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 실무진 면접
17번째 기업은 면접을 화상으로 진행한다. 회사 사옥에 도착한 면접자들은, 면접용 노트북이 세팅된 방으로 들어간다. 이미 화상 면접 프로그램 로그인까지 되어 있다. 면접자는 자리에 앉아서 헤드셋을 쓰고 기다리기만 하면 된다. 인사팀 직원이 약간의 설명과 함께, 노트북의 다른 세팅은 건드리지 말라고 하고는 나간다. 잠시 뒤 까맣던 화상 면접 화면이 밝아지면서 면접관들의 모습이 보인다.
면접 대기로 긴장한 와중에도, 그는 이런 방식이 의아하다. 화상으로 면접을 볼 것이었으면, 그냥 면접자들이 각자 집에서 편하게 봐도 될 터다. 회사에서도 굳이 대기실과 면접용 노트북 방을 비워놓고 노트북 세팅까지 하는 수고를 덜 수 있다. 하지만 17번째 기업은 굳이 이런 방식을 택했다. 노트북 세팅이야 회사에서 해주는 것이니 솔직히 그는 편하다. 하지만 그는, 이왕 정장을 입고 사옥까지 도착했는데 적어도 면접관과 대면하는 것이 더 낫지 않은가 하는 의문을 품는다. 일개 취준생의 의문일 뿐이다. 그는 내색하지 않는다.
인사팀 직원에게 먼저 불려 갔던 면접자가 다시 대기실로 돌아온다. 인사팀 직원이 또 한 사람을 호명한다. 그의 차례다. 인사팀 직원을 따라간다. 커다란 방에 책상과 의자, 노트북만 덩그러니 놓여 있다. 그는 자리에 앉아 헤드셋을 끼고, 심호흡을 한다.
17번째 기업, 재경/사업관리 직무 (실무진 면접)
면접관 일동 : 안녕하세요. 하얀 얼굴 씨 맞으시죠? 저희 목소리 잘 들리나요?
그 : 네, 잘 들립니다! 잘 들리십니까?
면접관 일동 : 네, 잘 들립니다. 면접을 시작하겠습니다. 3분 직무소개를 해주세요. 직무소개라 함은, 자기소개, 자기소개에 덧붙여서 직무 지원 이유, 그리고 직무에 기여할 수 있는 방안까지 말씀해주세요.
그 : 알겠습니다. 안녕하십니까! 17번째 기업에 지원한 지원자 하. 얀. 얼. 굴.입니다. 저는 2가지 강점을 통해 저를 간략하게 소개하겠습니다. 첫 번째, 강한 실천력입니다. 저는 호주 워킹... ... 두 번째, 친화력입니다. 저는 취미 생활인 공놀이를 통해... ... 이상 두 가지 강점, 강한 실천력과 친화력을 바탕으로 17번째 기업에 기여하고자 하는 지원자 하. 얀. 얼. 굴.입니다. (직무소개까지 더해야 하므로 자기소개는 짧게 줄인다)
제가 지원한 직무는 재경/사업관리 직무입니다. 해당 직무에 지원한 이유는, 두 가지로 말씀드리겠습니다. 건설에 대한 관심, 그리고 숫자에 대한 관심입니다. 저는 어릴 적부터 손으로 무언가를 만드는 것을 동경했고 이는 건설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졌습니다. 건설업에 종사하며 이에 기여하고 싶습니다. 두 번째, 숫자에 대한 관심입니다. 아무리 건설업에 관심이 있다 해도, 회사가 필요로 하는 인재가 아니면 기여할 수 없습니다. 경영학도로서, 저는 다른 전공생들보다 숫자와 친근하다고 말씀드리겠습니다.
재경/사업관리 직무에 기여할 방안으로는, 저의 경험이 도움이 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저는 코엑스 전시 현장 설치/철거, 호주에서도 주택 철거를 해보았습니다. 실제 현장에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직무에 더욱 빠르게 적응하고 제 몫을 해낼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이상입니다. 감사합니다.
면접관 1 : 네, 잘 들었습니다. 음... 자기소개에서 실천력과 친화력이 있다고 했군요. 그런데, 호주 다녀왔다고 실천력이 있고 공놀이하면 친화력이 있는 건가요? 자세하게 말해주세요.
그 : 네, 자기소개여서 짧게 말씀드렸습니다. 자세하게 말씀드리겠습니다. 저는 호주 워킹홀리데이 시절 영어, 경험, 돈 3가지 측면에서 목표를 설정하고 달성했습니다. 목표액 1만 불을 저축했고, 11가지 이상의 일을 하며 경험과 돈을 모았습니다. 또한 한 장소에서 안주하지 않기 위해, 지속적으로 지역을 옮겨 다녔습니다. 마지막에는 페이스북에서 뜻이 맞는 이들을 찾아 호주 대륙을 세로로 가로지르는 로드 트립도 했습니다. 이러한 경험들을 근거로, 저는 제가 실천력이 있다고 말씀드렸습니다.
