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좀 해봐. 너한테 문제가 있는 거 아냐?
취업은 결과론
그의 취업 기간이 계속해서 길어지고 있다. 3학년 2학기, 4학년 1학기, 막학기, 졸업유예 6개월, 졸업하고 나서도 벌써 3개월이 지났다. 그동안 그는 수백 개의 이력서를 난사했고, 그중 24군데 기업의 서류를 합격했으며, 24개 기업의 면접에서 하나도 빠짐없이 모두 탈락했다.
세상 대부분의 일이 그렇지만, 결국 중요한 것은 결과다. 과정이 어땠고, 그 과정에서 무엇을 배웠고, 그래서 얼마나 성장했든, 결국 결과가 따라주어야 그 과정도 미화가 가능하다. 대부분의 일이 그럴진대, 취업이라는 활동은 더더욱 그렇다.
취업 활동에는, 과정 따위는 필요 없다. 무조건 결과다.
그가 뼈저리게 느낀 바다.
전문직 자격증 시험은 다르다. 고시나 전문직 자격증 시험은, 열심히 공부하면 남는 것이 있다. 열심히 공부해서 1차까지 합격하고, 2차에서 떨어져 고배를 마시더라도 인정받을 수 있다. 많은 기업들이, 전문직 자격증 1차 합격자들을 우대한다. 최종적으로는 떨어졌더라도, 1차에 붙은 것만으로도 꽤나 큰 스펙이다.
이에 비해 취업 활동은 어떤가. 취업은 오롯이 결과만 본다. 면접을 몇십 번 보았든, 1차 면접을 몇십 번 통과해서 최종 면접에서 몇십 번을 떨어졌든, 그건 알 바가 아니다. 그는 기업 면접을 볼 때마다 외치고 싶다.
저는 24개 기업에서 29번의 면접을 보았으며, 그중 7번은 최종 면접이었습니다. 다양한 기업의 서류를 합격하고, 그중 몇몇 기업으로부터는 1차 면접 합격이라는 성과까지 이루어낸 경험이 있습니다!
만일 그가 면접에서 이렇게 말했다면, 면접관은 속으로 코웃음을 치며 반문할 것이다.
그래서 왜 떨어졌습니까?
면접을 아무리 많이 봤다 해도, 면접 경험은 내세울 수 없다. 면접을 잘 봤어도, 최후의 2인에 들었는데 안타깝게도 1명만 뽑는 자리라 떨어진 것이라도, 떨어지면 모두 '탈락자'일 뿐이다.
그가 생각하기에도, 자신이 왜 1차 면접을 통과했는지 도무지 알 수 없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면접이라는 전형은 면접관들의 주관 및 알 수 없는 수많은 영향력들이 개입하기 때문에, 면접을 아무리 많이 보더라도 스펙이 될 수 없다.
초창기 그는, 면접 횟수가 늘어갈수록 은근히 뿌듯함을 느꼈다. 이만큼 많은 경험을 쌓는구나. 고기도 먹어본 사람이 맛을 안다고, 면접도 많이 참석해보면서 면접을 보는 능력을 기르는 것이라 생각했다. 처음에는 그랬다. 그런데 면접을 보면 볼수록, 어렴풋하게 그려졌던 청사진이 자꾸만 흔들린다. 이전 면접에서 1차 합격했던 전략을 썼는데 이번에는 떨어지거나, 회사가 마음에 들지 않아 대충 대답했는데 1차 면접에 떡하니 붙는 등 면접 결과가 도무지 알 수 없는 방향으로 튄다. 약 10번째 기업 면접 때까지는, 이런 식으로 준비하면 되는구나 싶은 방향이 생겼던 그다. 그런데, 면접을 보면 볼수록 도무지 모르겠다. 그는 이제 잘 모르겠다. 면접이라는 이 전형이 도대체 왜 있는 건지, 뭘 바라는 건지, 결과가 왜 그렇게 나왔는지, 어떻게 준비했으면 합격했을지, 잘 모르겠다.
