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번째 기업, 12번째 면접
최종 면접, 열정적인 혹평
몇 시간 눈을 붙이고, 그는 황급히 일어나 10번째 기업으로 향한다. 1차 면접은 Zoom을 이용한 비대면 면접이었지만, 최종 면접은 대면 PT 면접이기 때문이다. 그는 씻고 세수하고, 양복을 입고, 양복 위에 패딩을 걸친다.
잠을 별로 자지 못해 눈이 약간 풀려있지만, 그의 정신은 또렷하다. 계속해서 준비한 PT 내용이 머릿속에 선하다. 미국의 곡물 유통 경로, 콘벨트, 수출 엘리베이터, 바지선 등 몇 번이고 반복해서 보고 준비한 자신의 발표 내용을 되뇌며 버스를 탄다. 공교롭게도, 그가 10번째 기업의 최종 면접을 보는 날은, 한 해의 마지막 날이다.
그는 10번째 기업에 도착한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려, 바로 앞에 있는 직원에게 면접을 보러 왔다고 말한다. 직원은 잠시 기다리라고 하더니, 안으로 전화를 건다. 얼마 뒤 한 직원이 그를 맞이하러 나온다. 머리가 짧은 여성 직원이다. 직원은 그를 대기실로 안내했다가, 이내 면접실로 데려간다. 데려가면서, 직원은 그에게 리모컨 같은 것을 준다. 레이저 포인터다. 누르면 레이저가 나오고, 페이지를 좌우로 넘길 수 있는 버튼까지 탑재되어 있다. 이 기기를 이용해서 발표를 진행하시라고 말한다. 그는 알겠다고 답한다.
면접실에 들어서자, 두 명의 면접관이 앉아 있다. 그가 훑어보니, 비대면 1차 면접 때와 동일한 면접관들이다. 짧은 시간이었으나, 그는 두 면접관이 자신이 생각했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을 확인한다.
면접관 1 : 실제로 보니 흰머리가 더 많다. 흰머리가 너무 많아 머리가 회색으로 보일 정도다. 또 배가 나왔으며, 어깨를 비롯해서 상체 몸집이 상당히 크다. 안경을 낀 곰돌이 푸 같은 느낌이다.
면접관 2 : 보통 체격으로, 머리가 검고 전반적으로 차분한 인상이다.
언뜻 보아도, 면접관 1이 면접관 2보다 나이가 많다. 면접관 1은 흰머리로 인해 나이가 더 들어 보이고, 면접관 2는 그 분위기로 인해 또 나이가 들어 보인다. 하지만 실제로 말을 할 때 목소리를 들어보면, 생각보다 젊다. 그는 이 면접관들의 조합이, 꽤나 특이하다고 생각한다.
그는 면접관들이 반가워, 웃음이 나려 했으나 면접관들은 상당히 진지하다. 그는 분위기를 눈치채곤, 약간 무안해진 상태로 인사한다. 면접관들은 꽤나 사무적으로 그를 대한다.
10번째 기업, 전략자원본부 신입 최종 PT 면접
면접자 : 그 혼자
면접관 : 1차 면접과 동일하게 2명, 모두 남자
면접관 1 : 안녕하세요. 실제로 보니 키가 크시네요. 준비되면 발표 시작하세요.
그 : 안녕하십니까! 네, 알겠습니다.
발표를 막 시작하려는 참에, 면접관 2가 끼어든다.
면접관 2 : 음.... 지금 하루 만에 준비한 자료인 거죠?
그 : 아 네, 엄밀히 따지면 하루하고도 6시간 정도의 시간이 있었습니다. (그는 겸손하게 말하고자, 그리고 시간이 덜 부족했다고 어필하고자 이렇게 말한다. 남 탓이나 상황 탓을 덜하는 모습을 어필하기 위해서다)
면접관 2 : 음..... 알겠습니다. 발표 시작해주세요.
그는 레이저 포인터를 대강 눌러보고는, 작동함을 확인하고 발표를 시작한다.
