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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얀 얼굴 학생 Sep 25. 2022

계약직 합격, 입사 포기

출산 휴가 대체자

 면접이 끝난 뒤, 25번째 기업 인사팀으로부터 전화가 온다. 결과 발표는 다음날 오후 정도에 전화로 알려주겠다는 것이다. 그는 알겠다고 한다. 그런데, 3시간도 채 지나지 않아 다시 전화가 온다. 다음날 결과 발표 때까지 향후 거취를 고민하려던 그는 머리가 복잡하다.


  25번째 기업 인사팀 : 안녕하세요, 하얀 얼굴 씨 맞으시죠?

  그 : 네 맞습니다.

  인사팀 : 네, 방금 회의에서 하얀 얼굴 씨가 최종 합격자로 결정이 되어서요. 입사 안내드리려고 전화드렸습니다.

  그 : (기쁘기보다는 혼란스럽다) 아, 감사합니다.

  인사팀 : 네 축하드립니다. 지금 저희가 입사 관련 메일 보내드렸거든요. 주말 동안 건강검진 받으시고, 다음주 월요일부터 바로 출근하시면 됩니다.

  그 : 아, 다음주 월요일(주말 포함 4일 뒤)부터요?

  인사팀 : 네. 건강검진 받으실 수 있는 병원 리스트는 이메일로 보내드렸습니다.

  그 : 네, 감사합니다. 혹시, 입사일을 조금 뒤로 미룰 수 있을까요?

  인사팀 : 아, 그 부분은... 죄송해요. 저희가 지금 인력 충원이 바로 필요한 상황이라서요. 출산 휴가 쓰신 직원분 자리에 바로 투입되셔야 하거든요.


그는 출산 휴가자 대체 6개월 계약직이다


  그 : 아, 그렇군요. 알겠습니다.

  인사팀 : 네, 그럼, 건강검진 받으시고 다음주 월요일날 뵐게요.

  그 : 아, 한 가지만 더 여쭤봐도 될까요?

  인사팀 : 네

  그 : 혹시, 6개월 계약이 끝난 뒤에 정직원 전환이 될 수도 있지 않나요? 보통 전환율이 어느 정도 되나요?

  인사팀 : 아, 지금 자리는 출산 휴가자 대체 계약직이라서요. 정규직 전환은 고려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 : 아, 고려하지 않는다는 말씀이시군요.

  인사팀 : 네 지금으로선 고려하지 않는다는 말씀만 드릴 수 있습니다.

  그 :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인사팀 : 네, 그럼 다음주에 뵐게요.



 전화를 끊고, 그는 생각이 많다. 출산 휴가자 대체 계약직에, 6개월 계약 이후 정규직 전환은 없는 것으로 생각하라는 인사팀의 답변이다. 훗날 돌이켜 생각해보자면, 이때 25번째 기업 인사팀이 너무 많은 정보를 제공한 것은 아닌가 싶은 생각도 든다. 인사팀과의 문답 이후, 그는 입사를 심각하게 고민한다. 회사에 들어가기만 하면 좋을 줄 알았는데, 계약직 합격은 또다른 골칫거리다.


 6개월 계약직도 그렇지만, 입사일도 너무 촉박하다. 그는 서류를 난사해놓은 상태이며, 때마침 면접을 보아야 하는 26번째 기업도 남아있다. 26번째 기업이 안내한 면접 날짜는, 하필 25번째 기업이 입사하라고 통보한 바로 그날이다. 26번째 기업은 외국계 기업에, 정규직 신입 공고이며, 연봉도 높다.

 1) 확실하게 보장되어 있지만 한계가 명확한 6개월 계약직

 2) 불확실하지만 약간의 가능성 있는 외국계 기업의 고연봉 정규직 신입

 그는 이 두 가지 선택지를 높고 심각하게 고민한다.



 몇 시간의 고민 끝에, 그는 25번째 기업 인사팀에 전화한다.

  인사팀 : 여보세요.

  그 : 안녕하세요, 저 아까 통화했던 '하얀 얼굴' 지원자입니다.

  인사팀 : 아 네 안녕하세요.

  그 : 다름이 아니라, 생각해보았는데 다른 회사 면접 일자와 겹쳐서요, 입사를 포기해야 할 거 같습니다.


 다른 회사 면접을 언급한 시점에서, 그는 25번째 기업 계약직에 미련이 없다.


  인사팀 : 아, 그러시군요... 혹시, 면접이 언제신가요?

  그 : 안내해주셨던 입사 당일입니다.

  인사팀 : 아 그렇군요... 알겠습니다. 말씀해주셔서 감사해요.

  그 : 아닙니다. 감사합니다!



 전화를 끊고, 그는 가슴이 후련하다. 두 개의 선택지 사이에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에서 벗어났다. 확실하게 보장된 계약직을 걷어차버리긴 했지만, 아직 그의 앞에는 미약한 가능성이 있다. 뒤를 걷어차버리고, 스스로 배수의 진을 만들어 총력을 기울이려는 각오다.

 그런데, 다시 전화가 걸려온다.


  인사팀 : 안녕하세요, 하얀 얼굴 씨

  그 : 네.

  인사팀 : 혹시 입사일자를 미루면 입사가 가능하실까요?

  그 : (몹시 당황하여) 아... 언제까지 미뤄주실 수 있나요?

  인사팀 : 아 그 부분은 확실하진 않아요. 아까 말씀드렸더니, 입사일자를 조금 미루면 되지 않겠느냐고 하셔서요. 아직 보고 전이라, 하얀 얼굴 씨께서 먼저 일자를 말씀해주시면, 제가 윗선에 해당 일자로 미뤄주실 수 있느냐고 말씀드려보려고요.

