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 임원 면접
17번째 기업의 면접은 정말 예측불가다. 실무진 면접은 일대다로 진행했는데, 임원 면접은 또 다대다로 진행한다. 실무진 면접이 시작되기 전, 대기실에 있던 3명이 한 조가 되어 임원 면접을 진행한다고 한다. 그는 실무진 면접 두 번째 순서였다. 그를 포함한 대기실의 2명은, 남은 한 명의 실무진 면접이 끝날 때까지 약 30분 정도 대기한다.
얼마 뒤, 실무진 면접을 끝낸 면접자가 대기실로 들어선다. 인사팀 직원은 3명의 이름을 부른다. 3명이 한 조가 되어 함께 임원 면접을 실시할 것이며, 임원 면접도 노트북을 통해 화상을 진행한다. 인사팀 직원은 그를 포함한 3명의 지원자를, 임원 면접을 위한 노트북 방으로 안내한다.
그를 포함한 면접자 3명은 한 줄로 서서 인사팀 직원을 따라간다. 임원 면접을 위한 노트북 방은 실무진 면접을 봤던 방이 아닌 다른 방이다. 실무진 면접 방에는 책상 한대에 노트북 한 대만 세팅되어 있었고, 임원 면접 방에는 책상 세 대에 노트북 세 대가 세팅되어 있다. 인사팀 직원은, 호명하는 순서대로 왼쪽부터 자리를 채워 앉으라고 한다. 면접자 1, 그, 면접자 3 순이다. 그는 중앙 자리에 앉는다.
세 명의 면접자가 자리에 앉아, 헤드셋을 낀다. 모두들 노트북에 시선을 고정하고 있다. 그는 고개를 돌려 양 옆의 면접자들을 바라보며, 웃음이 나오려는 것을 참는다. 이게 무슨 상황인가, 콜센터 직원이 된 것 같기도 하다. 함께 면접에 참석하면서도, 서로의 존재가 헤드셋으로 차단된 상태다. 그런데 거리는 가깝기 때문에 다른 면접자가 말할 때 옆 면접자들의 마이크에도 소리가 들어가 가끔 공명이 일어난다. 다른 면접자의 말이 너무 크게 들릴 때가 있는 것이다. 그는 깜짝 놀라 헤드셋 볼륨을 조절한다. 웃기긴 하지만, 17번째 기업에서 이런 식으로 면접을 진행하는 이유가 있겠거니. 이것도 다 좋은 경험이겠거니 생각하는 그다.
가만히 앉아있으니, 곧 노트북 화면이 켜지고 면접이 시작된다.
17번째 기업, 재경/사업관리 직무 (임원 면접)
어두운 피부, 약간 얽은 얼굴에 머리가 곱슬인 면접자 1
그
흰 피부, 마른 체형의 면접자 3
테이블 좌측 중간자리, 흰 피부, 동그란 체구에 동그란 안경을 끼고 머리가 회색인 면접관 2
테이블 우측 뒷자리, 인상착의가 기억나지 않는 면접관 3
면접관 2는 면접관 1과는 정반대로, 둥근 체구에 둥근 안경을 끼고 피부도 희다. 그는 면접관 2가 재무 담당 임원일 것이라 생각한다.
면접관 1 : 네, 안녕하세요. (면접관 1은 목소리가 꽤 낮고 중후하다)
면접자 일동 : 안녕하십니까! (이때 그는 헤드셋의 소리가 너무 커서 흠칫 놀란다)
면접관 1 : 네, 반갑습니다. 우선, 면접관 소개를 먼저 하죠. 저는 17번째 기업 경영관리팀장을 맡고 있는 ㄱㄱㄱ이라고 합니다. 여기 계신 분은, 재무팀장을 맡고 계신 ㄴㄴㄴ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이 분은... ... (세 명 모두 자세한 직함과 이름은 기억나지 않는다)
면접자 일동 : 아, 네, 안녕하십니까!
면접관 1 : 네, 다들 긴장 푸시고, 편안하게 답변하시면 됩니다. 점심들은 먹었나요?
면접자 1, 3 : 네, 먹었습니다!
그 : 아직 안 먹었습니다.
면접관 1 : 아니, 지금 시간이 몇 신데 아직 점심을 안 먹었나?
그 : 아, 면접 때 긴장될까 봐, 그냥 안 먹었습니다.
