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번째 기업, 43번째 면접

PT풀이, 건들거린다

by 하얀 얼굴 학생

회의실은 가로로 긴 모양이며, 가운데에는 하얀 테이블이 자리 잡고 있다. 면접자들은 테이블 건너편에 앉아있으며, 테이블과 맞닿은 좌측 벽면에는 모니터가 설치되어 있다. 그가 PT 답안을 저장한 노트북이 모니터와 연결되어, 모니터에 그의 PT 답변이 떠 있다.



33번째 기업, 경영혁신 직무 신입 면접


면접자 : 그 혼자


면접관 : 총 3명 (남자 2 / 여자 1)

좌측, 구릿빛 피부, 안경을 끼고 큰 눈, 머리는 약간 노란빛, 40대 초중반 남자 면접관 1

중앙, 하얀 피부, 안경을 끼고 조그만 실눈, 웃는 상이지만 눈매가 날카로운 50대 남자 면접관 2

우측, 긴 생머리, 안경을 꼈으며 내향적인 듯 보이는 30대 초반 여자 면접관 3



그 : 안녕하십니까!

면접관 1 :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먼저 PT 발표부터 시작하겠습니다. 옆쪽에 보시면 제출하신 답안지가 있습니다. 해당 답안 관련해서 5분 내외로 발표해주시면 됩니다.

그 : 네 알겠습니다. 안녕하십니까, XXX 전투 관련 PT 문제 답변 발표하겠습니다. 주어진 자료에 의하면, ㄱㄱㄱ장군은 병력과 장비 모두 불리한 상황입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적과 전투하며, 도합 00시간을 버텨야 하는 전투입니다.


저는 이 전투를 이기기 위한 중간 과제로, 4가지를 설정하였습니다. 병사들의 사기 진작, 장비 운용 교육, ... ... 해당 중간 과제를 실시하기 위하여, 또 4가지의 수행 과제들을 도출했습니다. 각각... ...


정리드리자면, 16가지의 과제들을 수행하여, 4가지의 중간 과제를 수행하고, 이를 바탕으로 도합 00시간을 버텨 전투에 승리할 수 있을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면접관 2 : 음... 발표해주신 내용은... 사실 이 XXX전투는 너무 유명해서 드라마로도 많이 제작이 되었어요. 저도 드라마를 봤고요.

그 : (면접관이 칭찬하는 줄 알고) 네, 해당 드라마 내용도 넣었습니다.


면접관 2 : 음... 하얀 얼굴 씨, KPI가 뭔지 아십니까.

그 : Key Performance Index, 핵심 성과 표지로 알고 있습니다.

면접관 2 : 지표, 지표입니다.

그 : 아 지표, 맞습니다.


면접관 2 : 하얀 얼굴 씨, 대학교 원가회계 수업에서, BSC라고 안 들어봤어요?

그 : BSC... 말씀이십니까?

면접관 2 : 왜 원가회계 수업에서, 재무, 고객, 프로세스, 혁신 관점에서 균형 성과 관리 안 배웠어요?

그 : 네, 처음 듣습니다.

면접관 2 : 음. 관리회계가 아니라 원가회계라서 넘어갔나. 관리회계에서는 상당히 많이 쓰는 기법입니다.

그 : 아, 네.


그는 자신의 PT 풀이가 망했음을 깨닫는다.



면접관 1 : 우선은, 면접 진행하겠습니다. 하얀 얼굴 씨, 자기소개 부탁드려요.

그 : 안녕하십니까! 33번째 기업 경영혁신 직무에 지원한 지원자, 하.얀.얼.굴. 입니다! 저는 2가지 강점을 통해 저를 간략하게 소개하겠습니다. 첫 번째, 실행력입니다. 저는 호주 워킹홀리데이에서 3가지 목표를 달성했습니다. ... 두 번째, 친화력입니다. 저는 취미 생활인 공놀이를 통해 친화력을 길렀습니다. 공놀이를 하며 다양한 사람들과 팀을 이루며 친화력을 길렀다고 말씀드리겠습니다. ... 이상 두 가지 강점, 강한 실행력과 친화력을 바탕으로 33번째 기업에 기여하고자 하는 지원자 '하얀 얼굴'입니다. 감사합니다!



