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번째 기업 면접 직후, 22번째 기업 면접도 보러 간다. 22번째 기업도 건설사이며, 그의 지원 직무는 '총무'다.
22번째 기업은 매출액이 1조 원이 넘어가므로 규모가 꽤 크고, 사업영역도 건설과 건축자재를 망라한다. 그로서는 꽤 흥미가 가는 기업이다. 하지만 그는 지원한 직무가 그다지 마음에 들지 않는다. 총무 직무라. 자세히는 모르겠지만, 그는 왠지 총무 직무가 끌리지 않는다. 회사에 입사하고 나서 직무는 바꿀 수 있다고 하니, 그는 우선 면접 준비를 한다.
건설사 면접이 계속되자, 그는 건설사별 아파트 브랜드를 정리한다. 한국의 건설사들은 대부분 자체 아파트 브랜드를 갖고 있다. 최근에는 프리미엄 아파트 브랜드 및 아파트 단지 저층에 들어가는 상업 시설 브랜드까지 내놓고 있다. 정리하자면 이렇다.
삼X물산 - 래X안
현X건설 - 힐스X이트, The H
DX이앤씨 - X편한세상
GX건설 - 자X, 메X나폴리스
포스X건설 - X샵
대X건설 - 푸르X오, 아클라X드(상업시설)
롯X건설 - 롯X캐슬
HDC현X산업개발 - 아X파크
SX건설 - SX VIEW
한X건설 - 포X나, 꿈X그린
대X건설 - 아X로
중X건설 - 중XS클래스
양X건설 - 양X내안애
금X건설 - 어X림
호X건설 - 베르X움, 아브뉴X랑(상업시설)
태X건설 - 데X앙
21번째 기업 - 펜X리움, 더 시X로, 코벤X 가든(상업시설)
22번째 기업 - 에일X의 뜰
기타 등등
면접날이 되어, 그는 22번째 기업 본사에 도착한다. 22번째 기업은 서울 한복판 빌딩의 상층부에 위치해 있다. 그가 면접을 보는 날, 하필이면 빌딩 주변에 공사가 한창이다. 건설사 건물이라 항시 건설 작업이 진행 중인 것인가. 정면 입구가 공사 현장으로 가로막혀, 그는 출입구를 찾는 데 약간 애를 먹는다. 뒷문으로 들어가, 엘리베이터를 타고 안내받은 층으로 올라간다.
사무 공간 안으로 들어가자, 가장 바깥 자리에 앉아있던 직원이 그를 안내한다. 막내 직원인 듯하다. 약간 작은 키, 보통 체격에 피부가 희다. 외모로 평가하는 것은 썩 바람직하지 않으나, 막내 직원은 입이 튀어나와 있어 약간 불만이 있는 듯한 표정이며 찢어진 눈매를 갖고 있다. 불만스러운 듯한 입과 찢어진 눈매 때문에 첫인상이 썩 좋지 않은데, 그를 대하는 목소리나 태도도 썩 호의적이지 않다.
막내 직원은 그를 대기실에 집어넣고, 이렇다 할 안내도 없이 다시 자리로 돌아간다. 이후 다른 면접자들이 도착할 때도, 막내 직원은 무표정하게 이 절차를 반복할 뿐이다.
면접실로 보이는 회의실에서, 회의를 마쳤는지 두 명의 직원이 나온다. 직원들이 나오자, 막내 직원이 안으로 들어가 무언가 세팅을 한다. 세팅이 끝나자 면접관으로 보이는 사람이 들어간다. 막내 직원은 노크하고 안으로 들어가 면접관에게 준비되었는지 확인한 뒤, 돌아나와 면접자들을 인솔해 들어간다.
