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 것 배기가스 저감
26번째 기업은, 전기 탈 것의 엔진 촉매 및 이차전지 사업을 영위하는 회사다. 대외적으로는 '탈 것의 유해 배기가스를 줄이는 회사'라고 홍보한다. 맞는 말이다. 전기를 연료로 하는 탈 것은, 기존 탈 것과는 달리 배기가스가 없다시피 한다.
기존의 탈 것들은 휘발유나 경유를 연료로 하기 때문에, 연료를 연소하는 과정에서 배기가스가 생성된다. 배기가스를 구성하는 물질들은 각종 환경 문제를 일으킨다. 물질적 번영을 이룬 인간 사회는 이제, 인간 종의 안위뿐만이 아니라 동물과 환경의 안위까지도 고려하기 시작했다.
그가 취업준비를 하던 시기, 집권 여당은 진보를 표방했다. 진보 정권은 사회적 약자에게 관심이 많다. 더불어, 환경에도 관심이 많다. 진보 정권은 대기질 개선을 위해, 배기가스 저감 장치를 달지 않은 노후 경유차의 서울 진입을 금지했다. 물리적으로 막은 것은 아니다. 저감장치를 달지 않아도 서울에 진입할 수는 있다. 다만 경찰에게 걸릴 경우에는 벌금을 물어야 한다. 즉, 배기가스 저감 장치를 달도록 강제한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노후 경유차를 몰고 다니는 시민들의 반발이 꽤나 거셌다. 노후된 경유차를 타고 싶어서 타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나. 집보다는 싸지만, 탈 것도 소비재 중에서는 상당히 비싼 축에 속한다. 옷, 음식, 가전제품 등과는 다르다. 집과 탈 것은 구매도, 되팔고 다른 것을 다시 사는 것도, 버리는 것도 힘들다. 노후 경유차를 타는 사람들은, 새 탈 것을 구매하는 것이 부담스러워 어쩔 수 없이 계속해서 타는 서민들이 대부분이다.
이런 반발을 약간은 예상했는지, 정부는 지원금 정책을 내놓았다. 한국 영토의 대기질 개선을 위해서, 어쨌든 배기가스 저감 장치는 달아야 한다. 다만 그 가격을 낮춰주겠다는 것이다. 정부로부터 지원금을 받으면, 몇 십만 원이라는 금액으로 저감 장치를 달 수 있다. 하지만 조건이 따른다. 지원금을 받아 저감장치를 단 경우에, 해당 차량은 향후 3년간 폐차가 불가하다. 폐차할 경우, 받았던 지원금을 다시 토해내야 한다. 지원금을 받은 것에 대한 대가다.
노후 경유차를 타는 국민들은, 이럴 바엔 차라리 '새로운 탈 것 구매 지원금'을 주는 편이 더 낫지 않겠냐는 반응이 많았다. 똑같은 돈을 지원해준다면, 굳이 노후차를 3년 더 타느니 새로운 탈 것을 구매할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정부는 새로운 탈 것 구매에 대해서는 지원금 언급을 하지 않았다. 누군가는, 정부와 배기가스 저감 장치 업체 사이에 보이지 않는 끈이 연결되어 있는 것은 아니냐 의심했다. 알 수 없는 일이다.
공교롭게도, 그와 가족들이 타는 탈 것도 노후 경유차다. 지원금도 없이 새 탈 것을 사는 것은 부담스러우니, 그의 가족들도 배기가스 저감 장치를 달았다. 지원금을 받았다 하더라도, 계획에 없던 몇십만 원이라는 지출은 꽤나 부담이다. 그와 가족들은, 앞으로 3년 동안 문제가 생기지 않기를 바란다. 문제가 생긴다면, 폐차를 못하니 3년 동안 어딘가에 세워놓고 묵혀야 한다.
이러한 상황 때문에, 그는 배기가스 저감 장치에 대한 약간의 지식을 습득했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배기가스 저감 장치 업체인 26번째 기업으로부터 면접 안내 메일을 받는다. 그는 기존에 알던 지식에 더해, 면접 준비를 위해 관련 정보를 들이판다.
배기가스 저감 장치에는 3가지 종류가 있다.
1) SCR (Selective Catalyst Reduction)
: 선택적 촉매 분해 방식이다. 배기가스 구성물과 반응하는 촉매를 분사해서, 배기가스가 공기에 퍼지기 전에 분해되도록 화학반응을 촉진한다. 사용되는 촉매는 '요소수'다. 요소수의 암모니아가 배기가스와 만나면 화학반응이 일어나며 배기가스를 분해한다. 다만 SCR 저감 장치를 달기 위해서는 차량에 요소수 통을 장착해야 한다. 주로 연료 투입구 옆에 요소수 투입구를 설치한다고 한다.
2) EGR (Exhaust Gas Recirculation)
: 배출되는 배기가스를 엔진으로 돌려 재순환시키는 방식이다. 배기가스를 한 번 더 태워버림으로써 공해물질을 저감하는 방식이다.
3) DPF (Diesel Particle Filter)
: 정부가 지원금을 보조해주는 저감장치다. 배기가스 배출구에 일종의 필터를 달아 찌꺼기를 걸러내는 방식이다. 필터에 쌓인 찌꺼기를 고온으로 태워 공해물질을 줄이는 방식이다. DPF는 주기적으로 필터를 갈아주어야 하며, 배기가스 배출구에 부품을 달아야 하기 때문에 운전에 유의해야 한다. 높은 방지턱 같은 것을 지나다가 DPF 장비가 망가질 수도 있다.
