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 회사
면접 당일, 그는 정장을 입고 책상에 앉아 있다. 노트북 카메라 위치를 세팅하고, 카메라와 마이크 상태를 점검한다. 전염병으로 인해, 1번째 기업은 비대면으로 면접을 진행한다.
안내받은 시간이 되자, 화상회의 프로그램의 까만 화면이 켜진다. 면접이 시작된다. 그는 1번째 기업에 1년 만에 다시 지원한 면접자다. 지난 1년 내내 오매불망 1번째 기업만 바라봤다는 컨셉의 가면을 쓰고 면접에 임한다. 어느 정도는 사실인, 부분부분이 피부와 융합된 가면이다.
1번째 기업, 기획 직무 신입 면접
교회에서 회계 담당, 청년 프로젝트 기획 경험이 있는 면접자 2
테이블 좌측, 피부가 하얀 편에 말랐으며 안경을 낀 40대 초반 남자 면접관 1
테이블 우측 뒤편, 공대 출신, 피부가 까무잡잡하며 뿔테 안경을 낀 40대 중후반 남자 면접관 2
다른 화면, 배경에 책장이 보이며, 안경을 끼고 머리가 약간 노란빛인 40대 초반 남자 면접관 4
그는 자신이 1년 전에 보았던 면접관들 중 누군가를 다시 볼 수 있지 않을까 기대했다. 하지만 화면을 보니, 그의 기억 속 얼굴은 단 하나도 없다. 면접관들도, 풍기는 분위기도 1년 전과는 다르다. 조금 젊어진 듯한 느낌이다.
면접관 일동 : 안녕하십니까.
면접자 일동 : 안녕하십니까!
면접관 2 : 네, 자기소개부터 해주세요.
그 : 안녕하십니까! 1년 만에 돌아온 지원자, 하.얀.얼.굴.입니다! 작년 공채에서 최종 탈락한 뒤, 1년 만에 다시 지원했습니다.
저는 2가지 강점을 통해 저를 간략하게 소개하겠습니다. 첫 번째, 실행력입니다. 저는 호주 워킹홀리데이에서 3가지 목표를 달성했습니다. ... 두 번째, 친화력입니다. 저는 취미 생활인 공놀이를 통해 친화력을 길렀습니다. 공놀이를 하며 다양한 사람들과 팀을 이루며 친화력을 길렀다고 말씀드리겠습니다. ... 이상 두 가지 강점, 강한 실행력과 친화력을 바탕으로 1번째 기업 기획 직무에 기여하고자 하는 지원자 '하얀 얼굴'입니다. 감사합니다!
면접자 2 : 안녕하십니까. 면접자 2입니다. 저는 교회에서, 회계 업무를 맡으면서 숫자에 대한 감각을 익힌 경험이 있어요. 이러한... ...
면접관 2 : 허허, 반갑습니다. 하얀 얼굴 씨, 1년 만에 돌아왔다고 했는데, 작년에는 무슨 직무로 지원했었나요.
그 : 1지망 해외영업, 2지망 영업기획으로 지원했었습니다.
면접관 2 : 그런데 올해는 기획 직무로 지원했군요. 직무를 바꾼 이유가 뭔가요.
그 : 우선, 채용 공고에서 해외영업 직무는 경력직을 채용하는 것으로 보았습니다. 그리고 작년 면접 때도, 1차 면접은 해외영업 직무로 보았지만 최종 면접 당시에는 2지망인 영업기획으로 변경되었습니다. 돌이켜 생각해보았을 때, 1차 면접 때 해외파 경쟁자가 많았습니다. 면접관님들과 회사에서 보시기에 제 강점이 영업기획에 더 적합하다고 판단하셨다고 생각됩니다. 그래서, 제 강점들이 기획 직무에도 적합할 것이라 생각하여, 기획 직무에 지원했습니다.
면접관 2 : 그렇군요. 알겠습니다.
면접관 2 : 면접자 2 씨, 전공이 공대인가요?