22번째 기업, 총무 면접
면접자 : 총 4명 (남자 2 / 여자 2)
음악을 하다가 취업 준비, 긴 윗머리, 흰 피부에 곱상하게 생긴 남자 면접자 1
그
어두운 피부색, 긴 생머리, 회계 전공했다는 여자 면접자 3
부산 사투리를 쓰고 목소리가 작으며, 약학 대학원을 진학하려 했다는 여자 면접자 4
면접관 : 1명 (인사총무팀장)
마른 체격, 볼살이 없어 마른 얼굴, 검고 약간 곰보 자국이 있는 피부, 검은 뿔테 안경, 덥수룩한 머리, 눈매가 순해 보이는 40대 중후반 남자 면접관
그는 총무 직무가 그다지 마음에 들지 않았다. 하지만, 일단 입사하고 나면 직무 변경의 기회는 회사 생활 하기 나름이라는 말을 많이 들었다. 그래서 몸을 일으켜 면접을 보러 온 것인데, 회사 건물은 물론 인솔하는 직원과 면접자들의 첫인상도 별로다. 심지어 면접관의 첫인상도 그다지 좋지 않다. 결과적으로, 이 면접은 총무 직무에 대한 그의 편견을 더욱 공고하게 만든다.
면접관 : 아, 안녕하세요. 인사는 됐습니다. 앉으세요 앉으세요.
면접자 일동 : 아, 네. (착석한다)
면접관 : 그래요, 안녕하세요. 아, 제가 오전에 또 요청을 받아서 일을 처리하느라 정신이 없네요. 저는 이 회사의 인사총무팀장을 맡고 있습니다. 음... 지금 지원자들께서는 총무 직무에 지원한 거 맞으시죠?
면접자 일동 : 네, 맞습니다!
면접관 : 네... 총무 직무에 대해 어떻게 알고 계시는지 모르겠습니다만. 좋게 말하자면 모든 것을 다 할 수 있는 직무이기도 합니다만. 어쩔 때는, 화장실 변기가 막혔다고 총무팀에 뚫어달라고 요청하는 경우도 있거든요. 한 달에 한두 번 정도는 꼭 있는 거 같아요. 어때요. 총무 직무로 입사해서 변기 막힌 거 뚫어달라고 해도 할 수 있나요? (초장부터 질문이 가관이다)
면접자 일동 : (당황했는지 어이없는지 말이 없다)
면접자들이 딱히 답변을 하지 않자, 면접관은 면접자 하나하나를 굳이 콕 집어서 다시 묻는다.
면접관 : 면접자 1 씨, 어때요. 화장실 변기 뚫어달라고 요청이 오면 할 수 있겠어요?
면접자 1 : 네, 할 수 있습니다! 그 또한 제게 주어진... ...
면접관 : 하얀 얼굴 씨, 할 수 있어요?
그 : (속으로 어이가 없지만) 네. 하겠습니다.
면접관 : 면접자 3 씨는요?
면접자 3 : 네, 저도 하겠습니다! ...
면접관 : 면접자 4 씨?
면접자 4 : 네? 저요? 저도... 하겠습니다...
면접관 : 그래요, 그렇군요. 궁금해서 물어봤어요. 자 그럼, 자기소개를 해주세요. 면접자 1 씨부터, 하얀 얼굴 씨, 면접자 3 씨, 면접자 4 씨 순서로 해주세요.
면접자 1 : 네, 안녕하십니까! 열정적인 지원자, 면접자 1입니다! 저는... ...
그 : (처음부터 힘이 빠진다) 안녕하십니까. 22번째 기업 총무 직무에 지원한 하.얀.얼.굴 입니다. 저는 2가지 강점을 통해... ...
면접자 3 : 안녕하세요, 회계 공부를 통해 숫자에 대한 감각과 분석력을 키운 면접자 3입니다! 저는... ...
그 : 회사의 자산 및 비품 관리, 그리고 다른 팀에서 요청하는 것들을 서포트하는 업무라고 생각합니다...
면접자 3 : 회사의 전체적인 관리를 하는, 회사의 엄마 같은 직무라고 생각합니다... ...
면접자 4 : 아, 총무 직무요? 총무 직무는... 다른 사람들이 잘 일할 수 있게끔... 어... 도와주는 직무라고 생각합니다... ...
