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유 모를 가려움
가려움은 중학교 입학을 기점으로 더욱 심해졌다. 초등학교 때는 가려움이 간헐적으로 찾아왔기 때문에, 긁어서 상처가 나더라도 아무는 시간이 주어졌다. 하지만 중학교에 들어서면서부터, '가려움'이라는 증상이 시도 때도 없이 그의 몸을 기어다니기 시작한다. 그는 시도 때도 없이 몸을 긁었고, 아물 틈이 없었으므로 점차 피와 진물을 보는 날이 많아졌다.
그가 어머니와 함께 피부과를 가면, 항상 진단명은 '아토피'였다. 아토피성 피부염. 처음 들었을 때부터 그는 아토피라는 이 단어 자체가 생소하면서도 정감이 가지 않았다. 그의 몸을 살펴본 의사들은 하나같이 아토피라고 이야기했지만, 뒤에 붙는 말은 제각각이었다. 하지만 그중 명쾌하게 진단한 경우는 없었던 것 같다. 그래서 그 원인을 찾고자 그토록 수많은 병원들을, 종래에는 대학 병원까지 찾아갔으리라.
아토피성 피부염입니다.
아토피입니다. 조금 심하네요.
스트레스가 원인입니다.
혹시 아기 때 태열이 있었나요? 태열이나 건선이 아토피로 발전한 걸 수도 있어요.
집먼지 진드기가 원인입니다. 새집 증후군, 석면 가루나 얼마 안 된 페인트도 안 좋아요.
먹는 것도 조심하셔야 합니다. 지방, 기름진 것, 고기는 피하세요. (어린 그에게, 고기를 피하라는 말은 청천벽력같이 들렸다)
고등어 같은 등푸른 생선이 좋고, 채소랑 견과류를 많이 먹어야 합니다.
조심해야 할 것만 많고, 증상의 근본 원인은 명확하게 설명이 되지 않는다. 병원을 다녀와서 의사들이 한 이야기를 전하면, 그의 아버지는 항상 비슷한 반응을 보였다.
- 스트레스가 원인이라는 건, 결국 이유가 뭔지 모른다는 소리야
스트레스, 단어 자체도 불명확하다. 무엇보다도, 그에게 스트레스를 주는 요인 중 가장 큰 것은 바로 이 아토피라는 놈이다. 스트레스 때문에 가려운 것이라는데, 그가 지금 느끼는 스트레스는 가려움에서 기인한 것이다. 뫼비우스의 띠처럼 계속해서 도는, 망가진 악순환인가. 애시당초 처음에는 왜 가려웠던 것인가.
스트레스를 받으면 안 된다고 했지만, 병원을 바꿔가며 이곳저곳 들를 때마다 하지 말라는 것이 늘어난다. 가려운 것만 해도 이미 짜증이 차고 넘치는데, 고기도 먹지 말고 이건 어쩌고 저건 어쩌랜다. 그의 타고난 천성이 그리 유순했던 것 같지는 않다. 하지만 아토피라는 가려움이 따라다니는 시점부터, 어린 그의 천성은 더욱 삐딱하게 엇나간 것 같다. 동시에, 피해의식과 자기연민도 생겨난 듯하다.
그가 아토피에 걸렸던 때는, 나름 아토피가 성행하던 시기다. 아토피를 앓던 인구가 무시할 수 없는 정도였나 보다. 신의 저주이니 뭐니 하며 의학 다큐멘터리도 나오고, 무슨무슨 연고와 치료법 등 꽤 다양한 연구가 진행됐다. 시골 가서 살면 낫는다느니, 뉴질랜드나 유럽 등 외국으로 이민을 떠났더니 깨끗하게 나았다느니, 산업화로 인해 오염된 물과 공기가 문제인 것 같다느니 등 말이 많아졌다. 새로 방문하는 병원의 의사들도, 아토피라는 녀석이 가려움을 유발하는 매커니즘을 점점 설득력 있고 친절하게 알려주기 시작했다.
우리 몸에 면역 체계가 있어요. 아토피성 피부염이라는 건, 알 수 없는 원인으로 인해 우리 몸의 면역 체계가 이상 반응을 하는 거예요. 그러니까, 너무 민감하게 반응하는 겁니다. 일반인들에게는 별 문제가 없는 집먼지 진드기나 뭐 그런 것들에, 아토피성 피부염을 가진 분들의 면역 체계는 너무 과도하게 반응합니다. 가렵다는 증상은 결국, 면역 체계가 작동해서 나타나는 증상이에요.
처음 이 이야기를 들었을 때, 어린 그는 눈이 밝아진다는 느낌을 받았다. 이전과는 달리, 아토피성 피부염이라는 것이 어떻게 작동하는 것인지 조금이나마 이해가 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딱 거기까지다. 가려움이라는 증상이 어떻게 발현되는지의 중간 과정, 면역 체계가 과민하게 반응한다는 것만 알아냈을 뿐이다. 근본적 원인과 해결책에 대해서는 별다른 발전이 없다. 이전의 그는 생각 없이 긁어댔다면, 이제는 자신의 면역 체계가 과민반응한다는 것을 인지하고 긁어대는 상태로 바뀌었을 뿐이다.
스트레스가 가려움의 원인이라는 상투적인 진단은, 아주 틀린 진단은 아니었던 듯하다. 그의 아토피는 중학교를 기점으로 계속해서 심해졌으며, 사춘기나 대학 입시 등 스트레스를 받는 시기마다 정점을 찍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