볼 법한 책상 의자에 앉아서 그를 응시하고 있다. 문을 닫고 돌아선 그의 앞에, 의자 하나만이 놓여 있다. 자신이 앉을 의자를 보며 그는 찰나의 순간에, 자신이 앉는 자리에도 책상이 있었다면 조금이라도 가림막이 될 텐데 아쉽다고 생각한다.


그 : 안녕하십니까! (서 있는 상태로 인사한다)

면접관 2 : 네, 앉으세요.


 면접관 1과 3은 책상 위 종이에 무엇인가를 적으며, 안경 너머 번뜩이는 눈으로 말없이 그를 보고 있다.



면접관 2 : 자기소개 해보세요.

그 : 알겠습니다. 안녕하십니까! 0번째 기업 국내 영업 인턴에 지원한 지원자 '하얀얼굴' 입니다. 저는 제 자신을 에너자이저라고 말씀드리겠습니다. 저는 에너자이저와 같이!... 끊임없는 열정과 체력을 갖고 있습니다. 이런 끊임없는 열정과 체력을 가지고서... 0번째 기업 국내 영업 인턴에 기여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0번째 기업의 에너자이저가 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는 면접 준비를 하면서 자기소개를 준비해놓았다. 취업 준비를 전혀 하지 않았지만 당찬 패기로 가득 찬 그는, 자신을 에너자이저라고 표현했다. 조금 유치하지만 에너자이저만큼 자신을 잘 표현하는 것은 없다고 생각했다. 그는 자신이 잘 떨지 않는 성격이라고 생각했으나, 면접이라는 특수한 상황은 그의 자신감과 성격을 흔들어 놓았다. 그는 심히 긴장하여, 자신이 듣기에도 어색할 정도로 말을 더듬다.


 면접관 1과 3은 아무 말없이 그를 보며 계속해서 종이에 무언가를 쓰기만 했으며, 질문은 면접관 2 혼자서 했다. 너무 긴장했던 탓인지, 그는 면접관이 했던 질문을 모두 기억하지는 못한다. 면접관 2는 그에게 평범한 질문을 두세 개 했다. 아마도 가족 관계, 오늘 집에서 회사까지 어떻게 왔느냐 등의 질문이었을 것이다.



 그는 긴장한 상태에서도 대답은 곧잘 한다. 하지만 머릿속에서 답변을 미리 정리하거나 구상한 것이 아니라, 떠오르는 그대로의 답변이다. 그는 자신이 답변을 잘하는 것 같다고, 역시 인턴 면접은 별 것 아니라고 생각한다. 바로 그 순간, 면접관 2가 질문한다.


면접관 2 : '하얀얼굴'씨, 면접자 중 유일한 경영학도다. 우리 회사는 주로 화학공학과 학생들이 많이 지원한다. 경영학도로써 본인만의 차별성이 있을 것이다. 우리 회사 재무제표를 봤나?


 그는 순간, 아차 하는 생각이 든다. Dart(전자공시시스템)에 들어가 재무제표를 다운로드까지 해놓고서, 무엇을 볼지 몰라 그냥 포기해버린 그다. 하필이면 재무제표를 물어보다니, 너무나도 아깝고 아쉽다는 생각에 머리가 마비된다. 그리고 마비된 머리로 그는, 최악의 선택을 한다.


그 : 아.... 네! 봤습니다!

면접관 2 : 재무제표를 본 소감이 어떤가요?

그 : 아..... 그..... 자산, 자본, 부채 중 부채가 적어서..... 재무가 아주.... 건전하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면접관 2는 말없이 그를 뚫어지게 쳐다본다. 면접관 1과 3도, 그를 째려보는 듯하더니 갑자기 펜 놀림이 현란해진다.



 그는 너무나도 붙고 싶은 마음에, 당장의 상황을 모면하고자 거짓말을 했다. 거짓말을 하고 대충 뭉뚱그려서 얼버무리면 넘어갈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하지만 그는 재무제표를 제대로 본 적이 한 번도 없다. 0번째 기업의 재무제표도 다운로드된 파일을 마우스 커서로 건드리기만 했을 뿐이다. 그가 이야기한 자산, 자본, 부채는 대학교 1학년 때 배웠던 회계학원론의 지식이다. 0번째 회사의 자산, 자본, 부채가 실제로 얼마인지 그는 전혀 알지 못한다. 그저 회사를 칭찬하기 위해, 어감이 부정적인 부채가 적어 회사가 건실하다고 입에서 나오는 대로 나불거린 것이다.

 거짓말이 들통났을 것이 뻔하다. 안그래도 긴장해있던 그는, 거짓말 이후 더욱 어버버하며 결국 말이 제대로 나오지 못하는 지경에 이른다.


면접관 2 : 알겠습니다.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 있으면 하세요.

그 : 혹시 질문을 해도 되겠습니까? (그는 마지막 비장의 수로, 역으로 질문하는 방법을 꺼낸다. 가끔 이렇게 역으로 질문하는 지원자를 당돌하게 보는 면접관들이 있다는 후기를 본 기억이 있어서다.)

면접관 2 : 저는 마지막 말을 하라고 했지, 질문을 하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그 : 아... 알겠습니다. 저.... 저는.... 에너자이저.... 같은 인재입니다... 저의... 에너자이저... 같은 열정으로... 회사에... 기여하겠습니다...

면접관 2 : 면접 끝났습니다. 수고했어요.




 면접장을 나오자, 그는 자신의 손발이 차가워져 있음을 깨닫는다. 그리고, 자신이 택한 거짓말로 인해 면접이 완전히 망했음을 직감한다. 하지만 당장은 면접이 끝났다는 사실로 인한 후련함이 더 크다. 면접 대기실로 돌아가, 대기자들과 인사 후 짐을 챙겨 집으로 향한다.


 친구들은 그의 이야기를 듣고는, 거짓말하지 고 솔직하게 인정하는 게 나았을 것이라 말했다. 신입사원 면접에서도 재무제표를 물어보지 않는 경우가 많은데, 인턴 면접에서의 재무제표 질문은 그리 깊은 지식을 요하려는 의도 아니었으리라. 차라리 솔직하게, 재무제표는 확인하지 못했다고 말했어도 큰 감점 요인 아니었을 가능성이 높다. 더 잘 보이려는, 잘하고 싶은 의도에서였지만 어쨌든 그는 거짓말을 했다. 그리고 그 거짓말이 그의 면접을 완전히 망쳤다.



 0번째 기업에서의 0번째 면접, 그는 인턴 면접을 만만히 보고 거의 준비를 하지 않았다. 재무제표는 글자와 숫자가 많은 것을 보고 그냥 포기해버렸다. 그래놓고 면접 때 가서는 재무제표를 봤다고 거짓말을 했으며 들켰다. 그래도 그는 혹시나 합격 연락이 오지 않을까 기대했다. 터무니없는 기대였으며, 당연히 그는 면접에서 탈락했다.


 이 경험을 통해 그는 면접에 관련한 두 가지 사실을 절실히 깨닫는다.

 1. 면접 때 거짓말을 해선 안 된다.

 2. 기업의 재무제표를 반드시 확인해야 한다.


  1번 거짓말의 경우는, 이후 '거짓말을 되도록 하지 말되, 한다면 들키지 말아야 한다'로 수정된다. 하지만 2번 재무제표의 경우는 그의 뇌리에 강하게 자리 잡아, 일종의 트라우마로 남는다. 그는 향후 취업 준비 기간 동안 있을 n번의 면접에서, n개 기업의 재무제표를 강박적으로 확인하고 정리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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