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번째 기업, 7번째 면접
화상 면접, 하하호호 면접
그는 6번째 기업의 채용 공고를 자X설닷컴에서 처음 만났다. 외국 프랜차이즈 음식점의 물류를 도맡아 하는 물류 기업이라고 적혀 있다. 잡플X닛 등에서 후기를 보니, 본사가 물류 센터와 같이 있어 외곽의 후미진 곳이지만 꽤 괜찮다는 평이 많다. 서류를 지원하려고 보니, 시간도 오래 걸리지 않는다. 6번째 기업 서류 지원은, 사람X이나 잡코X아에서 마우스 클릭 한 번이면 끝난다. 물류 기업이라, 그는 경영학도로서 학교에서 물류 관련 수업도 들은 적이 있다. 클릭 한 번이니, 그는 손가락의 수고로움을 기꺼이 감내하고 6번째 기업에 지원한다. 그리고 얼마 뒤 서류 합격 및 면접 안내 메일이 도착했다.
6번째 기업은, 화상으로 면접을 진행하겠다고 한다. 예전부터 계속해서 화상 면접을 해온 것 마냥 자연스럽다. 그는, 6번째 기업의 위치가 후미진 곳이기 때문에 1차는 화상 면접으로 보는 것이리라 생각한다. 6번째 기업의 채용 프로세스는, 1차 면접은 화상이며 최종 면접은 본사에 직접 찾아가서 본다.
여느 때처럼, 그는 면접 준비 자료를 제작하기 시작한다. 그런데, 비상장인 데다 외국계 기업이라서 그런지 재무제표의 내용이 상당히 간략하고 부실하다. 여러 웹사이트에 검색을 해보지만, 관련 기사도 거의 나오지 않는다. 그는 조사가 가능한 범위까지만 해놓고, 적당한 선에서 면접 자료 제작을 끝내버린다. 재무제표 상으로 보았을 때, 6번째 기업의 총자산 규모는 50억 / 매출 규모는 300억대다. 그가 마지노선으로 잡았던, 매출 1000억에 미치지 못하는 기업이다. 그는 내심 외국계라고 하니, 무언가 자유롭고 색다른 조직 문화와 엄청난 복지가 있지 않을까 하는 미약한 기대감은 있다. 하지만 딱 그 정도이며, 규모가 작은 6번째 기업에 그리 목매지는 않는다. 속내가 이러하니, 그는 나오지 않는 정보들을 굳이 들추어 찾아내며 외우는 정도까지의 면접 준비는 하지 않는다.
화상 면접이니, 대면 면접보다는 긴장도 덜 되며 면접에서의 압박도 덜하다. 6번째 기업의 화상 면접을 앞둔 그는 마음도 가볍고, 준비한 면접 자료도 가볍다. 화상 면접은 'Microsoft Teams'로 진행된다. 그는 처음 듣는 툴이라 약간 낯설었지만, 이름만 다를 뿐 이전에 사용해본 Zoom과 크게 다르지 않다. 프로그램을 미리 깔아놓고, 정해진 시간에 맞춰 대기하면 면접관 측에서 초대 링크를 보낸다. 해당 링크에 접속해 입장하기만 하면 된다.
6번째 기업, 재무팀 신입, 화상 면접
면접자 : 그를 포함해서 총 2명, 모두 남자
그
화면 속으로 보이는, 평범한 인상의 면접자2
면접관 : 회의실에 앉아있으며 총 4명 (남자 2 / 여자 2)
좌측 상단, 면접 내내 말이 없는 젊은 여자 면접관1
좌측 하단, 안경을 끼고 머리숱이 많은 40대 남자 면접관1
우측 상단, 몸집이 둥글고 피부가 까만 40대 남자 면접관2
우측 하단, 몸과 머리에 무언가를 두르고 있는 여자 면접관2
인사팀 직원이 보내준 링크에 접속하자, 노트북 화면이 3개의 창으로 나뉜다. 가장 큰 창은 면접관들의 화면이며, 나머지 두 개의 창은 그와 다른 면접자의 화면이다. 면접관들은 멀리서 여럿을 찍는 구도이기 때문에 위화감이 덜한 편인데, 지원자는 본인의 정면을 똑바로 찍고 있는 구도라 약간 어색하다. 면접관들이 먼저 인사를 하며 딱딱한 분위기를 푼다.
면접관들 : 안녕하세요, 반가워요.