이러한 혼란은, 면접에 떨어진 이에게 별다른 정보가 주어지지 않기 때문에 발생한다. 커트라인에 미달하는 점수를 얻은 것인지, 탈락한 이유가 무엇인지 전혀 피드백이 없다. 내정자가 있었는지, 관상이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면접관의 그날 기분이 안 좋았는지, 스펙이 부족했는지, 도대체 알 수가 없다. 그래서 그는, 어차피 알 수 있는 정보는 없으니 그가 그동안 해왔던 것들 중 필요하다 생각하는 준비를 모조리 합쳐서 했다. 면접 준비 자료를 빡세게 만들고, 채용 공고와 이력서를 다시 출력해서 밑줄을 치며 읽고, 회사 역사와 뉴스 등을 몇십 페이지 검색하고, 재무제표 숫자 및 제품과 기술을 달달 외우고, 예상 질문을 몇 페이지고 출력해서 답을 작성한 뒤 영어 답변까지 준비했다. 학력이나 학점 등의 과거는 고칠 수 없다. 그는 현재 자신이 할 수 있는 한에서 나름 최선을 다한다.
취업준비생인 그는, 주변 지인들에게 가끔 고민을 털어놓았다. 이미 취업을 한 이, 취업 준비를 하고 있는 이, 아직 취업에 뛰어들지 않은 이 등이다. 그의 이야기를 들은 지인들은, 자신들도 도무지 알 수가 없다고 말했다. 면접이란 원래 그런 것이며, 기업 입맛에 맞는 사람을 뽑는 것이기 때문에 알 수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의 경우 취업 기간이 유별나게 길어지고 있었으며, 지독한 난사로 인해서 면접 탈락도 너무 많다. 지인들은 그의 여러 정황을 면밀히 알지 못한다. 얄팍한 정보를 바탕으로 그에게 조언을 한다.
아니, 몇 번을 떨어졌다고? 그건 좀 심각한데
잘 좀 해봐 그 정도면 너한테 문제가 있는 거 아니야?
정장을 새 걸로 맞춰봐
머리 스타일을 바꿔봐
면접 볼 때 장신구 같은 거는 다 빼고, 화장도 좀 하고 해봐
눈이 너무 높은 거 아냐? 눈을 낮춰봐
그가 동의할 수 있는 말은 별로 없다. 아니, 동의할 수 있는지 없는지도 잘 모르겠다. 그는 왜 이토록 계속해서 탈락하고 있는가. 잘 모르겠다.
그와 상황이 똑같은 지인은 단 한 명도 없으며, 그가 듣기에 도움이 되는 조언도 없다. 이를 체감한 시점부터, 그는 지인들에게 면접 관련해서 물어보는 것을 그만둔다. 아주 가끔 면접 보는 회사와 같은 업계에 있는 지인에게는 물어보긴 하지만, 그런 지인들조차도 이미 오래전에 면접을 봤기 때문에 도움 되는 정보가 거의 없다.
지인들은 나름 애정과 관심을 토대로 그에게 조언을 했겠지만, 그에게는 고깝게 들릴 뿐이다. 멀쩡한 정장을 다시 맞춰라? 잘 모르겠다. 머리 스타일을 바꿔라? 잘 모르겠다. 화장을 해라? 더더욱 모르겠다. 눈이 너무 높다? 그는 자신의 눈이 높은 편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물론, 공장을 들어가서 생산직이라도 하라는 뜻이었다면, 그 기준보다는 눈이 높다. 그 자신에게 문제가 있는 것 아니냐? 문제가 있을 것이다. 문제가 있으니 계속 떨어지는 것일 터다. 그런데 그 문제가 무엇인가? 잘 모르겠다.
안 그래도 한심하고 처량한 취준생인 그다. 주변 지인들을 만나면 돈을 쓰거나, 상대방이 그의 처지를 감안해 돈을 내준다. 그것만 해도 불편한데, 취업 활동에 관한 이야기를 해도 도움이 되질 않는다. 그를 위해서 해준 이야기일지라도, 그는 너무 고깝게 들린다. 지인을 만날 때마다, 오히려 지인과 사이가 악화되는 느낌이다. 그래서 그는 지인들을 만나는 횟수를 줄인다. 도움 되지도 않고, 만나봐야 속이 편하지도 않다. 혼자 있는 독서실이 제일 편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