면접관 2 : 하얀 얼굴 씨, 기획 직무에서 중요한 것이 무엇이라고 생각하고, 관련된 본인의 경험을 말해보세요.

그 : 기획 직무에서 중요한 것은, 방향 설정과 소통이라고 생각합니다. 기획이란 직무는, 가고자 하는 방향을 설정해서 다른 이들에게 공유하고 이끄는 직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취미인 공놀이를 통해, 기획 직무와 비슷한 경험을 조금이나마 했다고 말씀드리겠습니다. 5대 5 공놀이 경기에서 수비를 할 때, 공격을 해오는 상대방의 배치에 따라 수비 대형이 시시각각 변합니다. 5명이니, 코트를 반으로 가르면 상대방 팀이 더 많은 절반이 있습니다. 저는 가운데 포지션을 맡아, 다른 인원들보다 볼 수 있는 반경이 넓습니다. 상대방 팀이 어떻게 포진해있는지 같은 팀원들에게 이야기해주고, 상대방 공격수가 더 많은 쪽으로 수비 대형이 기울게끔 조율합니다. 상대방의 움직임에 따라, 수비 대형도 그에 맞춰 왔다갔다 움직이며 대응합니다. 이러한 경험이, 기획 직무와 통하는 지점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면접관 2 : (불만족스러운 목소리로) 아니, 지금 본인의 경험을 말씀해주시긴 했는데 그게 아니라. 그러니까, 회사에서 기획이라고 함은 업무들 간의 우선순위를 정하고, 책임과 경계를 설정하는 게 핵심입니다. 방금 답변 말고, 제가 이야기한 관점에서의 기획 직무 관련된 경험이 있나요.


돌이켜 생각해보면, 면접관 2는 그에게 기회를 한번 더 준 듯하다. 그는 자신이 답변했던 방향성이 틀렸다는 점에 아찔했으나, 호흡을 가다듬고 빠르게 답변을 구상한다. 다행히도 떠오르는 대안이 있다.


그 : 아, 네. 음, 이번에도 운동 이야기로 답변드려도 될까요?

면접관 2 : (무표정으로) 해보세요.

그 : 우선순위 설정, 책임과 경계 관련하여서도... 비슷한 경험이 있습니다. 제가 공놀이 동아리 회장을 맡았던 때, 부원들과 의견이 일치하지 않았던 적이 있습니다. 부원들은 즐겁게 운동하고자 했고, 저는 운동 동아리이니 성과를 내고자 했습니다. 회장이긴 하나, 동아리를 저 혼자 이끌 수는 없으니 초창기 동아리 운영이 약간 삐걱거렸습니다. 결과적으로 부원들을 설득할 수 있었던 계기는, 리그에서 경쟁팀에게 역전패를 당했던 날입니다. 역전패를 당하고 뒤풀이 회식 자리를 가졌을 때, 분위기가 많이 침울했습니다. 저는 그 자리에서 부원들에게 이야기했습니다.

'오늘처럼 경기에 지더라도 즐거울 수 있다면, 부원들의 의견을 따르겠다. 하지만 지면 즐길 수가 없지 않느냐. 그렇다면 결국 잘하는 경기, 이기는 경기를 추구해야 즐길 수도 있는 것이 아니겠느냐.'

이날 제 의견에 동의하는 부원들이 생긴 것 같습니다. 이후, 부원들의 동의 하에 동아리를 원활하게 이끌 수 있었습니다. 리그 상위팀의 훈련 및 경기를 참관하고, 적용할 수 있는 것들을 동아리 연습 시간에 접목했습니다. 결과적으로, 17개 팀 중 4위의 성적을 거두었습니다. 면접관님께서 말씀하신, 우선순위를 정하고 책임과 경계를 설정해본 경험이라고 말씀드리겠습니다.