면접자들 : 안녕하십니까!! (그는 공손해 보이려, 일부러 노트북에게 고개를 숙여 인사한다)
면접관 2 : 네 안녕하세요. 저희 면접관들 소개를 먼저 할게요. 우측 상단에 계신... (네 명 모두 소개해주었는데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다)
면접관들 소개에서부터, 면접이 끝날 때까지 면접관2가 가장 질문도 많이 하고 대답도 많이 한다. 면접관 2는, 40대 중후반으로 보이는 여성이다. 피부는 썬텐을 했는지 구릿빛이며, 잘 웃는 편인지 입가와 눈가에 보기 좋은 웃음 주름이 져 있다. 카메라로 전송되는 화면이라 정확하진 않으나, 그는 면접관 2의 복장이 무언가 특이하다는 것을 눈치챈다. 면접관 2는 머리에 머리띠인지 두건인지를 두르고 있다. 또한 상의 위에도 담요인지 망토인지 분간이 되지 않는 천을 두르고 있다. 자세히 보이진 않으나, 두건과 망토 모두 붉은 계열이며 이색적인 문양이 새겨진 듯하다. 그는 왠지 그 문양이, 남아메리카의 고대 문명인 아즈텍이나 잉카를 연상케 한다고 느낀다. 그렇게 느낀 순간부터, 두건과 망토 어딘가에 깃털 문양이 있는 것 같기도 하고, 구릿빛 피부의 면접관 2가 서부 영화의 '인디언(Native American)'처럼 보인다. 면접관 2의 쾌활함, 자신감 넘치는 태도와 목소리는, 망토와 두건이 가진 인디언 이미지가 어우러지며 묘한 카리스마를 풍긴다. 그가 제대로 파악한 것인지, 그 혼자만의 착각과 망상이었는지는 알 수 없다.
면접관 2 : 네, 그럼 자기소개 해주시겠어요?
그 : 네, 안녕하십니까! 6번째 기업 재무팀에 지원한 지원자 하. 얀. 얼. 굴. 입니다! 저는 두 가지 강점을 통해 저를 간략하게 소개하겠습니다. 첫 번째, 실행력입니다. 저는 워킹홀리데이 기간... ... 두 번째, 친화력입니다. 저는 취미인 공놀이를 통해... ... 이상, 두 가지 강점, 실천력과 친화력을 통해 6번째 기업에 기여하고자 하는 지원자 하. 얀. 얼. 굴. 입니다. 감사합니다! (재무 직무이지만, 이전 5번째 기업에서의 면접처럼 그는 자기소개를 고치지 않았다)
면접자 2 : 안녕하십니까, 소통하는 지원자, 면접자 2입니다. 저는 공공기업 인턴과 공모전을 통해 소통하고 성과를 낸 경험이 있습니다. 2017년 아무개 부에서 주관하는...
그는 경쟁자인 면접자 2의 자기소개를 들으며, 관련성이 떨어진다고 생각한다. 면접자 2는 공공기관이 주관하는 봉사활동, 공공기관 인턴, 공공기관 공모전 등을 많이 했다고 어필하며 자기소개를 끝냈다. 그는 속으로, 그러면 공공기관을 갈 것이지 왜 물류 기업 재무팀에 지원했는지 연결 고리가 분명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의 이러한 평가는 틀린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업계나 직무 상관없이 계속해서 '실천력/친화력' 자기소개를 똑같이 재활용하고 있는 그도 대놓고 이를 지적할 입장은 못 된다.
면접관 2 : 면접자 2씨는 공공기관 관련 일들을 많이 하셨네요. 뭐랄까... 다른 사람들을 돕는 데 관심이 많은 건가요?
면접자 2 : 어.... 음.... 그런 것 같습니다. 원래는 학교에서 관련 기관과 연계하여 활동을 주선해줬던 것에 지원한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다 보니, 제가 교육이나 행사를 주관하고 참여자들과 소통하는 과정이 재밌었던 것 같습니다.
면접관 2 : 하얀 얼굴 씨, 취미에 독서라고 적으셨네요. 저도 독서를 참 좋아하는데요. 최근에는 어떤 책을 읽으셨나요?
그 : 네, 최근에는 팩트풀니스라는 책을 읽었습니다. 정확한 정보의 중요성을 깨닫게 해준 책입니다.
면접관 2 : 팩... 책 이름이 뭐라고요?
그 : 네, 팩.트.풀.니.스 입니다.
면접관 2 : 어... 아! Factfulness! Factfulness라고 한 거였군요?!
