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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얀 얼굴 학생 May 01. 2022

7번째 기업 명함

희망 고문

 그와 눈이 마주친 남자는, 나이가 꽤 들어 보이며 정장을 입고 있다. 그는 얼핏, 1차 실무진 면접 때 면접관으로 들어왔던 이들 중 하나가 아니었나 직감한다.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일단은 인사부터 하며 손짓에 따라 다가간다.


 그가 다가가자, 익명의 남자가 말을 한다.

  익명 : 아 안녕하세요. 아까 면접 봤던 사람 맞죠?

  그 : 네 맞습니다. 안녕하세요.

  익명 : 이름이 뭐였더라? 아... 그.... 하얀?

  그 : 하얀 얼굴입니다.

  익명 : 아 맞아, 하얀 얼굴 씨! 저 기억해요? 저 1차 면접 때 면접관으로 들어간 사람이에요.

  그 : 아, 네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는 상대방이 입은 정장, 풍기는 분위기로만 대강 파악하고 있다. 1차 면접 때의 면접관 5명 중 한 명인 것 같긴 한데, 확실하게 기억이 나질 않는다. 하루 만에 너무 많은 면접관을 만났고, 또 해당 면접관은 1차 면접관들 중에서도 질문을 별로 하지 않은 면접관이었다. 그의 답변과 반응이 명료하지 않자, 면접관이 덧붙인다.


  ex 면접관 : 기억이 잘 안 날 수도 있어요. 아까 면접 자리는 경영 직무 신입을 뽑는 자리라, 제가 발언권이 별로 없었거든. 

  그 : 아, 아닙니다. 기억하고 있습니다.

  ex 면접관 : 그래요. 하얀 얼굴 씨, 지금 바빠요?

  그 : 괜찮습니다.

  ex 면접관 : 괜찮으면, 지금 여기서 얘기를 좀 더 할 수 있을까요? 아까는 면접자들도 너무 많고, 제가 발언권이 없어서 물어보고 싶은 걸 제대로 못 물어봤어요.

  그 : 네 괜찮습니다.

  ex 면접관 : 아까 보니, 호주로 워킹홀리데이를 다녀왔다고 했는데, 영어는 잘하나요?

  그 : 네, 의사소통 가능한 정도이고 영어 점수도 있습니다.

  ex 면접관 : 좋네요. 음... 사실 나는 우리 회사 공공영업팀이에요. 공고에 내진 않았지만, 우리 팀도 지금 TO가 있어서 사람을 뽑고 있거든. 하얀 얼굴 씨 혹시, 공공영업팀으로 직무를 변경해도 괜찮아요?

  그 : (당연히) 네, 좋게 봐주시고 기회를 주신다니 저는 좋습니다.


 그는 일단 좋다고 답은 했지만, 속으로는 머리를 팽팽 굴리기 시작한다. 영업이라. 영업이긴 하지만, 공공영업팀이다. 건설사 공공영업이 무슨 일을 하는 것인지 정확히는 모르겠으나, 어쨌든 공공부문이니 민간 주택영업보다는 나으리라. 이러한 얄팍한 생각 아래 그는 무작정 좋다고부터 말한다.


  ex 면접관 : 음, 만약 우리 팀에 들어오게 되면, 우리가 공공영업팀이라 영어를 쓸 일은 없어요. 영어를 잘하는 것 같은데, 이 부분에 대해서는 상관없나요?  

  그 : (당연히 괜찮지 않지만) 네, 괜찮습니다. 반드시 영어를 사용하는 일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물론 향후 영어도 활용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긴다면 좋겠지만, 그전까지는 제 나름대로 혼자 공부를 하는 방법도 있습니다. 반드시 영어를 사용하는 일을 하겠다는 고집은 없습니다.

  ex 면접관 : (혼잣말이지만 거의 다 들리도록) 음 반드시 영어를 고집하진 않는다라. 마인드도 괜찮고.

  그 : 죄송하지만, 혹시 공공영업이 어떤 일을 하는지 여쭤봐도 될까요?

  ex 면접관 : 아, 그럼요. 영업이라고 해서 조금 안 좋게 생각할 수도 있는데, 아무래도 공공 영업이니까 훨씬 나아요. 또, 처음부터 신입한테 무턱대고 영업해오라고 하는 팀도 아니에요. 우리 회사 얼마 전에 수주한 건이 있어요. 120억짜리 수주인데(금액은 명확히 기억나지 않는다), 이게 바로 우리 공공영업팀이 성사시킨 건이에요. 정부 주도 공사가 있으면, 우리 공공영업팀이 나서서 입찰하고 수주를 진행시키는 거죠. 같이 일하게 되면, 아무래도 신입이니까 여러 잔심부름이 있을 수 있어요. 식당 어디 예약한다던지, 회의 준비한다던지 하는 것들인데, 이런 건 어디를 가나 신입이면 있는 거니까?

  그 : 네 맞습니다.

  ex 면접관 : 그래요. 여기 내 명함 하나 줄게요.