그 : 안녕하십니까! 해외 곡물 유통 현황 및 수출 시스템에 대한 발표를 시작하겠습니다. 미국은 곡물 시장에서 가장 큰 고객인 만큼 10번째 기업에 매우 중요한 시장입니다. 미국의 곡물 유통 현황부터 시작해서 수출 시스템의 순서로 말씀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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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입니다. 발표 순서는 미국의 곡물 생산, 유통 현황으로 시작해서 곡물 수출 시스템을 살펴보고, 결론과 요약, Q&A로 진행하겠습니다. 앞으로 발표 동안 보실 자료들은, 농림축산식품부의 [2020 농식품 수출국가정보],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의 [해외곡물시장 동향 2020 제9권 6호] 등을 참고했음을 미리 말씀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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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주요 농산물은 곡물, 당료 작물, 유지 작물, 채소류, 과일류로 나뉩니다. 미국은 연간 1270여 억 달러 규모의 농산물을 생산합니다. 이 중 곡물은 약 600억 달러 규모입니다. 제가 알아본 작물은, 바로 이 600억 달러 규모에 속하는 곡물입니다.
보시는 바와 같이, 전체 1200억 달러 농산물 중, 곡물은 절반인 600여 억 규모입니다. 이 600억은 다시 여러 품종으로 나뉘는데, 옥수수가 500억, 밀이 100억, 쌀이 27억, 호밀이 5000만 달러 규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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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600억 달러에 달하는 작물이 어디서 어떻게 재배되는지를 찾아보았습니다. 화면의 지도를 보시면, 작물별로 생산지가 표시되어 있습니다. 첫 번째부터 옥수수, 보리, 오트밀 순입니다. 이 세 가지 작물들의 생산지를 모두 합쳐서 보면, 이런 식으로 나타납니다. (애니메이션을 이용한 PPT 활용이다) 이 지역이 바로 콘 벨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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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페이지를 보시면, 곡물별 이동 경로가 나옵니다. 이전 슬라이드에서 보여드린, 세 작물이 겹치는 콘 벨트 지역에서 미국 동부, 서부, 남부로 곡물이 이동함을 알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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곡물의 이동 경로를 보셨습니다. 정리하자면, 미국의 곡물 유통은 다음과 같습니다. 4억 톤, 600억 달러 상당의 곡물이 콘 벨트에서 재배되어 3단계의 엘리베이터, 즉 곡물 창고로 모입니다. 이 과정에서 오프라인, 온라인 유통망을 통해 전국으로 퍼져 소비자에게 전달되고 일부는 수출 엘리베이터를 통해 수출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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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미국 국내 유통 통계를 조사했습니다. 보시는 표는 식품 유통의 큰 틀입니다. 미국의 식품 유통은 98%가 오프라인으로 이루어지고 있으며, 단 2%만이 온라인 유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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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통 중 오프라인 유통을 조금 더 자세히 알아보았습니다. 오프라인 유통으로는 현대식 슈퍼마켓이 45.7%, 하이퍼마켓이 28.5%, 편의점 2.4% 순이며 점포수는 18만 1200개로 집계되었습니다. Aldi, Kohl's, 7-eleven 등이 이에 속합니다. 현대식 유통채널 이외의 11.5% 물량은, 지역 로컬 Farmer's Market 같은 전통식 유통채널로 유통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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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으로, 미국 국내가 아닌 해외 수출입니다. 미국 곡물은, 미시시피 강 유역의 엘리베이터들을 이용한 물류 시스템을 이용하며, 곡물 품질관리를 거쳐 해외로 수출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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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시시피 강 유역의 엘리베이터를 간략하게 나타낸 그림입니다. 바지선으로부터 곡물을 끌어올려 엘리베이터에 저장하고, 다시 더 큰 화물선으로 옮겨 실어 수출하는 과정입니다. 곡물의 종류에 따라 다르게 저장하는 모습입니다. (해당 그림은 곡물의 종류가 아닌, 크기와 품종이었다. 면접관은 이 부분을 날카롭게 알아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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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리하자면, 미국의 곡물 유통 현황은 다음과 같습니다. 농가가 콘벨트에서 곡물을 재배하면, 트럭과 기차 등의 육상 운송, 바지선의 해상 운송을 통해 각각의 엘리베이터로 모입니다. 컨트리 엘리베이터나 터미널 엘리베이터는 미국 내 시장으로 곡물을 공급하고, 수출용 엘리베이터는 해상 운송을 통해 해외로 곡물을 수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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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출되는 물량에 대해서는 수출 시스템이 적용됩니다. 미국의 수출 시스템을 간단히 도식화했습니다.