면접관 2는 외국에서 자라서 콩글리시를 알아듣지 못하는 것인지, 단순히 자신의 영어 실력을 뽐내기 위해서인지 Factfulness를 말할 때 발음을 있는 대로 굴려서 말한다. 그도 물론 그런 식으로 발음할 수 있지만, 한국식 도서명은 팩트풀니스이므로 그렇게 말했던 것이다. 그는 발음을 굴리는 면접관 2를 보며, 속으로 약간 아니꼽다고 생각한다.
면접관 2 : 하얀 얼굴 씨, 호주 워킹홀리데이에 가서 어떤 일들을 했나요?
그 : 키친핸드, 설거지, 웨이터, 소고기 공장, 건설 현장 인부, 건물 철거, 에어컨 설치, 세차, 주말 시장에서 브런치를 만들어 판매하는 일도 했었습니다.
면접관 2 : 오, 정말 다양한 일들을 하셨군요.
그 : 네 맞습니다.
면접관 2 : 만약 하얀 얼굴 씨 주변 지인이, 호주 워킹홀리데이를 가야할지 말아야할지 하얀 얼굴 씨에게 조언을 구한다면 어떤 조언을 해줄 건가요?
그 : (짧은 시간 많은 생각을 한 뒤) 음..... 그 질문을 하는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그리고 무슨 목적으로 호주에 워킹홀리데이를 가려고 하는지에 따라 답변이 달라질 것 같습니다. 질문자의 성격과 특성, 그리고 질문자의 워홀 목적에 따라 다릅니다. 질문자에 따라 저는 워킹홀리데이를 가고 싶게끔 할 수도, 가고 싶지 않게끔 답변할 수도 있습니다.
면접관 2 : 아.... 하하. 어리석은 질문이었네요. 우문현답이군요.
그 : 아, 아닙니다.
면접관 2가 질문한, 워킹홀리데이에 관해 어떤 조언을 할 것이냐는 질문에 대한 그의 답변은 진심이다. 그는 워킹 중 많은 것을 경험했다. 좋은 것, 안 좋은 것 모든 것을 말이다. 때문에 그는 조심스러우면서도 자신의 생각을 분명히 드러내는 답변을 했다. 하지만 그의 답변에 대한 면접관 2의 반응은 무언가 석연치 않은 부분이 있다. 면접관 2는 가볍게 질문한 것인데 그가 너무 무겁게 대답한 것인지, 아니면 너무 자신만만한 듯한 태도에 면접관 2가 당황한 것인지 알 수 없다.
면접관 2의 주도 하에, 면접은 40분 가까이 진행되어 간다. 면접관 2의 말투나 몸짓 때문인지, 면접 분위기가 상당히 편안하다. 그와 면접자 2는 직무 관련된 질문은 거의 받지 않았다. 과거 경험, 취미 등에 대해서만 상세하게 물어본다. 질문 구성으로 인해, 면접보다는 그냥 일상적인 대화 같다. 면접관 2와 면접관들은, 면접자들의 대답에 따라 웃기도 하고 관심을 보이기도 한다. 자연히 면접자들도 긴장이 풀리고 말이 술술 나온다. 그야말로 '하하호호 면접'이다. 하하호호 면접은 면접 당시에는 기분이 좋지만, 탈락 통보를 받은 후에는 가장 기분이 좋지 않은 면접이다. 도대체 왜 떨어졌는지, 면접 때의 하하호호는 도대체 무엇이었는지 배신감을 느끼기 때문이다. 어쨌든 그도 하하호호 면접 당시에는 면접관들과 함께 하하호호 한다.
면접관 2 : 이런, 시간이 벌써 이렇게 됐네요.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싶지만, 시간상 질문 하나씩 받고 끝내도록 할게요. 우리 회사나, 회사 생활이나, 무엇이든 궁금한 것 물어보세요.
면접자 2 : 면접 준비를 하는데, 회사 정보가 많이 없어서 조금 고생했습니다. 회사에 대해 더 소개해주실 수 있나요?
면접관 2 : 아 네, 저희 회사는, 다들 잘 아는 유명 프랜차이즈 음식점의 물류를 담당하고 있는 물류 기업이에요. 여러분들도 아시겠지만, 해당 프랜차이즈가 워낙 잘되기 때문에 우리 회사도 기본적인 이익이 보장됩니다. 하지만 외국계여서, 우리나라에는 아직 오픈이 많이 안 되어 있는 부분이 많아요. 들어와서 같이 일하시게 되면, 많은 부분을 알 수 있게 될 겁니다.
