면접 준비
17번째 기업 면접 준비에 돌입한다. 현재 그는 17/18/19/20번째 기업 이렇게 네 곳의 채용 전형을 한꺼번에 진행 중이다. 이제 막 면접을 끝내고 결과를 기다리고 있거나, 면접 일정이 잡혀 있거나 둘 중 하나다. 17번째 기업은 서류 합격 통보는 가장 빨랐지만, 면접은 한참 뒤에나 진행한다.
사실 그는 17번째 기업의 서류 심사에서 탈락했었다. 그런데 탈락 통보를 받은 지 한 달 정도 뒤, 갑자기 메일이 도착했다. 회사 내부 사정으로 인하여, 기존 서류 탈락 인원들 중에서 추가 합격자를 뽑았다는 것이다. 얼떨떨하긴 하지만, 어쨌든 기회가 주어졌다는 생각에 그는 최선을 다하고자 한다. 17번째 기업은 한국을 대표하는 ㄱ그룹의 건설사다. 마다할 이유가 없다.
한국의 이름난 기업집단들은, 십중팔구 반드시 건설사를 갖고 있다. 부동산에 투자하면 절대로 망하지 않는다는 부동산 불패신화와 비슷하다. 한국의 대기업들은 초창기 건설사로 시작했거나, 건설 경기 성장세를 이용하여 지금의 모습으로 성장한 듯하다.
17번째 기업은, 여느 대기업의 건설사와 견주어도 지지 않는 명성을 자랑한다. 17번째 기업은 고유 아파트 브랜드 'H'를 갖고 있으며, H 아파트는 상당히 고가에 속한다. 안 그래도 고가인데, 프리미엄 전략을 내세워 H 브랜드보다도 더 고가인 프리미엄 아파트까지 건설해서 분양하고 있다. 부동산 무패신화 위에 세워진 한국, 그리고 한국에서 1위를 다투는 건설사가 바로 17번째 기업이다.
바로 직전에 이루어진 면접(18번째 기업 1차 면접)으로부터, 17번째 기업 면접까지 남은 기간은 고작 5일이다. 시일이 상당히 촉박하기 때문에, 그는 18번째 기업 면접을 준비하는 와중에도 짬을 내어 17번째 기업 면접 준비를 해두었다. 18번째 기업 면접이 끝난 직후부터 모든 시간을 오롯이 17번째 기업 면접 준비에 쏟는다. 그가 17번째 기업에 지원한 직무는 재경/사업관리다.
17번째 기업 홈페이지로 들어가, 현업 선배의 직무 인터뷰를 읽어본다. 그가 지원한 직무와 이름이 딱 맞아떨어지는 인터뷰는 없다. 재무와 사업지원 두 직무에 혼재되어있는 느낌이다. 재무 직무는 본사에서 대량의 회계 데이터를 관리하고 보고서를 작성한다고 되어 있다. 사업지원 직무는 현장에서 재무관리를 비롯해서 공사 수행에 필요한 다양한 지원 업무를 한다고 되어 있다. 잘은 모르겠지만, 인터뷰만 읽어보았을 때 그는 사업지원이 조금 더 끌린다. 건설사에서 일한다면, 힘들더라도 현장에서 경험을 쌓아야 하지 않겠나. 경력이 많이 쌓이면 본사로 들어가는 것이 좋겠지만, 처음에는 현장을 돌아다니는 것이 자신의 경력에 더 도움이 되지 않을까 생각해보는 그다.
재경/사업관리 직무는 숫자를 보는 직무일 것이다. 그는 재무제표를 다운받아, 자신만의 간이 재무상태표와 손익계산서를 만들기 시작한다. 17번째 기업도 숫자들이 큼지막하다. 기업규모와 매출 숫자가 모두 10조 단위다.
건설 시장에 대해서도 조사한다. 그가 준비하던 해의 한국 건설 수주 규모는 166조 규모로, 공공부문이 48조이고 민간부문이 117조다. 건설이라는 행위는 워낙 다양한 장소에서 긴 시간에 걸쳐 여러 규모로 이뤄지기 때문에, 거대한 17번째 기업이더라도 국내 수주를 전부 감당할 수가 없다. 전부는 고사하고, 반의 반의 반의 반 정도를 수주하는 것으로 보인다. 국내 매출로 단순히 계산하자면 그렇다. 국내 수주 매출에, 전염병으로 뜸해지긴 했지만 해외 수주 매출까지 더하면 전체 매출액은 배로 뛴다.
재경/사업관리이니 분명 원가도 알아두어야 할 것이다. 재무제표와 뉴스 등을 보니, 건설사에서 원가로 잡는 원자재가 있다. 봉강류(철근), 강판류(후판), 레미콘, 시멘트, 전기동(구리), 원유 등이다. 17번째 기업은 이러한 각종 원자재 납품, 물류 등을 같은 그룹인 ㄱ그룹의 다른 계열사들을 비롯해 여러 업체에 맡긴다. 그는 건설에 필요한 원자재, 원가, 원자재 납품 과정 등을 대략적으로 정리한다. 세세히 정리하기에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리고 복잡하다. 그가 할 수 있는 선에서 최선을 다해 준비한다.
1. 숫자 (재무제표, 국내/해외 건설 경기, 원자재 및 원가)
2. 직무 (직무 인터뷰, 숫자 관련 질문 준비)
3. 17번째 기업에 대한 충성도
위의 두 가지가 어느 정도 정리되자, 그는 마지막 세 번째를 준비한다. 17번째 기업에 대한 관심 어필이다. 그는 ㄱ그룹 창업자의 자서전을 읽으면서, 창업자의 정신을 약간은 파악한 상태다. ㄱ그룹 창업자는, 탈 것 제조로 시작했지만 나중에는 자신을 건설인으로 소개할 정도로 건설에 애착이 강했다. 자서전에도 건설 관련 에피소드가 상당히 많다. 해외 현장 공기를 맞추기 위해 바지선으로 바다를 건너 자재를 납품했다는 이야기, 경사진 현장에서 중심 기둥이 자꾸 넘어지자 불도저 여러 대에 줄을 연결해서 지탱했다는 등의 이야기다. 창업자가 이야기하는 것은 대단한 창의력이 아니라, 어떻게든 그 상황을 해결하고자 하는 불굴의 의지다. 그는 창업자의 정신을 자신의 뇌에 덮어씌운다.
그는 더욱 효과적인 어필을 위해, 17번째 기업이 지금껏 건설한 교각과 건물 등을 도표로 정리한다. 역사 깊은 전통을 지닌 17번째 기업인지라, 지금껏 건설을 맡아 완료한 현장이 엄청나게 많다. 기업 홈페이지에서 모든 현장의 이름을 베껴서 적기 시작하는데, 창업주 자서전에서 읽었던 익숙한 이름들도 보인다. 17번째 기업 임원들은 창업주 자서전을 읽어보기나 했을까. 그 자신이 오히려 17번째 기업 역사에 대해 더 많이 아는 것은 아닐까. 그의 망상은 그의 입을 찢어지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