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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얀 얼굴 학생 Feb 26. 2022

1번째 기업 1차 합격

오픈 카카오톡 단체방, 임원 면접 준비

 1차 면접의 결과는 꼬박 3주일이 지난 뒤에야 발표됐다. 정확히 몇날 몇시에 발표된다는 기약이 없기 때문에, 그는 하염없이 기다린다. 메일과 문자를 계속해서 확인하고, 혹시나 놓치진 않았을까 1번째 회사의 홈페이지도 수시로 들락거린다. 이전에는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오면 무시하거나 차단했지만, 면접 결과를 기다리는 취준생은 그럴 수 없다.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오면 그는 설레기부터 한다. 혹시, 혹시나 1번째 회사에서 온 전화가 아닐까? 물론 단 한 번의 예외도 없이 모조리 광고성 전화다. 모르는 번호로부터의 전화에 설렘과 기대를 걸었던 만큼, 그는 광고성 전화로 판명되는 즉시 짜증스럽게 전화를 끊는다.


 그는 1번째 회사에 서류 합격한 지원자들이 만든, 100여 명 규모의 오픈 카카오톡 채팅방에 속해 있다. 다들 익명으로 참여하며, 구분을 위해 간단한 닉네임에 지원 직무만 적어놓는다. 그가 대강 세어보니, 해외영업 직무만 20명이 넘는다. 경쟁자처럼 느껴지지만, 그만큼 해외영업을 많이 뽑는다는 반증이기도 하리라.



 그는 이 오픈 채팅방을 정보 취득을 위해 참여했다. 혹시라도 자신이 모르는 고급 정보를 얻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에서다. 아주 헛된 기대는 아니었으나, 고급 정보는 극히 소수다. 대부분 검색으로 찾아볼 수 있는 보통 수준의 정보, 거기다가 다른 지원자들의 온갖 질문과 푸념이 주를 이룬다.

 '1번째 회사 취업 준비' 오픈 단톡방의 경우는, 닉네임을 현직자라고 지은 어떤 이가 방장이자 대장 노릇을 했다. 현재 무슨 직무를 맡고 있다며, 취준생들을 돕고자 이 방을 만들었다고 한다. 당연히도 오픈 채팅방에 참여한 취준생들은 자칭 현직자라는 방장의 말을 잘 듣는다. 방장은 닉네임을 어떻게 하라는 등의 기본적인 룰을 공지에 걸고, 혹시라도 분란의 소지가 있는 참여자가 있으면 강제 퇴장을 시킨다. 가끔씩 1번째 회사의 사내 분위기나 상황도 알려준다. 그는 오픈 채팅방을 끝까지 올려서 방장이 했던 모든 말을 찾아 읽는다. 사내 분위기가 어떻다, 연봉은 어떻다 등의 내용인데 크게 도움이 되진 않는다.


 정보 취득을 위해 참여한 오픈 채팅방이지만, 계속 보고 있노라면 오히려 마음의 평정을 잃고 혼란스러울 때가 많았다. 그가 특히 혼란스러웠던 경우는, 면접 결과를 기다리는 시기다. 면접 전에는 그나마 조용했던 단체 카톡방은, 면접이 끝나기가 무섭게 조금씩 시끄러워지기 시작한다. 면접을 잘 본 것 같다느니, 못 본 것 같다느니, 다른 곳을 붙었다느니, 결과는 언제 나오느니 등으로 시끄러워진다. 익명의 참여자들이 각자 쏟아내는 정보들의 신뢰성은 보장할 수 없다. 제대로 된 정보인지, 생각나는 대로 쓰는 것인지, 지나가다가 스치듯 들은 것인지 전혀 알 수 없다.


