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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얀 얼굴 학생 Aug 28. 2022

21번째 기업, 24번째 면접

티라노

 하루 이틀 시간이 지나면서 그도 조금씩 회복한다. 그가 지금껏 경험한 면접 탈락이 몇 번인가. 바뀐 것은 없다. 그는 다시 손가락을 움직이며 이력서를 난사하기 시작한다. 달라진 것이 있다면, 난사의 범위가 더욱 넓어졌다. 어찌저찌 몸을 일으켜 이력서를 난사하긴 하지만, 마음은 아직 온전히 회복되지 않았나 보다. 어차피 떨어질 텐데, 에라 모르겠다는 식으로 그는 직무 상관없이 난사한다. 어이없지만, 이렇게 난사한 이력서조차도 서류에서 합격할 때가 있다.


 그가 원래 넣고자 하는 직무는 해외영업과 기획이었다. 하지만 마구잡이로 난사한 공고들에는 인사와 총무 등의 직무가 섞여있었다. 그에게 연달아 2곳에서 서류 합격 및 면접 안내 메일이 날아왔는데, 두 곳 모두 건설사의 인사총무 또는 총무 직무다.


 21번째 기업도 직무도 썩 마음에 들지 않고, 준비하기도 귀찮다. 그는 비교적 가볍게 면접 준비를 한다. 강박적으로 면접 준비 자료를 만들긴 하지만, 굳이 기업 정보를 외우거나 신경 써서 만들진 않는다. 대강 준비를 하고, 그는 면접에 참석한다.



 면접 당일 회사에 도착한다. 21번째 기업은 조그마한 건설사로, 주로 아파트 건설에 집중하며 가끔씩 골프장(C.C : Country Club이라고 되어 있다) 건설에도 참여한다. 서울 한복판 높다란 빌딩의 두세 개 층만 사무 공간으로 쓰고 있는 듯하다. 건물이 깨끗해서인지, 21번째 기업 사무실도 깨끗하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려 사무 공간으로 향하는 복도에 진입한다. 사무 공간에 들어가기 직전, 허리 높이의 유리 도어를 통과해야 한다. 통과하면 직원 2명이 앉아 있다. 면접자들의 체온을 체크하고, 명단에 서명을 한다. 유리 도어에서 5걸음 정도 직진해서 왼편으로 꺾으면 대기실이 나온다. 평소에는 휴게실로 쓰는 것으로 보이는 공간이다. 휴게실의 한쪽 벽이 통유리로 되어 있어서, 굵직한 도로와 서울 전경이 보인다. 21번째 기업의 내실이 어떤지는 모르겠지만, 휴게 공간의 전경만큼은 여느 건설사 못지않다고 생각하는 그다. 대기하고 있으니, 잠시 뒤 인사팀 직원이 그와 몇몇을 호명하여 인솔한다. 그는 면접자 2명과 함께 일렬로 줄지어 인사팀 직원을 따라간다.




21번째 기업, 인사총무 면접 


면접자 : 총 3명, 전부 남자

  다른 회사에서 인사 채용 직무에 근무하고 있다는 면접자 1

  특징이 기억나지 않는 면접자 2

  그  

  

면접관 : 총 4명, 전부 남자

  타원형 얼굴, 머리숱이 적고, 영화 '곡성'의 악마처럼 생긴 50대 면접관 1

  특징이 기억나지 않는 면접관 2

  특징이 기억나지 않는 면접관 3

  인사팀 실무 대리급으로 보이는 면접관 4


 휴게실과 마찬가지로, 면접이 이뤄지는 면접실도 벽면이 통유리로 되어 있다. 면접관들이 앉아 있는 쪽의 벽이 통유리어서, 그를 비롯한 면접자들은 면접자들 뒤로 펼쳐진 탁 트인 전경을 바라볼 수 있다. 그는 이날의 면접보다 면접관들 뒤로 보였던 전경이 더 기억에 남는다.



  면접자 일동 : 안녕하십니까!

  면접관 일동 : 안녕하세요. 반가워요. 자리에 앉으세요.

  면접자 일동 : (착석한다)

  면접관 4 : 네, 반갑습니다. 오늘 이렇게 면접에 참석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지금부터 면접을 시작하겠습니다. 먼저 자기소개부터 시작할게요. 면접자 1 씨부터, 면접자 2 씨, 하얀 얼굴 씨 순서로 해주시면 됩니다.

  면접자 1 : 네, 안녕하십니까! ...

  면접자 2 : 안녕하십니까! ...

