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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얀 얼굴 학생 Oct 01. 2022

26번째 기업

자유 공업 단지, 날씨, 본사

 면접날, 그는 26번째 기업으로 향한다. 26번째 기업은, 서울과 가깝긴 하지만 서울이 아닌 지역의 널따란 공업 단지 같은 곳에 위치해 있다. 지하철역에서 내린 뒤, 걸어서 30~40분 정도 걸어 들어가야 하는 위치다.


 그는 지하철역에서 내린 뒤 지상으로 올라온다. 넓게 뻥 뚫린 하늘, 직선으로 쭉 뻗은 텅 빈 도로, 도로 건너편에는 높다란 아파트 단지가 나란히 들어서 있다. 아파트는 몇십층이 넘는지, 상당히 높다. 높지만 외부 마감이 하얀 페인트로, 유리나 번쩍거리는 외장재를 쓰지 않았다. 기다랗고 하얀 돌 같아서, 푸른 하늘의 미관을 해치지 않는다. 그는 도로를 따라 걷는다. 왼쪽 도로 건너편에는 아파트 단지, 오른편에는 아직 개발되지 않은 부지에 갈대 같은 것이 흐드러져 있다. 해가 화창하고 하늘도 푸르다.


 계속해서 걷다 보니, 그의 시야 오른편 저 멀리 있던 건물들이 가까워진다. 6~10층 정도의 건물들이 띄엄띄엄 이어진다. 마침내 건물들에 가까워지고, 그는 신호등을 건너 우회전한다. 신호등 앞에는, 'OO 무슨무슨 자유 공업단지'의 커다란 지도 팻말이 있다. 그가 지하철역에서 이 지점까지 오는 것도 걸어서 15분 정도 걸렸는데, 공업단지 전체 지도를 보니 그가 걸은 거리는 조그마한 점에 불과하다. 그의 왼편 고층 아파트들은, 이 넓은 공업단지에 직장을 가진 사람들을 위한 숙소인가 보다.



 공업단지는 넓지만, 26번째 기업은 다행히도 지하철역에서 가까운 편이다. 가깝다고는 해도, 도보로 30~40분 정도 걸린다. 그는 우회전해서, 아파트 단지들을 등 뒤로 하고 계속 걷는다. 이따금 텅 빈 도로에 차들이 지나가고, 자전거나 전기 킥보드 등을 탄 사람들도 지나간다. 회사원인 듯하다. 만일 26번째 기업에 합격한다면, 아까 보였던 아파트에 입주해서 자전거로 출퇴근하면 완벽하리라 생각하는 그다.


 26번째 기업에 도착하기까지, 그는 여러 블록을 지난다. 블록마다 건물이 두세 개씩 있으며, 각 블록은 2차선 신호등으로 나뉜다. 공업단지가 크긴 하지만, 커다란 건물들이 너무 띄엄띄엄 있어서인지, 직장인들이 한창 일하고 있을 시간이어서인지, 아니면 아직 이 공업단지가 제대로 활성화가 되지 않은 것인지, 인적이 드물고 상가도 텅텅 비었다. 프랜차이즈 카페나 닭 요리집이 간혹 보이는데, 하나같이 불이 꺼져있다. 화창한 해와 푸른 하늘, 깔끔하게 지어진 새 건물들과 잘 닦인 도로, 길을 걷고 있는 사람은 그 혼자다. 날씨 때문인지 그는 기분이 좋다.



 들떠서인지 긴장해서인지, 그는 26번째 건물 본사에 너무 일찍 도착한다. 안내된 시간보다, 거의 40분 가까이 일찍 와버렸다. 너무 일찍 도착해서 대기하고 있으면, 인사팀 직원이 별로 좋아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그는 어떻게든 첫인상을 좋게 만들고 싶다. 그는 괜히 26번째 건물 주변을 크게 한 바퀴 빙 돈다. 약 10층짜리 흰색 건물, 뒤편에는 냉방인지 공조인지 무언가가 크게 윙윙 소리를 내며 돌아가고 있다. 26번째 기업 건물 옆은 잡초가 무성하게 흐드러진, 언젠가 건물이 생길 것 같은 부지다. 