면접관 1 : 허허... 빨리 면접 끝내고 먹어야겠군요.
면접관 1 : 네, 그래요. 음... 자기소개를 시키면 다들 준비해온 것을 하니까. 준비해온 자기소개 말고. 본인의 가치관, 그리고 추구하는 것에 대해 말해보세요. 준비해온 것 말고, 자신이 생각한 것을 말해주세요.
면접자 1 : 아, 네, 안녕하십니까! 17번째 기업에 지원한 면접자 1입니다. 저의 좌우명은, '밥값 하는 사람이 되자' 입니다! 저는 어릴 적부터... (면접자 1은 상당히 긴장한 것으로 보인다)
그 : 네, 제가 생각하는 가치관은, 행복보다는 목표를 추구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흔히들 행복을 추구하려고 하지만, 저는 그 행복이 목표를 이루어가는 과정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목표를 향해 나아갈 때는 힘들고 지치지만, 나중에 그때를 뒤돌아볼 때마다 행복했다는 것을 느끼곤 합니다. 그래서 저는, 인생에서 추구해야 할 것은 행복이 아니라 목표라고 생각하고, 목표에 도전합니다.
면접자 3 : 안녕하십니까. 저는...... (면접자 3의 대답은 자세히 기억나지 않는다)
면접관 1 : 잘 들었습니다. 이번에는, 상상력을 발휘해서, 건설업계가 어떻게 나아갈 것인지 방향을 말해보세요. 어떤 것이든 좋습니다. 본인의 상상력을 맘껏 펼쳐서 답변하세요.
면접자 1 : 네, 최근 환경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습니다! 이로 인해, 건설 자재 관련해서도 친환경 자재를 쓰고 폐기물을 재활용하는 방식이 유행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17번째 기업도... ...
그 : 저는, 공간에 대한 정의가 바뀌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지금까지 공간은, 거주하는 공간이자 소유하는 공간이었습니다. 쓰리베이 아파트를 사서, 거주하면서 살고 가격이 오르면 팔고 새로운 집으로 옮기는 식이었습니다. 하지만 최근, 집이 아니어도 거주를 할 수 있고, 꼭 집을 사지 않더라도 임대하는 방식이 유행하고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카박 등이 있습니다. 특히 자동차의 경우, 자율주행이 상용화되면 핸들과 운전석이 필요 없어질 것이므로 차량 내부 공간을 더 다양하게 활용할 수 있습니다. 교통수단을 타고 이동하는 와중에, 운전이 아닌 다른 활동을 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자동차 내부 공간도 건설업계가 진출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조금 무리한 생각이지만, 영화 속 우주여행도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우주여행을 할 때는 많은 시간을 우주선 안에서 보내게 됩니다. SF 영화를 보면 우주선 내부의 시설들이 호텔과 같이 잘 구성되어 있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우주선은 교통수단이긴 하지만, 이러한 우주선의 내부 공간을 구성하는 것은 자동차 업계보다는 건설업계가 더 우위가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공간을 구성하는 데 더 많은 노하우를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는, 건설업계가 앞으로 교통수단 내부 공간, 나아가 우주선까지도 진출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 나름대로 상상력을 짜낸 답변이다)
면접자 3 : 네, 저는 안도 다다오의 책을 보고는 크게 감명을 받았습니다. ㄱㄱㄱ이라는, 안도 다다오 건축가가 사막에 세운 건축물입니다. 식물의 모양과 같아 건축적인 아름다움이 굉장히 뛰어난 건축물입니다. 저는 앞으로의 건축업계가, 이런 식으로 건축적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방향으로 바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17번째 기업의 아파트 또한 건축적 아름다움이 뛰어납니다. ...
그는 면접자 3의 대답에 조금 놀란다. 그도 면접을 준비하면서, 건축가 안도 다다오의 자서전을 읽었다. 면접자 3은 말주변이 좋은 편은 아니지만, 그래도 건축에 대한 관심은 진심인 것 같다. 그런데 17번째 기업의 아파트를 안도 다다오의 건축물에 빗대다니, 그는 면접자 3이 너무 입에 발린 말을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면접관 1 : 알겠습니다. 최근 3개월 이내 건설업계 관련 기사나 사건 중 관심 있게 본 것에 대해 말해보세요.