수출하고자 하는 이는 수출용 엘리베이터에서 곡물을 선적하여 바이어에게 실어 날라야 합니다. 수출인은 곡물을 선적하기 전 정부와 농무부, FDA의 승인을 얻어야 하며 서류 작업이 많은 것으로 보입니다. 대금 납부는 은행을 통해, 화물 운송 중 위험과 비용 여부는 인코텀즈의 무역 거래 시 규칙을 통해 결정합니다.
(수출 시스템이 그가 가장 준비를 못한 부분이었으므로, 간단히 설명하고 넘어갈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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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이상으로 발표를 마치겠습니다. 끝까지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질문이 있으시면 말씀해주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드디어 발표가 끝났다. 그는 부족한 시간과 자료이지만, 그래도 나름 선방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는 그의 착각이었으며, 면접관들의 생각은 매우 달랐음을 절실히 깨닫게 된다.
면접관 1 : PT 준비 시간이 얼마 없다는 것은 고려하겠습니다. 다만, 그걸 고려하더라도 내용이 상당히 부실하네요.
그 : 아, 네. (처음부터 혹평이다)
면접관 1 : 지금 PT 주제는 '미국의 곡물 유통 현황 및 수출 시스템'이에요. 곡물 유통 현황을 보려면 뭘 조사해야 하죠? 농가에서 생산한 곡물을, 도대체 누가 어디서 소비하는지를 알아봐야 하는 것 아닙니까? 미국 내 곡물 소비 1위 업계가 어디인지 조사했나요?
그 : 아, 모르겠습니다.
면접관 1 : (답답하다는 듯이) 곡물이 가장 많이 쓰이는 분야는 사료 제조업체입니다. 그렇다면 미국의 사료 업체 이름이 반드시 나왔어야 하는데, 언급조차 되질 않았어요. 어디였죠? PPT 다시 띄워봐요.
그 : 아, 네 (그의 발표 자료를 다시 띄운다)
면접관 1 : 그, 유통 현황 슬라이드 띄워봐요. 다음, 다음. 네 여기. 여기 보면, 오프라인 채널 온라인 채널로만 퉁쳐놓고 그냥 넘어갔어요. 곡물 유통 현황을 파악하려면, 사료 제조업체에 대한 언급이 나오고 이후 곡물이 어떻게 유통되는지를 명확하게 밝혔어야 합니다.
그 : 아 네, 알겠습니다.
면접관 1 : 중요한 내용이 전부 빠졌어요. 수출 시 곡물을 세는 단위가 뭔가요? (시험하듯)
그 : (이건 알고 있다) 보고서와 자료들을 보았을 때, 부셸이라는 단위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면접관 1 : 부셸이 정확히 어느정도 무게인가요.
그 : 곡물의 무게를 세는 단위로, 1부셸은 대략 28kg 정도인데 나라별로 조금씩 차이가 있는 것으로 봤습니다.
면접관 1 : 흐음....
부셸에 대한 답변만큼은 그가 인지하고 답변한 것이다. 그는 발표 자료에도 톤 단위를 직접 부셸로 환산해 둘 다 표기해놓았다. 맞게 답변했으니 더 이상 묻진 않았으나, 면접관 1은 성에 차지 않는 눈치다.
면접관 1 : 아니 도대체... PT발표 자료를 만들 때는, 어떤 식으로 발표를 구성할지, 어떤 사진을 어디에 배치할지를 고민해야 해요. 이 사진을 왜 여기 넣었는지, 그 부분을 명확하게 인지하고 있어야 된다는 말입니다. 아까 어느 슬라이드였죠? 수출 엘리베이터 나온 슬라이드 띄워봐요.
그 : 아, 네 (슬라이드를 열심히 넘긴다)
면접관 1 : 다음, 다음, 다음, 그래요 여기. 지원자는 이 슬라이드에 이 엘리베이터 사진을 왜 집어넣었나요? 이 사진이 의미하는 바가 뭐라고 생각해서 넣은 거예요?
