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번째 기업 1차 합격

PT 준비, 촉박한 시간

by 하얀 얼굴 학생

그가 10번째 기업으로부터 전화를 받았을 때는, 연말 외식으로 밖에서 김치찌개를 먹고 있었을 때다. 테이블에 올려놓은 그의 핸드폰이 울리는데, 모르는 번호다. 그는 양해를 구하고 전화를 받는다.


그 : 여보세요.

목소리 : 네 안녕하세요, 하얀 얼굴 씨 맞으시죠? 저희는 10번째 기업입니다.

그 : 아 네, 안녕하세요!

10번째 기업 : 네, 통화 가능하신가요?

그 : 아 네 가능합니다.

10번째 기업 : 늦은 시간에 죄송해요. 저희가 방금 막 결정이 된 사안이라서요. 하얀 얼굴 씨 최종 면접을 진행하려고 하는데요, 혹시 내일모레 가능하신가요?

그 : 내일모레 말씀이신가요? 가능합니다.

10번째 기업 : 아 네, 그런데, 이번 최종 면접은 PT 면접을 진행하려고 해요. 저희가 곧 PT 주제를 보내드리면, 그 주제에 대해 PPT를 작성하신 뒤 최종 면접에서 발표해주시면 되세요.

그 : (속으로 의문이 든다) 아 내일모레 바로 말씀이신가요?

10번째 기업 : 네, 시간이 조금 촉박하시죠.... 면접관들께서도 시간이 적은 건 고려하겠다고 하시네요.

그 : 주제는 혹시 언제쯤 주시나요?

10번째 기업 : 네, 전화 통화 이후 최대한 빨리 보내드릴게요.

그 : 아, 네 알겠습니다.

10번째 기업 : 네 그럼, 모레 최종 면접 때 뵙겠습니다.

그 : 네 감사합니다.


전화를 끊고, 그는 김치찌개를 먹으며 생각이 많다. 그동안 PT 면접을 몇 번 봐온 그이지만, 이번 PT 면접은 무언가 다르다. 기존에 그가 봐온 PT 면접들은, 당일날 문제지를 나눠주고 30분 내에 답안을 작성하는 형식이었다. 발표도 5분 이내이며 답변과 근거의 내용만을 대강 파악하려는 의도의 PT였다.


하지만 이번의 PT는 다르다. 주제를 미리 주고, 시간도 꽤 많이 주며, 발표 자료를 미리 만들어 오라는 PT다. 시간을 많이 준다는 것은, 그 결과물에 대한 기대치를 높이겠다는 뜻이다. 문제는, 이러한 PT임이 꽤나 명확한데 준비할 시간이 촉박하다. 김치찌개를 먹고 나서, 당장 집에 가서 PT 준비부터 해야 할 판이다.



약 30분 뒤, 그의 메일함에는 최종 면접 안내와 함께 PT 주제가 도착한다. PT 주제는, "해외의 곡물 유통 및 곡물 수출 시스템"이며 발표 시간은 10분 내외라고 명시되어 있다. 그에게는 굉장히 생소한 주제인데, 주어진 발표 시간도 길다. 어쨌든 일단은 이 PT를 성공적으로 끝마쳐야 한다. 그는 집으로 들어가자마자, PT 발표 자료 제작에 착수한다.


그는 경영학도이긴 하나, 대학 생활을 제대로 하지 않아서인지 PPT 활용 능력이 떨어진다. 조를 이루어 발표를 해야 하는 수업 때도, 조원들은 다들 소극적이었으며 엄청난 PPT 실력을 갖고 있지도 않았다. 이러한 조를 보며 그는, 자신의 PPT 실력도 그냥 평범한 수준이겠거니 생각했다. 큰 물로 나가보지 못한 물고기의 어린 생각이었으리라.


발표 자료를 만들기 위해 조사를 하는데, 상당히 막막하다. 해외의 곡물 유통 및 곡물 수출 시스템이라니? 그가 검색을 해보니, 곡물 생산 및 수출량은 미국이 압도적으로 많단다. 그렇다면 미국의 곡물 유통 및 수출 시스템에 대해 발표를 해야 하는 것이다. 그는 자료를 찾기 시작한다.



시간은 쏜살같이 흐른다. 그는 거의 밤을 지새우며 조사를 하는데, PPT 발표 구성을 어떻게 할 것인가를 계획하는 데만 몇 시간이 흘러버린다. 계속된 조사를 통해 그가 알아낸 바는 다음과 같다. 미국에는 Corn belt라는, 옥수수를 비롯해서 곡물이 많이 생산되는 내륙 지역이 있다. 콘벨트에서 생산된 곡물들은, 화물 트럭으로 곧장 미시시피 강 유역으로 운송된다. 미시시피 강부터는 배로 운송되는데, Dry Bulk라 불리는 배를 쓴다. 미시시피 강 유역에는 Elevator라고 불리는 저장 창고가 있다.


결국, 미국의 곡물 유통 경로는 다음과 같다.