면접관 2 : (아무 말 없이 무언가를 적는다)



면접관 1 : 하얀 얼굴 씨, 호주에서 목표를 달성했다고 했는데, 구체적으로 숫자로 이야기해줄 수 있나요?

그 : 영어, 경험, 돈 세 가지 측면에서 목표를 달성했습니다. 숫자로 말씀드리기 가장 쉬운 것은 아무래도 돈이 아닐까 싶습니다. 저는 1만 불을 저축해서 돌아오겠다는 목표를 설정했습니다. 1년은 52주이니, 정착 기간 2주를 제외하고 50주입니다. 1만 불을 50으로 나누면, 일주일에 200불씩 저축할 경우 목표를 달성할 수 있다는 계산이 나옵니다. 매주 가계부를 꼼꼼히 적으며, 목표 달성도를 파악했습니다.

영어의 경우, 보통 해외 유학 등을 다녀와서 영어 점수가 10% 오르면 성공한 유학이라고들 합니다. 제가 아마 워킹홀리데이 이전 토익 점수가 800점대였을 텐데, 돌아와서 940점을 취득했습니다.

면접관 1 : 오, 그 정도면 준수하네요.

그 : 네, 그리고 오픽 성적도 받았으니, 목표를 달성했다 말씀드리겠습니다. 경험 측면에서는, 10개 이상의 직업을 경험하고 많은 도시를 여행했습니다... ...


면접관 1 : 하얀 얼굴 씨, 우리 회사에도 호주 법인이 있는데, 해당 사실을 인지하고 있나요?

그 : 네, 알고 있습니다. 호주 중앙 쪽에 위치하는 법인으로, 주로 주택건설에 쓰이는 나무와 데크에 쓰이는 나무를 생산하는 것으로 이해했습니다. 제가 혼자 차를 타고 여행할 때 근방을 지난 적이 있는데, 방향이 조금 달랐습니다. 방향이 같았으면 한 번 볼 수도 있었을 것이라 생각되어 아쉬웠습니다.

면접관 2 : 외진 곳이라 보기 힘들 겁니다.

그 : (면접관 2에게 점수를 얻고자) 면접관님께서도 가보신 적이 있으신가요?

면접관 2 : 그럼요. 출장으로 몇 번 간 적 있죠.

그 : 멜버른 공항에서 내리셔서, 차로 이동하시나요?

면접관 2 : 그렇죠. 해당 지역에는 공항이 따로 없으니. 차 타고 한 2시간? 3시간 들어가야 합니다.



면접관 1: 하얀 얼굴 씨, 지금 이 자리에서 한번, 본인의 영어 실력을 보여주세요. 본인이 원하는 주제로, 자유롭게 이야기하면서 영어 실력을 뽐내주시면 됩니다.

그 : K, I wanna talk about my working holiday. I did working holiday from... (자유롭게 뽐내라. 오히려 준비하지 못한 질문이라, 그는 워킹홀리데이 내용으로 대체한다)


면접관 3 : (그의 이력서에 눈을 고정한 채, 조그만 목소리로) 하얀 얼굴 씨... 희망 연봉이 높은데, 그 이유가 있을까요?

그 : 해당 연봉은, 제가 그만큼의 가치를 가진 인재가 되겠다는 포부를 나타낸 것이라고 말씀드리겠습니다. 저는 실질적인 것, 실물 경제를 동경해왔습니다. 그런데 제 친구 중 금융권에 취업한 친구가 있는데, 초봉이 6000만 원이었습니다. 물론 금융도 중요하지만, 저는 그 기반이 되는 실물 경제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실물 경제에 종사하시는 분들도, 금융업보다 더 많은 가치를 창출한다는 생각에 희망 연봉을 그렇게 적었습니다. 저의 포부를 나타낸 숫자입니다.