면접관 : 네, 다들 잘 파악하고 계시는군요. 음... 이번에는... 본인이 이것만큼은 다른 지원자들에 비해서 총무 업무를 잘할 수 있을 것이다 하는 게 있으면 말해보세요.
면접자 1 : 네, 저는 새로운 분야를 배우는 것에 전혀 거리낌이 없습니다. 다른 지원자들보다, 더 빠르게 다른 것을 배웁니다! 지금 새로운 분야로 이력서를 넣었는데, 이 또한 제가 새로운 것을 잘 습득한다는... ...
그 : 저는 호주 워킹홀리데이 당시 다양한 쉐어하우스를 돌아다니며 생활한 경험이 있습니다. 총무 직무는 사무실 임대 및 관리 업무도 포함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조금 결이 다르긴 하지만, 호주에서 홀로 생활하며 나름 임대차 계약을 경험했다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경험을 바탕으로 총무 직무에 기여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면접자 3 : 네, 저는 회계 공부를 하며 회계에 대한 관심을 키웠습니다. 회계 공부를 하며 공부가 너무 재밌었어요. 그래서 이런 저의 경험이, 총무 직무에서도 발휘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해요.
면접자 4 : 어.... 저는.... 총무 직무에서...
면접관 : 답변하기가 좀 힘든가요?
면접자 4 : 어... 조금 더 생각해봐도 될까요...?
면접관 : 알겠습니다.
면접관 : 네, 다들 면접 준비를 하시면서 우리 회사 홈페이지를 봤을 거예요. 회사 홈페이지에 우리 회사 핵심가치 3가지가 있거든요. 이 3가지 핵심가치 중 하나로 자신을 표현해보세요. (도전, 열정, 신뢰다)
면접자 1 : 네, 저는 무엇이든 새로운 것에 적극적으로 뛰어듭니다. 이전에 음악을 했을 때도... ...
그 : 네, 저도 도전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저는 호주 워킹홀리데이 시절...
면접자 3 : 저는 숫자에 대한 저의 관심과 애정을 말씀드리겠습니다. 대학교에서 회계 과목들을 이수하면서, 회계 프로세스가 어떻게 돌아가는지에 대해 배웠거든요. 이러한... ...
면접자 4 : 아 네... 저는... 끊임없이 노력하는 것을 말씀드려요. 제가... 목소리도 작고 답변을 잘하지는 않지만... 한번 정한 목표는 꼭 이루려고 하거든요... ...
면접관 : 음, 저희 회사 핵심가치는 도전, 열정, 신뢰인데 좀 헷갈리신 분들이 있는 것 같네요. 어쨌든 좋은 답변 감사합니다. 어디보자... 또 뭘 물어볼까...
면접관은 검은 뿔테 안경에, 순한 눈매를 갖고 있어 인상이 나쁜 편은 아니다. 다만, 면접을 진행할 만한 카리스마와 성격을 가진 것 같진 않다. 가장 처음 질문도 그랬지만, 면접관의 질문은 시간이 갈수록 점점 더 산으로 간다. 이걸 왜 물어보는지, 이렇게까지 집착해가며 답변을 들어야 하는 질문들인지 그는 의구심이 든다. 그런 상태로 면접은 40분이 넘게 진행된다. 면접관은 정말로 궁금한 것인지, 그냥 시간을 때우려는 것인지 무작위적으로 질문을 남발한다. 억지로 질문을 쥐어짜는 것 같은 느낌마저 든다.
면접관 : 음... 요즘 들어보니까 취업 시장이 많이 어렵다고 하더라고요. 아, 너무 긴장하지 마시고, 편하게, 편하게들 앉으세요. 너무들 긴장해 있으면 나까지 긴장되니까. 그래서 음... 이건 그냥 여쭤보는 겁니다. 지금 취업 준비한 지 얼마나 됐나요?
면접자 1 : 아... 6개월 정도... 됐습니다.
그 : 저도 6개월 정도 됐습니다.
