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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번째 기업 사옥

사전 영어 면접, 대기

by 하얀 얼굴 학생

17번째 기업은 서류 추가 합격자들에게도 기존과 똑같은 채용 절차를 진행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와 서류 추가 합격자들은, 본 면접 1/2주일쯤 전에 사전 영어 면접을 본다. 하지만 사전 영어 면접 일정을 안내하는 메일에는, 본 면접의 일정까지 안내되어 있다. 즉, 영어 면접을 어떻게 보든 면접 일정은 이미 잡혀있다는 뜻이다. 그는 이 영어 면접이 채용 절차에서 그리 중요한 부분은 아니라고 판단한다.


중요도가 높지 않다 해도, 그는 최선을 다해 영어 면접에 임한다. 사전 영어 면접은 화상으로 이루어졌으며, 시간은 대략 10분 정도가 걸렸다. 그가 화면으로 만난 영어 면접관은, 푸른 눈에 머리는 짧고 턱수염이 있는 외국인이었다. 호주 워킹홀리데이 이후, 얼마만의 외국인인가. 반갑다는 인상마저 느끼며, 그는 외국인 면접관의 질문에 답한다. 질문은 대강 이런 식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인사

자기소개

질문 1 : 여행을 할 때 중요시하는 것이 무엇이냐? (그는 경험이라고 대답)

질문 2 : 지금부터 읽어주는 내용을 잘 듣고 난 뒤 요약해라 (한 부부가 조그만 아파트에 살고 있다. 부인은 남편에게, 아파트가 너무 작다고 계속 말한다. 세탁기를 놓을 공간은 있지만, 빨래를 널어놓을 공간이 없기 때문이다. 남편은 고민에 빠진다... ...)


간만에 외국인과 영어로 이야기하니 감회가 새로운 그다. 외국인 면접관은 웃음을 지으며, 이것으로 인터뷰를 끝내겠다고 말한다. 말 그대로 인터뷰, 면접이라기보다 가벼운 영어 인터뷰에 가깝다.




메일로 안내받은 당일, 그는 17번째 기업 본사에 들어선다. 17번째 기업은, 건설업을 영위하고 있어서인지 서울 한복판에 커다란 사옥이 두 채나 연달아 서 있다. 커다란 석재 기둥이 일정한 간격을 두고 건물 외관을 빙 둘러가며 촘촘히 박힌 모양이라서, 멀리서 보면 파르테논 신전과 비슷한 느낌을 준다. 이렇게 석재로 마감한 독특한 사옥이, 그것도 똑같이 생긴 사옥 두 채가 나란히 서 있다. 내부에는 반짝이는 대리석 타일 바닥이 깔려 있다. 건물 자체는 꽤 오래된 것이 확실한데, 원체 비싸고 화려한 내/외부 마감재를 써서인지 낡았다기보다는 고풍스럽다는 느낌을 풍긴다. 회전문을 통과해 1층에 들어서자, 17번째 기업 직원으로 보이는 회사원들이 그의 옆을 스쳐 지나간다. 면접 시작 시간은 점심시간 거의 직후다. 다들 점심을 먹으러 나가는 회사원들인가 보다.


17번째 기업 사옥 1층에는, 같은 ㄱ그룹에 속한 19번째 기업(탈 것 제조업)에서 제조한 탈 것이 전시되어 있다. 그는 얼마 전 19번째 기업 면접을 봤기 때문에, 면접 준비를 위해 외웠던 19번째 기업의 탈 것 모델들이 아직 머리에 어렴풋이 남아 있다. 전시되어있는 탈 것 쪽으로 가보니, 앞쪽에 조그만 동판으로 모델 이름이 쓰여 있다. N-Line, 레이싱이나 스포츠카와 같이 고기능성으로 주행감을 높인 모델이다. 이름만 외웠었는데, N-Line은 이렇게 생겼구나 감상하는 그다.


17번째 기업은 면접 대기실을 지하에 마련해 두었다. 사옥이 면적이 워낙 크기 때문에, 엘리베이터 두 대와 비상계단 말고도 계단이 또 있다. 1층에서 지하로만 내려갈 수 있는, 대학병원에서 볼 수 있을 법한 트인 계단이다. 이 계단을 따라 아래로 내려가자, 비로소 면접 대기실 안내 문구가 보인다. 그는 면접 대기실로 들어간다.



면접 대기실은 커다란 강의실 같은 공간이다. 강의실 앞쪽에는 마이크가 달린 단상과 커다란 화이트보드가 있다. 화이트보드에는 금일 실시할 면접 일정이 적혀 있다. 단상에서부터 문까지는, 의자와 일체형인 책상이 쭉 깔려 있다. 어림잡아도, 책상이 30개는 넘어 보인다.


