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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얀 얼굴 학생 Feb 01. 2022

졸업 선배와의 만남

에이, 그 전에는 붙죠

 애XX타임이라는 앱이 있다. 그가 대학교를 다니던 시절, 대학생들에게 거의 필수인 앱이었다. 이 앱에 접속하여 대학교 이메일을 인증하고 로그인하면, 같은 대학 학생들만이 모여있는 각종 온라인 커뮤니티를 이용할 수 있다. 커뮤니티 외에 시간표, 강의평 등 다양한 추가 기능 제공한다.



 그는 대학 커뮤니티에 글을 활발히 게재하는 성격은 아니다. 직접 쓰진 않지만 어떤 글이 올라오는지, 인기 있는 글은 무엇인지 읽어보는 이른바 '눈팅족'이다. 졸업을 코앞에 둔 막학기 대학생으로서, 그는 취업 관련 정보글을 유심히 찾아본다. 그러던 와중 한 글이 눈에 띈다.


 이미 학교를 졸업했다는 익명의 글쓴이는, 커뮤니티에서 후배들에게 쓴소리를 하고 있었다. 취업에 성공한 선배로서, 지금 후배들을 보면 취업 준비를 너무 안일하게 한다는 내용이다. 당연히도, 해당 글 아래에는 꽤 많은 악플이 달렸다. 얼마나 잘난 곳에 취업했는지 인증해라 / 익명 말고 신상부터 공개해라 / 본인이나 잘해라 등의 반응이다. 글에 쓴소리가 담겨있기도 했지만, 기본적으로 문체가 상냥하지 않았던 탓으로 보인다.



 쓴소리이긴 하지만, 글을 읽으면서 그도 나름 느끼는 바가 있었다. 글쓴이는 글의 말미에, 개인적으로 만나 도움을 줄 용의가 있다고 밝혔다. 그는 글쓴이에게 쪽지를 보낸다.



 연락이 닿아, 그는 글쓴이와 한 까페에서 직접 만난다. 70여 차례 탈락했던 그의 표준 이력서, 자기소개서, 스펙을 정리해 뽑은 종이를 들고 까페로 향한다.


 글쓴이는 약속 시간에 꼭 맞춰 도착했다. 인사를 나누고 통성명을 한다. 글쓴이는 그와 같은 학교 선배, 상경 계열이지만 경영학과는 아니어서 그의 직속 선배는 아니초면이다. 그는 글쓴이를 선배라고 부르기로 한다.

 선배는 방금 일을 마치고 퇴근한 듯 캐주얼 정장 차림에, 회사원들의 상징 같은 전형적인 서류 가방을 들고 있다. 그는 자신을 위해 시간을 내준 선배에게 커피를 사겠다고 했지만 선배는 자신이 내겠다고 했다. 결국 누가 샀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자리에 앉자, 선배는 자신의 명함을 꺼내 건넨다. 혹시라도 의심의 소지를 없애고자 주는 것이라 말한다. 명함에 적혀있는 회사는, 확실하진 않지만 어디선가 들어본 듯한 이름이다. 그의 속내를 눈치챘는지, 선배는 무역 관련 회사라고 덧붙인다. 여러 품목을 취급하며, 자신은 그중 일부를 담당한다고 한다.


 선배는 A4와 펜을 꺼내더니, 이런저런 것을 써주며 설명을 시작한다.(빨간색 펜을 써서 그는 조금 당황했으나, 이내 익숙해진다) 선배가 꺼낸 A4에는 목차가 적혀 있다. 선배는 자신의 목차에 맞춰 설명한다. 사업장과 매출 규모에 따라 중소 / 중견 / 대기업으로 나누어진다는 것에서부터, 자신이 다니는 회사는 어느 분류이고 어떻게 합격했는지를 쭈욱 말해준다. 학교에서 들었던 졸업 선배 초청 강연보다, 훨씬 개인적이고 상세한 부분이 많다. 그가 원하던 정보에 훨씬 가깝다. 그는 주의 깊게 듣는다.


 선배는 원래 예체능 계열이었고, 상경계열을 복수전공했다. 복수전공 등으로 바빴던 탓에 취업 준비를 4학년 때 시작했고, 늦게 시작했기에 꽤 고생했다고 한다. 1년 중 8개월 동안 기본적인 스펙을 차곡차곡 쌓고, 남은 4개월은 회사와 직무를 확실히 정하고 집중한 덕에 취업에 성공했다고 한다.