그 : (심히 당황하여) 곡물 엘리베이터의 구조와 기능을 잘 보여준다고 생각해서 넣었습니다. 또 개인적으로 곡물 엘리베이터가 관심이 가서...
면접관 1은, 기어코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발표 자료가 떠 있는 앞쪽까지 걸어 나온다. 프로젝터가 비추고 있는 그의 PPT 슬라이드 화면을 손으로 이리저리 가리키고 건드리며, 열정적으로 깐다. 프로젝터 빔을 받고 있는 가죽 재질의 도화지가, 면접관 1의 손짓에 의해 출렁인다.
면접관 1 : 이 그림은, 곡물 엘리베이터가 어떻게 작동하는지 작동 원리를 나타낸 그림이에요. 여기 보면 곡물들 색깔이 다르게 나와 있죠? 이게 뭐라고 생각해요?
그 : 다른 품종의 곡물들을 다르게 담고 있는 것 아닙니까?
면접관 1 : 아니, 이건 같은 곡물이라도 그 크기와 무게에 따라 선별해서 다르게 담는다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곡물 엘리베이터에 옮겨가는 과정에서 엘리베이터가 자체적으로 곡물의 품질을 판단하고 분류하는 시스템이라는 거예요. 본인이 집어넣은 사진을, 본인이 무슨 뜻인지 알지 못하면 어떡하나요? 그래 놓고 곡물 엘리베이터가 관심이 가서 집어넣었다니요.
그 : 아, 네
그는 웃는 얼굴, 포커페이스를 놓치지 않으려 노력한다. 발표는 이미 망한 것 같다. 면접관 1은 신명 나게 발표를 까고 있다. 그냥 집으로 돌려보내고 탈락시켜도 되는데, 이렇게 열심히 까는 것은 그래도 애정이 있다는 것 아닌가. 그는 헛된 희망을 품고, 웃는 얼굴을 잃지 않는다. 피드백에 열려 있는 지원자, 거센 피드백도 웃으며 받아들일 수 있는 지원자라는 인상을 심어주기 위해서다. 눈물겨운 노력이다. 면접관 1의 열정은 도무지 식을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면접관 1 : 그리고, 수출 시스템 슬라이드 띄워봐요.
그 : 아, 네
면접관 1 : 그래요 이 슬라이드. 이건 수출 시스템을 너무 애매하게 표현하고 있어요. 미국의 수출 시스템이 우리랑 다른 점이 뭡니까?
그 : 잘 모르겠습니다.
면접관 1 : (답답하다는 듯이) 미국은, 다른 나라들과는 다르게 곡물의 수출 과정을 정부에서 컨트롤합니다. 그 점이 미국 곡물 수출 시스템의 핵심이에요. 정부가 나서서 곡물의 품질과 수출을 컨트롤한다는 겁니다. 그렇다면, 그 점에 대해서도 언급이 있어야 하는데, 이거는 뭐...
그 : 아, 네
면접관 1 : (갑자기 열정이 팍 식으며) 준비 시간이 부족하긴 했으니까... 여기 콘 벨트에서 곡물이 이동하는 걸 보여준 부분은... 괜찮네요.
면접관 1의 폭풍 같은 비평이 끝나고, 면접관 2도 조용히 그에게 비수를 날린다. 너무 날카로운 비수인 걸 본인도 아는지, 면접관 2는 그를 쳐다보지도 않고 말한다.
면접관 2 : 음... 대학교 때 PPT 많이 만들지 않나요? 아니, 원래 발표할 때는 숫자를 갖고 이야기를 해야 하는데... 지금 자료를 보면 숫자가 없어요. 다 어디서 가져다가 복사 붙여넣기한 자료밖에 안 보이네요. 다양한 논문, 보고서, 자료를 찾아보고, 거기서 숫자를 가져와서 본인이 가공해야 하는데, 그런 게 전혀 안 보이네요. 여기도 복사 붙여넣기 한 거고, 이것도 캡처해서 넣은 거고. 그래서 결론적으로 저는, 이번 발표에서 뭐 별로 볼 게 없네요. 숫자가 없어서.
그 : 아 네, 감사합니다.
