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번째 기업 최종 탈락
내정자가 있었던 것 아닌가
1번째 기업은, 최종 면접 발표 때도 밀당을 한다. 처음에는 XX월 3주차에 최종 합격자를 발표하겠다고 메일이 왔다. 그런데 합격 발표를 일주일 앞두고, 3주차가 아닌 4주차로 최종 합격 발표를 연기하겠다고 다시 메일을 보낸다. 단톡방은 또 시끌시끌해지지만, 그는 억지로 감정들을 억누른다. 일주일 더 걸리면 어떤가. 최종 합격만 하면 된다.
최종 합격을 기다리고 있지만, 그는 이미 자신이 1번째 기업에 합격해서 다니고 있는 듯한 기분이다. 합격하고 나면 어떻게 생활할지, 출퇴근은 어떻게 해야 할지 등 상상의 나래를 펼치고 있다. 누가 보면 김칫국 마신다고 하겠지만, 당시의 그는 김칫국이 아니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는 합격한 이후, 1번째 기업의 제품을 직원가로 할인된 가격에 구매해서 지인들에게 선물할 계획까지 갖고 있다. 그 정도로 그는 들떠 있었고, 자신이 합격할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했다.
어느덧 4주차, 그는 하루 종일 컴퓨터 앞에 앉아있다. 1차 면접 발표 때도 그랬듯, 1번째 기업은 발표일을 정확하게 명시하지 않는다. 3주차 무슨 요일이 아니라, 그냥 3주차라고만 기재해서 메일을 보낸다. 발표를 목 빠지게 기다리는 취업준비생 입장에서는 당장 월요일에 발표를 해주었으면 좋겠지만, 기업 입장에서는 채용 말고도 할 일이 많은 듯하다. 3주차라고 적혀 있으면, 정확한 발표일은 3주차 금요일 저녁 5시 이후라고 생각하는 게 맞다. 그는 1차 면접 발표 때, 월요일부터 매일같이 컴퓨터 앞에 앉아있으며 이 사실을 깨달았지만, 그의 몸과 마음은 헛된 희망을 버리지 못한다. 그는 이번 최종 면접 발표 때에도, 4주차 월요일 아침부터 컴퓨터 앞을 지킨다.
하루하루 배신감을 느끼며, 또 배신당할 것을 알면서도 기다린다. 어느덧 4주차 금요일이 된다. 설마 여기서 더 미루지는 않겠지. 그는 컴퓨터 앞에 앉아 괜히 이것저것 창을 열며 불안함을 달랜다. 기분이 썩 좋지는 않다.
핸드폰이 울린다. 동시에 단체톡방도 시끄러워지기 시작한다. 최종 면접 결과가 발표되었다는 소식이다. 단체톡방은 시끄러움과 동시에, 인원도 급속히 줄어들기 시작한다. 그는 심호흡을 하고, 일부러 행동을 느리게 한다. 서두를수록 일을 그르친다. 천천히, 아무렇지 않은 듯 확인하면 된다. 그는 어느새 익숙해진 1번째 기업 채용 홈페이지를 들어간다. 최종 합격자 발표 탭을 클릭하고, 자신의 이름을 적어넣는다.
불합격
새빨간 글씨로, 불합격이라는 글자가 너무나도 선명하게 보인다. 한글을 읽을 줄 모르는 사람인 마냥, 그는 잠시 머뭇거린다. 불합격이라는 단어의 뜻을 뒤늦게 파악한 것처럼, 한 템포 늦게 한숨이 터져 나온다. 불합격이다. 그냥 불합격도 아니고, 최종 불합격이다. 이제 어떻게 해야 하나.
실망은 분노와 궁금증으로 확산된다. 도대체 왜 떨어진 거지? 누가 붙은 거지? 내가 뭘 잘못했지? 그는 너무나도 억울하고 분해서, 도저히 카톡방을 나갈 수가 없다. 단톡방에서는 최종 합격한 익명의 인원들끼리 이미 축제 분위기다. 그는 자신이 비참해질 것을 알고 있지만, 그래도 떨어진 이유와 누가 붙었는지는 알아야겠다고 생각한다. 그는 축제 분위기인 단체 카톡방에서 홀로 비장한 도배글을 올린다.
'영업기획 직무 합격하신 분 계신가요?'
그의 도배글을 보고, 영업기획 직무로 최종면접을 보았던 3명이 모두 모인다. 5분도 안 되는 시간 내에 모두 모여서, 오히려 신기할 정도다. 축제 분위기인 시끄러운 단톡방을 빠져나와, 영업기획 직무 3명이서 따로 오픈채팅방을 만든다.
채팅방에 들어가자마자, 3명의 영업기획 최종면접자는 서로에게 합격했느냐고 묻는다. 그는 불합격했으니, 남은 둘 중에 합격자가 있을 줄 알았다. 그런데 이야기를 해보니, 셋 중에는 합격자가 없다. 영업기획으로 최종면접을 본 유일한 조의 3명이 모두 불합격한 것이다.
도무지 영문을 알 수 없어 혼란스러운 와중에, 한 명이 1번째 기업 인사팀에 전화를 걸어 문의를 했다고 한다. 전화를 했다는 면접자의 말에 의하면, 이번 영업기획 직무 최종 면접에 참여한 인원은 모두 불합격했으며 다른 직무에 지원한 인원을 영업기획으로 뽑았다는 답을 인사팀으로부터 들었다고 한다. 그는 이게 무슨 말인지 어안이 벙벙하다.
그는 자신의 귀로 직접 확인하고자, 1번째 기업 인사팀에 전화를 건다. 몇 번 끊어지고 다시 걸고 나서야 연결이 된다.