위의 세 가지 방식은, 주로 경유차에 해당된다. 이미 생성되어 버린 배기가스를, 밖으로 배출하기 전에 어떻게든 줄이려는 방식이다.
26번째 기업의 사업은, 기존 탈 것이 아닌 전기 탈 것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전기 탈 것은 전기로 돌아가기 때문에, 연료를 연소하는 엔진이 없다. 어렸을 적 가지고 놀았던 미니카처럼, 엔진 대신 모터와 전기 배터리가 장착되어 있다.
전기 탈 것은, 수소와 산소가 물로 결합할 때 발생하는 전기를 사용한다. 이를 위해선 수소와 산소가 결합해야 하는데, 이러한 화학반응은 가만히 놔둔다고 이뤄지는 것이 아니다. 26번째 기업이 생산하는 촉매가 바로, 수소와 산소의 물 결합 반응을 촉진하는 촉매다. 그는 화학공학도가 아니기 때문에 자세한 내용은 모른다. 26번째 기업 홈페이지를 보니, 수소와 산소의 물 결합 반응을 촉진하기 위해서는 귀금속 촉매를 사용해야 한단다. 사용되는 귀금속은 팔라듐, 백금 등이다. 전기 탈 것이 작동되는 방식은 다음과 같다.
1 - 배터리 내에 수소와 산소를 충전하고, 물 결합 반응을 촉진하기 위한 귀금속 촉매를 넣는다.
2 - 귀금속 촉매가 수소와 산소의 물 결합 반응을 촉진한다.
3 - 수소와 산소가, 물과 전기로 바뀐다.
4 - 전기는 탈 것을 구동하는 데 쓰고, 물은 탈 것 밖으로 방류해버린다.
5 - 배기가스 따위 없는, 깨끗한 물만 방출하는 깨끗한 전기 탈 것 완성
26번째 기업은 경영기획 직무를 채용하고 있다. 담당 업무 내용을 보니, 경영기획팀에서도 귀금속 파트를 담당하는 포지션이란다. 귀금속 재고 관리, 귀금속 손익 관리, 중장기 귀금속 사업계획 수립 등이다. 최종 합격 시의 연봉도 기재되어있는데, 4000만 원이 넘는다. 그의 기준에는 차고도 넘친다. 그의 면접 준비 의욕이 한층 고취된다.
그는 귀금속에 흥미가 없다. 흥미가 없다기보다, 귀금속이 뜻하는 바를 정확히 알지 못했다. 그는 귀금속을, 값비싸고 반짝이는 보석 정도의 의미로 해석했다. 아주 틀린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맞는 것도 아니다. 면접 준비를 하며 알아보니, 귀금속의 범주가 생각보다 넓으며 그 쓰임새도 다양하다. 그는 금속을 조사하여 범주별로 정리한다.
Precious Metal (귀금속) : 은, 금, 백금, 팔라듐, 로듐, 이리듐, 루테늄
Minor Metal (작은 금속) : 인듐, 셀레늄, 텔루늄, 안티몬, 주석, 비스무트
Base Metal (비금속) : 납, 구리, 니켈
귀금속 분류 중 은, 금, 백금을 제외하면 모두 그가 처음 들어본 이름이다. 그가 또 놀란 부분은, 반짝이는 귀금속이라고 반드시 명품과 사치품 제조에만 이용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26번째 기업만 해도, 반짝이는 귀금속들을 산업에 쓰이는 산업용 촉매 제작용으로 사용하고 있다.
그는 귀금속을, 이름 그대로 Precious, 그저 반짝이고 예쁘고 소중한 것 같은 금속으로 이해했다. 하지만 실상은 다르다. 귀금속이 Precious(귀중)한 이유는, 반짝이고 예뻐서가 아니다. 여러 산업에 필수적이고, 그 쓰임새가 광범위하기 때문이다. 보기에 좋아서가 아닌, 다른 것으로 대체할 수 없는 실용성으로 인해 귀중한 것이다.
그가 갖고 있던, 귀금속에 대한 무지와 편견이 깨진다. 그는 보석이나 명품 업계에서 일할 생각은 전혀 없다. 하지만, 이런 식으로 실제 생활과 산업에 널리 쓰이는 귀금속이라면 꼭 일하고 싶다. 26번째 기업은 매출액도 5000억이 넘고, 속해 있는 산업군이 안정적이자 동시에 성장성이 있으며, 채용하는 경영기획 귀금속 파트 업무도 매력적이다.
25번째 기업 6개월 계약직을 버릴 만하다. 이 정도 규모, 산업군, 직무라면 꼭 일하고 싶다. 그는 밤을 새워 면접 준비에 몰두한다. 면접 준비 자료를 달달 외고, 외국계인 26번째 기업의 역사도 달달 외고, 전기차 배터리의 구성과 구동 방식도 외우고, 귀금속은 물론 금속 종류를 다 외우고, 귀금속을 세는 단위도 외우고, 환율도 외우고, 마지막에는 아예 현재 귀금속 시세까지 외워버린다.
반드시 합격하리라. 반드시 합격해서, 6개월 계약직을 걷어찬 것 이상의 결과를 이루리라. 26번째 기업이라면 충분하다. 피곤한 줄도 모르고 면접 준비에 밤을 새우는 그, 그는 26번째 기업에서 일하는 자신의 모습을 상상하며 웃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