뒤쪽 구석 책상에 앉아 핸드폰을 보고 있던 인사팀 직원이, 그의 인기척을 눈치채곤 다가온다. 먼 길 오시느라 수고했다며, 편하신 자리에 앉으라고 한다. 그는 강의실 좌측 쪽의, 앞에서부터 2번째 열 즈음 자리에 앉는다. 인사팀 직원은 A4 용지 하나를 가져와 그에게 건넨다. 화이트보드에도 적혀 있긴 하지만, 오늘 있을 면접 일정을 써 놓은 안내문이라고 한다. 그는 감사하다고 말하곤, 자리에 앉아 면접 일정을 숙지한다.


그는 잡X레닛의 후기에서도, 면접 참석 안내 메일에서도 약간의 힌트를 발견했었다. 구체적인 순서와 시간까지 안내해놓진 않았으나, 안내 메일에는 하루 만에 면접을 모두 실시한다고 적혀 있었다. 잡X레닛 후기에서도, 실무진 면접과 임원 면접을 하루에 모두 실시한다는 후기가 대부분이다. 그는 예전에도 이런 식의 면접을 경험해본 적이 있다. 공교롭게도 그때도 건설사 면접이었다.


실무진 면접과 임원 면접, 즉 1차 면접과 2차 면접을 하루 만에 끝내버리는 채용 프로세스. 그는 이런 방식의 면접을 건설사의 경우에만 겪었다. 전에도 생각했었지만, 공기를 단축할수록 이익이 극대화되는 건설사 특유의 일 처리 방식이 채용 과정에도 녹아든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또한, 하루 두 번의 면접을 거뜬히 견딜 만큼 강인한 정신력과 체력을 가진 인재를 원한다는 건설업계의 취향인 것 같기도 하다.



1차 면접과 2차 면접을 연달아 본다는 안내문을 숙지하고, 그는 다시 면접 준비 자료에 몰두한다. 손발은 계속해서 차가워지고, 차가운 손에서는 땀이 나는 것 같다. 배가 부글거린다. 이럴 줄 알고 점심도 먹지 않은 그다. 부글거리는 속을 부여잡고, 차가운 손으로 면접 준비 자료를 훑어본다. 그다지 집중이 잘 되지도, 더 이상의 암기가 되지도 않는다. 그래도 그는 면접 준비 자료에 코를 박고 눈으로 계속 훑는다. 계속해서 봐왔던 익숙한 것에 시선이라도 박아 놓아, 긴장감을 더 이상 증폭시키지 않으려는 그의 노력이다. 또한 계속된 면접 실패로 인해 그가 터득한, 그만의 면접 전 의식이다.


의식을 수행하고 있는 그에게, 인사팀 직원이 또 다가온다. 그가 고개를 돌리자, 인사팀 직원이 말한다.

인사팀 직원 : 아 이거, 원래는 전부 오셨을 때 안내드려야 되는 건데, 그냥 먼저 말씀드려도 될 것 같아서요. 면접 시작하시면, 면접관들께서 3가지를 물으실 거예요. 자기소개, 직무 지원 이유, 해당 직무에 자신이 기여할 수 있는 강점 이렇게 3가지입니다. 이 세 가지를 지금부터 생각해놓으시고, 면접 시작 때 답변해주시면 됩니다.

그 : 아 네, 감사합니다.


대기실에 도착한 면접자는 아직 그 혼자 뿐이다. 어차피 다른 지원자들도 알게 되겠지만, 그는 자신이 조금이라도 더 먼저 알았다는 점이 기쁘다. 조금이라도 우위에 섰다는, 면접 합격에 아주 조금이라도 더 가까이 서게 됐다는 자기 위안이다.


자기소개, 직무 지원 이유, 해당 직무에 기여할 수 있는 강점에 대해 그는 답할 말을 구상한다. 그다지 새로울 것은 없다. 어차피 이전의 면접에서도 계속해서 질문받았던 내용들이다.



답변을 구상하고, 면접 자료를 계속 훑어보고 있으니 다른 지원자들이 도착한다. 대기실에는 그를 포함해 총 3명의 지원자가 도착해서 대기한다. 인사팀 직원은 모두들 도착했다며 안내를 시작한다. 그에게 미리 알려준 것처럼, 자기소개 시 직무 지원 이유와 기여 방안까지 답해야 하니 미리 생각해두라고 한다.


인사팀 직원은 간단히 설명을 하고는 강의실 밖으로 나갔다가 들어온다. 들어와서는 구석 자리에 앉아 계속 핸드폰을 보고 있다. 도대체 언제 시작하는 것인가. 차가워지다 못해 손발의 감각이 사라져갈 무렵, 인사팀 직원이 지원자 한 명을 호명한다. 해당 지원자가 실무진 면접 첫 번째 순서라고 한다. 실무진 면접은 일대다로 진행되는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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