ㄱ그룹, EPC, 턴키
잠시 한숨을 돌렸지만, 일주일도 채 되지 않아 면접이 또 있다. 36번째 기업이다. 36번째 기업은 건설업을 영위하며, 한국의 대표적인 재벌인 'ㄱ그룹'에 속해 있다. 약 9개월 전, 그는 ㄱ그룹 계열사 3곳(17,18,19번째 기업)의 면접을 동시에 준비했었다. 'ㄱ그룹'의 중심 계열사 세 곳을 준비하며, 그는 이번 기회에 끝내겠다고 다짐했었다. 하지만 전부 탈락했고, 대기업과는 인연이 없다고 생각했다. 36번째 기업이 서류 합격 통보를 날리면서, 그는 또다시 'ㄱ그룹'과 마주한다.
그는 36번째 기업 사업원가관리 직무에 지원했다. 지원할 때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건설사 채용 공고에서 그가 지원할 수 있는 범위가 제한적이다. 설계 등 이공계는 직무는 지원이 불가하다. 그가 지원할 수 있는 영업(기술영업은 불가하다), 그리고 지원 직무다.
대기업답게 36번째 기업의 매출은 조 단위이며, 한국 내 건설사 도급순위(시공능력평가)에서도 상위권을 차지한다.
엄밀히 따지자면, 'ㄱ그룹'의 건설사는 17번째 기업이다. 사명에도 대놓고 '건설'이 들어간다. 그런데 36번째 기업도 분류는 건설업으로 되어 있다. 36번째 기업의 사명에는 '엔지니어링'이 들어간다. 36번째 기업과 17번째 기업은 사옥도 나란히 붙어 있다.
그가 향후 면접 준비를 하며 알게 되는 사실이지만 미리 서술하자면, 보통 건설업을 EPC라고 부른다.
E : Engineering (설계)
P : Procurement (구매, 원자재 조달)
C : Construction (건설, 시공)
건설업을 영위하는 회사 홈페이지를 들어가 보면, 자신들을 EPC 회사라고 홍보하는 문구가 많다. EPC 회사라는 말은, 설계 단계부터 시작해서 재료 수급과 시공까지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종합건설사라는 뜻이다. 당연하게도, EPC 역량이 없는 건설사는 EPC에 비해 이익률이 낮다. 건물을 처음부터 끝까지 혼자서 건설하는 것이, 중간중간 다른 회사를 껴서 같이 일하는 것보다 이윤이 많이 남을 테니 말이다.
조그만 건설사들은 EPC 중 하나, 또는 두 가지만 가능할 수도 있다. 설계(E)만 한다던지, 설계와 자재 수급까지만 담당(EP)하고 시공은 업체에 맡긴다던지, 아니면 아예 시공(C)만 전문적으로 한다던지 하는 식이다.
조그마한 건설사들이라면 그렇다. 하지만 'ㄱ그룹'의 건설업을 담당하는 17번째 기업과 36번째 기업은 거대하다. 두 기업 모두 매출이 조 단위를 쉽게 넘어가는 거대한 건설사이며, 업력이 쌓인 만큼 EPC 역량을 모두 갖추고 있다. 그는 17번째 기업과 36번째 기업을 비교하며, 둘 다 EPC(종합건설사)이지만 건설 부문과 핵심 역량이 조금 다르다고 해석한다.
36번째 기업 : 공식적으로 설계(엔지니어링) 중심, 플랜트/비주거 부문 강점
17번째 기업 : 공식적으로 시공(건설) 중심, 아파트/토목 등 주거 부문 강점
굳이 비교를 위해 나눈 것이지, 실상은 경계가 조금 흐릿하다. 36번째 기업도 주거 부문 공사를 수주하며, 17번째 기업도 비주거 부문 공사를 수주한다.
EPC 역량을 갖춘 종합건설사의 자신감을 보여주는 입찰 형태가 있다. Turn key(턴키) 방식이라고 한다. 자동차 구매 시, 차키를 꼽고 돌리기만 하면 곧바로 자동차를 이용할 수 있다. 키만 돌리면 이용할 수 있는 자동차처럼, 건설물을 즉시 이용이 가능한 상태로 넘겨주는 형태가 바로 턴키 방식이다. 주로 발전소나 플랜트 계약에서 많이 사용된다고 하는데, 시설물 최종 테스트 및 시연 운전까지 완료하여 가동 직전의 상태로 인도하는 방식이다.
이외에도 건설업은 회계 처리, 원가 인식 등이 다른 산업군과 약간 차이를 보이며 특유의 용어가 있다. 향후 그는 36번째 기업 면접 준비를 하며, 건설업 특유의 용어와 내용들을 검색하고 외우기 시작한다. 서류를 막 합격한 시점의 일은 아니다. 그가 서류 합격한 자기소개서는 아래와 같다.
1. 회사 선택 기준, 왜 36번째 기업인지
1) 산업군, 실물 경제에 관심 많다
2) 매출액, 36번째 기업 매출액이 크다
3) 현재 기업이 채용하고 있는 '사업원가관리' 직무에서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
2. 36번째 기업 직무분야에 지원한 이유와 본인이 적합한 이유
1) 숫자의 중요성
경영학과 공부하며 숫자 수업을 많이 들었다
2) 읽은 도서 목록 작성 경험
정리와 분석 경험이, 직무 수행에 도움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