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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얀 얼굴 학생 Jan 30. 2022

졸업 선배 초청 강연

 대학교는 학생들의 취업률에 약간은 신경을 쓴다. 그가 다니는 대학교 또한, 막학기 졸업 예비생들의 취업을 돕고자 하는 프로그램이 몇몇 있다. 그는 이러한 프로그램이, 실질적인 도움은 안되고 형식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의 생각이 어떠하든, 대학교는 이러한 취업 관련 프로그램을 학생들이 강제로라도 들어야 졸업이 가능하도록 커리큘럼을 짜 놓았다.


 대학교가 강제로 할당한 프로그램 중 그가 가장 관심과 기대를 가졌던 것은, 취업에 성공한 선배들을 초청한 강연이다. 2주에 한 번씩, 취업에 성공한 졸업생 선배 한 명이 커다란 강당에 PPT를 띄워놓고 설명회 비스무리한 것을 한다. 자신의 취업 활동은 어땠고, 취업에 관련된 팁은 어떠한 것이 있고, 이런 식으로도 취업이 가능하다, 다들 힘내길 바란다는 식의 내용이다. 그는 학교 생활에 충실하지 않고 겉돌았던 편으로, 대학교 내에서 개인적으로 연락하는 인맥이 거의 전무하다. 요즘 용어로 '아웃사이더'인 셈이다. 아웃사이더인 그는, 강제로라도 선배와의 만남을 유도해놓은 이 프로그램에서 어떻게든 취업에 관련된 도움과 정보를 뽑아내고자 한다.



 한국의 여느 교육기관이나 강연이 그렇듯, 대부분의 청중들은 멀리 뒷좌석부터 자리를 채운다. 그가 대학교를 다니는 내내, 앞자리가 꽉 채워져 있는 경우를 본 기억은 별로 없다. 혹시 앞자리가 꽉 차 있다면 두 가지 경우 중 하나다. 정말 공부를 열심히 하는 몇몇 인원들이 앉은 것이거나, 수강생 정원과 교실 자리가 꼭 맞아 어쩔 수 없이 앞자리까지 채워서 앉아야 하는 경우다.


 졸업 후 취업에 성공한 선배들의 강연은, 학생들의 의사와 관계없이 강제로 할당된 시간이다. 공간은 학교에서 가장 큰 편에 속하는 대강당에서 이루어졌다. 대강당이므로, 졸업 예비생이 모두 참석하더라도 자리가 남아돈다. 학생들은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졸업 선배가 있는 강단에서 가장 먼 뒷자리부터 차곡차곡 채워서 앉았다. 시작 시간이 되면, 맨 앞 강단의 졸업 선배와 뒷자리에 몰려있는 졸업 예정자들 사이에는 어김없이 커다란 공백이 자리한다. 공백으로 이루어진 벽 같은 느낌이다. 졸업 선배들도, 졸업 예정자들도 서로 당혹스러워할 만큼 멀리 떨어져 있는 상태다. 그 상태로 졸업 선배들이 2시간 정도 자신들의 이야기를 하다가, 시간이 끝나면 모두들 재빨리 밖으로 나간다. 그는 거의 유일하게, 졸업 선배와 가장 가까운 맨 앞자리에 앉아서 이야기를 들었다. 초창기 몇 번은 그랬다.



 하지만 그랬던 그조차도, 여러 졸업 선배들의 이야기를 반복적으로 들으면서 슬그머니 뒷자리에 앉기 시작한다. 졸업 선배들의 이야기가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졸업 선배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그는 도움이 될 만한 점을 얻을 수가 없었다. 강연을 하는 선배들이 취업 준비를 했던 상황과 그가 처한 상황의 차이가 너무 커서, 괴리감이 느껴질 정도다.


 강연을 하는 선배들은, 하나같이 인싸(인사이더, 학교에서 잘 노는 사람)이자 엘리트다. 학생회 회장을 하거나 대학생 시절 내내 무슨 굵직한 동아리의 자리를 꿰찼다. 학점이 낮다고 말해놓고는 3.7 밑으로 떨어지는 선배는 아무도 없다. 대부분 4점대가 넘는다. 또한 다들 취업 준비를 나름대로 열심히 했다고 말한다. 학생들 중 누군가가 선배들에게 묻는다.