면접자 1 : 네! 저는 17번째 기업에서, 친환경 공법을 개발했다는 기사를 인상 깊게 보았습니다! 해당 공법은... ...
그 : 네, 저는 얼마 전 정부가 제시한, 수도권에 83만 가구를 공급하겠다는 대책을 눈여겨 보았습니다. 현재 부동산 가격이 올라있는 상태에서, 공급을 늘려 가격을 진정시키겠다는 취지에는 동의합니다. 하지만 후속 기사들을 보았을 때, 해당 대책이 83만 가구를 공급하겠다는 것이 아니라 부지를 83만 가구 공급하겠다는 것으로 바뀌었다고 합니다. 전문가들은 부지 선정과 주택 공급 사이의 시간이 얼마나 걸릴지 알 수 없다는 의견들이 많습니다. 이러한 기사들을 보았을 때, 정부가 제시한 대책이 처음처럼 실효성이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긴 합니다.
면접자 3 : 아... 저는... 죄송합니다. 최근 뉴스를 숙지하지 못했습니다.
면접관 1 : 아 그렇군요. 괜찮습니다.
면접관 2 : 면접자 1 씨, 친환경에 관심이 많은 것 같습니다. 우리 회사에서 새로 개발한 친환경 공법에 대해 이야기해주었는데... ...
면접자 1 : 네, 해당 공법은... ...
면접관 2 : 하얀 얼굴 씨, 최근 정부에서 제시한 2/4대책을 이야기하는 것 같습니다. 2/4 대책 관련해서, 17번째 기업에게 위기와 기회는 무엇인가요?
그 : (조금 당황한다) 아... 아무래도 새로운 주택과 재개발을 하겠다는 정부의 의지이니, 17번째 기업으로서도 새로운 수주 가능성이 생길 것이라 생각합니다. 17번째 기업은, 기존 아파트 브랜드에 대한 소비자들의 인지도가 높고 평도 좋습니다. 또한 최근, 17번째 기업은 프리미엄 브랜드인 '더 H'도 출시하지 않았습니까? 이 부분에서 17번째 기업의 기회가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위기는, 17번째 기업이 대기업이라는 점입니다. 정부 주도의 정책이기 때문에, 분명 형평성 관련해서 대기업보다는 중소기업에 더 우선권을 줄 가능성이 있습니다. 또한 17번째 기업의 아파트는 가격이 높은 편이기 때문에, 이러한 점들이 17번째 기업의 위기라고 생각합니다.
면접관 2 : 그... 잠시만... '더 H'가 아니고, '디 H'입니다. 아, 애착이 가는 브랜드라서, 굳이 정정했습니다.
그 : 아 네, 디 H, 말이 잘못 나왔습니다.
그는 새로운 아파트의 브랜드 이름이, 디 H라는 것을 인지하고 있었다. 하지만 너무 긴장한 나머지, 평상시처럼 입에 붙는 발음인 더 H라고 말한 것이다. 임원 면접관이 이를 지적하긴 했는데, 그의 면접 결과에 중대한 영향을 끼쳤는지는 확실치 않다.
면접자 3은 뉴스와 기사 관련 답변을 못했기 때문에, 면접관 2는 질문을 하지 않고 넘어간다.
면접관 1 : 지금 면접자분들은, 재경팀 사업관리 직무에 지원한 분들입니다. 재경팀 사업관리 직무에 있어서, 직무 관련 자신의 강점을 이야기해보세요. 역량도 좋고, 성격적 강점도 괜찮습니다.
면접자 1 : 네! 저는 책임감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처음 말씀드린 것처럼, 저의 좌우명은 '밥값 하는 사람이 되자' 입니다! 어릴 적부터 저는 책임감을 길러... ...
그 : 네, 저는 두 가지를 말씀드리겠습니다. 건설에 대한 관심, 그리고 숫자에 대한 관심입니다. 저는 항상 손으로 무언가를 직접 만들어내는 것을 동경했고, 그래서 건설을 동경했습니다. 학창 시절 전시 부스 설치 및 철거 아르바이트를 많이 해보았고, 호주에서도 주택 철거를 해보았습니다. 이러한 건설에 대한 경험과 이해는 직무를 수행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두 번째, 숫자에 대한 관심입니다. 경영학도를 회사에서 선호하는 이유는, 숫자와 친근하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라 생각합니다. 저는 숫자와 친근해지기 위해, 학교에서 전공과목을 많이 수강했습니다. 이상, 건설에 대한 관심과 숫자에 대한 관심이, 재경 사업관리 직무에 도움이 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면접자 3 : 네, 저는 ... (면접자 3의 대답은 자세히 기억나지 않는다)
직무 관련 질문이 끝나자, 면접관들은 면접자들에게 개별적으로 궁금한 것을 물어보기 시작한다. 면접 시간도 길고 긴장한 탓인지, 그는 다른 면접자들의 문답은 상세히 기억나지 않는다.
