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번째 기업은 설립된 지 몇 년 되지 않은 신생 기업이며, 매출액은 2000억에 조금 못 미치는 규모다. 매출액이 그의 마지노선인 1000억을 넘으니, 그는 우선 이력서부터 들이밀었다. 그가 지원한 직무는 '전략기획' 직무다.
아무렇게나 밀어넣은 이력서가 합격하여, 그는 면접 준비를 시작한다. 대기업인 36번째 기업에 집중하느라, 면접 자료를 꼼꼼히 만들지는 못한다. 다행인 점은, 설립된 지 얼마 되지 않아 자료가 얼마 없다는 점이다. 37번째 기업 홈페이지와 채용 공고를 보니, 37번째 기업은 자신들을 'Value-UP 전문 플랫폼'이라고 홍보한다. 밸류업 전문 플랫폼, 이름이 꽤 거창하다. 설명을 읽어보니, 경영악화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자산들(부동산)을 전문적인 금융 구조화와 통합 관리를 접목해 정상화하여 자산 가치를 증대시키고 발전시키는 것이라고 한다. 읽으면서 그는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가 떠오른다. 망해가는 허름한 건물을 구입한 뒤, 깔끔하게 청소하고 리모델링하여 고급 호텔로 매각하는 것과 비슷하다고 생각한다.
37번째 기업은 Value-Up이라는 이름 하에 다양한 사업을 하고 있다. 회사 홈페이지를 보니 가장 대표적인 사업이 인프라/골프장/기숙사를 운영하고 관리하는 것인데, 이를 O&M(Operating & Management)이라고 적어 놓았다. 인프라/골프장/기숙사에 더해, 친환경을 위해 폐기물 자원 순환에도 손을 대고 있다고 한다. 그는 37번째 기업의 방향성과 사업부문에 잘 공감이 가지 않는다. 사용하는 용어들도, 괜히 어렵고 거창하게 써놓은 것은 아닌가 생각하는 그다.
어쨌든 그는 물 들어올 때 열심히 노를 젓기로 했으니, 면접 당일 37번째 기업 본사에 도착한다. 37번째 기업은 서울 한복판 건물의 중간층에 자리를 잡고 있다. 건물 자체도 꽤 번쩍번쩍한데, 37번째 기업 내부는 더 번쩍번쩍하다. 문을 들어서는 순간 바깥 풍경이 보이며, 노란빛을 내뿜는 커다란 샹들리에 같은 것이 걸려있다. 이 샹들리에 밑으로, 직원들의 복지를 위한 바(bar) 같은 것이 설치되어 있으며 여기저기 소파들이 있다. 그는 이 공간을 보며 부럽다기보다는, 화려함이 너무 과해서 사무 공간과 대비가 심하다고 느낀다.
대기실은 커다란 강의실 같은 공간이다. 전면부 커다란 TV에는, 37번째 기업을 홍보하는 영상이 반복 재생으로 틀어져 있다. 대기실 내의 책상 자리는 거의 50개가 넘는 듯하며, 대기자도 10명 이상으로 상당히 많다. 그가 도착하고 나서 15분 정도 지나서야, 인사팀 직원1이 면접자 5명을 인솔해서 들어온다. 방금 면접을 끝마친 조인 듯하다.
인사팀 직원1 : 네, 면접 보시느라 수고하셨어요. 다음, ㄱㄱㄱ 씨, ㄴㄴㄴ씨, ㄷㄷㄷ씨, ㄹㄹㄹ씨, ㅁㅁㅁ씨, 면접장으로 이동하실게요. (곧바로 인솔해서 나간다)
인사팀 직원2 : (면접을 끝마친 면접자들에게) 네, 수고하셨습니다. 이제 귀가하시면 됩니다.
면접자 5명이 나갔음에도, 대기실에는 아직도 10명이 훌쩍 넘는 인원들이 남아있다. 인사팀 직원들은 바쁜지 들락날락하며 정신이 없다. 인솔을 끝낸 뒤에야 조금 여유가 생겼는지, 인사팀 직원1이 돌아온다. 인사팀 직원1은 30대 후반 즈음으로 보이는 여성으로, 정장을 입었으며 카리스마가 풍긴다. 인사팀 직원2는 30대 초중반, 부하 직원으로 보이며 남자다.
인사팀 직원 1 : 안녕하세요, 오늘 면접에 참석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죄송한 말씀이지만, 현재 면접 시간이 길어져서 예정보다 시간이 조금 지연되고 있어요. 이 점 양해 부탁드립니다. ㅂㅂㅂ씨, ㅅㅅㅅ씨, ㅇㅇㅇ씨, ㅈㅈㅈ씨, ㅊㅊㅊ씨, 오래 기다리셨죠? 이번 면접 끝나면 바로 면접 진행할 테니 조금만 더 대기 부탁드립니다.
면접자 일동 : 네.
바로 전날 면접을 봤던 곳이 대기업이었으니, 그는 37번째 기업 면접에 대해서는 상대적으로 부담이 덜하다. 부실한 1장짜리 양면 면접 자료를 팔랑이며, 핸드폰으로 재무제표를 보아가며 면접 자료에 펜을 끄적인다. 잠시 뉴스 기사를 검색하는데, 37번째 기업 CEO(창업자)의 인터뷰가 있다.
해당 인터뷰를 보니, 37번째 기업 CEO는 원래 대기업 건설사에 있었다고 한다. 공교롭게도 그 대기업이 17번째 기업이다. 건설사에서 일하다가, 시설을 운영하고 관리하는 O&M 부문에 가능성이 보여 퇴사하고 창업을 했다고 한다. 17번째 기업도 그렇고, 36번째 기업도 그렇고, 37번째 기업도, 그는 요즘 ㄱ그룹과 연관 있는 회사들을 많이 마주친다.
37번째 기업은 업력이 별로 되지 않지만, 나름 인프라와 건설 부문을 영위한다. 더군다나 CEO는 대기업 출신이다. 그래서인지, 골프장에서 골프를 치는 기사가 많다. 무슨무슨 골프장, 37번째 기업이 관리하는 골프장에서 스윙을 하는 대표의 모습, 리본 끈을 가위로 자르는 행사를 하는 모습, 37번째 기업 내부 화려한 샹들리에와 바(bar)를 소개하는 기사 등이 많다. 그는 잘 모르겠다. 너무 겉치레만 중시하는 것은 아닌가. 자꾸 삐딱하게만 보는 그다.
이런저런 기사와 재무제표를 검색한다. 인사팀 직원1의 말을 듣고, 그는 면접이 30분 정도 밀릴 것이리라 생각했다. 하지만 면접은, 메일로 안내받았던 시간보다 1시간 이상 뒤로 밀린다. 검색으로 보이는 기사도 그렇고, 1시간이나 밀리는 것도 그렇고, 그는 37번째 기업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그런데도 면접 대기실에는 약 15명 정도의 인원들이 있다. 회사 위치가 좋아서인가 의문스러운 그다.
오랜 기다림 끝에, 인사팀 직원 1이 호명한다.
인사팀 직원 1 : 면접자 1씨, 면접자 2씨, 하얀 얼굴 씨, 면접자 4씨, 면접자 5씨, 지금 면접장으로 이동하실게요.
그를 포함한, 호명된 면접자들이 일렬로 서서 인사팀 직원을 따라간다. 면접 대기실에서 나와, 중앙의 화려한 샹들리에와 Bar를 지나, 커다란 나무 문 앞에 당도한다. 인사팀 직원이 노크를 하고, 면접자들이 안으로 들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