 학생 : 취업하기까지 지원을 몇 군데 하셨나요?

 선배 : 저는 운 좋게 한 번에 됐어요. / 4군데 지원해서 2군데 붙었어요... etc


 이 답변을 듣자마자, 그는 선배들의 사례를 자신에게 대입할 수가 없음을 깨닫는다. 그는 이미 서류에서 70차례 넘게 탈락했다. 성격, 학교 생활, 스펙, 취업 활동에서 느낀 감정들까지 단 하나도 교집합이 없다. 그처럼 맨 땅에 헤딩해야 하는 상황이었던 선배는 아무도 없다. 그는 선배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슬그머니 짜증이 다.

 도대체 나는 어떻게 하라는 말인가. 이렇게 잘난 사람들 이야기만 들려주면 어쩌라는 건가.


 학교에서는 학기 내내 변함없이 인싸에 엘리트인 선배들만 초청한다. 그는, 이 정도면 엘리트 선배들과 학교 간에 무슨 로비가 있는 것은 아닌가 의심한다. 그런 부정적인 청탁 관계는 아닐 테지만, 그의 생각이 아주 틀린 의심은 아닐 것이다. 대학교 측에서도 학교 생활을 열심히 하지 않다가 취업만 잘한 학생보다는, 학생 시절부터 학생회와 학과 사무실을 자주 오가며 추억을 쌓았던 안면 있는 학생을 더 불러주고 챙겨주고 싶을 테니 말이다.



 그가 기억하는 졸업 선배들의 직장과 직무는 다음과 같다.

 국내 최대 포털 사이트의 UI 기획

 국내 최대 식품 회사의 국내영업

 증권사 애널리스트

등등


 관심 있는 분야를 처음부터 팠거나, 해외 거주 경험이 있거나, 개인 사업 경험이 있거나, 관련 수상 경력이 있는 선배들이다. 그는 이제 선배들과는 가장 먼 뒷자리에 앉아서, 어서 시간이 지나가길 바란다. 강연을 하던 선배들이 어쩌다가, 자신이 썼던 합격 자소서라고 PPT에 띄워주면 곧바로 핸드폰을 들어 사진을 찍는다. 하지만 그게 전부다.



 졸업 선배들의 강연에 참석하면서, 그는 조금씩 공상의 나래를 펼친다. 취업에 성공해서, 자신도 이런 강당에서 후배들에게 이야기를 해주고 싶다는 생각이다. 눈앞의 선배들은, 취업 이전의 스펙이나 조건들이 너무 잘 갖추어져 있어서 좀처럼 공감이나 도움이 되질 않는다. 차라리 자신처럼, 밑바닥이라고 생각할 만큼 스펙과 조건들이 좋지 않은 상황에서 취업한 사람을 데려와야 학생들의 눈과 귀가 트일 가능성이 높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와, 스펙도 좋고 준비도 너무 잘했네. 붙은 곳도 대기업이네. 대단하다.' 이런 교훈은 졸업 직전인 4학년들에게는 무의미하다. 취업이 코앞에 닥친 4학년은 시간이 없다. 스펙과 제반 사항을 처음부터 뜯어고칠 수가 없다.


 '저 사람은 저런 상황에서도 어떻게 취업을 했을까. 별로 좋은 회사도 아닌데 왜 이렇게 뻐대나?' 차라리 이런 느낌을 받는 것이 더 낫다고 생각하는 그다. 궁금한 것은 당사자의 취업 이야기를 들으면서 해소될 것이다. 부정적인 감정은, 치사하고 더러워서 내가 당신보다 더 좋은 직장에 붙어주고 말겠다는 오기로 이어지리라.


 

 졸업을 코앞에 둔 당시 그에게 필요한 것은 당장 취업 활동에 적용할 수 있는 실용적인 지식과, 오기를 끌어낼 만한 약간의 동기부여였다. 하지만 학교에서 준비한 졸업 선배 초청 강연을 보며 그는, 자신이 필요로 하는 것들이 결여되어 있다고 느낀다. 당장 눈앞의 돌을 쪼개고 깎아 어떻게든 공 비슷한 모양을 만들고자 하는 그에게, 깔끔하고 정밀하게 세공된 유리구슬을 보여주는 것과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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