그 : (질문을 통해서도 어필하고자 머리를 굴린다) 네, 저도 질문이 있습니다. 6번째 기업의 재무제표를 보았는데, 현금흐름 상황이 전년도에 비해 원활하지 않은 것을 확인했습니다. 해당 부분이 괜찮으신지 궁금합니다. 또한, 유명 프랜차이즈 음식점의 물류를 맡고 있는데 매출액이 300억대로 비교적 작은 이유도 궁금합니다.
면접관 2 : 아, 네! 저희 회사는 외국계 기업이어서, 재무제표를 올리긴 하지만 회사의 일부 정보만 포함되었다고 보시면 됩니다. 현금흐름 관련해서는, 지금 저희가 이렇게 채용을 하고 있죠? 현금흐름이 좋지 않은 기업이 신규 채용을 하진 않을 테니, 그 부분에 대해서는 답변이 되었겠죠? 그리고 뭐였죠? 아 매출액! 매출액도 차이가 꽤 있어요. 재무제표에는 얼마로 나와있다고요?
그 : 300억입니다.
면접관 2 : 저희는 해외에서 벌어들이는 매출도 있고, 다양한 매출이 있습니다. 재무제표에는 아마 국내 매출만 집계된 걸 거예요. 우리 회사의 실제 1년 매출은 3000억 정도 됩니다. 그리고 기존의 유명 프랜차이즈 말고도, 또 다른 곳과도 계약을 진행하고 있어요. 요즘 새로 뜨는, 신선한 야채를 필요로 하는 곳이에요. 다들 눈치 채신 것 같네요. 해당 유명 프랜차이즈와 또 새로운 계약을 체결할 예정이기 때문에, 앞으로도 성장 가능성이 무궁무진하다고 답할게요.
그 : 답변 감사합니다!
면접관 2 : 더 이상 질문 없으시면, 이상으로 면접을 마치겠습니다. 다들 수고하셨어요~
면접자 일동 : 감사합니다!
면접관 2는 면접이 끝나는 순간까지 입가와 눈가에서 웃음이 떠나질 않았고, 그렇게 6번째 기업의 면접은 하하호호 끝이 났다. 그는, 재무제표상 매출은 300억이지만 실제 매출은 3000억이라는 면접관 2의 답변이 별로 설득력 있다고 느껴지진 않았으나, 아직 회사에 발도 담가보지 못한 그로서는 알지 못하는 무언가가 있겠거니 하고 넘어간다. 잉카와 아즈텍을 연상시키는 독특한 망토와 헤어 밴드를 한 면접관 2의 이미지로 인해, 비록 화상 면접이었으나 6번째 기업의 면접은 그의 기억 속에 명확하게 남는다.
면접이 끝나고 바로 다음날, 메일이 도착한다. 그는 면접 당시의 하하호호 웃음이 아직도 귀에 선하다. 그런 그의 눈에, 붉은 세 글자가 보인다.
1차 면접 불합격
그는 회사 규모와 매출이 작은 6번째 회사가, 별로 아쉽지 않다. 하지만 하루 전의, 너무나도 편안하고 하하호호 함께 웃던 면접 당시의 분위기는 도대체 무엇이었을까. 하하호호 면접 당시에는 기분이 좋았지만, 불합격 통보를 받고 난 이후의 기분은 오히려 다른 면접보다 더 별로다. 몸속 어딘가를 은근히 찔러오는 듯한 불쾌감이 떠나지 않는다. 고작 하루 만에 결과 발표라니, 처음부터 떨어트릴 작정이었나? 탈락이 확정된 줄도 모르고 하하호호 웃는 지원자를 바라보며 쾌감을 느끼는 심보인가? 생각할수록 면접관들에 대한 불신과, 면접 당시 하하호호 함께 웃었던 자신에 대한 환멸이 스멀스멀 피어오른다.
6번째 회사에서의 7번째 면접. 다른 면접에서와 같이, 그는 이번 면접에서도 하나를 배운다.
하하호호 면접은 결코 좋은 게 아니다.
6번째 회사와 그의 인연은, 우선은 이렇게 일단락된다. 그는 면접에서 자신을 탈락시킨 기업은 쳐다보지도 않으리라 생각했다. 하지만 사람 일은 정말 알 수 없다. 앞으로 남은 그의 취준 생활 중, 그가 이전에 탈락했던 회사들과 다시 만나게 될 수도 있으리란 사실을 그는 아직 알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