두 번째, 친화력입니다. 공놀이를 한다고 모두가 다 친화력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 저는 집 앞 공놀이장에 지속적으로 나가며, 만나는 사람들과 인사하고 안면을 트였습니다. 공놀이장에는 다양한 연령대, 직업군을 가진 사람들이 옵니다. 저는 그러한 다양한 사람들과 팀을 이루고, 또 다양한 사람들로 이루어진 팀을 상대하며 친화력을 길렀다고 말씀드리겠습니다.
면접관 1 : 음... 알겠습니다.
면접관 2 : 이력서를 보니 동아리 회장이라고 되어있는데, 어떤 일을 했나요?
그 : 회비 걷는 것부터 시작해서 회비 관리, 매주 훈련 프로그램 설정, 신규 부원 모집 및 관리, 다른 학과 팀과의 친선 경기 주선, 교내 리그 참가 등의 활동을 했습니다. 아무래도 교내 리그 참가가 가장 큰 행사였습니다.
면접관 2 : 동아리 인원은 몇 명이었나요? 이력서에 자세한 인원수는 적혀 있질 않아서요.
그 : 음... 매주 모임에 참석하는 인원은 20명 정도였습니다. 하지만 휴학생과 군대 간 인원은 빠진 숫자입니다. 휴학생, 복학생, 군 휴학 인원, 그리고 가끔 월 모임에 참석하는 고학번 선배들까지 포함하면... 40명이 넘습니다.
면접관 2 : 40명 정도란 말이죠... 리그에서 4위를 했다고 적었네요. 리그 순위를 높이기 위해 본인이 실행한 것이 있나요?
그 : 네, 교내 리그 1위를 다투는 체대 동아리와 중앙 동아리의 훈련을 참관하고 벤치마킹했습니다. 기존에는 친선 경기 위주로 진행되던 주간 모임을, 체대와 중앙 동아리처럼 기초와 전술 훈련 위주로 바꿔서 진행했습니다. 결과적으로 교내 리그 4위라는 성적을 거둘 수 있었습니다.
면접관 2 : 공놀이 동아리 회장이었던 자신에게 점수를 준다면 몇 점을 줄 건가요?
그 : 음... (잠시 고민한다) 79, 80점을 주겠습니다.
면접관 2 : 왜 79, 80점인가요?
그 : 아, 조금 길게 말씀드려도 되겠습니까?
면접관 2 : 네, 말씀하세요.
그 : 제가 회장을 맡았던 초창기 때문입니다. 초창기에는 제가 추구하는 목표와, 동아리 부원들이 추구하는 목표가 달라서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저는 회장으로서, 리그에서 좋은 결과를 내야 한다고 생각한 반면 부원들은 결과에 상관없이 그냥 운동을 즐기고 싶다고 했습니다. 이 부분에서 괴리가 있어, 회장 초창기에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그는 일부러 이야기를 여기서 끊는다)
그 : (기다렸다는 듯이) 소통을 통해 해결했습니다. 지속적으로 대화를 시도했습니다. 결정적으로 제가 부원들을 설득할 수 있었던 계기는, 리그에서 경쟁팀인 건축과에게 4쿼터 역전패를 당했을 때의 일입니다. 당시 경기가 끝나고, 부원들과 함께 뒷풀이를 위해 술자리를 가졌습니다. 아무래도 경쟁팀에게 역전패를 당한 뒤라, 분위기가 조금 침울한 상태였습니다. 저는 그때 부원들에게 말했습니다. '우리가 이렇게 경기에 지더라도 즐거운 공놀이를 할 수 있다면, 부원들의 의견에 따르겠다. 하지만 지금 이렇게 보듯, 경기에 지면 즐겁지 않지 않느냐. 그렇다면, 결국 잘하는 공놀이를 해야 즐길 수도 있는 것이 아니겠느냐' 라고 말했습니다. 저의 이러한 말에 동의한 부원들이 꽤 많았던 것 같습니다. 이날 이후로, 목표하는 바가 일치해서 더 원활하게 동아리를 이끌 수 있었습니다.
19번째 기업 면접 때 말했던 내용을 그대로 다시 써먹는다. 그는 본인이 생각하기에도, 자신이 스스로의 스토리에 너무 심취한 것은 아닌가 싶을 정도로 나불대고 있다. 물론 이 동아리 스토리는 50% 정도만 사실이며 50%는 과장되어 있다.
