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느 때처럼 건조한 눈으로, 그는 채용 공고들을 훑고 있다. 바삐 손가락을 움직이며 난사를 하고 있던 도중, 그의 전화기가 울린다. 취준생은 모르는 번호로 걸려오는 전화나 문자에 민감하다. 서류나 면접 합격을 알리는 연락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는 전화벨이 두세 번 울리기가 무섭게 전화를 받는다.
그 : 여보세요.
익명의 목소리 : 안녕하세요, 하얀 얼굴 씨 연락처 맞나요?
그 : 네 맞는데요.
익명의 목소리 : 아 안녕하세요, 저는 7번째 기업 인사팀 직원입니다.
7번째 기업, 그는 7번째 기업을 또렷이 기억하고 있다. 한물 간 대기업의 이름을 달고 있는 건설사, 건설사임에도 매출이 낮고 도급 순위도 낮으며 재무 상태도 건전치 못했다. 면접은 하루 만에 실무진 면접과 임원 면접을 전부 진행했으며, 면접비는 없었다.
면접이 끝나고 밖에서 그는 실무진 면접관을 만났다. 실무진 면접관은 그에게 공공영업 직무는 생각이 없느냐며, 친히 명함을 하사하고는 연락 줄 테니 기다리라고 했다. 그는 공손히 명함을 받고 연락을 기다렸으나 연락은 오지 않았다. 그는 명함을 찢어버렸으며, 이후로 7번째 기업 채용 공고에는 눈길조차 주지 않았으니 지원도 하지 않았다.
그 : (무슨 일인지 의아하며) 아, 네 안녕하세요.
7번째 기업 인사팀 : 아 이렇게 연락드려서 당황스러우시죠. 다름이 아니라, 저희가 이번에 새롭게 채용을 하고 있는데, 저희 DB에 있는 이력서들을 검토하다가 적합하신 분들께 이렇게 개인적으로 연락을 드리고 있어요. 아직 구직 중이신가요?
그 : (경계심이 조금 누그러지며) 아, 네.
7번째 기업 인사팀 : 아 그러시군요. 지금 저희가 채용하려는 직무는 영업 직무예요. 이전 이력서를 보니, 하얀 얼굴 씨는 기획으로 지원하셨더라고요. 혹시, 영업 직무로도 지원 의사가 있으신가요?
그 : 네. 지원 의사 있습니다.
그는 계속된 면접 탈락으로 인해, 찬밥 더운밥을 가릴 때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7번째 기업과의 기억은 생각하기도 싫지만, 이렇게 개인적으로 연락했으니 합격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높지 않을까. 속으로 머리를 팽팽 돌리며 계산하는 그다.
7번째 기업 인사팀 : 알겠습니다. 그러면, 저희가 회사 채용 홈페이지를 잠시 열어드릴 테니, 기존의 기획 이력서를 영업 직무에 맞게 수정해서 지원 부탁드려요. 지금 채용하고 있는 건은, 따로 대외적으로 채용 공고를 올리진 않을 겁니다. 반드시 저희 회사 채용 홈페이지 통해서 이력서 수정 부탁드립니다.
그 :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7번째 기업 인사팀 : 네 감사합니다.
그는 7번째 기업 채용 홈페이지로 들어가, 몇 달 전 기획으로 지원했던 이력서를 영업 직무로 수정한다. 그의 예상대로, 애초부터 선택받은 지원자들에게만 알려주었는지 수월하게 서류 통과가 된다.
7번째 기업 인사팀은, 서류 합격을 축하함과 동시에 면접 일정을 안내했다. 그는 한참 전에 준비했던 7번째 기업의 면접 준비 자료를 다시 꺼내어 훑어보고는, 갱신할 부분을 갱신한다. 시간이 지나긴 했지만, 이미 한 번 면접을 봤던 기업이니 준비 시간이 얼마 걸리지 않는다.
면접일을 기다리며, 그는 또다시 망상의 나래를 펼친다. 첫 만남은 좋지 않았지만 이렇게 다시 연락을 해오다니. 악연을 딛고 귀한 인연이 될 것인가. 그는 치를 떨었던 7번째 기업에서의 첫 기억을 어느새 다 까먹은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