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쁘고 치열했던 한 달여가 끝났다. 4개 기업의 채용 전형을 동시에 진행하며, 일주일에 한 번 꼴로 면접을 보느라 여러 밤을 샜다. 계속된 면접 준비와 면접으로 인해 그는 피로가 쌓인 상태다. 중요한 면접이 모두 끝난 지금, 그는 드디어 마음 놓고 편히 쉴 수 있다.
그는 한 달여의 기간 동안 치열하게 집중했던 자신을 위해, 무언가 보상을 해줘야겠다고 생각한다. 면접을 준비할 때는, 온 신경이 면접에만 몰두하기 때문에 쉬더라도 제대로 쉬지 못한다. 면접을 준비하는 시늉이라도 해야 마음이 편하다. 오랜 취업준비로 인한 것인지, 그는 면접 준비에 대한 강박이 생겨났다. 면접 일정이 잡히고 나면, 면접 준비를 하던 안 하던 어쨌든 피곤하다.
그가 신경 써서 준비했던 모든 면접이 끝났고, 이제는 결과를 기다리기만 하면 된다. 그는 홀가분한 마음으로, 소소한 휴가를 즐기고자 한다. 그는 먹는 것을 좋아한다. 그의 소소한 휴가는 '햄버거 먹기'다.
햄버거 먹기. 물론 면접 준비를 하면서도 먹을 수 있다. 다만 마음이 불편하다. 다가올 면접에 대한 불안과 긴장, 면접 준비에 대한 강박 때문이다. 그는 면접이 잡히면 어디 놀러 가지도 않았고, 먹고 싶은 것이 있어도 되도록 면접이 끝날 때까지 참았다. 나름대로의 고행이다. 고행이 끝나야 마음이 편하다. 이렇게 열심히 했으니, 햄버거를 먹을 만한 자격이 생긴 것 같다. 그는 '맘스터치'를 방문한다.
맘스터치는 그의 아지트인 독서실에서 약간 떨어진 위치다. 자전거를 타고 맘스터치에 도착해서, 햄버거를 주문한다. 그는 건강에 신경을 쓰지만, 일정한 주기마다 햄버거와 피자의 유혹에 넘어가는 편이다. 개인적으로 그는 피자를 더 선호하지만, 피자는 햄버거보다 가격이 높고 양도 더 많다. 누군가와 같이 먹을 것도 아니고, 빨리 먹고 다시 독서실에 틀어박혀야 하니 그는 햄버거를 선택한다.
그는 호주 워킹홀리데이 시절에도 햄버거를 자주 먹었다. 식사 대용으로 먹기도 했거니와, 스트레스가 심할 때 많이 먹었다. 소고기 공장과 청소 일을 병행하며 육체와 정신의 피로가 극에 달했을 때는, 가끔씩 햄버거 4개짜리 패밀리 번들을 시켜 홀로 차 안에서 폭식하기도 했다. 그가 호주에서 가장 많이 먹었던 햄버거 브랜드는 '헝그리 잭스(버거킹)'이다.
버거킹은 전세계에 포진한 대형 프랜차이즈이므로, 한국에도 많다. 워킹홀리데이 비자 만료 후, 한국에 돌아온 그는 버거킹을 보자 반가움을 느꼈다. 호주에서 가장 많이 애용한 프랜차이즈이자, 그가 가장 피로할 때 스트레스를 해소했던 배출구였기에. 그래서 그는 취업준비생 초창기에는 가끔씩 버거킹을 이용했다.
하지만 한국의 버거킹은 가격이 비싸다. 호주도 싼 편은 아니지만, 호주는 물가 자체가 높아서 거기서 거기인 것처럼 느껴진다. 한국의 경우는 다르다. 맥도날드, 롯데리아 등의 햄버거 프랜차이즈와 비교했을 때 버거킹은 상당히 비싼 편이다. 호주에서는 여러 일을 하며 돈을 벌기라도 했지, 한국에서는 알바도 하지 않는 영락없는 백수다. 그는 버거킹을 대체할 다른 햄버거 프랜차이즈를 찾는다.
맘스터치는, 그가 그렇게 찾아낸 최적의 대체재다. 양이 푸짐한데, 가격도 합리적이다. 이름 그대로 엄마의 손길 같다. 그는 애용하는 프랜차이즈를 버거킹에서 맘스터치로 바꾼다. 맘스터치를 갈 때마다, 그는 호주에 있을 때가 생각난다.