면접자 2 : 공대는 아니고, 자연계열입니다.
면접관 2 : 아, 여기 이력서에 나와있군요. 가끔 공대 출신 학생들이 기획 직무에 지원하는 경우가 있어서, 그런 건가 해서 물어봤어요. 저도 공대 출신이기도 하고요.
면접관 2 : 음, 두 분 모두 기획 직무에 지원했는데, 기획 직무는 상당히 포괄적인 직무입니다. 우리 회사의 경우, 의사 결정을 지원하는 경영지원 파트, 매출원가 쪽을 담당하는 원가 파트, 법인세와 관련된 세무 파트, 현금 흐름과 관련된 자금 파트 이렇게 넷으로 구성되어 있어요. 결국에는 모든 파트의 업무들을 수행하게 되시겠지만, 입사해서 처음에는 이 부분으로 커리어를 시작하고 싶다 하는 파트가 있을까요?
그 : 죄송합니다만 면접관님, 어떤어떤 파트가 있는지 다시 말씀해주시겠습니까?
면접관 2 : (말을 천천히 하며) 네, 의사 결정을 지원하는 경영지원 파트, 매출원가 쪽을 담당하는 원가 파트, 법인세와 관련된 세무 파트, 현금 흐름과 관련된 자금 파트 이렇게 넷입니다.
그 : (감이 잘 잡히질 않으나, 우선은 대답하기로 한다) 음, 저는 원가 파트에서 커리어를 시작하고 싶습니다. 현재 1번째 기업은 전염병 시기임에도 불구하고 매출이 상승하여 1조 클럽 가입을 눈앞에 두고 있습니다. 매출도 중요하지만, 이러한 때에 원가 관리도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1번째 기업의 원가를 관리하는데 기여하며, 매출 이후의 이익률까지 관여하는 원가 파트로 커리어를 시작하고 싶습니다.
면접관 2 : 면접자 2 씨는 어때요.
면접자 2 : 어, 네, 저도 원가 파트에 관심이 갑니다. 교회에서 회계 담당을 하면서, 돈에 대한... ...
그는 첫 번째로 답하며, 면접자 2는 그 다음이다. 그는 면접자 2가, 자신이 답하는 동안 답변을 구상할 수 있으므로 더 유리하다고 생각한다.
면접관 1 : 하얀 얼굴 씨, 학점이 낮은데 이유가 뭔가요.
그 : 맞습니다. 대학교 시절, 경영학이라는 전공이 실제 삶과 거리가 있다고 생각하여 집중하지 않았습니다. 대신, 바깥 활동을 많이 하고 호주로 워킹홀리데이도 다녀왔습니다. 호주에서 많은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전공 수업 시간에 배웠던 것들이 실제로 활용될 수도 있으리라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돌아와서는, 학점을 복구하지 않고 더 고급 전공을 최대한 많이 수강하고자 해서 학점이 낮습니다.
면접관 1 : (말없이 종이에 무언가 적는다)
면접관 2 : 하얀 얼굴 씨, 운동 대회에서 수상을 했네요? 이건 어떤 건가요.
그 : 해당 경험은, 군대 전역 이후 친구들과 함께 운동을 하며 짧은 시간 동안 성과를 낸 경험입니다. 당시 지역에서 주최하는 조그만 대회에 나가, 4명 중 2위를 했습니다. 첫 경기에서는 제가 상대를 넘어뜨려 한판승을 했습니다. 두 번째 경기에서는, 상대방이 다른 운동 유단자여서, 살짝 넘어진 뒤 굳히기로 패배했습니다. 1위를 하고 싶었는데 아쉬운 경험입니다.
면접관 2 : 허허... 자세하게 스포츠 중계를 해주시네요. 우리 회사는 스포츠 회사가 아닌데. 허허...
그 : 아, 감사합니다.
