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번째 기업 면접을 준비하며, 채용 절차가 함께 진행되던 기업이 있다. 바로 7번째 회사다. 6번째 기업으로부터의 면접 탈락 소식이 별로 충격적이지 않았던 이유 중 하나는, 그가 7번째 기업에도 양다리를 걸쳐놓았기 때문이리라.
하지만 7번째 기업도, 그는 별로 성에 차지 않는다. 7번째 기업은 건설사다. 한국에는, 한국인이라면 이름만큼은 반드시 들었을 법한 대기업이 몇 군데 있다. 그리고 그러한 대기업들은, 십중팔구 계열사로 건설사를 갖고 있다. 그에게 서류 합격을 알린 7번째 기업도 그런 대기업 계열의 건설사다. 하지만 이미 옛 영광을 잃은 지 오래되어 이름만 유명한 대기업이다. 영광을 잃고 이름만 유명한 대기업, 그 대기업의 주 업종도 아닌 조그마한 건설 계열사가 바로 7번째 기업이다.
7번째 기업은 재무 상태도 그리 건전하지 못하다. 7번째 기업의 매출은 2000억이다. 그가 마지노선으로 잡은 1000억은 넘지만, 건설업은 건설에 드는 비용과 시간이 어마어마하다. 즉, 건설사의 총매출 2000억은 결코 큰 것이 아니다. 당연히, 7번째 기업은 도급순위도 한참 아래다.
그는 면접 자료들을 준비해오며, 재무제표를 약간이나마 정리해온 경험이 있다. 그동안 그가 면접을 봤던 기업들은, 그래도 적자가 나지는 않는 기업들이었다. 그런데 7번째 기업은, 전년도 재무 성과의 당기순이익이 적자다. 즉, 돈을 벌지 못하고 있는 기업인 것이다. 거대한 몸집이 잘게 쪼개져 영광을 잃었던 5번째 기업도 대놓고 적자는 아니었다. 그는 7번째 기업 재무제표에서 처음으로 본, 마이너스 숫자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
재무제표 상의 숫자는 별로지만, 7번째 기업은 나름 대기업 채용과 비슷한 프로세스를 진행한다.
서류 - 인적성 - 면접 (하루 만에 1차와 최종 면접을 동시에 진행한다)
7번째 기업의 자기소개서 문항은, 대개 그렇듯 일반적이면서 뻔하다.
1. 입사 후 포부
2. 입사 후 희망 직무와 그 이유
3. 추구하는 삶의 가치와 본인만의 특별함
4. 본인이 행복을 느끼는 행동이나 취미생활
질문들에 대한 그의 답변은 이렇다. 절반 이상이 이전 이력서들의 자기소개서를 복사-붙여넣기 한 것이다.
1. 건설현장 아르바이트 경험을 토대로 회사에 기여하겠다.
2. 미래를 설계하는 인재가 되겠다. (이력서 초기에 직무를 설정했으니, 직무는 다시 언급하지 않았다)
3. 그냥 행복이 아니라, 목표를 성취하는 데에서 보람을 느낀다.
4. 공놀이와 독서를 통해 몸과 마음을 수양한다.
30분도 채우지 않고 복사와 붙여넣기로 완성한 이력서다. 그가 지원한 직무는 '경영기획'이다. 그는 7번째 회사의 재무제표상 숫자가 마음에 들지 않지만, 직무는 마음에 든다. 그가 1순위로 정한 직무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조그마한 건설사라도, 적자가 나더라도, 경영기획 직무에서 버티면 뱀의 머리라도 되겠지라는 생각에 지원한 그다.
서류 합격 후 어느 주말, 그는 안내받은 장소에서 인적성 검사를 치른다. 많은 준비를 하지도, 긴장을 하지도 않았던 그였기에 인적성 검사에 대한 기억은 명확하게 남아있지 않다. 나이가 조금 들어 보이는 여직원이, 50여 명 정도 되는 지원자들을 홀로 감독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시험의 난이도는 무난했으나 문제수가 많아, 그는 2시간이 넘는 제한 시간을 꽉꽉 채워 사용하고 퇴실한다.
인적성 시험을 치르고 며칠 뒤, 그는 합격 통보와 함께 면접 안내 메일을 받는다. 인적성 합격 통보에 그는 기쁘다기보다는 의심스럽다. 몇 점을 받았는지, 합격 점수는 몇 점인지에 대한 내용이 전혀 없다. 제대로 채점은 한 것인지, 한글을 읽을 줄 알면 모두 통과시켜주는 것은 아닌지 하는 의심이다. 어쨌든 면접을 보러 가야 하니, 그는 면접 준비 자료를 만들기 시작한다.
7번째 기업은 매출 2000억, 영업이익까지는 흑자이지만 영업외비용을 빼는 순간 적자가 된다. 당연히 당기순이익도 적자다. 기업 입장에서 당기순이익 적자는, 꽤나 당황스럽고 창피할 것이라 예상하는 그다. 그는 7번째 기업 면접 때, 재무제표나 숫자 이야기는 되도록 꺼내지 않는 게 좋겠다고 생각한다.
특이한 점은, 안내 메일에 적힌 면접 형태다. 7번째 기업은, 하루 만에 1차 면접(실무진 면접)과 2차 면접(최종 임원 면접)을 모두 진행하겠다고 적어 놓았다. 잡플X닛의 어떤 후기의 말에 따르자면, 이는 건설사가 사용하는 일종의 전략이라고 한다. 하루 만에 면접을 두 차례, 긴 시간 동안 진행하면서 지원자들의 지구력/체력/정신력을 평가하는 것 같다는 추측이다. 아주 터무니없진 않지만, 확신할 근거도 없다. 그는 이 후기의 신비성을, 절반 정도인 50대 50이라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실제로 건설사는 이러한 식의, 두 번의 면접을 하루 만에 끝내버리는 형태를 꽤 많이 보인다. 공사 기간을 단축할수록 이익이 많이 남는 건설업의 성격이, 채용 프로세스에도 영향을 준 것이 아닌가 생각해보는 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