  그 : (감동적이면서도 부담스럽고 답답하다) 아, 잠시 생각해보고 다시 전화드려도 될까요?

  인사팀 : 네, 전화 주세요.



 전화를 끊는다. 그는 다시 머릿속이 복잡해진다. 간신히 결정을 내리고 짐으로부터 자유로워졌건만, 인사팀의 호의가 오히려 그에게는 독이 된다.

 어쨌든 면접은 봐야 하니, 면접 바로 다음날 입사하겠다고 하면 되나? 아니, 면접 발표가 난 뒤에 입사하는 게 낫지 않나? 근데 면접 발표일이 언제인지 어떻게 아는가. 그리고 이미 다른 회사 면접을 보겠다고 이야기해버렸는데, 다른 회사 면접 떨어지고 되돌아가 입사하면 부정적인 인상이 박히진 않을까. 그렇다면 안그래도 불투명한 6개월 후 정규직 전환이 더욱 희박해지는 것은 아닐까.


 도대체 어떻게 해야하나. 그는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갈팡질팡한다. 섣불리 결정을 내리기엔 미래의 불투명성이 크고, 그 결정으로 인한 파급력도 너무 크다. 그는 아버지에게 전화를 건다.


  그 : 아버지

  아버지 : 어 왜

  그 : 25번째 기업이라는 데를 합격했는데요, 6개월 계약직이에요.

  아버지 : 너 아빠가 그런 거 쓰지 말라고 했지. 첫 직장이 중요하다니까. 계약직을 뭐하러 넣어

  그 : 아무튼 그래서, 지금 4일 뒤 입사하라고 하는데 그날 다른 회사 면접이 있거든요.

  아버지 : 어딘데

  그 : 외국계고, 정규직이에요. 일단 면접 보려고 입사 포기한다고 전화했는데, 입사 일자를 미뤄주면 입사할 생각이 있냐고 해서요.

  아버지 : 거기는 그냥 없는 거로 하고, 다음 면접이나 준비해. 그리고 계약직 같은 거는 시간 낭비니까 아예 넣지마

  그 : 저도 원래 같았으면 안 넣었는데.. 아니 왜, 계약직하면서 눈에 들어서 정규직 전환될 수도 있다고 하잖아요.

  아버지 : 그런 게 어딨어. 그런 거 없어. 계약직은 계약직 시킬라고 뽑는 거야. 정규직이 필요하면 애초부터 정규직으로 뽑지, 뭐하러 계약직을 정규직으로 바꿔

  그 : 음... 알겠습니다.



 모든 부분에서 동의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는 아버지와의 통화를 통해 생각이 조금 정리되는 것을 느낀다. 이전 인사팀의, 정규직 전환이 불투명하다는 답변에서부터 이미 그는 마음이 떠나 있었다. 그는 인사팀에 다시 전화를 건다.


  인사팀 : 네, 지원자님.

  그 : 아 네, 신경 써주셔서 감사합니다. 생각을 해봤는데, 입사를 하지 않기로 결정했습니다. 그렇게 하는 게 맞는 거 같네요.

  인사팀 : 아, 그러셨군요... 알겠습니다.

  그 : 네, 신경 써주셔서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인사팀 : 네 감사합니다.



 전화를 끊고, 그는 다시 후련해진다. 25번째 기업 계약직 합격 소식은 그에게, 기쁜 소식이라기보다는 가슴이 답답해지는 소식이었다. 가슴이 답답하더라도 확실한 것을 선할 것이냐, 불확실하더라도 자신을 믿고 미래의 가능성을 선택할 것이냐. 그는 고민 끝에, 답답함을 걷어차고 미래의 자신을 믿기로 결정한다.


 25번째 기업 계약직은 완전히 날아갔다. 다시 무를 수 없다. 그는, 26번째 기업 면접 준비에 모든 것을 쏟아붓기 시작한다. 만족스럽지 않은 계약직이긴 했지만, 어쨌든 최종 합격을 포기했다. 반드시 26번째 기업에 합격하리라.


 25번째 기업 계약직 합격 통보는, 바닥을 치던 그의 자존감을 조금이나마 끌어올렸다. 수십 번이고 탈락만 거듭하던 그에게, 계약직이더라도 최종 합격 소식은 가뭄에 단비처럼 소중한 것이다. 아주 합격이 되지 않는 것은 아니구나. 계속 탈락하던 그도, 계약직 정도는 아직 합격할 수 있구나. 조금만 더 열심히 하면, 정규직도 가능할 것 같다.


 꼭 합격해야 한다. 6개월짜리 계약직을 버렸다. 반드시, 반드시 합격해야 한다. 6개월 내에 합격을 못하면, 차라리 25번째 기업 계약직으로 들어가 경험을 쌓은 것만도 못하게 될 수 있다. 6개월 내에 반드시 합격해야 한다. 아니, 6개월은 무슨 당장 26번째 기업에 합격해서 입사해야 한다.



 그는 26번째 기업 면접 준비를 위해 밤을 새기 시작한다. 면접 준비 자료를 만들고, 관련 정보들을 달달 외기 시작한다. 하지만, 언제나 그랬듯 취업과 면접의 성패는 그의 노력 여하에만 달린 것이 아닌 듯하다. 그가 26번째 기업에 합격할지는 두고 볼 일이었다. 또한 그가 다음 6개월 동안 취업에 성공할 수 있을지, 또다시 수십 차례 떨어져서 이럴 바엔 차라리 6개월 계약직이나마 입사하는 것이 나았을지의 여부도 두고 볼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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