호주에서는 헝그리 잭스를 갔고 한국에서는 맘스터치를 가는구나.
피식 웃음이 난다. 웃기기도 하고, 나이만 찼지 아직도 햄버거에서 벗어나지 못했나 하는 생각이 들어서다.
사실 그와 맘스터치의 인연은 꽤 오래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그가 맘스터치라는 햄버거를 처음으로 인식하고 먹었던 때는 군대 시절이다. 군 장병들은(간부는 예외다) 부대 외부 출입이 통제되며, 당연히 외부 음식과의 접촉도 통제된다. 장병들은 복무 기간 동안 취사장에서 취사병들이 조리한 음식만 먹을 수 있으며, 그나마 가끔씩 볼 수 있는 외부 음식은 보급품 컵라면 정도다. 그렇기에 군 장병들은 PX 불량식품에 월급을 모조리 탕진하고, 휴가 나올 때마다 배달 음식에 미친다. 음식은 말할 것도 없고, 군 장병들이 민간 사기업들의 이른바 '싸제' 제품에 열광하는 이유가 바로 이 때문이다.
그는 일반적인 사병으로 군 복무를 했다. 그는 입맛이 무던한 편이므로, 취사장의 음식도 나름 만족했었다. 그런데, 그의 동기 중 군부대 바깥과 교류할 수 있는 주특기를 가진 동기가 있었다. 어느 정도 눈치껏 행동할 수 있는 계급(상병)이 되자, 해당 동기는 모종의 경로로 바깥 음식을 조금씩 들여오기 시작했다.
동기는 공범을 만들기 위해서인지, 그를 포함한 몇몇 동기들에게 바깥 음식을 나눠주기 시작한다. 취사장 음식에 나름 만족하고 있던 그는, 오랜만의 바깥 음식이 반갑긴 했지만 그다지 큰 감흥이 생기진 않았다. 하지만 단 하나 예외가 있었으니, 바로 맘스터치 '싸이버거'였다.
동기가 몰래 들여온 음식들 중, 한 입 먹었을 때 그의 눈이 커지게 한 유일한 음식이 바로 싸이버거다. 이때부터 그는 맘스터치와 싸이버거를 인식했고, 동기의 열렬한 팬이자 공범이 됬다. 제대 후 학교에 복학했을 때, 무슨 우연인지 그가 다니는 대학교에 맘스터치가 입점했다. 군대 때 만큼은 아니지만, 그는 가끔 학교 맘스터치에서 싸이버거를 먹곤 했다.
그는 맘스터치에서 항상 싸이버거만 먹었다. 다른 버거를 시도해보기도 했는데, 맛있긴 하나 싸이버거를 대체할 정도는 아니라고 판단했다. 맛이 특이한 대신 양이 적거나, 양은 많되 싸이버거보다 맛이 별로인 식이다. 싸이버거를 오랜 기간 동안 먹었지만, 그는 싸이버거가 무슨 의미인지 잘 몰랐다. 정확히는 '싸이'가 무슨 뜻인지 몰랐다. 신세대들이 붙이는 힙한 이름처럼, 의미는 없지만 부르기 편한 이름인가? psychological의 앞 세 글자 psy만 따와서, 무언가 정신적으로 만족을 주는 맛이라는 이름인가? 가수 싸이와 이름이 같은데, 뭔가 연관이 있는 이름인가? 의문이 들다가도 싸이버거를 한 입 베어 무는 순간 의문은 사라진다.
여느 때처럼, 그는 오랜만에 대학교 맘스터치를 방문해서 싸이버거를 시켰다. 그날따라 메뉴판의 글자가 잘 보였는데, 그는 싸이버거의 영문 이름을 보고 깨달음을 얻는다. 싸이버거는, 영어로 Thigh Burger라고 쓰여 있다. thigh, 넓적다리라는 의미의 영어 단어다. th이므로, 발음은 싸이보다는 [ㅅ따이]에 가깝다. Thigh Burger, 그는 영어 이름을 보고서야 싸이 버거의 의미를 깨닫는다. 닭의 넓적다리 살을 튀긴 패티를 사용하는 햄버거라는 뜻이구나. 실제로 싸이버거는 두터운 닭고기 패티로 명성이 자자하다. 맘스터치를 애용한 지 5년이 지나서야 싸이버거의 의미를 깨닫는 그다. 그는 이런 식의 그다지 쓸모는 없더라도 남들은 잘 모르거나, 자신이 의미 부여할 수 있는 정보는 좋아하는 편이다.