면접관 1 : (커다란 눈으로 그를 바라보며) 하얀 얼굴 씨, 지금 답변이나 말하시는 것을 보면, 영업을 잘할 것 같은데, 어떻게 생각합니까.

그 : 제가 경영혁신 직무를 지원했지만, 영업 직무도 매력적인 직무라고 생각합니다. 면접관님들이나 회사에서 보시기에, 저의 강점이 영업 직무에 더 적합하다고 판단하신다면, 그 판단을 따르겠습니다. 영업 직무도 좋습니다.



면접관 1 : (다른 면접관들에게) 네, 더 질문 있으실까요?

면접관 2 : 없습니다.

면접관 3 : 없습니다.


면접관 1 : 네 그럼, 마지막으로 할 말이나 궁금한 점 있으시면 질문해주시고 면접 마치겠습니다.

그 : 네, 우선 전염병 시기에도 이렇게 면접을 진행해주셔서 감사합니다. 33번째 기업 면접 준비를 하면서, 제 자신에 대해서도 돌아볼 수 있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면접관님들께서, 오늘 면접에서 보시기에 제가 고칠 점이나 부족한 점이 있다면 무엇인지 말씀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면접관 2 : (당돌한 질문에 약간 당황한 듯이) 어... 음... 아까 PT 발표할 때, 서서 발표하는데 약간 건들거리는 경향이 있어요. 몸을 계속해서 앞뒤로 흔들어서, 건들거린다는 느낌이 들더군요. 몸을 흔들지 말고, 중심을 잡고 가만히 서 있는 게 좋습니다. 해당 부분은 만약 입사하게 되더라도 계속해서 지적받을 만한 사항입니다.

그 : (전혀 예상 밖의 답변이다) 아, 감사합니다. 혹시, 제가 앉아서 이야기할 때도 그렇게 느끼셨습니까?

면접관 2 : 앉아있을 때는 아래가 보이지 않으니 저는 모르죠. 본인이 일어서서 말할 때 앞뒤로 건들거리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 : 아, 감사합니다. 고치도록 하겠습니다.


면접관 1 : 네 그럼, 이상으로 면접을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그 : 감사합니다!




면접이 끝나고, 그는 인사팀 직원으로부터 면접비 봉투를 받는다. 대기실에는 아직 한 명의 면접자가 차례를 기다리고 있다. 아마 2시간 정도 기다렸으리라.


빠르게 짐을 챙겨 밖으로 나온다. 연말, 날씨가 쌀쌀하다. 콧김을 내뿜으며 지하철역으로 향한다. 면접관들 중 면접관 2가 핵심일 텐데, 그는 면접관 2에게 썩 좋은 인상을 남기지 못했다. PT 발표도 그렇고, KPI와 BSC 질문도 제대로 답변하지 못했고, 기획 직무 관련 경험도 한 번 퇴짜를 맞았고, 더더군다나 건들거리는 인상을 풍긴다는 피드백까지 받았다. 이미지를 뒤집기 위해 일부러 면접관 2에게 질문까지 하며 살갑게 굴었지만, 효과가 있었을지는 미지수다. 그는 이번 면접을 죽 쒔다고 생각한다.


허탈하긴 하지만, 면접이 끝나 후련하기도 하다. 33번째 기업 관련된 정보는 머릿속에서 지운다. 사실 그에게는, 곧바로 참석해야 하는 면접이 하나 더 있다. 지하철에 탑승한 뒤, 그는 숨겨두었던 면접 준비 자료를 꺼낸다. 혹여나 33번째 기업 직원에게 들키지는 않을까, 가방 깊숙이 숨겨두었던 34번째 기업의 면접 준비 자료다.



지하철을 타고 이동하는 동안, 그는 33번째 기업형으로 설정했던 뇌를 포맷하고 34번째 기업형으로 구축하고자 노력한다. 억지로 잊으려 억지로 외우려 노력하며, 그는 34번째 기업으로 향한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33번째 기업 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