  그 : 안녕하십니까. 21번째 기업 인사 직무에 지원한 지원자 하. 얀. 얼. 굴.입니다. 저는 2가지 강점을 통해 저를 간략하게 소개하겠습니다. 첫 번째, 강한 실천력입니다. 저는 호주 워킹... ... 두 번째, 친화력입니다. 저는 취미 생활인 공놀이를 통해... ... 이상 두 가지 강점, 강한 실천력과 친화력을 바탕으로 21번째 기업에 기여하고자 하는 지원자 하. 얀. 얼. 굴.입니다. 감사합니다.


 20번이 넘는 면접, 별로 원하지 않는 기업과 직무, 계속된 탈락에 그는 무언가를 놓아버렸다. 이전까지는 큰 목소리로 군대식처럼 답변을 했지만, 이번 면접에서 그는 목소리에 힘을 빼고 그냥 편안하게 자기소개를 한다. 또한 그 자신이 명백히 의도하진 않았지만, 그는 '인사 직무'에 지원했다고 말한다. 21번째 기업 채용 공고에는, 엄밀히 말하자면 '인사총무 직무'를 채용한다고 기재되어 있었다. 자신도 모르게 총무 직무를 언급하지 않은 그, 총무 직무에 대한 그의 생각이 은연중에 나온 것인지도 모르겠다.



 이후의 면접은 상세히 기억나지는 않는다. 면접자 1은 다른 기업에서 인사 채용 직무를 담당하고 있다고 한다. 소위 말하는 경력직인 듯한데, 지금의 면접은 신입 면접이다. 입사한 지 1년이 채 되지 않은 경력으로 보인다. 면접자 2는 별다른 인상을 남기지 않았다.


 면접관들은 공통 질문도 하고, 면접자들에게 궁금한 것을 개별적으로 질문하기도 했다.


공통 질문

  면접관 2 : 우리 회사 이력서를 어디서 보고 지원했는지, 그리고 지원 동기는 무엇인가요.

  면접자 1 : 채용 공고 웹사이트를 통해 지원했습니다! 저는...

  면접자 2 : 저도 채용 공고 웹사이트를 통해... ...

  그 : 자X설닷컴이라는 웹사이트를 통해 보고 지원했습니다. 지원 동기는, 건설에 대한 관심입니다. 저는 어릴 적부터 손으로 직접 무언가를 만드는 실물 경제와 실질적인 것을 동경해 왔습니다. 자연스럽게, 맨 땅에 커다란 건물을 짓는 건설업에 대해서도 관심이 생겼습니다. 21번째 기업은, 토목이 아닌 아파트 위주의 사업을 영위하고 있지 않습니까? 그럼에도, 21번째 기업의 브랜드인 21팬X리움은 다른 대기업 아파트 브랜드들과 견주어도 인지도가 높고 평도 좋습니다. 대기업에 밀리지 않는 품질의 아파트를 보며, 내실이 있는 기업이라고 생각하여 지원했습니다. (그가 면접 때마다 항상 사용하는, 입에 발린 거짓말이다)


  면접관 1 : 지난 1년 동안 자기계발한 사례나, 힘들었던 점을 말해보세요.

  면접자 1 : 네, 저는 회사 생활을 하며... ...

  면접자 2 : 네, 저는... ...

  그 : 전염병으로 인해 야외 생활이 줄어들면서, 저는 늘어난 개인 시간을 어떻게 쓸지 고민했습니다. 고민 끝에, 독서로 늘어난 시간을 채우자고 생각했습니다. 대학교를 졸업했음에도 불구하고, 솔직히 제가 제대로 읽어본 책이 없다는 생각이 들어서였습니다. 그래서 그때부터 독서를 시작했고, 지난해 XX권의 책을 읽었습니다. ... (그는 이에 대해 꼬리 질문이 들어올 것이라 생각했으나, 면접관 1은 관심이 없는 듯하다)



개별 질문

  면접관 3 : 하얀 얼굴 씨, 취미로 공놀이를 적어놓았네요. 포지션이 어떻게 되나요?

  그 : 학교에서는 포워드를 맡았고, 집 앞에서 할 때는 주로 센터를 합니다.

  면접관 3 : 요즘에도 공놀이를 하나요?

  그 : 네, 즐겨하곤 합니다.


  면접관 1 : 하야 얼굴 씨, 다른 사람들이 본인을 부르는 별명 같은 게 있으면 얘기해보세요.

  그 : (아무 생각 없이) 별명 말씀이신가요? 음... 별명은... 친구들이나 다른 사람들이, 저를 '티라노'라고 부르곤 합니다. 아마, 광대뼈가 돌출되어 강하게 생긴 저의 외모 때문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네, 그래서 별명도 '티라노'로 불리곤 했습니다.

  면접관 1 : ... (말없이 그를 뚫어져라 보고 있다) 


 그는 면접관 1의 질문에, 아무 생각 없이 그냥 답을 해버렸다. 별명이 무엇인가. 질문받은 대로, 면접관이 궁금해하는 별명에 대해 알려줘야겠다는 생각에서다. 