그는 이때 면접관 2의 반응이 무언가 꺼림칙했으나, 우선은 웃으며 넘긴다. 그냥 지나가듯 하는 말이겠거니, 하나하나 신경쓰는 것은 너무 과민반응이겠거니 생각하는 그다. 하지만 그의 감은 틀리지 않았던 듯싶다. 그는 이때부터 눈치를 챘어야 했다.
면접관 1 : 면접자 2 씨, 교회에서 회계 업무를 했다고 했는데, 어떤 걸 했나요?
면접자 2 : 네, 자금 출납을 비롯해서 여러... ...
면접관 3 : (처음으로 입을 연다) 하얀 얼굴 씨, 아까 1차 면접에서는 해외파 경쟁자들로 인해서 영업기획 직무로 변경된 것 같다고 하셨어요. 그렇다면, 2차 면접에서 탈락한 이유는 뭐라고 생각하시나요?
그 : 당연히, 제가 저의 강점을 제대로 보여드리지 못했던 것이 크다고 생각합니다. 당시 해외영업 직무에 초점을 맞추고 준비를 했기 때문에, 영업기획 직무 관련 질문을 받았을 때 특색 있는 답변을 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저의 강점을 제대로 보여드리지 못해 최종에서 탈락했다고 생각합니다.
면접관 4 : (갑작스럽게) 하얀 얼굴 씨, 1년 동안 취업 준비를 한 건가요?
그 : 네, 맞습니다.
면접관 4 : ...
그는 면접관 4가 꼬리 질문을 할 줄 알았는데, 면접관 4는 말이 없다. 그는 면접관 4가 기획팀장일 것이라고 추측한다.
면접관 2 : 음... 저희는 질문 다 했습니다. 면접관 4 님 질문하실 것 있으면 하세요.
면접관 4 : 네, 음... 여러분이 어떤 생각을 하고 기획 업무에 지원을 했는지 모르겠습니다. 기획 업무가 겉으로 보기엔 굉장히 멋있고 굉장할 것 같지만, 사실 모든 일이 그렇듯 지루하고 힘듭니다. 특히 기획 직무 같은 경우는, 10년 내내 책상에 앉아서 엑셀만 봅니다. 엑셀을 보면서, 거기에 적힌 숫자의 의미를 이끌어내야 하는 것이 기획 업무예요. 굉장히 지루하고 고된 일입니다. 면접자분들께서 이런 기획 직무를 잘 수행할 수 있는지 이야기해보세요.
그 : 네, 저는 코로나 이후로 독서를 한 경험이 있습니다. 올해 40여 권, 작년에는 77권을 독서했습니다. 혼자 독서실에 앉아 책만 보는 독서 활동도, 지루하고 힘들 때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러한 시기를 이겨냈고, 또 그렇게 지속한 독서 활동을 문서화하여 정리했습니다. 제가 독서한 책들이 어느 분류에 속하는지, 저는 어떤 분류의 책을 많이 읽었고 어떤 분류가 적은지, 또 어떤 분류를 재밌게 읽었는지 등의 정보를 도출할 수 있었습니다. 지속적으로 독서를 한 경험, 그리고 그 경험을 숫자로 정리하여 의미를 도출하고 새로운 방향을 이끌어낸 경험입니다. 이러한 독서 경험이, 면접관님께서 말씀하신 기획 직무와 통하는 지점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면접관 4 : 하얀 얼굴 씨, 코로나 이후로 독서를 시작했다는 말씀이죠?
그 : 네, 맞습니다.
면접관 4 : ... 면접자 2 씨.
면접자 2 : 네, 저는 청년과 관련하여 프로젝트를 기획한 경험이 있는데요, 해당 경험은... ...
면접관 4 : 알겠습니다. 잘 들었습니다. 저는 더 이상 질문 없습니다.
그는 면접관 4의 질문에 대한 자신의 답변이 살짝 아쉽다. 독서도 독서지만, 그가 정말 오랫동안 지속해온 활동은 바로 공놀이다. 그가 공놀이를 한지 어느덧 10년이 넘었다. 날이 더우나 추우나, 자전거를 타고 가서 혼자서라도 공을 던지고 왔던 그 경험까지도 언급했더라면 더 좋았을 것이라는 아쉬움이 남는다. 면접은 막바지에 다다르고 있다. 그는, 마지막 말을 시킬 때를 노린다.
