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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얀 얼굴 학생 Jan 29. 2022

사기업 해외영업 / 기획

 대학교 4학년 2학기, 즉 막학기가 되었다. 막학기에 접어든 그는, 본격적으로 이력서를 넣어야 한다. 3학년 2학기와 4학년 1학기 때에도 이력서를 쓰긴 했지만, 막학기의 마음가짐은 차원이 다르다. 이전에는, 붙어도 그만 떨어져도 그만이라는 생각으로 이력서를 넣었다. 경험 삼아 가볍게, 떨어져도 뒤가 있다는 생각에 여유로웠다. 하지만 막학기는 다르다. 말 그대로 마지막 학기, 뒤가 없다. 막학기에도 취업에 실패한다면, 그는 학생도 사회인도 아닌 영락없는 백수가 된다. 물론 막학기 취업에 실패하더라도, 졸업 유예라는 얇은 가림막을 사용할 수 있긴 하다. 하지만 그는 졸업 유예를 썩 선호하지 않는다. 그는 어서 빨리 취업해서 커리어를 쌓으며 돈도 벌고, 사회인으로의 첫걸음을 내딛고 싶다.


 막학기 대학생의 이력서는, 뒤가 있어 설렁설렁 작성했던 이전 이력서와는 달라야 한다. 이전 두 학기 때 계속해서 서류를 탈락한 이유가 무엇일까. 절박한 막학기에 이르러 그는 어쩔 수 없이 머리를 굴린다. 원인을 알아내기까지 긴 시간이 걸리진 않는다. 그는 사기업/공기업 구분 없이, 정해놓은 직무도 없이 무작위로 이력서를 넣었다. 아무 곳의 아무 일이나 걸리라는 식의 지원이었으나, 그 결과는 아무 곳의 아무 일도 걸리지 않았다. '선택과 집중'을 하지 않았던 것이다.



 선택과 집중을 해야 한다. 즉, 무작위로 이력서를 넣지 말고 타겟을 정해서 지원해야 한다. 취업에 성공한 이들의 자신감 넘치는 수기나 후기를 보면, 관심 있는 분야를 정해서 파고든 경우가 많다. 산업군, 회사, 심지어 직무까지 정해서 들이판다. 관심 있는 분야를 오래전부터 준비해놓으니 취업이 쉽게 되고, 내공이 쌓여있는 상태라 입사 후 빠르게 에이스로 거듭났다는 뻔한 이야기다. 아무 곳이나 걸리라는 식으로 여기저기 넣다가 좋은 기업을 갔다는 후기는 없다.


 그는 선택과 집중을 해야겠다고 생각은 하지만 너무나도 막연하고 막막하다. 어디서부터 어떻게 계획을 잡아야 하는지, 어느 산업군이 좋은지 어느 회사가 좋은지 각각의 직무는 무슨 일을 하는지 감이 오지 않는다. 어렸을 적 어른들이, '커서 무슨 일을 하고 싶은지 깊게 생각해보고, 정해둬라' 고 이야기했을 때의 느낌과 비슷하다. 뭐라도 아는 게 있어야 생각이란 걸 하지, 아는 것도 없는 상태에서 '저는 이것이 하고 싶어요'라고 말하는 것만큼 공허하고 무의미한 것도 없다. 그래서 그는 어렸을 적 어른들이 장래를 물어보면 모르겠다고 답했다. 어른들은 그런 그를 '생각이 얕은 어린아이'로 여겼으리라.



 그는 고집이 센 편으로, 자신의 생각을 바꾸지 않았다. 그는 계속해서, 정보가 없다는 핑계로 판단을 미뤘다. 그의 눈에는, 주변 친구들이나 취업에 성공한 이들도 자신과 비슷해 보였다. 어릴 적부터 자신의 미래에 대해 치열하게 생각하고, 엄청난 인내력으로 묵직하게 앉아 고민하다가, 마침내 나는 이 일이 어울리겠다는 깨달음을 얻고 취업 활동을 하는 사람이 도대체 몇이나 있을까. 취업 시즌이 닥쳐오면 그제야 슬금슬금 준비를 하는 것이 대다수로 보였다. 물론, 그 준비를 시작하는 순간이 조금이라도 더 빠를수록 유리해지는 것은 사실이다.