그랬던 그가, 학교를 졸업하고 취업준비생이 되어 맘스터치를 다시 찾는다. 연어가 집으로 돌아오듯, 그는 돌고돌아 맘스터치로 돌아왔다. 오랜만에 돌아온 맘스터치에는 새로운 메뉴가 출시되어 있다.
싸이플렉스 버거
Flex, 주로 래퍼들이 고가의 사치품에 돈을 내지를 때 쓰는 속어다. 싸이플렉스 버거이니, 싸이버거보다 사치를 부렸다는 뜻이리라. 이름을 트렌디하게 짓긴 했지만, 쉽게 이해하자면 결국 더블 싸이버거인 셈이다. 맘스터치는 원래 가격이 저렴한 편이므로, 사치를 부린 싸이플렉스 버거도 비싸지 않다. 그는 약간의 위험을 감수하고, 싸이플렉스 버거를 주문해 본다.
싸이플렉스 버거를 맛본 그날부터, 그는 싸이버거에서 싸이플렉스 버거로 갈아탄다. 싸이플렉스 버거는, 싸이버거와 동일하되 닭고기 패티가 두 장이다. 안 그래도 푸짐한 싸이버거에 닭고기 패티가 하나 더 들어가니 버거가 더욱 높아진다. 그는 입이 작지 않은 편인데, 그런 그조차도 싸이플렉스 버거는 한입에 베어 물기가 힘들다. 여러 입에 나눠 물며, 입안 가득한 닭고기 패티를 음미한다. 맘스터치 넓적다리 패티 특유의, 바삭한 튀김 아래 가득한 닭고기 육즙이 흘러나온다. 맘스터치는 주문 직후 조리를 시작하기 때문에, 기다리는 시간이 오래 걸리지만 햄버거를 받았을 때 패티가 뜨겁다. 닭고기 패티가 가득 머금고 있는 육즙이 터져 나오면서, 그는 입안을 데이기도 하지만 개의치 않는다. 싸이플렉스 버거를 공격적으로 먹으며, 그는 온갖 잡념을 잊는다.
굵직한 면접들을 모두 끝낸 그, 오랜만에 맘스터치에 왔다. 진동벨이 울리자 싸이플렉스 버거를 가져와 자리에 앉는다. 그는 호주에서 입었던 8불짜리 카고 바지, 10불짜리 검은 후드 티, 18불짜리 운동화를 신고 있다. 전부 호주에서 싼 값에 구매했으며, 하도 입고 신어서 거의 닳을 지경이다. 그 자신의 몸과 동화된 듯한 편안함이다. 가끔 머리를 감지 않았을 때는 후드를 뒤집어쓰기도 한다.
이젠 학생도 아니고, 나이가 꽤 찬 백수인 그가 혼자 햄버거를 먹는다. 보기에 썩 좋진 않다. 그 본인이 생각하기에도 약간 서글프고 처량한 모습이다. 하지만 겉으로만 그럴 뿐이다. 한국을 대표하는 ㄱ그룹의 굵직한 3개 계열사로부터 면접 결과를 기다리고 있지 않나. 거기다가 20번째 기업까지, 4개 기업으로부터 서류 합격을 통보받고 당당히 면접을 본 그다. 당장의 겉모습은 초라해 보일지라도, 자신에게는 창창한 미래와 무한한 잠재력이 있다. 4개 기업이 동시에 그 잠재력을 알아보고 그를 면접에 모시지 않았던가. 이제 곧 합격해서, 반짝이는 모습으로 싸이플렉스 버거를 먹을 날이 머지않았으리라.
미래에 대한 불안도 기대도, 당장의 서글픔도, 애써 하는 정신승리도, 싸이플렉스 버거 한 입에 모두 삼킨다. 언제나처럼 싸이플렉스 버거의 패티는 두텁고 뜨거우며, 패티를 베어물 때마다 닭고기 육즙이 터진다. 그는 간만에 기분좋게 입 안을 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