면접관 2 : 그래요. 그럼 이제,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 있으면 하세요. 이번에는 면접자 2부터 해주세요.
면접자 2 : 네, 저는 말씀드린 것처럼 회계 업무를 하면서 숫자에 대한 감각을 익혔고, ... ...
그 : (아쉬움을 남기지 않고자 한다) 우선, 오늘 이렇게 면접에 불러주셔서 감사합니다. 아까 면접관 4님의 질문에 대해 답변드렸던 내용에 덧붙여 말씀을 드리고자 합니다. 지루하고 고될 수 있는 경영기획 직무 업무를 잘할 수 있느냐는 질문이었습니다. 저는 공놀이를 오랫동안 한 경험이 있습니다. 공놀이를
면접관 2 : (말을 끊으며) 아, 됐습니다. 우리 회사는 스포츠 회사가 아니니까. 오늘 이렇게 면접에 참석해줘서 감사합니다. 그럼, 이것으로 면접을 마치겠습니다. 수고했습니다.
면접자 2 : 감사합니다.
그 : 감사합니다.
화상회의 프로그램이 종료된다. 그는 뒷맛이 개운치 않다. 면접관 2의 반응이 계속 귓가에 맴돈다.
스포츠 중계를 해주시네요. 우리 회사는 스포츠 회사가 아닙니다.
그는 자신이, 너무 운동 이야기만 한 것인가 생각한다. 운동 이야기가 없진 않았지만, 스포츠 중계를 하는 것처럼 장황하고 열정적으로 운동에 대해서만 이야기하진 않았다. 그런데 면접관 2는, 무슨 연유에서인지 그를 운동만 아는 면접자로 인식한 듯하다. 그토록 고대하던 1번째 기업이니, 우선은 억지로라도 희망을 갖고자 하는 그다. 전달할 것은 전달했으니, 1차 면접은 합격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일주일 뒤, 면접 결과가 발표된다.
1차 면접 불합격
1년 전에는 최종 면접까지 갔었는데, 이번에는 1차 면접에서부터 고꾸라졌다. 그는 면접 상황을 아무리 생각해봐도, 어떻게 답변했어야 합격했을지 감이 잡히질 않는다. 면접관 2가 왜 자신에 대해 그런 왜곡된 인식을 갖고 있는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 그는 자신이 생각해냈던, 수많은 아부성 답변들을 떠올린다.
전염병 시기에 오히려 성장한 1번째 기업, 그런 1번째 기업과 마찬가지로 자신도 최종 탈락한 뒤 성장해서 돌아왔다. 이런 성장의 기회를 마련해준, 한 번의 탈락을 경험하게 해준 1번째 기업에게 감사하다. 사람이든 기업이든, 위기일 때 어떤 모습을 보이는지에서 그 진가를 볼 수 있다고 생각한다. 위기를 극복한 1번째 기업처럼, 그도 위기를 극복했다. 자신과 닮은 이 회사에서 일하고 싶다... ...
1년 동안 오매불망 1번째 기업만 바라봤다는 컨셉의 가면을 쓰고, 웃는 얼굴로 매달린 그다. 그렇게 했는데, 마지막 답변은 중간에 끊겨버렸고 1차 면접에서 탈락했다. 나름 구애의 표시를 했다고 생각했건만, 1번째 기업은 차갑게 그를 내친다. 탈락으로 슬프거나 우울하다기보다, 그 혼자 짝사랑마냥 1번째 기업을 특별하게 여기고 있었다는 생각에 무안하다.
1번째 기업을 향한 색안경이 벗겨지고, 낭만으로 포장했던 기억이 모두 건조하게 변한다. 그와는 맞지 않는 기업인가 보다. 그가 다시 1번째 기업에 지원하는 일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