1. 콘 벨트 지역에서 곡물 생산

2. 생산된 곡물을, 미시시피 강까지 트럭으로 운송

3. 트럭은 싣고 온 화물을, Elevator라는 저장 창고에 옮김

4. Elevator는, 곡물을 저장하고 있다가 벌크선으로 옮겨 실음

5. 벌크선은 미시시피 강을 따라 미국, 더 나아가면 바다 건너 해외로 곡물을 유통(수출)


이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은, 그가 보기에는 저장 창고인 Elevator다. 저장 창고의 이름이 엘리베이터인 이유는, 곡물을 트럭에서 퍼 나르거나 벌크선으로 퍼내리는 컨베이어 벨트가, 칸칸이 나누어져 있어 일종의 엘리베이터처럼 보여서 지어진 이름이라 한다. 그는 미국의 곡물 유통 경로가 어떻게 되는지에 대해 들이파기 시작한다. 저장 창고인 엘리베이터 사진을 넣고, 드라이 벌크와 화물 트럭 벡터 이미지를 넣고, 미국 대륙 지도 곳곳에 화살표를 삽입하는 등 열심이다. 대강의 곡물 유통 경로 장표가 완성되었을 때, 이미 준비 시간은 거의 다 끝나 있다.



주제는 '곡물 유통 및 수출 시스템'이었으나, 그가 준비한 것은 유통 경로에 불과하다. 그 자신도, 이대로는 뭔가 불완전하다는 것을 눈치챈다. 뭔지는 모르겠지만, 수출 시스템에 대한 언급과 자료가 있어야 한다고 느낀다. 하지만 구글에 그가 Grain Export를 검색한 순간, 수많은 영어 보고서가 쏟아진다. 알 수 없는 용어, 빼곡한 숫자, 게다가 영어 보고서다. 이런 보고서만도 10개가 넘는데, 하나만 제대로 읽으려 해도 몇 시간이 걸릴 터다.


그는, 이런 종류의 보고서를 보고 준비하는 것이 제대로 된 방향이었으리라는 것을 직감한다. 하지만 양이 너무 많고 방대해서, 오히려 처음부터 이렇게 준비했다간 지금까지 영어와 숫자로 된 보고서 하나만 붙잡고 아무런 발표 자료도 만들지 못했을 것이라는 생각이 강하게 든다. 방향이 조금 어긋나긴 했지만, 턱없이 부족한 시간 내에 그나마 약간의 발표 자료라도 만들었음을 다행으로 여기는 그다. (물론 그의 감은 틀리지 않았으며, 그 결과 그는 PT 면접에서 폭풍우를 직면하게 된다)



시간이 다 되어가긴 하나, 아주 없진 않다. 그는 보고서에 나온 곡물의 무게를 재는 단위를 익히고(곡물은 '부셸'이라는 단위로 센다), 아주 생소한 단어 몇몇에 대해 찾아보고 숙지한다. 보고서를 보니 FDA라는 단체도 나오고, 미국 정부도 나온다. 우선은 해당 기관들의 로고 이미지를 따와서 발표 자료에 넣는다. 간략하게나마, 곡물 수출에 이러한 기관들이 관여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다.


그 자신도, 자신이 만든 자료가 부족하다 못해 허접해 보일 수도 있으리란 것을 알고 있다. 하지만 그는 우선은 부딪히기로, 자신이 할 수 있는 만큼은 하기로 결정한다. 디자인적 요소는 신경 쓰지 않고, 그가 집중해서 찾은 자료들 위주로, 나름 최선을 다해 발표 자료를 만든다. 마지막 부분에는, 그동안의 발표 내용을 전부 아우를 수 있는 요약 장표를 하나 만든다.


생소한 주제, 영어와 숫자가 가득한 보고서, 하루도 채 되지 못하는 턱없이 부족한 준비 시간. 그는 밤잠을 줄이고 약 2시간만 자며, 나름 최선을 다해 발표 자료를 만들었다. 그는, 만든 자료를 미리 이메일로 보낸다. 전화기 속 목소리는, 자신들이 발표 자료를 프로젝터로 띄워 놓아야 하니 자료를 몇 시까지 제출해달라고 말했었다.


'해외 곡물 수출 유통 및 수출 시스템' PT 준비가 끝났다. 그가 준비한 발표와 자료는, 미국 내 곡물의 유통 흐름이 어떻게 되는지에 중점을 두었다. 실제 유통 흐름이라는 하드웨어에 대한 발표는 준비가 되었으나, 수출 시스템이라는 소프트웨어에 대한 발표는 준비가 되지 않은 셈이다.

그가 자료를 제출한 것은 오전 9시, 발표는 곧 있을 오후다. 밤잠을 줄여가며 준비했으니, 우선은 당장의 컨디션을 위해 조금이라도 잠을 자 두어야 한다. 미래의 자신에게 PT를 맡기고, 우선은 잔다. 그는 이때는 몰랐다. 자신이 열심히 준비했다고 생각한 하드웨어 측면마저도 완벽하지 않았다는 것을, 그리고 10번째 기업 면접관들이 듣고 싶었던 것은 그가 준비한 하드웨어가 아닌 소프트웨어였다는 것을 말이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10번째 기업, 11번째 면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