 그는 면접관이 내미는 명함을 하나 받는다. 명함을 받는 그의 심장이 쿵쾅쿵쾅 뛴다. 드디어 자신도 번듯하게 취업을 하는 것인가. 그것도 이런 극적인 스카우트 형식으로 말이다. 그런데 갑작스레, 그의 마음속에서 의심이 피어난다. 그는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면접관에게 묻는다.


  그 : 아 네, 그런데, 한 가지만 여쭤봐도 될까요? 혹시 저를 처음부터 염두하신 건가요, 아니면 다른 지원자들에게도 이렇게 명함을 주시는 건가요?

  ex 면접관 : 네? 아유 당연히 하얀 얼굴 씨한테만 주는 거죠. 하얀 얼굴 씨 맞죠? 호주 워킹홀리데이 갔다 오고, 공놀이 좋아한다는? 사실 나도 공놀이를 좋아하거든. 딱 보니까, 하얀 얼굴 씨는 공놀이를 잘하게 생겼어. 그런데 운동 잘하는 사람들이 또 일을 잘해요. 면접 처음 봤을 때부터 하얀 얼굴 씨랑 더 얘기를 해보고 싶었어요.

  그 : 아, 감사합니다!

  ex 면접관 : 그래요, 그럼 저는 또 약속이 있어서... 우리 팀이 TO가 있긴 한데, 내가 뽑고 싶다고 해서 바로 뽑는 건 아니고 회사랑도 얘기를 해봐야 돼요. 윗선에서 허락도 나야 하고. 얘기해놓고, 연락 줄게요.

  그 : 네, 연락 기다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명함을 받고, 이야기가 끝났다. 그는 쌩하고 가버리자니 살짝 켕겨서, 쭈뼛쭈뼛 ex면접관이 택시 타는 것을 같이 기다린다. ex면접관이 핸드폰을 잠깐 보다가, 택시가 오자 탑승한다. 그는 ex면접관이 택시 타는 것을 확인하고 이내 지하철역으로 향한다.


 집으로 가는 길, 그는 손에 쥔 명함을 몇 번이고 살핀다. 

 - 7번째 기업, 공공영업팀 팀장, OOO 부장

 그에게는 이 명함이, '직장인'이라는 초호화 파티장으로의 VIP 초대장으로 느껴진다. 


 집에 도착한 뒤, 그는 한참을 고민한 끝에 문자를 하나 보낸다. 그에게 일자리를 알선해 줄, 미래의 팀장에게 미리 보내는 감사의 문자다. 혹여나 오타가 나지는 않을까, 심기를 거슬러 다 된 일자리를 그르치진 않을까. 그는 떨리는 손으로 문자를 보낸다.



안녕하세요 OOO 부장님, 하얀 얼굴입니다.

명함 감사합니다. 기회를 주신다면 열심히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하얀 얼굴 드림.


 오타가 있진 않은지, 문맥이 이상하진 않은지, 내용은 적절한지, 그는 몇 번이고 자신이 보낸 문자를 확인한다. 몇 번이고 문자 내용을 확인하고 있는 그의 핸드폰이 갑작스레 울린다. 그의 문자에 대한 답신이다.


네 고마워요 추후에 전화드릴게요

주말 자알 보내세요



 다행히도 큰 실수는 없었던 것 같다. 그는 첫사랑에게 보냈던 문자에 답신을 받은 것마냥, 속으로 소리를 지르며 기뻐한다. 경영 직무든, 공공영업 직무든, 둘 중 하나는 될 것 같다는 느낌이다. 물론 그는 공공영업보다는 경영 직무로 입사하는 것이 더 좋다. 하지만 냉철히 자신의 처지를 생각해보자면, 공공영업이든 경영이든 가릴 때가 아니다. 무엇이든 합격하기만 하면 좋겠다고 마음을 고쳐먹는 그다.


 일주일 뒤, 7번째 기업으로부터 최종 면접 결과가 날아왔다. 결과는 최종 면접 불합격. 괜찮다. 그에게는 아직 공공영업팀의 명함이 남아 있다. 이 명함은, 다른 지원자 누구도 받지 못한 히든카드다. 자신에게는 히든카드가 남아 있노라고, 그는 굳게 믿었다. 하지만 날이 갈수록 믿음은 흔들리고, 품었던 희망과 설렘은 조금씩 분노로 점철되기 시작한다.


 최종 결과가 발표된 날에도 연락은 오지 않았다. 일주일을 더 기다렸다. 일주일 뒤에도 연락이 오지 않았다. 그는 조금씩 의심이 들면서, 짜증이 나기 시작했다. 일주일을 더 기다렸다. 회사 내부에서 결정이 미뤄진 거겠지. 연락은 오지 않았다. 시간은 계속해서 흐른다. 기다림의 시간이 길어질수록 그의 분노는 커져간다.

 그렇게 계속해서 기다리다가, 어느덧 한 달이 지나서야 비로소 깨닫는다. 연락은 오지 않을 것이다. 그는 명함을 찢어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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