면접관 2 : 하얀 얼굴 씨, 공놀이를 한 것 같은데, 포지션이 어떻게 되나요?
그 : 집 앞 코트에서 할 때는, 센터를 맡습니다. 하지만 대학교에서는, 아무래도 큰 친구들에게 신장이 밀리다 보니, 포워드를 맡을 때가 많습니다.
면접관 1 : 운동을 하다가, 다른 사람의 기분을 상하게 했을 때는 어떻게 대처하나?
그 : 음... 맞습니다. 몸을 부딪히다 보면, 가끔 갈등 상황이 생길 때가 있습니다. 또한, 제가 말한 대로 따라오지 않는 인원들도 있습니다. 그럴 때 저는, 제가 몸을 더 움직여서, 팀에 도움이 된다는 것을 몸으로 보여줍니다. 그러면 다른 인원들도, 그런 제 모습을 보며 조금씩 저의 말을 따라주곤 합니다.
면접관 1 : 본인이 그렇게 몸으로 보여준다고 해도, 따라주지 않는 팀원들이 있을 겁니다. 그런 식으로 기분이 상한 상태로 끝난 적은 없었습니까? 만일 그런 사람이 있으면, 게임이 끝나고 나서 어떻게 대처합니까?
그 : 음... 기분이 상한 상태로 끝난 적은 별로 없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분위기가 조금 공격적으로 끝난 경우에는 상대편이더라도 경기 후에 제가 먼저 다가가, 좋은 경기였다는 식으로 이야기합니다. 그렇게 먼저 다가가서 이야기하면, 모두들 웃으면서 받아주곤 했습니다.
면접관 1 : (말없이 무언가를 적는다)
돌이켜보면, 그는 이때 억지로라도 말을 만들어서 이야기하는 편이 나았던 것 같다. 갈등 상황을 한 번도 겪어보지 않았다는 식으로 이야기했기 때문이다. 그는 집 앞 공놀이 코트만을 생각하고 말했는데, 대학교 공놀이 동아리에서는 이미 부원들과 그런 갈등이 있었고 대화를 통해 풀어낸 경험이 있다. 실무진 면접 때 혼자 심취해서 이야기한, 그 경험을 아예 생각조차 안 한 것이다. 면접관 1은 원했던 답을 듣지 못한 것 같다. 17번째 기업은 건설사이니, 아무리 싸웠어도 운동 끝나고 술 한잔 걸치면 다들 풀린다는 식의 답변을 원했을지도 모른다.
면접관 1 : 하얀 얼굴 지원자, 목표를 중시한다고 했는데, 업무 측면에서 목표 달성 계획이 있습니까?
그 : 아... 1년 차에는 현업 선배들께 물어보고 배우며 적응에 힘쓰고 싶습니다. 3년 차까지는, 현업 선배들께 배워서 혼자 업무가 가능한 수준으로 성장하고 싶습니다. 3년 차부터는, 원가 구조를 파악해서 원가 절감에 기여하고 싶습니다. (전혀 준비하지 못한 질문, 대학생 수준을 벗어나지 못한 답변이다)
면접관 1 : (말없이 무언가를 적는다)
면접관 1 : 네, 어느덧 시간이 많이 됐네요.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나, 물어보고 싶은 것 있으면 물어보시고 끝내겠습니다. 이번에는 면접자 3부터 말씀하세요.
면접자 3 : 네, 저는... ...
그 : (그는 임원 면접을 잘 본 것 같지 않다. 고민하다가, 회심의 한 방을 날린다) 네, 우선 오늘 면접 기회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17번째 기업 면접 준비를 하면서, 저에 대해 다시 생각해볼 수 있는 좋은 기회였습니다. 그리고, 면접관님들께 질문드리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면접 준비를 하면서 17번째 기업 창업주의 자서전을 읽었습니다. 굴하지 않는 투지와 노력을 강조한 것이 너무나도 인상 깊었습니다. 혹시 17번째 기업 내부에서도, 창업주의 정신에 아직 동의하시는지 궁금합니다.