 1차 면접 결과가 발표되기까지 3주 동안, 채팅방에서는 이른바 빌런(악당)이 존재했다. 누군가 한 명이 악당인 것이 아니라, 모두의 내면에 존재하는 악당이다. 매일매일 다른 닉네임의 누군가가, 오늘이 바로 면접 발표일이라며 운을 띄운다. 오늘 몇 시에 발표한다며, '약속의 몇 시' 라고 약 1시간에 한 번씩 톡을 날린다. 그는 처음에는 이 악당에게 속아 '약속의 몇 시'를 손꼽아 기다렸다. 누가 약속했는지 모르겠는 '약속의 시간'이 다가오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으면, 악당은 어디론가 슬그머니 사라진다. 기다렸던 신도들은 실망감을 표하며 푸념하고, 다음 날이 되면 또 다른 악당이 나타나 '약속의 몇 시'를 외친다.


 거의 매일같이 '약속의 몇 시' 장난이 계속되자, 그는 짜증이 나기 시작한다. '약속의 몇 시' 라고 카톡을 올리는 사람을 당장에 강퇴해버리고 싶지만 그에게는 권한이 없다. 문제는, 아무런 보장도 없지만 이상하게 '약속의 몇 시' 라는 톡을 보고 나면 혹시나 하는 기대가 생긴다는 점이다. 아무리 무시하려 해도, 그는 절박하고 간절한 취업준비생이다. 언제 발표가 날까. 약속의 몇 시라고 하는데, 그때 나지 않을까? 그는 아닐 줄 알면서도 매번 악당에게 놀아난다.



 1차 면접을 본 지 3주가 지나서야, 문자 메시지가 도착한다. 면접 결과가 발표되었으니, 이메일을 확인하라는 문자다. 오픈 카카오톡방도 덩달아 시끄러워지기 시작한다. 그는 두근거리는 가슴을 억누르며 이메일을 확인한다. 합격했을까? 그가 그토록 정리하고 외웠던 시간은 헛되지 않은 시간일까?


 합격이다. 그는 터질 듯한 마음을 억누르며, 애써 자신을 다독인다. 큰 산을 넘었지만, 아직 마지막 고비가 남았다. 바로 임원 면접이다. 잘은 모르겠지만, 회사의 높은 분들인 임원들과의 면접이다. 그는 첫 취업준비에서의 1번째 기업에서 벌써 이만큼의 성과를 이루었다. 이대로 한 단계만 더 통과하면, 그는 번듯한 직장인으로 거듭날 수 있다. 이번 임원 면접도 준비를 철저히 하리라.


 1번째 기업의 면접 전형은 두 번 이루어진다.

1차 면접 (팀장 면접 / 직무 면접)

2차 면접 (임원 면접 / 최종 면접 / 인성 면접)

 가장 기본적인 면접 프로세스다. 기업에 따라서는 면접을 한 번에 끝내는 경우도 있고, 3번까지 보는 경우도 있다. 보통 1차에서 직무에 맞는가를 평가하고, 2차에서는 회사의 인재상과 잘 맞는지 인성을 평가한다고 한다. 하지만 면접이라는 것이 칼로 무 자르듯 이번에는 직무만 보고 다음에는 인성만 보진 않는다. 두 면접 모두 직무와 인성을 종합적으로 평가하지만, 1차에서는 직무를 중점적으로 보고 2차에서는 인성을 중점적으로 본다는 표현이 더 맞다. 면접은 기업에 따라서 천차만별이고, 면접관의 그날 기분이나 컨디션에 따라서도 질문이 천차만별이 된다. 따라서 취업준비생 입장에서는 1차든 2차든 직무와 인성 모든 측면에서 준비하는 편이 안전하다.



 그는 임원 면접을 준비하면서, 합격한 1차 면접을 복기한다. 면접 때 만났던 경쟁자들이 붙었는지 떨어졌는지는 알 수 없지만, 어쨌든 그는 합격했다. 자신의 가능성을 보아주고 인정해줬다는 생각에, 1번째 기업에 대한 그의 애정과 충성심이 한층 더 높아진다. 괜스레 1번째 기업에 출근하는 자신의 모습도 상상되고, 첫 월급을 타면 어떻게 써야 하나 상상도 해본다.