 막학기이지만, 그는 아직까지도 취업 관련한 정보가 부족하다고 생각했다. 그가 취업 관련해서 준비를 게을리하고, 알아보지 않은 것도 크다. 하지만 애초에 대학생이, 회사에 관련된 정보를 제대로 얻기란 쉽지 않다. 세상 모든 일이 그러하듯, 완벽한 정보를 토대로 완벽한 의사결정을 내리는 순간은 결국 오지 않는다. 불확실한 상황에서, 그나마 더 나아 보이는 것을 선택해서 밀고 나가는 방법 밖에 없다. 지금까지의 그는 이런저런 핑계로 막학기까지 판단을 유보해왔지만 결국 한계에 다다랐다. 등 떠밀려 어쩔 수 없이 판단을 내려야 할 때가 왔다.



 1. 기업

 그는 가능하다면 돈도 많이 벌고 싶고, 열심히 일해서 인정도 받아보고 싶다. 그래서 공무원은 선택지에서 배제한다. 돈보다는 안정을 추구하는 길로 보였기 때문이다. 추구하는 목적도 다른데, 가장 쉽다는 9급 공무원도 수험 기간 2~3년은 잡아야 한다. 7급이나 5급은 더 걸릴 터다. 그는 어서 빨리 회사 생활을 하고 싶다.

  그렇다면 회사를 들어가야 하는데, 공기업인가 사기업인가? 공기업은 '신의 직장'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기업이란 원래 이윤 창출을 위해 존재하므로 삭막하기 마련인데, 공기업은 이윤 창출이 제1목적이 아니다. 그래서 잘 짤리지도 않고, 퇴근도 빠르다고 한다. 정말 신의 직장이다. 신의 직장은 모두들 가고 싶어 하기 때문에, 입사하기가 힘들다. 그는 스펙도 취업 준비도 덜 되어 있는 상태이므로, 자신이 신의 직장을 들어가기는 힘들 것이라고 판단한다. (이것만큼은 현명한 판단이었다)

 공무원과 공기업을 제하면 남은 선택지는 하나다. 그는 사기업을 지원하기로 결정한다.



 2. 산업군

 사기업도 종류가 다양하다. 수많은 산업군이 있고, 또 산업군마다 수많은 직무들이 있다. 그는 산업군에 대한 정확한 개념이 잡히지 않았으며, 딱히 어떤 분야에서 일을 하고 싶다는 선호도 없다. 굳이 취업하고 싶지 않은 분야는 있지만, 반드시 이곳이 아니면 안 된다 할 만한 뚜렷한 목표는 없는 상태다. 그는 일단, 산업군은 가리지 않고 지원하기로 결정한다.



 3. 직무

 그가 결정을 내릴 때 가장 어려웠던 부분이다. 제대로 조사를 해보지도 않은 상태이니, 이 직무가 무슨 일을 하는 것인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직무 이름에서 오는 느낌으로 대강 판단한다. 경영학도들은 제너럴리스트에 가깝기 때문에 개개인별로 직무 편차가 크다. 경영기획 / 재무 / 물류 / 마케팅 / 인사 / 구매 / 영업 등 거의 모든 직무에 포진해 있다. 그의 선배나 친구들만 보더라도 똑같은 직무에 속하는 이들이 거의 없다.

 그는 처음에는 기획, 인사와 같은 직무를 지원했다. 뭔가 멋있어 보이고 있어보여서다. 경영학과를 졸업해서 기획팀에서 근무하는 것이 왠지 전공을 가장 잘 살리는 것 같았다. 하지만 두 번의 학기 동안 이력서를 넣으며 그는 모조리 탈락했다. 스펙도, 회사 경험도 없는 그를 채용하여 처음부터 회사 중심부인 기획이나 인사팀에 배치할 회사는 전무했다.