면접관 일동 : (당돌하다는 것인지 어이없다는 것인지) 허허...
면접관 1 : 뭐, 그분이야 너무 대단하신 분 아닙니까. 다들 알고 있는 사실이죠. 회사 내부에서도 아직까지 존경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 : 아 네, 감사합니다!
면접자 1 : 네, 저도 먼저 감사의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
그는 마지막 역전을 노리고 한 질문이었는데, 질문이 조금 이상하다. 면접관들 당신도 창업주 정신에 동의하느냐. 그는 자서전을 읽고 감명을 받았는데, 지금 17번째 회사에서도 똑같이 생각하느냐는 식이다. 삐딱하게 본다면 사상 검증 같은 질문으로 보일 수도 있다. 어떻게든 붙고자 절박하게 한 질문이, 오히려 역효과를 낸 것은 아닌가 싶다.
면접관 1 : 네, 이상으로 면접을 마치겠습니다. 일찍부터 와서, 긴 시간 동안 수고 많았습니다. 조심해서 들어들 가시고, (그를 바라보며) 빨리 점심도 드시고.
면접자 일동 : 감사합니다!
그와 면접자들이 대기실로 돌아가자, 인사팀 직원은 면접비 봉투를 건넨다. 3만 원이다. 그와 면접자들은 짐을 챙겨, 1층으로 올라가 건물 밖으로 나간다. 다들 연이은 2번의 면접으로 인해 약간 지친 듯하다. 면접은 대화일 뿐이며, 17번째 기업의 면접은 대면 면접도 아닌 화상 면접이었다. 하지만 17번째 기업은 한국은 물론 세계가 알아주는 대기업이다. 너나 할 것 없이 붙고 싶은 마음은 간절할 것이며, 간절할수록 더 긴장하고 면접에 더 집중하게 된다. 집중하고 긴장할수록, 정신적으로 소모되는 에너지는 크다.
다른 두 면접자는 건물을 나오자마자 사라진다. 그는 17번째 기업 사옥 앞에 서서, 점심도 못 먹었으니 무언가를 먹고 갈까 생각한다. 처음 사옥에 들어선 시간은 점심시간 즈음이었지만, 연이은 2번의 면접이 끝나자 어느덧 저녁 시간이 다 되었다. 늦은 점심을 먹겠다고 하기엔 애매한 시간이다.
지하철을 타고 집으로 가는 길, 피곤한 정신을 붙잡고 면접을 복기해본다. 실무진 면접과 임원 면접, 그는 아주 큰 실수를 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제대로 어필을 하지는 못한 것 같다. 실무진 면접도 애매했는데, 임원 면접은 실무진 면접보다도 더 불만족스럽다.
한 가지 위안은, 다른 지원자들이 그보다 면접을 더 잘 봤다고는 생각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면접자 1은 임원 면접 내내 얼어있었고, 면접자 3은 질문 하나를 통째로 넘겨버렸다. 인사팀 직원에게서 얻은 정보, 채용 전형이 진행되는 분위기를 보았을 때 17번째 기업은 채용을 약간 서두르는 듯하다. 그를 포함한 지금 3명은 전부 서류 추가 합격자이지 않나.
그는, 자신이 면접을 잘 보진 않았지만 다른 지원자들보다는 그나마 조금 낫다고 생각한다. 부디 자신을 택해주기를, 붙여주기만 한다면 무엇이든 할 것 같은 그다. 서류 추가 합격자 중에 급하게 뽑는 것이니, 조금은 허술하게 넘어가 주길 바란다. 물론 17번째 기업이 그렇게 허술하게 넘어가 줄지, 그의 평가와 예상이 맞는 것일지는 두고 볼 일이었다.
17번째 기업 면접은 이것으로 끝났다. 피곤하긴 하지만, 이렇게 하루 만에 화끈하게 끝내버리는 것도 나름 괜찮다고 생각하는 그다. 큰 고비는 넘긴 셈이지만, 아직 후속 면접들이 남아있다. 18번째 기업 최종 면접, 그리고 갑작스레 연락받은 20번째 기업 면접이다. 그는 다시 면접 준비에 돌입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