면접자 3 : 이제 막 시작했에요.
면접자 4 : 어.... 음... 한... 4개월? 정도요.
면접관 : 그동안 몇 군데나 지원했어요?
면접자 1 : 어, 음, 60군데 정도 지원했습니다.
그 : 저는 조금 많이 지원했습니다.
면접관 : 그러니까 몇 군데 정도요?
그 : (굳이 대답할 필요를 못 느끼겠으나) ... 100군데 정도입니다.
면접관 : 100군데란 말이죠... 면접자 3 씨는요?
면접자 3 : 아, 저는 아직 지원을 많이 안 해서요. 지금 면접이 처음이에요.
면접관 : 아 첫 이력서에 면접까지 왔군요?
면접자 3 : 네 맞습니다.
면접관 : 면접자 4 씨는요?
면접자 4 : 음... 어... 한... 30군데?
면접관 : 그러면은, 지금 다들 취업 준비를 다양하게들 해오셨는데, 어떤 직무를 지원하셨어요?
면접자 1 : 저는 영업이랑, 총무 직무 지원했습니다. 제가 지원할 수 있는 직무가 많지 않더라고요.
그 : (그도 아예 놔버린다) 해외영업, 기획, 총무 지원했습니다.
면접자 3 : 아 저는 회계와 총무 위주로 지원해요.
면접자 4 : 저는... 연구직이랑... 어... 연구직 위주로 했어요.
그는 면접을 보면서, 지금 이게 뭐하는 짓인가 싶다. 면접관도 면접관이지만, 같이 면접을 보는 경쟁자들도 별로 마음에 들지 않는다. 그런데 그는 왜 이 경쟁자들과 같은 조로 편성되어 면접을 보고 있는 것인가. 22번째 기업이 보기에, 경쟁자들이나 그나 똑같이 준비가 안 된 지원자로 취급하는 것은 아닐까.
면접관 : 어, 그, 면접자 1 씨는 음악을 하셨었네요?
면접자 1 : 네, 맞습니다.
면접관 : 제가 음악 쪽은 잘 몰라서. 뭐 작곡하고, 연주하고 그런 쪽인가요?
면접자 1 : 네, 작곡도 하고, 음반도 내고 했었습니다.
면접관 : 그런데 어떻게 우리 회사를 지원하시게 된 거예요?
면접자 1 : 아, 아무래도, 취미는 취미로 남게 하게끔 결정했습니다. 제가 선배들이랑도 많이 얘기를 해봤는데요. 다들 생계 문제에 있어서 고민이 많더라고요. 그래서 저는, 취미는 취미로 남기고, 어... 생계에 문제가 없게끔 회사를 다니자고 생각해서 지원했습니다!
면접관 : 취업 준비를 해보니까 어떻던가요?
면접자 1 : 아... 당연히 쉽지 않더라고요. 많이 떨어졌습니다. 하지만, 포기하지 않고 제가 회사에 기여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해서 계속해서 지원했어요.
면접자 1의 열정은 박수를 쳐주고 싶지만, 그가 보기에 면접자 1은 6개월 동안 취업 준비를 했다기엔 면접 준비가 너무나도 미약하다.
면접관 : 면접자 3 씨, 회계 공부를 하셨다고요?
면접자 3 : 네, 학교에서 회계 관련 전공을 듣고 있어요.
면접관 : 그런데 총무를 지원하시게 된 이유가 있나요?
면접자 3 : 어... 채용 공고에 회계 직무가 없어서이고요... 그리고 제가 총무 직무에서도 회사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해서 지원했어요.
면접자 3 또한, 회계 강점을 계속해서 어필하는데 총무 직무와는 맞지 않다.
면접관 : 면접자 4 씨, 의학 대학원을 진학하려고 했다고 적혀 있네요.
면접자 4 : 네.
면접관 : 진학을 중간에 포기하신 건가요?