 한 바퀴 크게 돌아도 시간이 한참 남는다. 건물 가까이서 서성거리고 있으면, 혹시 26번째 기업 직원을 마주칠지도 모른다. 그는 괜히 멀리 떨어진 다른 곳으로 향한다. 다른 블록 회사 건물 앞에, 벤치가 있는 것이 눈에 띈다. 그는 주변에 아무도 없는 것을 확인하고는, 벤치에 앉아 마의를 벗고 넥타이를 끌러낸다. 숨이 트인다. 여기라면 26번째 기업 직원이 굳이 감시하러 와서 복장 검사를 하진 않으리라. 그는 경계를 약간 늦추고는 면접 준비 자료를 꺼내 읽는다.



 화창한 햇빛 아래, 그는 벤치에 앉아 면접 준비 자료를 보고 있다. 회사 건물 안에서 대기하고 있었더라면, 그는 긴장으로 인해 손발이 차가워지고 배가 꾸룩거렸을 터다. 하지만 회사 건물에서 조금 떨어진 위치, 화창하고 따뜻한 날씨, 지나다니는 사람 하나 없는 벤치에서 면접 준비 자료를 읽고 있자니 그는 무언가 기분이 뿌듯하다. 면접을 기다리는 시간은 초조하기도 하지만, 어찌 보면 약간 설레는 부분도 있다.


 15분 정도 면접 자료를 읽고 있자니, 갑자기 앞쪽 건물에서 두 명의 사람이 나온다. 정장 차림, 딱 봐도 회사원이다. 그와는 5m 정도 떨어진 위치에서 두 사람이 이야기를 나눈다. 거리가 멀어 들리진 않으나, 한 명이 손님이고 다른 한 명이 손님을 맞이하는 입장인 듯하다. 약 5분간 이야기를 나누더니, 한 명은 갈 길을 가고 남은 한 명은 회사 건물로 돌아간다. 회사원이 들어간 건물 앞쪽에는 커다랗게 이름이 붙어 있다. 무슨무슨 극지 연구소라는 이름이다. 회사로 들어간 회사원의 이미지가 갑자기 학구적으로 바뀐다.



 면접 시작 15분을 남기고, 그는 슬금슬금 짐을 챙긴다. 끌렀던 넥타이를 다시 매고, 마의도 다시 입는다. 26번째 기업 건물로 돌아가, 출입구로 보이는 문을 찾아 들어간다.

 출입구 안으로 들어가자, 보안이 꽤 엄중하다. 경비원은 상부가 유리로 된 방 안에 들어가 있고, 그의 진로 앞은 지하철 개찰구 같은 것이 막고 있다. 경비원에게 면접을 보러 왔다 말하자, 경비원은 명단을 확인하고는 임시 출입증을 유리 아래로 건넨다. 임시 출입증을, 지하철 개찰구 같은 게이트에 찍는다. 초록색 불이 켜진다. 경비원이 들어와도 된다고 말한다. 들어와서, 앞의 엘리베이터를 타고 안내받은 층으로 가라고 한다.


 안내받은 층에 도착한 뒤, 면접 대기실의 모습이 어땠는지는 자세히 기억나지 않는다. 화창한 햇빛과 뻥 뚫린 하늘 아래 있다가, 갑작스레 경비가 삼엄한 건물 내부로 들어가서 긴장한 이유인지는 잘 모르겠다. 그가 지금껏 경험한 보통 대기실과 크게 다르진 않았을 터다. 


 얼마 지나지 않아, 인사팀 직원의 뒤를 따라 그는 면접장으로 향한다. 그가 면접장 문 앞에 도착했을 무렵, 문을 열고 한 여성이 나온다. 그보다 한 차례 앞선 면접자인 듯하다. 인사팀 직원은, 그에게 면접장 안으로 들어가면 된다 말하고는 여성을 인솔하여 돌아간다. 그는 괜히 마의 깃을 잡아 아래로 당기고, 심호흡을 한 뒤 노크한다. 들어오세요. 그는 안으로 들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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