 선배가 다니고 있는 회사는 연매출 500억대 회사로, 중소기업에 속하지만 이름은 꽤 친숙하다. 선배 스스로도 중소기업이라는 것을 강조하며, 중소기업이긴 하지만 자신이 목표했던 곳이고 나름 만족하며 다니고 있다한다.

 선배의 직무는 해외영업이다. 취급하는 품목이, 선배가 기존에 전공했던 예체능과 연관이 있다. 그는 이 부분에서, 선배와 자신의 사례에 조금은 불일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선배는, 이 정도의 연관성은 자기소개서와 면접 준비를 통해 스토리로 풀어낼 수 있다고 말한다. 그는 선배의 말을 들으며 조금씩 자신감을 얻는다.



 선배의 대략적인 이야기가 끝나고, 그는 자신이 준비해온 이력서 / 자기소개서 / 스펙 정리 문서를 건넨다. 선배는 그에게 양해를 구하고, 붉은 펜으로 표시를 하기 시작한다. 그의 자기소개서에서, 표현이 강한 부분을 동그라미 치며 모두 빼라고 말한다.

 그는 스펙 정리 문서에, 그가 했던 아르바이트 / 군대 경험 / 운전면허 등 자격증을 모두 적어 놓았다. 선배가 눈여겨본 부분은 영어다. 선배지금껏 봤던 후배들 중, 그의 영어 성적이 가장 좋다. 그는 약간 뿌듯했지만, 선배는 곧바로 "영어는 이 정도로 됐으니 직무 관련 경험이나 자격증이 필요하다" 고 말한다.


 그의 이력서, 자기소개서, 스펙 종이 위에서 선배의 빨간 펜이 신명나게 춤을 춘다. 너무 열정적인 코칭이어서, 그가 오히려 당황스러울 정도다. 선배는 2시간이 넘도록 그에게 코칭을 해주고 있다. 참신한 내용도 있고, 뻔한 내용도 있다. 하지만 취업에 성공한 선배를 면대면으로 만나, 집중도 있게 코칭을 받는 것은 의미가 크다. 그는 자신감을 얻고, 해야 할 것들이 정리된다는 느낌을 받는다.



 산업군은 아직 정하지 않았지만 해외영업 직무를 목표로 하고 있다는 그의 말에, 선배는 잠시 말이 없더니 가방에서 무언가를 꺼낸다. 선배가 지금 다니는 회사에 지원했을 때의 이력서, 개인 PR 자료(기업에서 요구하지 않았지만 분석 자료를 제출했다고 한다), 회사 분석과 직무 분석 등 면접 준비 자료다. 두께가 꽤 되는 A4 뭉치다. 2시간이 넘는 코칭 동안 고조되어왔던 감격이, 선배가 건네는 서류뭉치로 인해 완성된다. 그는 오늘 처음 만난 일면식도 없는 선배에게 큰 감사를 느낀다. 이날 선배의 조언을 요약하자면 이렇다.


 1. 지금부터라도 학점을 최대한 복구

 2. 업계, 회사, 직무 정하고 자세히 분석

 3. 직무 관련 자격증, 그리고 컴활을 취득

 4. 학교에서 하는 직무 관련 대외활동 참석

 5. 인X담당자, 면접왕X형 유튜브 구독

 물론 그는 이 조언들을 전부 따르지는 않았다. 약 30% 정도만 따랐고, 그것이 취업 여부와 직결되었는지는 알 수 없다.


 훗날 그의 이야기를 들은 몇몇은, 이 선배의 호의도 결국 자기만족의 일환이라고 했다. 후배들을 도우면서 스스로 만족감을 느끼는, 일종의 자기계발이라는 것이다. 물론 어느 정도는 그렇겠지만, 그렇다고 고마운 마음이 덜해질 것까진 없다고 그는 생각했다.



 2시간이 넘는 코칭이 끝나고, 어느새 음료도 모두 비었다. 선배는, 지금부터 준비해도 잘 취업할 수 있으니 너무 걱정하지 말라고 다. 영어 성적도 좋지 않느냐는 말도 덧붙다.

 그는 자신의 영어 성적을 보며, "이 성적이 만료(유효기간 2년)되기 전에 회사에 붙어야 할 텐데요" 라고 말다.

 그의 말에 선배는, "에이, 그 전에는 붙죠." 라고 말다.


 그는 선배의 말에 큰 용기를 얻었고, 인사를 나눈 뒤 헤어진다. 조언도 조언이지만, 무엇보다도 홀로 고민하던 그의 안에서 할 수 있겠다는 자신감이 피어난다. 코칭받은 대로, 그도 잘 해낼 수 있으리라.

 그러나 그영어 성적이 만료되기 전에 취업이 될 지 여부는 두고 볼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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