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번째 기업, 회계 신입
면접자 : 그 혼자
면접관 : 총 2명으로 모두 남자, 30대 후반으로 추정
머리에 왁스를 발라 뒤로 넘겼으며, 살집이 있는 듯한 몸집, 작지만 날카로운 눈매에 안경을 낀 면접관 1
보통 체격, 눈이 동그랗고 온화한 인상의 면접관 2
평상시에는 회의실로 사용되는 듯, 면접장에 들어서자마자 커다란 나무 책상이 그를 맞이한다. 면접관들은 책상 건너편의 좌, 우에 앉아 있다. 그는 반대편에서 면접관들을 마주 보고 앉는다. 커다란 책상 공간을 억지로라도 활용하려는 것인지 두 면접관이 꽤나 떨어져 앉아서, 반대편에 앉은 그의 눈에 두 면접관이 한 번에 들어오지 않는다. 그는 고개를 좌우로 돌려가며 면접을 본다.
면접관 1 : 안녕하세요, 자리에 앉으세요.
그 : (자리에 앉으며) 안녕하십니까!
면접관 1 : 네 안녕하세요.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그 : 네, 안녕하십니까! 5번째 기업 회계 직무에 지원한 지원자 하.얀.얼.굴. 입니다. 저는 두 가지 강점을 통해 저를 간략하게 소개하겠습니다. 첫 번째, 실행력입니다. 저는 호주 워킹홀리데이 기간 동안... ... 두 번째, 친화력입니다. 저는 취미인 공놀이를 통해... ... 이상, 실행력과 친화력 두 가지 강점을 통해 5번째 기업에 기여하고 싶은 지원자 하.얀.얼.굴. 입니다. 감사합니다!
그는 자신이 자기소개에서 드러낸 두 가지 강점(실행력/친화력)이, 회계 직무와는 잘 맞지 않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해당 강점들은, 그가 제 1목표로 잡은 해외영업에 적합한 강점들이다. 회계 직무라고 하면 숫자에 대한 이해, 꼼꼼함, 세심함, 집중력 등이 더 어울릴 터다. 하지만 그는 자기소개를 수정하지 않았다. 패기라고 할 수도 있지만, 귀찮음을 이기지 못한 게으름이라고 보는 것이 더 맞다. 그는 여러 직무에 무턱대고 이력서를 넣는 상황인 데다, 5번째 기업 회계 직무는 회사도 직무도 탐탁지 않다. 자기소개를 수정할 노력도 하기 귀찮았던 것이다.
면접관 2 : 네 잘 들었습니다. 하얀 얼굴 씨, 회계 관련 수업을 많이 들었네요?
그 : 네, 기업이 경영학도에게 요구하는 것은 회계 관련 지식일 것이라 생각하여 많이 수강했습니다.
면접관 2 : 그래요... (그의 성적표를 보며) 제가 받은 자료에 의하면, 저학년 때부터 회계 과목을 많이 수강했군요. 수강한 것을 보니 관심이 있었다는 것은 알겠는데, 성적은 그리 좋지 않네요?
그 : (살짝 뜨끔하지만, 예상했던 바다. 뻔뻔하게) 맞습니다. 대학교 시절 약간의 방황을 하였고, 호주 워킹홀리데이도 다녀왔습니다. 방황을 끝내고, 이제는 기업이 필요로 하는 역량을 키워야겠다고 생각하여 회계 관련 수업을 들었습니다. 저학년 때 기초 과목들을 수강하지 않고 고급 과목을 바로 수강하여, 성적이 좋지 않은 과목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굴하지 않고 고급 과목들을 수강하며 많은 지식을 쌓고자 노력했습니다.
면접관 2 : 음... 알겠습니다.