면접자 4 : 아... 네. 의학 대학원을 가기 위해서는 영어 점수가 필요해서요... 그래서... 저는 영어를 잘 못했는데... 열심히 해서 토익 점수도 기준에 맞추었거든요... 그런데 시험 점수가 잘 안 나와서... 취업을 하려고요.
면접관 : 음... 지금 사시는 곳이, 부산이에요?
면접자 4 : 네.
면접관 : 오늘 아침에 여기까지 오신 거예요?
면접자 4 : 네.
면접관 : 어떻게 오셨어요?
면접자 4 : 그, 아침에, KTX 타고서 왔어요.
면접관 : 몇 시에 일어난 거예요?
면접자 4 : 어... 한... 5시?
면접관 : 아, 알겠습니다. 정말 멀리서 오셨네요.
면접자 4는 자신감이 부족한지, 원래 내성적인 성격인지, 안 그래도 작은 목소리가 끝으로 갈수록 기어들어간다. 옆옆 자리에 앉아있음에도, 그는 면접자 4의 답변을 알아듣기가 상당히 힘들다. 면접자 4는 묻는 것에만 답변을 하고, 짧은 답변임에도 오랜 심사숙고를 거쳐 말하기 때문에 답답하다는 느낌마저 든다.
면접관은 그에게도 개인 질문을 하긴 한다.
면접관 : 하얀 얼굴 씨, 책을 많이 읽으신 것 같네요.
그 : 네, 전염병 이후로부터 꾸준히 읽었습니다.
면접관 : 무슨 책을 읽었나요?
그 : 네, '이타적 유전자'라는 책을 감명 깊게 읽었습니다.
면접관 : 그래요. 알겠습니다.
질문을 받은 순간부터 이미, 그는 면접관이 그냥 던져보는 질문이라는 것을 직감했다. 혹시나 했지만, 역시나 면접관은 책 제목만 듣고는 알겠다고 말하며 그의 답변을 끊어버린다.
의미 없는 문답이 계속 오가고, 시간은 계속해서 흐른다.
면접관 : 음... 요즘 보면, 사람을 대하는 것을 참 어려워하는 것 같아요. 정말 안 맞는 사람을 만나면, 퇴사하는 친구들이 많거든요. 이런 사람이랑은 일하기가 정말 싫다. 이런 게 있을까요? 면접자 1부터
면접자 1 : 아, 저는 ... ...
그 : 저는 소통하지 않으려 하는 사람과 일하기가 가장 어렵습니다. ...
면접자 3 : 어, 저는... ...
면접자 4 : 같이 일하기 힘든 사람이요? ... 어... 저는... ...
면접관 : (갑자기 그를 콕 집어서) 하얀 얼굴 씨, 소통이 안 되는 사람이 가장 같이 일하기 싫다고 하셨군요. 음. 그런데, 그런 사람이 만약 회사에 있어요. 그런 상황이면, 회사가 어떻게 해주면 하얀 얼굴 씨는 능력을 잘 발휘할 수 있을 거 같나요?
그 : (도무지 뭘 원하는 질문인지 모르겠어서 당황하며) 네? 음... 아무래도, 보상을 많이 해주면 참고서 회사 생활을 할 거 같습니다.
면접관 : 보상이라 함은, 돈인가요?
그 : 어... 네, 돈이 전부는 아니지만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합니다.
면접관 : (이상한 포인트에서 집요하게) 회사가 얼마 정도를 주면 많이 주는 건가요? 연봉으로요.
그 : 아... 제 기준으로 연봉 4000이면 많이 준다고 생각합니다.
면접관 : 아, 연봉 4000이면 어떠한 상황이라도 만족하고 다닐 수 있다?
그 : 높을수록 좋긴 합니다.
면접관 : 하하하... 그래요. 다른 지원자들은 어때요? 연봉을 얼마 받으면 열심히 다닐 것 같아요?
면접자 1 : 저도... 연봉 4000이라고 생각합니다.
면접자 3 : 저는... 3700이라고 생각해요.
