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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얀 얼굴 학생 Mar 13. 2022

졸업 유예

코로나

 1번째 기업에 최종 탈락하고, 그는 덜컥 현실과 마주한다. 1번째 기업에 취업해서, 대학교 졸업과 동시에 출근하는 자신의 모습을 상상하고 있었던 그다. 하지만 모든 것이 물거품이 되어버렸다. 1번째 기업을 최종 탈락한 이튿날부터, 그는 다시 미친 듯이 이력서를 넣는다. 하지만 졸업과 동시에 취업을 할 수 있으리란 막연한 기대감은 점점 옅어져감을 느낀다.


 

 막학기 대학생인 그는, 졸업에 필요한 여건을 이미 만족한 상태다. 전공기초, 전공선택, 교양 등 졸업에 필요한 학점과 수업들은 모두 이수해 두었다(이수했다는 것이지 성적이 좋은 것은 아니다). 즉, 시간이 흘러 막학기가 끝나기만 하면 자동으로 졸업하는 상태다. 그와 같은 막학기 대학생들을 위해 학교에서 시행하는 하나의 제도가 있었으니, 바로 '졸업 유예' 제도다.


 졸업 유예는 학교에 따라 여러 이름으로 불린다.

 '졸업 유예 / 졸업 연기 / 학위 취득 유예 / 학위 취득 연기'

 이름은 다르지만, 기본적인 내용과 골자는 같다. 졸업을 앞둔 예비 졸업생들의 졸업을 한 학기 미룰 수 있게 해주는 제도다. 굳이 졸업을 미루는 이유가 무엇일까? 대학교는 값비싼 등록금을 내는 대가로 학교 시설을 이용할 수 있게 해 준다. 졸업생들은 졸업과 동시에 등록금을 내지 않기 때문에, 학교 도서관 등 학교 시설에 대한 이용이 일체 중지된다. 대학교 시설을 더 이용하기 위해 일부러 졸업 유예를 신청하는 예비 졸업생들도 있다고 한다.


 시설 이용을 위해 졸업 유예를 신청하는 이들도 있겠으나, 졸업 유예를 신청하는 주된 이유는 따로 있다. 바로, 졸업 시점에 취업에 성공하지 못한 대학생들을 위한 일종의 '도피처'를 제공하는 기능이다. 대학교 측에서도, 취업에 실패한 학생들을 위해서 졸업 유예 제도를 시행하는 느낌이 없지 않다. 그래서인지 졸업 유예를 신청하는 데는 따로 돈이 들지 않는다(그의 대학교는 그랬다).



 구직난과 취업난이 점점 심해지고, 기업들의 눈높이는 하루가 달리 드높아진다. 한국의 기업들은 원래부터 신입 입사자의 나이를 따졌으며, 이제는 졸업 이후 공백 기간까지 따지기에 이르렀다. 졸업하고 오랜 시간이 지난 지원자보다, 갓 대학교를 졸업한 신선한 졸업생을 선호하는 듯하다. 졸업과 동시에 취업을 하면 가장 좋겠으나, 그러지 못하는 대학생들도 꽤 많다. 졸업 이후 약 6개월 동안 취업 준비를 해서 서류에 합격했다고 치자. 이런 경우 면접 때,

"졸업은 6개월 전인데, 왜 이제야 면접을 보나요? 졸업하고 6개월 동안 뭘 했나요?"

 라는 질문을 받는 경우가 생겨나기 시작한 것이다. 질문을 받는 취준생 입장에서는 당연히 취업 준비를 했다고 답하겠지만, 기업 입장에서는 만족스럽지 않은 모양이다. 졸업 이후의 빈 시기를 기업은 '공백기'로 간주한다. 해당 '공백기' 동안, 공모전을 하던 대외 활동을 하던 무엇이라도 채워놓아야 면접에서 마이너스가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졸업 이후 취업을 준비하는 이 기간, 즉 '공백기'에 대한 꼬투리를 잡히지 않고자 대학생들은 졸업 유예를 선택한다. 불리한 것을 하나라도 줄이고자 하는 취준생의 몸부림인 셈이다. 대학에 이름만 걸려있을 뿐, 달라지는 것은 없다. 다만 면접을 볼 때, 면접관이 받은 이력서나 졸업증명서에는 졸업 유예를 신청한 이도 학생으로 기재되어 있다. 안 그래도 현업에 바쁜 면접관들은, 대학교 재학 기간이 조금 길구나 생각하고 그냥 넘어가는 것이다. 


 

  공교롭게도 그가 최종 탈락한 직후, 그의 대학교에서는 졸업 유예 신청을 받기 시작한다. 이전 같았으면 그는 졸업 유예에 관심을 두지 않았을 터다. 그는 졸업 유예를, 얄팍한 임시 가림막이나 덮개 정도라고 생각한다. 졸업을 앞둔 예비 졸업생들이, 기업 면접에서 '공백기'에 대한 질문을 피하고자 임시로 학교에 발만 올려놓게 하는 제도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졸업 유예 제도에 대한 그의 이런 생각은 아주 틀린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1번째 기업 취업 마지막 문턱에서 좌절당한 경험이, 졸업 유예라는 임시 가림막에 대한 그의 부정적인 생각을 뒤집어 버린다. 취업이 언제 될지 알 수 없다. 졸업한 이후에도 취업까지 얼마나 걸릴지 기약이 없다. 공백기가 길어질수록 기업 입장에서는 탐탁지 않게 볼 텐데, 그렇다면 졸업 유예를 해야 하지 않을까?


 그가 4학년 막학기를 다니고 있던 시기는, 코로나가 창궐한 초창기다. 어느 나라의 어느 지역 박쥐에게서 유래했다느니, 이제 한국에도 확진자가 많이 나오고 있다느니 하던 시기다. 대학교 수업은 대부분 온라인으로 전환되었다. 1번째 기업의 최종 면접도 코로나로 인해 화상 면접으로 전환되었다. 그는 아직 코로나가 뭔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의 취업 활동에 썩 도움이 되진 않을 것 같다는 느낌이 든다. 뉴스에서도 코로나 때문에 취업이 힘들어질 것이라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그렇다면 그 자신은 도대체 언제쯤 취업에 성공할 수 있을까?

 

 그의 대학교는 졸업 유예를 6개월에 1번씩, 총 4번 신청이 가능하다. 즉 2년이라는 기간을 더 '무늬만 학생' 신분으로 남아있을 수 있다. 

 설마 2년까지 걸리진 않겠지. 그는 졸업 유예를 신청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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