 1) 해외 영업

 그는 자신이 결국 만화나 드라마의 평범한 회사원들처럼, 영업 사원이 될 운명인가 생각한다. 가진 것이라고는 자신감과 열정, 실천력뿐이다. 그의 사정을 들은 친구들은 영업으로 커리어를 시작하라고 말했다. 물론 해당 친구들 중 영업에 종사하는 이는 없었다. 그는 속으로, 남의 일이라고 함부로 말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했다. 그의 생각도 옳고 친구들의 말도 옳았다. 학점도 좋지 않고 스펙이 전무한 그의 상태는, 친구들이 보기에는 그야말로 '노답'인 상황이었을 터다. 그래도 자신감과 열정은 있어 보이니, 잘은 모르겠지만 영업에 지원해보라는 식으로 조언했을 가능성이 농후하다. 학부생들은 영업 직무가 무슨 일을 하는지 잘 알지 못한다. 길거리에서 발로 뛰거나 무작정 초인종을 누르는 방문 판매를 떠올리곤 한다. 그도 이런 인식을 갖고 있었으므로 영업은 내키지 않는다.

 내키지 않더라도, 별 도리가 없다. 영업은 다른 직무들보다는 진입 장벽이 낮고, 흐릿하게나마 그가 붙을 가능성이 있어 보인다. 불만이 가득한 그에게, 해외영업이라는 직무가 눈에 띈다. 그는 영어는 조금 한다. '국내영업보다는 그래도 해외영업이 고생을 덜 하고 전망이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으로 그는 해외영업을 1순위 직무로 잡는다. 국내영업이 달갑지 않던 그는, 해외영업이라는 직무를 발견한 순간 구세주를 만난 것처럼 기쁘다.


 2) 경영기획

 지원 직무를 결정할 때, 1순위로 메인을 잡고 서브 직무를 하나 정하라고 말한다. 불확실한 취업 시장에서, 특히나 문과생이 한 가지 직무에 올인하는 것은 위험이 크다. 집중력이 떨어지지 않는 범위에서 양다리를 걸치고 위험을 분산시키라는 어떤 취업 유튜버의 조언이다. 어느 한 직무에 대한 명확한 선호가 없는 그에게는 안성맞춤인 전략이다. 그는 2순위 직무로 경영기획을 선택한다. 대단한 이유는 없다. 경영기획, 왠지 회사의 전체적인 방향을 결정하고 이끌어갈 것 같은 느낌이 풍긴다. 있어 보이고, 돈도 많이 벌 것 같고, 경영학도가 갈 수 있는 가장 좋은 직무가 아닐까 싶다. 그는 이런 생각에, 경영기획을 2순위 직무로 결정한다.



 그는 업계를 구분하지 않고, 사기업의 해외영업 직무와 경영기획 직무를 지원한다. 해외영업 직무는 계속된 서류 탈락으로 인해 그가 현실과 타협한 직무다. 영업 직무로 지원해야 그나마 붙을 수 있을 것 같은데, 국내영업은 왠지 꺼려지니 해외영업으로 타협한 것이다. 이와는 정반대로, 경영기획 직무는 그가 가장 낭만적으로 생각한 직무다. 현실적으로 그나마 가능성 있는 직무를 1순위로 잡고, 남은 2순위만큼은 자신이 꿈꿔온 직무를 선택한다. 경영기획 직무로 붙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울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꿈도 꿔선 안되느냐, 지원서조차 넣어선 안되느냐는 생각에 그는 경영기획 직무를 2순위로 정했다.

 대학교 막학기, 늦게나마 그는 사기업 해외영업과 경영기획 직무로 방향을 잡았다. 방향을 잡았으니, 남은 것은 그가 잘하는 '실행' 단계다. 그는 사기업 해외영업과 경영기획 직무로, 말 그대로 미친 듯이 지원서를 넣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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