그 : 안녕하세요, 이번 영업기획 직무로 최종 면접을 본 '하얀 얼굴'입니다. 최종 불합격 통지를 받았는데 맞나요?
인사팀 : 아 네 잠시만요... 네, '하얀 얼굴' 씨는 불합격입니다.
그 : 제가 알아보기론 영업기획 최종 면접을 같이 본 인원들이 모두 불합격인데, 맞나요?
인사팀 : 아... 그 부분은 저희가 알려드릴 수 없습니다.
그 : 다른 인원이 전화로 확인했다고 하는데, 말씀을 못해주신다고요?
인사팀 : 네.. 그 부분은 저희가 말씀드릴 수 없습니다. 죄송합니다.
그 : 다른 인원한테는 얘기를 해주시고, 저한테는 안된다는 말씀이신가요? (그는 이 부분에서 살짝 화가 치밀어 오른다)
인사팀 : 네... 저희가 확인해드릴 수 있는 부분은 없습니다.
그 : 알겠습니다.
인사팀과의 통화를 통해, 그는 1번째 기업에 남아있던 미련이 모두 사라짐을 느낀다. 이렇게까지 애정을 갖고 노력한 자신에게, 왜 떨어졌는지 어떻게 된 일인지조차 알려주지 않는 1번째 기업. 그동안 채용 일정과 발표날을 몇 번이고 미뤄온 기억까지 더해져, 오히려 1번째 기업이 싫어진다.
예상치 못한 상황에, 어떤 설명도 없다. 최종 면접에서 다함께 떨어진 영업기획 3인은, 그 누구도 보지 못하는 오픈카톡방 속에서 1번째 기업을 욕하고 그들의 감정을 배설한다. 이딴 식으로 일을 진행하는 기업이 어디 있느냐, 직무 바뀐 것도 당일에서야 알았다 등이다. 욕설과 의심의 강도는 점점 더해져, 결국은 내정자가 있는 것이 아니냐는 말까지 나온다. 어차피 영업기획은 내정자를 뽑을 것이었는데 모양이 좋지 않으니, 우리 3명이 들러리를 선 것이 아니냐는 것이다. 그 말을 듣자마자, 그를 포함해 모두가 공감한다. 그렇다. 내정자가 있어서일 것이다. 우리 3명이 전부 떨어지다니 말이 안 되지 않나.
그렇게 얼마간을 욕했을까. 오픈카톡방에 남아있던 3명은, 가라앉은 분위기로 하나둘씩 방을 나간다. 이 오픈카톡방 안에서 무슨 소리를 해도 나아지는 것은 없다. 결국 3명 모두 '최종 면접에서 불합격한 취준생'일 뿐이다. 그는 가장 마지막까지 남아있다가 방을 나간다.
생각해볼수록 알 수 없는 일이다. 오픈카톡방에 들어왔던 3명 중, 누군가 한 명이 최종합격한 사실을 속이고 불합격한 척 연기한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렇게까지 할 일 없고 심사가 뒤틀린 사람이 있었을까?
내정자가 있었을지도 모른다. 내정자로 인해 떨어졌다는 생각은 꽤나 달콤하다. 원래대로라면 합격했어야 하는데, 내정자 때문에 탈락했다. 그의 잘못이 아니다. 그는 아무 문제가 없다. 문제를 외부로 돌릴 수 있고 피해자 행세를 할 수도 있다.
하지만 문제는, 확실한 증거가 없다. 내정자가 있었다는 증거가 있나? 그리고 만일 증거가 있으면 달라지나? 내정자가 있었다는 것을 밝혀내도 그는 어차피 1번째 기업에 들어갈 수 없다. 내정자가 있었다는 증거조차도 없다. 그렇다면, 슬프지만 다른 직무에서 인원을 빼와야 했을 만큼 그의 역량이 부족했다는 해석이 더 맞다.
그는, 내정자가 있었으리라는 망상에서 빠져나오기까지 일주일의 시간이 걸린다. 꽤 오랜 시간이 걸리긴 했지만, 이를 계기로 그는 확실하게 깨닫는다. 모든 것은 전적으로 그의 잘못이다. 내정자가 있을 수도 있겠지만, 확실한 증거가 없다면 내정자가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만일 내정자가 있더라도, 해당 내정자가 그보다 더 나은 점이 무엇인가 있었겠거니 하고 생각하는 것이 그의 정신 건강에도 향후 발전에도 이롭다. 그는 내정자에 대한 논의를 이렇게 끝낸다.
모든 것이 명확해진다. 그는 1번째 기업 취업에 실패했다. 무한한 관심과 사랑을 일방적으로 퍼주다가 배신당한 짝사랑처럼, 그는 허탈하고 허무하고 우울해진다. 가뜩이나 1번째 기업은 TV나 매체 등에 광고를 많이 한다. 1번째 기업의 인지도가 대기업 못지않은 이유다. 1번째 기업의 광고는 그에게도 예외 없이 노출된다.
향후 그는 TV나 매체에서 1번째 기업의 광고를 자주 맞닥뜨린다. 그럴 때마다 그의 심사는 형용할 수 없을 정도로 일그러지고 뒤틀리곤 한다. 이는 당연한 일이며, 이러한 뒤틀린 심사가 무뎌지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걸렸다. 그는 이 때는 알지 못했다. 자신이 앞으로 최종 탈락을 몇 번이나 더 경험하게 될지, 최종 탈락한 이후의 일그러지고 뒤틀린 심사를 몇 번이나 더 견뎌야 할지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