그는 면접 유튜브를 통해, 학점 관련 질문에 대해 방어하는 법을 숙지했다. 그가 본 면접 유튜버들은, 학점이 왜 낮냐고 공격받으면 변명하지 말고 인정하라고 했다. 그는 이 조언을 찰떡같이 따른다. 그의 학점은 조금 낮은 것이 아니라 많이 낮다. 괜히 변명했다가 더 혼나느니, 아예 깔끔하게 인정하며 항복해서 오히려 면접관 쪽에서 할 말이 없게끔 만드는 전략이다. (이후 그는 학점 질문을 받을 때마다 이 전략을 애용한다)
면접관 1 : 하얀 얼굴 씨, 호주로 워킹홀리데이를 다녀왔다고 했는데, 해당 경험이 회계 직무에 도움이 되나요?
그 : 대부분은 해당되지 않습니다만, 호주 워킹홀리데이 당시 저는 가계부를 꼼꼼히 작성한 경험이 있습니다. 가계부를 열심히 작성하면서, 대학교 때 수강했던 기업의 복식 부기와 저의 가계부 작성법이 다르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기업은 차변과 대변을 나누는 복식 부기 방식을 사용하지 않습니까? 저는 차변과 대변을 나누지 않고 일반적인 단식 부기 방식으로 가계부를 작성했고, 현금 흐름대로 작성했기 때문에 약간의 오류가 있었습니다. 특히, 집에 세를 들어 살 때의 보증금을 기입할 때 혼란스러웠습니다. 현금 흐름 상으로는 보증금을 지불하는 것이므로 마이너스로 기입해야 하나, 나중에는 돌려받을 돈이기 때문입니다. 기업에서는 이러한 상황을 차변과 대변으로 나누어 기입함으로써 혼란을 방지한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면접관 1 : (갑작스럽게) 보증금 말씀을 하시는데, 기업은 보증금 회계 처리를 어떻게 하나요?
그 : 기업 회계에서 보증금은 자산으로 분류합니다. 자산으로 분류했다가 나중에 보증금을 받게 되면 해당 계정을 제거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면접관 1 : (그를 바라보며 말이 없다)
그는 면접관의 보증금 질문에 답변을 하긴 했으나, 기업이 보증금을 실제로 어떻게 회계 처리하는지를 자세히 알아보진 않았다. 제대로 된 대답을 하려면, 차변 항목에 무엇 / 대변 항목에 무엇을 어떻게 기입하고 향후 처리는 어떻게 되는지까지 설명을 해야 했다. 하지만 그는 그 정도까지 알지 못한다. 그는 대답을 하며 면접관 1의 눈치를 은근히 살피는데, 면접관 1도 그가 아는지 모르는지 정도만 파악하려 찔러본 듯한 느낌이 강하다. 그의 대답에, 면접관 1은 동의하지도 반박하지도 않고 넘어간다. 100% 확신은 아니지만, 그는 면접관 1이 재무팀 소속이 아닐 것이라 생각한다.
면접관 2 : 하얀 얼굴 씨, 고급 회계도 수강을 했네요?
그 : 네, 맞습니다. 전공 과목 중 가장 어려운 고급 회계였지만, 용기 내어 수강했습니다.
면접관 1 : (면접관 2에게) 고급 회계가 뭘 배우는 거죠?
면접관 2 : 연결, 파생상품 관련 회계요.
면접관 1 : 아아.... (그가 얼핏 보았을 때, 면접관 1은 잘 모르는 눈치다)
면접관 2 : 우리 때는 연결회계라고 불렀었는데, 요즘은 이름이 바뀐 것 같네요.
그 : 아, 네.
면접관 1 : (그에게) 그래서, 해당 과목 성적은 어떻게 나왔나요?
그 : (당황스러움을 감추려 오히려 당당하게) C+입니다.
면접관 1 : 음.....
C+, 당당하게 말할 수 있는 성적은 아니다. B0까지는 그래도 억지로나마 수업을 따라갔다고 생각할 수라도 있겠으나, C를 받는 순간부터는 이야기가 다르다. 실제로 그는 고급회계 수업을 중간고사까지만 따라갔고, 이후에는 거진 포기 상태였다. 중간고사 이후에는 수업만 들어가며, 교수가 수업 때마다 언급하는 연결 회계가 무엇인지 대강의 감만 잡은 상태다. 어렴풋이 감만 잡았을 뿐, 실제로 두 기업을 연결해보라거나 지분법을 적용해 재무제표를 작성하라고 하는 순간 그는 항상 차변과 대변의 숫자가 달랐다. 점수를 잘 받을 리가 없었다.