면접자 4 : 아, 연봉이요? 저는... (답변이 기억나지 않는다)
면접관 : 네, 그래요. 벌써 시간이 이렇게나 되었네요. 마지막으로 하실 말씀 하시고, 면접 끝내도록 할게요. 이번에는 면접자 4부터 하세요.
면접자 3 : 네! 저는 말씀드린 것처럼, 학교에서 배운 회계 지식을 바탕으로... ...
그 : 네, 오늘 면접에 불러주셔서 감사합니다. 22번째 기업 면접 준비를 하며, 제 자신에 대해 더 잘 알 수 있는 기회가 되었습니다. 이렇게 면접에 불러주셔서 감사합니다. 합격해서, 22번째 기업의 미래에 함께 하고 싶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는 속마음과 정반대의 말을 하고 있다)
면접자 1 : 네, 저도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어요! 저는 음악을 하며... ...
면접관 : 그래요. 오늘 만나서 정말 반가웠습니다. 이제 면접비 받고 집으로 가시면 됩니다. 면접자 4 씨는 면접비 꼭 받으세요.
회의실 밖으로 나오자, 막내 직원이 면접자들을 안내한다. 명단에 싸인하고, 면접비를 받아가라는 것이다. 명단에 이름과 생년월일, 면접비 금액이 훤히 다 드러나 있다. 그가 서명을 하며 훑어보니, 면접자 4의 이름 옆에 '부산, 교통비 10만 원'이라고 적혀 있다. 막내 직원도 너무 다 드러나는 게 꺼림칙했던지 한 마디 한다.
막내 직원 : 면접자 4 씨는 멀리서 오셔서, 금액이 다릅니다. 다른 분들은 신경쓰지 않으셔도 됩니다.
면접자 4를 제외하고, 다른 면접자들은 면접비가 5만 원이다. 5만 원, 이전에 보험사 면접을 봤을 때를 제외하고는 한 번도 받아보지 못한 금액이다. 보통 면접비는 3만 원을 준다. 면접비 5만 원이라니, 22번째 기업은 현금이 꽤 많은가 보다. 그런데, 현금은 많은데 사무실 분위기나 면접 프로세스는 왜 이리 엉망이라는 느낌이 들까.
면접을 보고 일주일 뒤, 핸드폰으로 결과 통보가 날아온다.
1차 면접 불합격
그는 22번째 기업 총무직 1차 면접에서 불합격했다. 그는 불합격해서 다행이라고 여기면서도, 기분이 좋지 않다. 그가 보기에, 같이 면접을 봤던 인원들은 면접 준비가 전혀 되어 있지 않았다. 그런 경쟁자들과의 경쟁에서조차 밀리는 것인가. 명단의 개인정보를 보았을 때, 경쟁자들의 나이가 어리긴 했다. 음악을 했다는 남자 면접자 1은 그와 동갑이었다.
이런 경쟁자들과의 경쟁에서도 밀리는 것인가. 기업 입장에서 보기엔, 그와 이런 경쟁자들이 동급으로 보이는 것인가. 부정적인 생각이 스멀스멀 피어오른다. 그는 애써 고개를 저으며, 22번째 기업은 붙어도 답이 없는 기업이었을 것이라 생각하며 자위한다. 하지만 도대체 언제, 어떤 회사에 붙게 될 것인가. 컴퓨터 모니터 속 채용 공고를 보면서도, 그의 마음은 점점 더 불안해진다.
시간이 지날수록, 면접에 대해 돌이켜볼수록 부정적인 기억만 강화된다. 화장실 변기를 뚫으라니, 막상 회사에 입사해서 뚫으라고 하면 어쩔 수 없이 뚫긴 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신입 면접 시작부터 대뜸 변기를 뚫을 수 있냐는 질문은, 총무 직무에 대해 좋지 않은 인상을 남기기에 충분했다. 이후의 질문들도 대동소이했다. 그는 이때부터 '총무' 직무에는 절대로 지원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가 지원하지 않는다고 하여 이후에 총무 일을 맡지 않아도 될지는 두고 볼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