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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번째 기업, 2번째 방문

인사팀 직원

by 하얀 얼굴 학생

가장 큰 파도를 넘기긴 했지만, 아직도 그에게는 몇몇 면접이 남아있다. 33번째 기업 최종 면접 바로 다음날 하루 동안, 그에게는 2개의 면접이 연달아 예정되어 있다. 그리고 그중 하나는 최종 면접이다. 노를 열심히 저으니, 그도 최종 면접을 이틀 연속해서 보는구나. 그는 자신감에 한껏 고취된다.


최종 면접이긴 하나, 그는 39번째 기업에 그다지 큰 관심을 두진 않는다. 종합건설도 아닌 통신 건설사에, 직무도 재경 직무다. 1차 면접 때 나름 말을 잘했다고 생각했는데 적중했나 보다. 33번째 기업 신입사원이 될 생각에 정신이 팔려있긴 하나, 그래도 최종 면접 안내 메일이 왔으니 참석하고자 하는 그다.


39번째 기업은, 1차 면접 합격과 동시에 인성 검사 메일을 보내왔다. 수십 개 기업의 채용 전형을 경험한 그는, 이런 식으로 면접 이후에 진행하는 인성이나 적성검사는 형식적인 절차일 가능성이 높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정말 변별력을 갖는 인적성검사라면, 서류 직후 실시하여 면접 인원들부터 걸러내는 것이 맞다. 그의 예상대로 39번째 기업이 인성검사는 간단한 인성 질문 위주였으며, 그는 무난하게 합격했다.



1차 면접 때처럼, 2층에 위치한 지하철역에 내려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내려간다. 가장 고대하던 면접이 끝나, 39번째 기업 최종 면접에 참석하는 그의 마음은 가볍다. 하지만 이날은 일정이 많아 머리가 조금 복잡하다. 39번째 기업 최종 면접은 오전 일찍 이루어지며, 점심 즈음 또 다른 면접이 있다. 면접이 모두 끝나면, 그는 연인을 만나기로 했다. 동선도 그렇고 시간도 그렇고, 나름 신경 써야 할 것이 많다.


39번째 기업에 도착하여, 저번처럼 지하로 내려간다. 지난번과 같은, 얇은 테 안경의 목소리 좋은 인사팀 직원이 그를 맞이한다. 면접 대기실도 똑같을 줄 알았는데, 지난번 1차 면접을 봤던 면접실이 이번에는 대기실이다. 그를 포함해서 5명 정도의 면접자가 대기하고 있다.



준비해온 면접 자료를 훑으며 호흡을 가다듬고 있던 때, 인사팀 직원이 슬금슬금 이야기를 시작한다. 면접자들의 긴장을 풀어주려는 듯하다.


인사팀 직원 : 네, 반갑습니다. 1차 면접 때 뵀으니, 다들 저를 아실 텐데요. 저는 인사팀 직원 AAA라고 합니다. 안내받으신 대로, 오늘 최종 면접 진행될 예정입니다. 아직 시간이 조금 남았네요. 지금 도착하신 분들은, 재경 직무랑 법무 직무 면접자들이 섞여 있으시네요. 면접은 재경 직무 네 분이 먼저 진행될 겁니다. 궁금하신 것 있으면 편하게 물어보세요.


그 : 혹시, 몇 명이나 채용하나요? (기억이 정확하지 않다)

인사팀 직원 : 재경 직무의 경우, 한 명 채용으로 전달받았습니다. 하지만 면접을 보시다가, 마음에 드는 인원이 있으면 더 채용할 수도 있을 것 같네요.


그 : 39번째 기업이 지금 건설과 IT를 모두 사업하고 있는데, 매출 비중이 어느 정도 되나요?

인사팀 직원 : 음, 6대 4 정도 됩니다. 원래는 건설이 훨씬 컸는데, 지금 IT사업부가 예전에 비해 많이 커졌어요. 곧 있으면 IT가 더 커지지 않을까 싶기도 합니다. 재경 직무를 지원하신 분들이니, 아마 저희 회사 매출원가명세서를 보셨을 텐데요. 매출원가명세서를 보시면... ...


그는 인사팀 직원이 말한 '매출원가명세서'라는 단어를 듣고 속으로 뜨끔한다. 재무제표를 몇 번이고 봤던 그이지만, '매출원가명세서'라는 단어는 본 적이 없다. 최종면접 직전에 핸드폰으로 검색하기엔 늦은 감이 있다.



그가 물꼬를 트자, 다른 면접자들도 질문을 한다.

면접자 X : 혹시, 법무 직무는 어떤 일을 하나요?

인사팀 직원 : 법무 직무 지원하셨나요?

면접자 X : 네.

인사팀 직원 : 만약 합격하시게 되면, 저랑 같이 일을 하실 텐데요. 회사의 전반적인 법무 업무를 담당합니다. ... ...



목소리가 좋은 인사팀 직원은, 시계를 잠깐 보더니 이야기를 이어나간다.


인사팀 직원 : 음... 이건 제가 인사팀 직원으로서도 그렇지만, 그냥 여러분보다 나이가 조금 많은 형으로써, 그리고 사회생활을 조금 더 일찍 시작한 사람으로서 가볍게 이야기하는 겁니다. 가볍게 들어주시면 됩니다. 저는 20XX년에 이 회사에 입사했고, 지금 대리예요. 대학교에서는 법 쪽을 공부했습니다.

면접자 X : 회사에도 법무 직무로 지원하셨나요?

인사팀 직원 : 아, 저는 처음에는 외주팀으로 지원하고 입사했습니다. 법 쪽 공부를 하다 보니, 기업에서 외주를 주고 관리하는 등이 어떻게 이뤄지는지 궁금해지더라고요. 그래서 외주팀으로 입사해서 한 1년? 정도 일하다가, 인사 쪽에서 제안이 와서 지금은 이렇게 인사 업무를 하고 있습니다.


인사팀 직원이 먼저 개인적인 이야기를 꺼내자, 그도 인사팀 직원에 대한 경계심이 약간 허물어진다.


인사팀 직원 : 지금 여기 계신 분들은, 서류부터 시작해서 1차 면접에 인성검사까지 통과한, 다들 검증받은 분들이에요. 이번에 저희가 채용 공고 올리고서 받은 이력서만 1000 단위가 넘어요. 지금 재경 직무 분들은, 이 자리에 네 분 오셨는데, 자세히 말씀드릴 수는 없지만 인당 200대 1의 경쟁을 뚫고 지금 이 자리에 계신 겁니다. 그러니까 자신감을 가지시고, 본인 모습 그대로 하고 싶은 이야기는 다 하고 오시면 됩니다. 그렇게 해야 후회가 없더라고요.



수십 번의 면접을 보고 수십 명의 인사팀 직원을 만났지만, 이런 식의 이야기를 듣는 것은 처음이다. 지금껏 만났던 인사팀 직원들에 비해 나이와 경력이 있는, 숙련된 직원이라 조금 더 깊은 이야기가 나온 것이리라.


인사팀 직원 : 시간이 다 됐네요. 재경 직무 지원자분들, 면접 보러 지금 이동하실게요. ㄱㄱㄱ씨, 하얀 얼굴 씨, ㄷㄷㄷ씨, ㄹㄹㄹ씨, 짐은 여기 두고 따라오시면 됩니다.



인사팀 직원의 뒤를 따라, 엘리베이터를 타고 건물 상층부로 올라간다. 면접장은 사무 공간 내부의 대회의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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