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락 통보 폭탄을 맞은 그는 집에 늘어져 있다. 이력서 몇 군데 넣고, 방바닥에 누워 있다. 독서실을 가야 하는데, 귀찮다. 조금 더 있다가 가야겠다.
그가 방에 널브러져 있는 그때, 아버지가 방으로 들어온다. 그는 빨리 독서실에 갔어야 했다.
아버지 : 너 오늘 뭐할거냐
그 : 독서실 가려고요
(아버지가 그의 방 의자에 앉아버린다. 이런 일은 드물다. 그는 심상치 않음을 눈치챈다.)
아버지 : 독서실에서 뭐하는데
그 : ... 공부해야죠
아버지 : 무슨 공부
그 : 가서 뭐할지 봐야죠
아버지 : 너, 아빠가 1년 동안 너 하는 걸 봤는데, 어떻더냐
그 : ...
아버지 : 너, 지금 계속 떨어지지? 지금 너 학벌이랑 스펙으로는 오라는 데 없어
그 : ...
아버지 : 너 어디 지원하고 있냐. 아빠가 목표를 세워서 공부하라고 했지. 첫 직장이 중요하다니까. 중소기업 아무 데나 들어갔다가 어영부영 3, 4년 금방 지나가
그 : 중견 기업도 넣고 있어요
아버지 : 중견? 중견이나 중소나 똑같이 중소야
그 : ...
아버지 : 중소 갈 바엔 공무원 준비를 해
그 : 아버지 저는 공무원은 진짜 아닌 거 같아요
아버지 : 아니긴 뭐가 아니야. 중소기업이나 공무원이나 똑같애. 공무원은 정년 보장이라도 되지. 중소기업은 조금 다니다가 짤려. 어거지로 버티면 과장은 달겠지. 한 5년 버티면 과장은 달겠지. 그러고 나서 뭐할래? 과장 달고 있다가 못 버티고 나오는거야
그 : ...
아버지 : 중소기업 과장하고 나오면 뭐할래? 나중에 치킨집, 피자집 하는 거야. 너 보니까 나중에 피자집 한다고 하겠네. 하얀 얼굴이 피자집 하겠다 하겠네
그 : ...
아버지 : 니 인생이니까 잘 생각해라
그는 말이 없다. 할 말도 없고, 말이 나오지도 않는다. 어릴 적부터 그는 아버지가 어려웠다.
아버지는 다시 방으로 가버리고, 그는 누워있던 몸을 일으켜 급하게 가방을 싼다. 빨리 이 집구석을 벗어나야 한다.
자전거를 타고 독서실로 향한다. 아무도 그에게 말을 걸지 않는 곳. 아무도 그를 방해하지 않는 곳. 읽고 싶은 책이 있는 곳. 유튜브와 웹툰으로 도피할 수 있는 곳. 도피하다가 배터리가 모자라도 얼마든지 스마트폰을 충전할 수 있는 곳. 그의 망상과 감정 찌꺼기를 쏟아낼 수 있는 노트와 펜이 있는 곳. 책상에 엎어져 실컷 자고 일어나 등이 아파도 눈치 볼 필요가 없는 곳. 그의 아지트, 독서실로 향한다.
귀에 박혀있는 말들을 되뇌어본다. 치킨집, 피자집, 피자집 한다고 하겠네. 그는 치킨은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피자는 꽤 좋아한다. 좋아하긴 하지만, 그는 자신이 피자를 잘 만든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만들어 본 적도 없다. 나중에 할 일이 없다고, 만들어보진 않았지만 피자를 좋아하니 피자집이나 해보겠다는 단순한 사고 회로를 갖고 있지는 않다. 그는 피자집을 할 생각이 없다. 피자를 좋아하니까 피자집 해야지, 치킨 좋아하니까 치킨집 해야지. 장사는 남들에게 파는 것이지, 사장 본인이 먹겠다고 장사하나. 그런 생각으로 장사를 시작하는 사람이 있나? 그다지 많지 않을 것 같고, 적어도 그는 그런 식으로 장사에 뛰어들지 않을 생각이다.
그는, 자신이 그렇게까지 생각 없고 한심한 사람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그의 아버지가 보기에는 생각 없고 한심한가 보다.
그런데 그가 지금 처한 상황이 어떠한가. 주구장창 면접을 탈락하고, 가끔 햄버거나 먹으며 독서실에 틀어박혀 있다. 그가 아무리 아니라고 말해도, 그가 처한 객관적 상황을 보자면 답이 없다. 한심스럽기 그지없다. 그가 자초한 것이다.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는, 그는 이러다가 생각 없이 피자집 차리겠다고 하는 사람으로 보이나 보다. 그럴 수도 있겠다.
모르겠다. 오늘은 예정에 없었는데, 맘스터치를 가야겠다. 맘스터치에 가서 싸이플렉스 버거나 먹으면서, 닭고기 패티 속 터져나오는 육즙들을 만끽하며 생각을 놔버려야겠다. 기분이 별로 좋지 않으니, 오늘은 특별히 싸이플렉스 버거를 두 개 먹어야겠다. 그런데 가격이 얼마였지. 두 개 중 하나는 단품으로 먹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