면접관 1 : 자기소개서를 보니, 학교 수업에서 베트남 창업 아이템을 발표했다고 되어있는데 자세히 말해보세요.
그 : 네, 해당 수업은 베트남의 역사/언어/문화에 대해 공부한 뒤 창업 아이템을 발표하는 수업이었습니다. 최근 베트남에 불고 있는 축구와 한류 열풍, 그리고 K리그에 동남아 선수 쿼터제가 시행되는 상황을 바탕으로 한국 축구 여행 패키지 상품을 제안했습니다. FC서울에 베트남 축구 선수가 있는데, 해당 선수를 만날 수 있는 일정부터 시작해서 한국의 축구 경기장 및 축구 명소들을 경험할 수 있도록 패키지여행 코스를 설정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비행기 값, 숙박, 가이드 인건비, 관광버스 대절비 등을 조사한 뒤 이익을 붙여 패키지여행 상품 가격을 설정했습니다.
면접관 1 : ...(말이 없다)
베트남 창업 아이템, 학교 수업 관련 자기소개서 질문에 달리 쓸 것이 없어서 그냥 복사-붙여넣기한 답변이었다. 당연히 직무와의 개연성도 부족하고 내용 자체도 부실하다. 성적은 A+를 받긴 했지만, 창업 아이템 구상은 전형적인 대학생들의 조별 과제 수준이었다.
스스로도 별로 비중을 두지 않은 자기소개 답변이었으므로, 그는 이 이야기에 대해 답변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 그런데 면접관이 하필 이 자기소개서에 대해 질문을 한 것이다. 그는 가능한 포장해서 답변을 했지만, 너무 사실만 강조했다. 사실에만 치중에서, 답변이 매력적이지 않고 심심해진 데다 직무 관련 어필도 없다. 그가 지원한 직무는 재경/사업관리 직무다. 차라리, 마지막에 짧게 언급한 패키지여행 상품의 가격과 원가에 대해 조금 더 살을 붙여 이야기하는 답변이 더 적절했을 것이란 아쉬움이 남는다.
면접관 1 : 호주에서 목표를 이루었다고 말했는데, 수치를 말해보세요. (숫자를 요구하는 질문이다)
그 : 네, 아무래도 돈에 관련해 말씀드리는 것이 가장 적절할 것 같습니다. 워킹홀리데이를 가는 인원들은 1만 불을 목표로 잡곤 합니다. 환율을 엄밀히 말씀드리면 800만 원 정도이지만, 간단히 1000만 원으로 생각하고 상징적인 숫자로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저도 1만 불을 목표로 설정했습니다. 해당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주 단위로 목표액을 쪼갰습니다. 1년은 52주이지 않습니까? 호주에 도착하자마자 일자리를 구할 수는 없을 것이라 생각해, 적응 기간을 2주로 잡고 남은 50주를 돈 버는 기간으로 정했습니다. 1만 불을 50으로 나누면 200불이 나옵니다. 즉, 쓸 것을 다 쓰고도 1주일에 200불씩 꾸준히 저축을 해야 1만 불을 저축할 수 있습니다. 첫 2주 내에 일자리를 잡고 돈을 모으면서, 저는 꼼꼼하게 가계부를 써서 현재까지 저축한 금액과 앞으로의 남은 목표 금액을 계속해서 계산했습니다.
면접관 2 : 다른 워킹홀리데이 가는 인원들과, 본인의 차이점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그 : 음... 제가 더 많이 움직였다고 생각합니다. 보통 워킹홀리데이를 가는 인원들은, 해외에서 친구도 사귀고 정착하려는 생각들을 합니다. 그래서 한 지역에 지속적으로 머물면서, 한 가지 일을 하고 그 지역에서 친구를 사귀는 양상을 많이 보입니다. 저는, 한 지역에 머물기보다는 호주 전역을 돌아다니며 더 다양한 경험을 쌓는 것이 더 가치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그래서, 보통의 워킹홀리데이 인원들이 한 지역에 머문다면, 저는 더 많이 움직이고 다양한 경험을 많이 했다고 말씀드리겠습니다.
면접관 1 : 호주에서 일이나 영어 관련해서, 목표 시간을 설정했었습니까? 그러니까, 일주일에 일은 몇 시간 정도 하고, 영어 공부는 몇 시간 정도 하겠다 하는 식으로요.
