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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얀 얼굴 학생 Mar 07. 2022

1번째 기업, 2번째 면접

1 - 면접 직전, 직무 변경

 1번째 기업은, 밀당이라도 하는 것 마냥 자꾸만 거리를 뒀다. 1차 면접 발표도 오래 걸렸는데, 2차 면접 일정이 두 번이나 바뀐다. 처음에는 회사 내부 사정으로 최종 면접 일자를 1주일 정도 미룬다고 했다. 며칠 뒤, 코로나 추세가 악화됨에 따라 기존의 대면 면접 일정을 화상 면접으로 바꾸겠다는 두 번째 변경 메일이 날아왔다. 화상 면접이라는 안내를 보고 그는, 자신의 열정과 도전 정신은 대면 면접에서 보여주는 것이 유리할 텐데 아쉽다고 생각한다.


 임원 면접 날짜를 애타게 기다리던 그에게 이런 변경과 지연 메일은 은근히 거슬리는 것이었지만, 그는 애써 내색하지 않는다. 밥도 뜸을 들여야 더 잘 되는 것처럼, 1번째 기업과 그 사이의 인연이 더욱 성숙해지는 것이리라 생각한다. 1, 2주일 정도 더 걸리면 어떤가. 최종 합격해서 1번째 기업에 출근하는 자신의 모습을 상상할 때마다, 그의 입꼬리는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찢어진다. 그는 헛된 희망을 품지 않고자 하지만, 최종 합격까지 고닥 한 단계 남았다는, 거의 다 올라왔다는 생각이 자꾸만 피어난다. 동시에, 아직 합격하진 않았지만 합격한 이후의 자신의 모습이 자동적으로 떠오른다.



 임원 면접을 준비하면서, 그는 1번째 기업 취준 단톡방을 더욱 세세히 관찰한다. 유용한 정보가 거의 없다시피 하지만, 그래도 확인한다. 혹시라도 임원 면접에 관한 팁이 올라오지 않을까, 매일 단톡방을 처음부터 끝까지 훑는다. 수많은 톡들 중에서 중요한 정보가 없으면, 그는 확인한 시간이 아깝기도 했지만 내심 안심이 됬다. 오늘도 놓친 정보가 없구나 하는 안도감이다.


 오픈 채팅 단톡방을 확인하면서, 은근히 신경 쓰이는 말들이 있었다. 1차 면접 진행 당시, 자신이 지원했던 직무와는 다른 직무로 면접을 보았다는 증언들이다. 1번째 기업은 이력서 작성 당시, 직무를 1 지망과 2 지망으로 반드시 두 가지를 고르게 설정해놓았다. 그런데 면접을 본 인원들 중, 2 지망으로 면접을 본 인원들이 꽤 많다. 사전에 안내도 없이, 면접을 시작하고 나서 보니 2 지망 직무였다는 것이다. 다행히도 그는 1 지망인 해외영업으로 면접을 봤고, 합격했다. 현재 단톡방에 남은 최종 면접 인원들은,  설마 최종 면접에서 직무를 바꾸겠느냐는 의견이 우세하다. 그도 같은 의견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그는, 자신이 해외 영업 직무로 최종 면접을 볼 것이라는 사실에 대해 전혀 의심하지 않았고 전화해서 확인하지도 않았다.



 대망의 면접날이 밝았다. 그는 아침부터 면접 준비로 분주하다. 막상 준비해보니, 화상 면접이 대면 면접보다 신경 쓸 것이 많다. 

 1. 노트북 : 화상 면접을 할 기기가 있어야 한다. 그는 다행히도 카메라가 내장된 노트북이 있다.

 2. 와이파이 : 네트워크가 잘 연결되어 있는지 확인해야 한다. 혹시라도 면접 중에 연결이 끊기면, 재앙이다.

 3. 화면 배경 : 자신이 나오는 화면의 배경도 신경 써야 한다. 그는 일부러 가구를 치워 벽이 보이게끔 한다.

 4. 복장 : 화상 면접이라고 해도, 복장은 당연히 정장이다. (그는 화면에 보이는 상의만 정장을 입으려 했으나, 간혹 어떤 기업은 화상 면접 중에 일어나라고 하는 경우가 있다고 한다. 혹시 모르니, 그는 하의까지 풀 정장을 입는다)


 이런저런 준비에 더불어, 그는 오전에 미용실까지 다녀온다. 그가 단골로 가는 미용실의 원장은, 그의 최종 면접 소식을 듣고는 손수 머리와 메이크업을 해준다. 원장은 폭신하고 말랑한 솜으로, 그의 얼굴에 무언가를 찍어 바른다. 화장이라고는 질색하는 그이지만, 1번째 기업 합격을 위해서 참는다. 말랑한 솜이 닿을 때마다 그의 얼굴은 핏기 없이 창백해지고, 마지막 붓 터치에 입술도 붉어진다. 그는 생전 처음 머리를 세우고, 얼굴에 메이크업까지 했다. 솔직히 그는 입술만 붉은 미라 같은 모습이 별로 마음에 들지 않는다. 평소 모습 그대로 자연스러운 자신을 보여줘야 되는 것 아닌가? 하지만 원장은, 면접 때는 이런 식으로 보여지는 모습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그는 원장의 조언을 따르기로 한다.


