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T면접실에 들어가자, 화이트보드에 문제지가 붙어 있다. 인사팀 직원은 문제지를 떼서 그에게 건넨다. 인사팀 직원은 타이머를 10분으로 맞추며, 10분 동안 문제에 대한 답을 구상하라고 한다. 그에게 주어진 것은 문제가 써 있는 A4 용지의 뒷면 여백, 그리고 펜 하나뿐이다.
10분,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시간이다. 문제지를 받자마자, 그는 부리나케 문제를 눈으로 훑는다. 처음에는 훑고, 두 번째에 천천히 다시 읽으며 답을 구상하는 것이 그의 방식이다. 그가 받은 문제는 이렇다.
'5번째 기업 임직원의 평균 연령은 38세로, 젊은 편에 속한다. 신세대와 구세대 간의 의사소통을 촉진하여 임직원들 간의 시너지를 일으킬 수 있는 방안에 대해 논하시오.'
첫 PT이지만, 대기실에서 1시간 반을 기다리면서 긴장이 약간 풀린 상태다. 또한 그는 이 PT 면접이 아주 어렵지 않을 것 같다고 예상했었다. 미리 문제를 주는 것도 아니고, 문제를 본 직후 10분 만에 답안을 작성해서 짧게 발표하는 것이니 아주 어려운 문제를 주진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결국 5번째 기업이 PT 면접을 통해 평가하려는 것은, 직무 전문성이나 화려한 발표 기술보다는 기본적인 논리 전개와 근거 제시 능력이리라.
그는 경영학도이므로, 조직 문화 / 조직 내 소통 등의 내용을 다루는 전공 수업도 수강했었다. 수업 당시에도, 이런 당연한 소리를 뭐하러 굳이 대학교 수업으로까지 만들어서 듣나 생각하던 그였다. 그렇게 4년 내내 보냈던 시간이, 그래도 아주 헛되지는 않았던 모양이다. 그는 대학교 전공 수업에서 주워 들었던 것들을 기억해내고 짜깁기 하여 자신의 언어로 PT 답안을 작성한다.
10분 뒤, PT 면접관들이 들어온다.
5번째 기업, PT 면접
PT 면접자 : 그 혼자, 발표 시간 5~10분 이내
PT 면접관 : 총 2명 (남자 1 / 여자 1)
30대 중후반, 머리가 약간 곱슬하고 인상이 좋은 남자 면접관 1
30대 중후반, 긴 머리를 포니테일로 묶었으며, 날카로운 눈매에 안경을 낀 여자 면접관 2
면접관 1 : 안녕하세요, 하얀 얼굴 씨죠? PT 면접 시작하겠습니다. 발표해주세요.
그 : 네 안녕하십니까, 지원자 하.얀.얼.굴. 입니다. 발표 시작하겠습니다. (0. 발표자 인사)
제가 받은 문제는, 신세대 임직원들과 구세대 임직원들의 의사소통을 촉진하여 임직원들 간의 시너지를 낼 수 있을 방안을 논하라는 문제입니다. (1. 주제 환기)
저는 2가지 방안을 생각해보았습니다. 첫 번째는 개인적 측면에서의 방안, 두 번째는 조직적 측면에서의 방안입니다. (2. 발표 시간이 짧기 때문에 그는 곧바로 본론으로 들어간다. 화이트보드에 판서까지 해가며 열심이다)
1. 개인적 측면 : 마음의 벽을 허물고 진심 어린 의사소통이 필요하다
2. 조직적 측면 : 개인 간 의사소통을 도울 수 있도록 조직 개편 - Matrix 구조
저는 이렇게 두 가지를 구상해보았습니다. 첫 번째, 당연하지만 직원 개개인간의 의사소통이 필요합니다. 최근 각 세대들은 '라떼, 꼰대' 등의 말로 서로에 대한 의사소통을 단절하고 있습니다. 신세대는 구세대를, 구세대 또한 신세대를 이해하고 진심으로 의사소통하려는 노력을 해야 합니다. 뻔한 이야기입니다만 등산이나 회사 모임 등을 예로 들겠습니다.