 1차 면접을 복기해보았을 때, 그가 후회한 점이 3가지 있다.

 1. 호주 워킹으로 배운 것 질문에서, 긍정적으로 답하지 않았던 점 (해외에서 사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것을 배웠다고 답함)

 2. 대리점을 방문해가면서까지 기업 조사를 위해 노력했던 점을 언급하지 않은 점

 3. 마지막 암기 쇼를 할 때, 해외 영업 관련 정보를 빼먹은 점 (수출거래방식, 대금 수령 방식 등)


 그는 이 세 가지를, 면접 준비 워드 파일 맨 앞에 붉은 글씨로 커다랗게 적는다. 다행스럽게도 1차 면접을 합격했지만, 최종 면접은 더 어려울 수도 있다. 절대로 후회가 남지 않도록, 이 3가지만큼은 반드시 기억하겠다고 생각한다.



 1차 면접 결과 발표 후, 단체 오픈 카카오톡방의 규모도 꽤 줄었다. 결과 발표 전 100명이 훌쩍 넘던 참여 인원 수가, 결과 발표 후 100명이 조금 못 되는 수로 줄었다. 그는 속으로, 생각보다 많이 줄진 않았다고 생각한다. 익명의 몇몇 참여자들은, 1차 면접이 끝났는데도 왜 인원이 조금밖에 줄지 않았느냐며 대놓고 불만을 표출했다. 최종 면접인데도 경쟁률이 높겠다면서 왜 이렇게 하냐는, 회사를 향한 원망인지 경쟁자들은 향한 원망인지 명확하지 않은 원망을 표출한다. 그도 비슷한 생각을 갖고 있긴 하지만, 카톡방에 대놓고 적지는 않는다. 익명이라는 가림막으로 인해 개개인의 본성이 더 잘 드러나는 것이리라, 그는 생각한다.


 단체 카톡방에는 여러 취준생들이 섞여 있다. 1번째 기업은 공채 이외에도 설치 기사를 따로 채용하고 있었다. 그리고 설치 기사 직무는, 1차 면접 한 번으로 바로 채용이 결정됐다. 1차 면접 결과가 발표된 후, 공채 지원자들은 계속해서 임원 면접을 준비하고 설치 기사 직무를 지원했던 이들은 입사하는 상황이다. 그런데 입사한 설치 기사 중 한 명이, 단체 카톡방을 나가지 않고 그대로 남아 있는다.


 익명의 신입 설치 기사는, 취준생이었을 때도 카톡방에서 이런저런 말을 많이 쓰는 편이었다. 각종 질문은 물론, 자신이 면접을 어떻게 봤다느니, 반드시 붙고 싶다느니 등의 말을 했다. 다른 모든 참여자들처럼, 1번째 회사 취업이 간절한 듯했다. 설치 기사 직무에 합격하자 카톡방에 자랑스럽게 소식을 알리며, 다들 열심히 하라는 식으로 격려의 글도 남겼다.



 그런데 이 신입 설치 기사가, 입사한지 3일차부터 이상한 말을 하기 시작한다. 오늘 선배들한테 혼났다느니, 고객이 무슨 요구를 했는데 전혀 모르겠다느니, 생각보다 월급이 적을 거라느니 등의 내용이다. 채팅방은 언제나 그렇듯 말하는 인원들만 말하고, 대부분은 답이 없다.


 신입 설치 기사는 술을 마셨는지, 저녁 11시가 넘은 시간에 또다시 단체방에 푸념을 늘어놓는다.

 이 회사는 월급도 적고, 일도 힘들고, 선배들이 갈군다. 여러분, 여기 들어오시려면 정말 잘 생각해보셔야 한다. 제가 할 말이 정말 많지만 보안상 이 정도로만 말을 한다. 밖에서 보는 게 다가 아니다. ...