면접관들은 그의 학교 생활, 아르바이트 등에 대해 몇 가지 질문을 더 한다. 하지만 뭔가 분위기가 애매하고, 면접관들이 그에게 실무 지식이나 경험을 기대하지 않는 듯한 느낌이 강하게 든다. 그의 성적을 들은 뒤 면접관 1은 특히나 그런 분위기를 강하게 풍기며 말이 적어진다. 약간 붕 뜬 듯한, 어정쩡한 상태에서 면접이 끝나려 한다. 그는, 마지막 질문으로 어필이나 해보고자 한다.
면접관 2 : 네... 그럼 더 이상 질문 없으시죠? 하얀 얼굴 씨, 질문하실 거 있으면 질문해보세요.
그 : (기다렸다는 듯이) 네, 실무에 종사하고 계시는 면접관님들께 질문드릴 것이 있습니다. 관련 수업을 듣다가, 기업에서 혁신 프로젝트에 더 투자할지 그만둘지 의사결정을 내릴 때 쓰는 방법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파생상품에 투자할지 말지를 이항 모형(오를 것인가 내릴 것인가 두 가지 경우의 수를 놓고 따져보는 모형)을 사용해서 계산을 하듯, 혁신 프로젝트를 파생 상품이라고 보고 이항 모형을 사용하여 혁신 프로젝트의 현재 가격을 계산해 낸다고 들었습니다. 해당 방법을 5번째 기업에서도 사용하고 계신지 궁금합니다.
면접관 2 : (약간 웃음을 띄며) 아.... 파생 상품을 평가하는 모형을 혁신 프로젝트에 대입해서 가치를 산출해내느냐는 질문인 것 같네요. 학교에서는 이론 위주의 수업을 많이 들을 테니, 여러 방식이나 이론에 대한 것들을 들었을 거예요. 저희 회사 같은 경우는, 해당 방법을 사용하고 있지는 않습니다.
그 : 아 네, 답변 감사합니다!
면접관 2 : 네 그럼, 이것으로 면접은 끝내겠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파생상품 평가, 이항 모형, 혁신 프로젝트 평가 등, 그가 회계 수업 때 주워 들었던 거창한 용어는 죄다 동원한 질문이다. 조금이라도 어필해보고자 하는 그의 노력이 통했는지, 면접관 2는 특이한 이론이라도 들은 것처럼 웃음을 띤다. 웃음을 띄는 면접관 2의 모습에, 그는 면접관 2가 약간은 학구적인 성격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반면 면접관 1은, 학구적이진 않은 듯하다. 그의 질문에 전혀 대답하지 않았으며, 그가 아닌 다른 곳만을 바라보고 있다. 이러한 행동과 느낌을 보았을 때, 면접관 1은 그의 면접이 어서 빨리 끝나길 바라는 것 같다.
1시간 반을 기다리고 나서야 진행했던 5번째 기업의 6번째 면접이다. 첫 30분 가량은 PT 면접, 그리고 곧바로 20분 가량의 직무 면접을 시행했다. 그는 자신이 PT 면접은 나름 괜찮게 봤으며, 직무 면접은 약간 죽을 쒔다고 생각한다.
아니나 다를까, 1주일 뒤 그의 핸드폰에 불합격 문자가 날아온다. 어렴풋이 예상했던 결과였으므로, 별로 놀랍지 않다. 다만 그는, PT 면접에서 탈락이었는지 직무 면접에서 탈락이었는지 둘 다 탈락이었는지, 2명의 PT 면접관과 2명의 직무 면접관 중 누가 어떤 이유로 그의 합격에 반대표를 던졌을지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