두 번째, 조직적 측면입니다. 직원들의 의사소통이 더 원활하게끔 조직 구조를 개편하여, 시너지를 이끌어낼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저는 Matrix구조를 예시로 들겠습니다. 재무팀의 경우, 다른 직무에 비해 전문성이 높으므로 신입사원이 바로 일을 할 수 없는 수직적 구조일 것으로 예상합니다. 수직적 구조는 나름대로의 장점을 갖고 있지만, 아래로부터의 의사소통이 원활하지 못한 단점도 있습니다. 수직적 구조와 수평적 구조를 결합한, Matrix 구조로 조직을 개편한다면 신세대와 구세대 간의 의사소통을 촉진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이상, 개인적 측면에서의 의사소통 노력과, 조직적 측면에서의 조직 구조 개편을 통해 임직원들의 의사소통을 촉진하고 시너지를 낼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3. 결론, 마무리)
발표 마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10분을 꽉 채우지는 않았으나, 약 7분 정도 걸렸을 것으로 생각된다. 그는 화이트보드 앞에서 후들거리는 다리에 힘을 줘가며 발표를 마쳤다. 발표를 끝내고 보니, 손에 문제지 A4가 쥐어져 있던 것을 눈치챈다. 문제가 적혀 있는 A4용지는, 억지로 힘주며 긴장을 감춘 다리를 대신하여 긴장을 맘껏 드러낸 손으로 인해 사정없이 구겨져 있다.
면접관 1 : 발표 잘 들었습니다. 지금부터 질문 시작하겠습니다.
면접관 2 : 하얀 얼굴 씨, 발표 중에 회계 직무는 전문성이 높은 직무라고 말했어요. 그렇게 이야기한 이유가 무엇인가요?
그 : 네, 회계 특성상, 다른 직무에 비해 생소한 용어가 많다고 생각하여 그렇게 말씀드렸습니다.
면접관 2 : 사례를 들어주시겠어요?
그 : 음... 공대 친구들에게 회계에 대해 이야기할 경우, 친구들이 전혀 알지 못하는 개념이 몇몇 있습니다. 떠오르는 예를 말씀드리자면, 감가상각을 말씀드리겠습니다. 기계 등의 설비에서 잔존가치를 뺀 뒤, 해당 가치를 내용연수로 나누어 매년 감가상각을 합니다. 감가상각의 경우 공대나 다른 전공 친구들은 들어보지 못했을 가능성이 높은 개념입니다.
면접관 2 : (말없이 종이에 무언가를 적는다)
면접관 1 : 하얀 얼굴 씨, 개인적 측면에서 의사소통 노력을 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조금 모호해서, 구체적으로 어떤 노력을 해야 한다는 건가요?
그 : 네, 말씀드린 것처럼 등산이나 회사 단합회 등에 참석하는 방법이 있습니다. 그리고... 이건 저의 개인적 경험에서 비롯된 것입니다만 독서도 많은 도움이 됩니다. 저의 경우, '영혼이라도 팔아 취직하고 싶다' 라는 책을 읽으며 구세대의 취업난에 대해 이해한 적이 있습니다. 해당 독서 이후, 구세대 또한 지금 못지않게 취업난이 심했고 힘든 시간을 거쳤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이후 구세대에 대한 적개심이 덜해지고 제가 먼저 다가가 이야기를 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면접관 1 : (약간 허탈하다는 듯이 웃으며) 의사소통을 위한 노력이... 독서라고요?
그 : 네, 제 개인적인 경험으로는 도움이 됐습니다. (그는 이때 한 발 물러서거나 다른 예시를 들었어야 했다. 매일 홀로 취업 준비하고 독서만 하다 보니 그는 자신만의 세계에 갇힌 느낌이 없지 않다)
면접관 2 : 하얀 얼굴 씨, 회계 직무는 전문성이 높고 수직적 구조일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런 회계 직무와 재무팀을 수평적 구조로 개편하면 제대로 기능할 것이라고 생각하나요? (날카로운 질문이다)
그 : 아.... 면접관님의 말씀이 옳습니다. 회계 직무와 재무팀은 수직적 구조가 더 잘 작동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의사소통과 시너지 측면에서는, 수평적 조직 구조의 요소를 조금만 추가한다면 구세대와 신세대 간의 시너지를 낼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대강 얼버무린 답변이었다)
면접관 2 : (이번에도 말없이 종이에 무언가를 적는다)
면접관 1 : (면접관 2에게) 더... 질문 있으세요? 네, PT 면접은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그 : 네, 감사합니다!
나름 잘 발표했다고 생각했으나, 약간의 아쉬움이 남는 그다. 면접관 1의 질문에 '독서'라고 답한 것과, 면접관 2의 날카로운 질문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던 점 때문이다. 그래도 그는, 이 정도면 꽤나 선방한 것이라고 생각하며 만족한다.
PT 면접실에서 나와 주변을 두리번거리니, 멀리 서 있던 인사팀 직원과 눈이 마주친다. 인사팀 직원은 끝났냐며, 그를 직무 면접실로 안내한다. PT면접실은 조그만 회의장이었다면, 직무 면접실은 커다란 회의실이다. 그는 커다란 회의실 문 앞 의자에 앉아 대기한다. 이윽고, 이전 면접자가 면접을 끝내고 밖으로 나온다. 그의 차례다. 그는 회의실 안으로 들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