 푸념은 계속해서 이어진다. 몇몇 인원들이, 많이 힘드냐며 위로한다. 신입 설치 기사는, 위로와 관심을 기다렸던 마냥 탄력이 붙어 푸념을 쏟아낸다.


 그는 이 신입 설치 기사의 언동과 행동이 상당히 아니꼽다. 입사에 성공했음에도 굳이 취준생 카톡방에 남아 있는 이유를 이해하기 힘든 것이 첫 번째다. 두 번째로, 현재 임원 면접을 준비하며 누구보다도 1번째 기업 취업이 간절한 취준생들이 가득한 채팅방에서 쓸데없이 회사 욕과 푸념을 늘어놓는 심보가 심히 거슬렸다. 본인의 입사 전 간절함과 합격 당시 채팅방의 누구보다도 시끄러웠던 것을 그새 까먹고, 입사 일주일차에 이런 언동과 행동을 보이는 것은 추태라고 생각하는 그다.


 그는 이런 추태를 보이는 신입 설치 기사에게, 따끔하게 한 마디 하고 싶다. 아니면, 당신 술주정 들어주고 싶은 사람 아무도 없으니 핸드폰 끄고 잠이나 자라고 말하고 싶다. 그런데, 그는 이를 행동에 옮기지 못한다. 그는 취업준비생으로, 1번째 회사에게 어떻게 해서든 잘 보여야 하는 면접자다. 그런 면접자, 즉 외부자가 회사 내부자에게 듣기 싫은 말을 해도 되는 것일까. 괜히 이런 소리를 했다가, 내부자에게 아니꼬운 소리를 했다고 면접에서 불이익을 받는 것은 아닐까. 말도 안 되는 생각이었지만, 간절하고 절박한 취업준비생인 그의 머릿속에서 온갖 잡다한 걱정과 불안이 솟구친다. 그도 어쩔 수 없는 사람이며, 사람은 원래 무언가에 심히 간절하거나 절박할 경우 비굴해지기 마련이다.



 간절한 취업준비생 누구도 나서지 않는다. 신입 설치 기사는, 관심과 위로를 받으며 푸념과 폭로가 극에 달한다. 보다못한 방장(현직자)이, 할 말이 있다며 해당 설치 기사에게 개인톡 링크를 보낸다. 그제서야 카카오톡방이 잠잠해진다.


 그는 쓸데없이 조심하고 불안해하는 자신에게 약간의 혐오를 갖는다. 동시에, 신입 설치 기사를 보며 의문이 생겨난다. 저렇게 행동과 언동이 가벼운 사람도 합격했는데, 설마 자신이 떨어지면 어떻게 하나. 만일 떨어진다면 그것은 자신의 능력이나 인성이 저 신입 설치 기사보다 못하다는 반증인가? 아니면 면접 과정에서 적합한 인재를 제대로 선별하지 못하는 1번째 기업의 잘못인가?


 혹자는 그의 이야기를 듣고, 설치 기사는 전문대졸일 테니 그것이 부분적인 이유라 말했다. 즉, 덜 배워서 사람이 덜 됐다는 뜻이다. 많은 이들이 은연중에 동의하는 생각이긴 하지만, 그는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저 신입 설치 기사가 특이한 경우일 것이다. 능력이 엄청 뛰어난 사람일지도 모른다. 어쨌든 지금은, 임원 면접 준비에 총력을 다해야 할 때다.



 임원 면접은 1차 결과 발표일로부터 일주일 뒤다. 그는 이미 1차 면접 때 준비 자료를 빡세게 만들어 놓았기 때문에, 특별히 더 준비할 것이 없다. 면접왕 X형과 인X담당자 유튜브를 보며, 임원 면접의 분위기를 어림짐작해본다. 직무보다는 인성에 더 초점을 맞췄을 것 같지만, 그래도 혹시 모른다. 그는 불안하고 설레는 마음을, 암기했던 자료들을 계속 반복해서 보며 가라앉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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