그 : 저의 경우, 외국인들과 일하며 영어를 쓰는 일을 했기 때문에 일과 영어가 딱 구분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어느 정도 기준은 있었습니다. 아무래도 매주 200불 저축이라는 목표가 있었기 때문에, 생활비를 전부 쓰고 나서도 200불은 남을 수 있도록 일을 해야 했습니다. 호주는 시급이 높아, 일주일에 40시간 정도면 충분했던 것 같습니다. (즉석에서 만들어낸 시간이다) 그렇게 일하고 난 뒤, 저녁 시간에는 항상 영어 회화 모임을 참석하며 영어 공부를 했습니다.
면접관 1 : (또 말이 없다. 면접관 1은 자신의 질문에 대한 답변을 들을 때마다 말이 없는 편이다)
면접관 2 : 호주 워킹홀리데이 때의 경험은 점수를 준다면 몇 점을 줄 건가요?
그 : 음... 95점을 주겠습니다.
면접관 2 : 왜 95점인가요?
그 : 아까 답변드린 것처럼, 보통의 워킹홀리데이 인원들은 한 곳에 정착해서 친구를 사귀고 오랫동안 머물곤 합니다. 저는 이곳저곳을 돌아다니고 많은 일을 경험하느라, 한 곳에 오래 머물지 못하고 깊은 친구를 사귀지 못했습니다. 물론 후회는 없습니다. 덕분에 많은 경험을 했고, 정말 많이 성장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한 곳에 오래 머물며 깊은 사이의 친구를 사귀어보는 것도 나름 괜찮았겠다고 생각하여, 5점을 깎았습니다.
면접관 2 : 하얀 얼굴 씨, 목표를 도중에 수정해본 경험이 있나요?
그 : 네, 호주 워킹홀리데이 당시, 1만 불 저축이라는 목표를 달성하고 난 뒤 목표를 수정했습니다. 이전까지는 돈을 모으는 데 집중했다면, 목표액 달성 이후에는 돈보다는 호주라는 나라를 느껴보고자 했습니다. 돈을 모을 때는 치열하게 일을 하며 생활했다면, 호주를 즐기기 시작하면서 맛있는 것도 먹어보고 이곳저곳 돈을 들여 여행을 가기도 했습니다. 치열하게 돈을 모았던 때와는 또다른 몰입감과 즐거움을 겪었던 경험이었습니다.
면접관 2 : 네, 마지막으로 할 말씀 해주시고, 면접 마치겠습니다.
그 : 네, 먼저 이렇게 면접 기회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리고, 면접관님들께서 저의 워킹홀리데이와 동아리 시절에 대해 질문하시는 것을 보고 정말 저에게 관심이 있으시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다시 한 번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부디 면접에 합격해서, 17번째 기업이 그리는 미래에 함께하고 싶습니다. 감사합니다.
면접관 : 네, 이상으로 면접 마치겠습니다. 이어질 면접에서도 좋은 결과 있기를 바랍니다.
그 : 감사합니다!
19번째 기업 면접 때와 마찬가지로, 그의 발화량이 압도적으로 많아진다. 그는, 면접관들이 워킹홀리데이와 동아리 회장에 대해 물어봐주는 것이 고마우면서도 편하다. 그에게는 자랑스러운 추억이자 기억이며, 예상 질문들에 대한 대비도 잘 해두었다. 특히나 워킹홀리데이 경험은 살을 붙이지 않은 100% 사실 기반 경험이다.
다만, 그도 속으로는 걸리는 부분이 있다. 그의 워킹홀리데이 경험과, 동아리 회장 경험이 과연 재경/사업관리 직무에 어필이 될 것이냐는 점이다. 해당 경험들에 대한 면접관들의 질문은 모두 무리 없이 방어했다. 사실 관계가 틀어진 것도 없고, 그 나름대로는 꽤나 깊은 사색을 통해 나온 답변들이다. 하지만 면접에서는 인성뿐만이 아니라 직무 관련 연관성도 본다. 그가 자랑스러워하는 답변들이 재경/사업관리 면접관들에게 매력적으로 보였을지가 확실치 않다.
어찌 되었든 실무진 면접은 이미 끝났다. 대기실로 돌아가자, 마지막 차례인 지원자가 실무진 면접을 위해 대기실을 나간다. 남은 것은 임원 면접이다. 실무진보다는 임원의 결정권이 훨씬 더 강하지 않나. 임원 면접 때에 강렬한 인상을 남긴다면, 실무진이 반대하더라도 임원이 찍어누를 것이다. 아니, 실무진이 그를 떨어트릴 지의 여부도 확실치 않다. 그는 긍정적으로 생각하고자 한다. 자신의 자랑스러운 경험은 있는 그대로 공개했다. 실무진 면접관들도 그를 알아봐 주겠지. 남은 임원 면접에 집중해야 한다.
그는 다시 면접 준비 자료에 코를 박고 눈으로 훑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