그는 면접관 2의 평에는, 은근히 속이 부글부글 끓는다. 시간도 촉박하게 설정해 놓고선, 여러 보고서를 읽어보고 의미 있는 숫자를 도출해내고 가공해서 보여달라니. 그는 그러한 자료를 만들어본 적이 단 한 번도 없다. 대학교 생활 내내, 조별 과제를 할 때도 다른 보고서를 인용하거나 숫자를 잘라 붙여넣기만 했다. 그는 잘 모르겠다. 면접관 2가 원하는 기준이 너무 높은 것인지, 아니면 그의 보고서 작성 능력이 다른 지원자들에 비해 형편없이 떨어지는 것인지 말이다. 다른 지원자들은 모두들 논문과 보고서를 참고해서 본인들만의 숫자를 만들고 가공해서 집어넣는다는 말인가? 그는 그런 식으로 보고서나 과제를 하는 이를 본 적이 한 번도 없다. 면접관 2의 기준이 높은 것일 수도, 아니면 그가 대학교 4년이라는 시간을 그저 허투루 보낸 것인지도 모르겠다.
열정적인 비평과 까임 이후, 어색한 침묵이 흐른다. 면접관 1이 침묵을 깨고 말한다.
면접관 1 : 에휴, 연말인데, 자료 준비하고 면접 보러 온다고 수고 많았어요.
그 : 면접관님들께서도, 연 마지막 날에 부족한 발표를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면접관 1 : 허허허... 그래요,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나 질문 있나요?
그 : 네, 말씀드렸던 것처럼 연말에 발표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또 이렇게 기회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기회를 주신다면, 10번째 기업에서 함께 일하고 싶습니다. 감사합니다!
면접관 1 : 그게 전부예요? 1차 면접 때는 용감하게 자기가 면접 잘 봤냐고 대놓고 물어보더니?
그 : 아, 그때는 1차 면접이지 않았나요? 아마 지금 면접이 최종이자 마지막 면접일 텐데, 최종 면접에서는 점잖고 안전한 방식을 택하려 합니다.
면접관 1 : 하하 (재밌다는 듯이 웃는다)! 그래요, 수고했어요.
그 : 감사합니다!
10번째 기업은, 대면 면접임에도 불구하고 면접비를 주지 않았다. 그는 한 해의 마지막 날에 불러놓고, 면접비도 주지 않는 10번째 기업이 야속하게 느껴진다. 하지만 괜찮다. PT가 약간 망한 것 같긴 하나, 시간이 부족했으며 면접관 1이 정말 신명 나게 깠다. 그렇게 신명 나게 까는 것이, 무관심과 체념보다는 낫다고 생각하는 그다. 그래도 싹수가 보이니까 이런 식으로 고쳐보라고 이야기한 거겠지. 그는 애써 긍정적으로 생각하고자 한다. 발표하는 앞쪽까지 걸어 나와 손으로 이리저리 가리키며 열정적으로 깐 면접관 1, 조곤조곤 숫자가 없다며 비수를 날린 면접관 2 앞에서 계속 웃는 낯을 유지한 그다. 너무 억지로 웃고 있었는지, 광대뼈에 경련이 생길 것만 같다. 괜찮다. 그래도 붙기만 한다면야. 붙고 나서 배우면 되지 않나. 생각해보면 면접관들의 혹평은 모두 맞는 말들이다. 그를 위해 성장의 말을 해준 것이겠거니, 나중에 상사가 되면 배울 점이 많은 사람들이겠거니 생각한다. 이 순간만큼은, 그는 긍정의 화신이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한 해의 마지막 날이라 그런지 그는 감상에 잠긴다. 오늘이 지나면 한 살 더 먹겠구나. 한 해의 마지막 날 면접을 보다니, 이것도 그와 10번째 기업 간의 어떤 운명이 아닐까? PT를 못했다고, 발표 자료를 아무리 까여도 좋다. 면접비 따위 받지 않아도 좋다. 부디 합격만 시켜줬으면 좋겠다.
집으로 돌아가며, 어떻게든 긍정적으로 생각하고자 하는 그다. 하지만 이내, 합격하지 못하면 어쩌나, 내일이면 한 살 더 먹은 취준생이라는 자신의 처지가 떠오른다. 겨울 바람 탓인지, 집으로 돌아가는 그의 몸과 마음은 춥고 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