 난생처음 화장한 얼굴은 왠지 막이 씌워진 것처럼 가렵고, 왁스로 한껏 세워 올린 머리도 부자연스럽다. 하지만 그는 얼굴과 머리에 손을 대지 않는다. 완벽하게 세팅된 모습 그대로 면접관들에게 보여야 한다. 일부러 하얀 배경을 만들기 위해, 방 안의 가구들까지 한쪽으로 치우고 노트북을 세팅했다. 면접관들이 보는 화면에는, 깔끔한 외모의 지원자가 깔끔한 하얀 배경에 앉아 있으리라. 하지만 실상은, 노트북 카메라가 촬영하는 반대편에 그가 치워놓은 물품들이 어지러이 자리 잡고 있다.



 안내 메일에 적힌 시간이 다가온다. 그는 초조한 마음으로, 다리를 떨고 싶은 마음을 억누르며 앉아 있다. 1번째 기업은 화상 면접을 위해 'Zoom'이라는 프로그램을 사용한다. 메뉴얼을 따라 설치했지만, 혹시라도 잘 실행되지 않으면 어쩌나 은근히 불안하다. 다행히도 잘 실행된다.


 Zoom 프로그램에 접속해서 기다리고 있던 그에게, 초대 링크가 날아온다. 1번째 그룹 최종 면접 대기방이라고 한다. 그가 수락을 누르자, 화면이 바뀌며 화상 회의가 열린다. 화면에는 그를 포함해 4명이 보인다. 딱 봐도 1명은 인사담당자이고, 나머지 3명은 면접자다. 인사담당자는 상투적인 인사말을 건네며, 지원자들의 네트워크와 마이크 연결 상태를 확인하고 면접에 대해 안내한다.


 인사 담당자에 의하면, Zoom에 접속하라고 안내한 시간은 최종 면접이 시작되기 30분 전의 시간이다. 즉, 그와 지원자들은 앞으로 30분 더 대기해야 한다. 그는 30분이라는 시간을 어떻게 더 기다리나 막막하다. 긴장과 초조함이 점점 더 심해져서, 차라리 빨리 면접을 보고 끝내버렸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는 항상 시험이나 무언가를 할 때, 실제로 시작하는 것보다 기다리고 대기하는 시간이 더 초조하고 고통스럽게 느껴졌다. 이번에도 그는 속절없이 30분이라는 인내의 시간을 마주한다.



 인사담당자는 안내를 끝낸 뒤, 별다른 질문이 없으면 카메라를 끄고 30분간 대기하라고 말한다. 갑자기 그의 뇌리를 스치는 것이 있다. 조그만 화면 속이지만, 그가 지원자들을 보아하니 느낌이 뭔가 다르다. 1차 면접 때 만났던, 해외영업 경쟁자들과는 왠지 모를 거리감이 느껴진다. 그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묻는다.

 그 : 담당자님, 지금 해외영업 최종 면접이 맞나요?

 담당자 : 네? 아닙니다. 지금 조는 '영업기획' 직무입니다.


 담당자의 답을 듣자 그는 심히 당황한다. 당황한 나머지, 그는 답을 하는 것도 잊는다. 잠시 침묵이 흐른 뒤, 그는 뒤늦게 알겠다고 말한다. 담당자는, 질문이 끝났으면 이제 카메라를 끄고 대기하라고 말한다.


 카메라를 끄자마자, 그는 1번째 기업 홈페이지의 직무 소개를 검색해 들어간다. 황급히 영업기획 직무를 찾아, 해당 직무가 무슨 일을 하는지를 훑는다. 급하게 읽긴 하지만 머릿속에 잘 들어오지 않는다. 그는 해외영업 직무에 맞춰 모든 것을 준비했다. 1차 면접도 합격했으니 당연히 해외영업 직무 그대로 진행하는 줄 알았건만, 하필 최종 면접이라는 마지막 단계에서 직무가 2지망으로 바뀌어버린 것이다. 

 그는 너무 당황한 나머지, 인사팀을 탓할 생각도 하지 못한다. 우선 최종 면접을 붙는 게 먼저다. 해외영업이든 영업기획이든, 어차피 신입에게 깊은 직무 내용을 요구하진 않을 것이다. 가뜩이나 최종 면접의 면접관은 임원들이다. 인성과 태도, 더 큰 방향에 대한 것을 물어보리라고 생각하는 그다. 부디 그러길 바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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