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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얀 얼굴 학생 Jan 08. 2022

대학교, 스펙

 어영부영 그의 대학생 시절이 끝나가고 있다. 3학년 2학기부터, 그는 인턴 위주로 이력서를 넣기 시작한다. 인턴 위주이긴 하나 가끔씩 신입사원도 넣는다. 혹시라도, 그의 잠재력을 알아본 기업이 대학도 끝마치지 않은 자신을 스카웃해가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에서다. 당연히 그런 일은 없다. 특히나 3학년 2학기 때 신입사원으로 지원한 이력서는 무의미한 것이었다. 한 학기도 아니고, 재학 기간이 1년이나 남은 학생을 채용할 리가 만무하기 때문이다. 그는 이런 기본적인 인식도 없이, 이력서를 넣는다. 업계도 직무도 정하지 않고, 사기업과 공기업을 가리지 않고 지원한다.


 3학년 2학기 - 44곳에 지원하여 39곳을 서류 탈락했으며, 서류 합격한 5곳은 필기에서 떨어졌다.

 4학년 1학기 - 32곳에 지원하여 28곳을 서류 탈락했으며, 서류 합격한 4곳은 필기에서 떨어졌다.

(서류 합격한 곳들은 90% 이상이 공기업으로, 서류는 그냥 붙여주고 필기에서 거르는 곳이다)



 그는 대학교 시절 별다른 취업 준비를 하지 않고, 호주 워킹홀리데이아르바이트 등 경험 해보았다. 채용을 고려하는 기업 입장에서 냉철히 보자면, 깊이 없이 이것저것 건드려보다 만 것에 불과하다고 여겨질 것이리라. 하지만 그는 후회하지 않는다. 그가 스스로 선택해서 했던 경험들이고, 그 경험들이 쌓여 지금의 그가 되었다. 한 가지를 정해서 깊게 파고든 사람들은 그들 나름의 특징과 장점이 있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여러 경험을 한 본인만의 차별화된 특징과 장점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많고 많은 기업 중 분명히 그를 알아봐 줄 기업이 있으리라고 낙관적으로 생각했다.


 낙관적인 것인지 무모한 것인지 무책임한 것인지, 이러한 생각을 바탕으로 그는 대학교 시절을 멋대로 보낸다. 학점도 엉망이고, 자격증도 따지 않고, 대외활동이나 공모전 경험도 전무했다. 그래서 인턴도 되지 못했다. 그가 마음먹고 찾아봤더라면 조그마한 회사의 인턴 자리 하나쯤은 찾을 수도 있었을 터다. 하지만 그는, 적당히 찾아보고 적당히 넣어보는 수준에서 그쳤다. 한두 번 인턴 면접을 보고 떨어지면, 이 정도면 충분히 노력했다며 나중에 신입사원으로 붙으면 된다고 위로했다.


 그가 가진, 그나마 남들보다 나은 유일한 스펙은 바로 영어다. 1년 동안 호주에서 워킹홀리데이 생활을 한 것이 도움이 됐다. 그는 영어 시험 준비만큼은 꽤 열심히 했다. 호주에서 1년 동안이나 살았는데, 다녀온 뒤 영어 점수가 형편없다면 시간 낭비를 한 것이나 다름없으리라. 그가 자랑스러워하는, 자부심을 가진 호주 시절에 대한 예의를 갖추기 위해서라도 영어 성적이 좋아야 했다. 다른 자격증이나 스펙을 준비하지 않는 그는, 시간이 남아돈다. 그는 약 1달씩 공부해서 토익과 오픽 시험을 치른다. 다행히도 그의 워킹홀리데이 시절에 먹칠을 할 정도는 아닌 점수를 받는다.



 대학교 시절 전체를 통틀어, 그가 가진 스펙은 이렇다.

OO대학교 경영학

학점 : 3.2 / 4.5

전공학점 : 3.1 / 4.5

토익 940점

OPIc AL등급 (영어 말하기 시험으로, AL은 오픽 시험에서 받을 수 있는 가장 높은 등급이다)

운전면허 1종

한국사 1급

기능사 자격증 2개 (군대에서 포상 휴가를 위해 취득, 그의 전공과 무관)

대외활동 경험 X

공모전, 수상 경험 X

인턴 경험 X


 절망스러우리만치 답이 없는 스펙이다. 공부를 열심히 하지 않았는데, 공부 대신 이룬 다른 어떤 성취도 없다. 그나마 영어 점수만 조금 나을 뿐, 나머지는 평균에 미달하는 스펙들이다. 이런 상태로 이력서를 넣었으니, 서류 합격률이 높을 리가 만무하다.



 그는 자신의 스펙과 계속된 서류 탈락에도 좌절하지 않는다. 그는 Underdog의 상황을 즐기는 경향이 있다. 그는 자신이 불리하거나 힘든 상황, 잃을 것 없는 상황을 은근히 즐기곤 한다. 문제는, 이번 취업 활동에서의 Underdog 상황은 그가 스스로 자초했으며 꽤나 심각하다는 점이다.


 호주에서 그는 첫 일을 구하기까지, 100군데가 넘는 상점에 직접 들어가 이력서를 전달해주고 나왔다. 그나마 호주에서는 아르바이트였지만, 한국은 정규직 직장이다. 그래서 그는 한국에서의 직장 구하기가 호주 때보다 쉽지 않으리라 생각했다. 3학년 2학기와 4학년 1학기에 총 76곳을 지원했고 모두 떨어졌지만, 아직 호주에서 돌린 이력서 숫자에도 미치지 못한다. 열심히 넣다 보면 되겠지. 아직 막학기가 남았으니, 막학기에 열심히 지원하면 졸업 시기에 맞춰서 취업할 수 있겠지. 어렵긴 하겠지만, 얼마나 어렵겠나 하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 그다. 그는 자신이 이력서를 얼마나 더 넣어야 할지, 자신이 처한 상황이 얼마나 심각한지 전혀 감을 잡지 못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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