 면접관이 별명에 대해 물어본다면, 그 질문의 진짜 의도는 '자신이 생각하는 본인의 모습과 다른 사람에게 보이는 자신의 모습'에 대해 설명하라는 것이다. 수십 번의 면접을 통해 몇 번이고 체득한 기본 중의 기본이건만, 그는 기본조차 망각했나 보다. 맑고 순수하게, 그는 질문받은 것에 대해서만 답을 했다. 말없이 뚫어지게 그를 바라보던 면접관 1, 지금 생각해보면 면접관 1은 그를 보며 속으로 '뭐 이런 새X가 다 있나' 욕을 했을지도 모른다.



면접관 4의 직무 관련 질문

  면접관 4 : 면접자 1 씨, 현재 회사에서 인사 직무를 맡고 있네요. 정확하게 어떤 일을 하고 있나요?

  면접자 1 : 네, 저는 현재 인사팀에서, 채용 관련 업무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이력서를 취합하고, 서류 합격자들에게 연락해서 면접 일자를 조율하는 등의 일입니다. 이 과정에서... ...

  면접관 4 : 음 그렇군요. 혹시 우리 회사에 입사하게 된다면, 인사총무팀에서 이런 일을 해보고 싶다 하는 게 있나요?

  면접자 1 : 아무래도, 지금 제가 맡고 있는 채용 관련 일을 계속해서 해보고 싶습니다. 채용 관련 일을 하며... ...


  면접관 4 : 면접자 2 씨, 인사총무팀에서 해보고 싶은 일이 있나요?

  면접자 2 : 네, 저는... ...


 면접자 1과 2의 답변이 끝난다. 그는 면접관 4가, 자신에게도 직무 관련 질문을 할 줄 알았다. 그런데 면접관 4는 그에게는 직무 관련 질문을 하지 않고 차례를 끝낸다.



 면접은 그다지 특이할 것 없이, 무난하게 끝나간다. 면접관들은 으레 물어보는 것들을 물어보았고, 면접자들의 대답은 평범하다. 그가 보기에, 그와 같이 본 면접자들 중 합격자는 없다. 아니, 다른 면접자들의 상태가 너무 안 좋다면, 그나마 다른 회사 인사팀에서 일한다는 면접자 1이 뽑힐 가능성이 조금 있다.


  면접관 4 : 네, 그럼 이제 마지막으로 질문 있거나 하실 말씀 있으면 하시고, 면접 끝내겠습니다. 이번에는 하얀 얼굴 씨부터 해주세요.

  그 : (너무 평이하게 한 것 같아 어필을 하고자) 네, 저는 아까 면접관 4께서 질문하신 것에 대해 답변드리겠습니다. 저에게도 질문을 하실 줄 알았는데, 그냥 넘어가셔서 이렇게 답변을 드리고자 합니다. 저는 인사직무로 입사한다면, 21번째 기업의 채용을 담당해보고 싶습니다. 제가 지금까지 면접을 몇 차례 보았는데, 특이하게도 건설사 면접을 볼 때마다 실무진 면접과 임원 면접을 하루 만에 보았습니다. 지금 21번째 기업의 경우는 1차와 2차를 나누어 진행하지만, 제가 경험한 다른 건설사들의 채용 전형은 하루에 면접을 2번 진행했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인지, 저는 아직 정확하게 알지는 못합니다. 공사 기간을 단축하는 만큼 이익이 나는 건설업의 특성을 반영한 것인지, 체력이 좋은 인원을 선발하고자 한 것인지, 각 기업문화가 달라서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이러한 경험들을 바탕으로, 21번째 기업 인사팀에 입사한다면 그 이유가 무엇이었는지, 조직 문화나 건설업에서의 채용 과정이 어떤지를 확인하고 기획해보고 싶습니다. 오늘 면접에 불러주셔서 감사합니다.


 그의 마지막 답변에, 면접관 4의 눈빛이 살짝 빛난 것 같기도 하다. 예의상 그런 척해준 것인지, 실제로 감명 깊게 들은 것인지는 확실치 않다.




 면접이 끝나고, 면접비를 받아 밖으로 나온다. 면접비는 3만원이다. 그는 면접보다 면접관들 뒤로 보였던 풍경이 더 떠오른다. 면접도, 21번째 기업도 잘 모르겠다. 붙어도 그만 떨어져도 그만인가. 다만 휴게실이나 면접실에서 보이는 서울의 전경만큼은 꽤나 마음에 들었다. 만일 붙는다면, 일하다가 창밖을 보는 맛은 있겠다.


 약 5일 뒤, 핸드폰으로 문자가 날아온다.

 1차 면접 불합격


 예상했던 결과다. 그는 다시 컴퓨터 모니터 속 채용 공고로 눈을 돌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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