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토피를 앓는 사람들마다 가려운 부위가 천차만별이겠지만, 어느 정도 공통적인 지점이 있다. 그가 가려움을 느끼는 부위는 꽤나 보편적인, 이름하여 '접히는 부위'다.
팔이 접히는 부위, 즉 팔꿈치 반대편
다리가 접히는 부위, 즉 무릎 반대편
목을 좌우로 스트레칭할 때 접히는 부위, 목과 어깨 연결부
팔과 몸통이 만나 접히는 부위, 즉 겨드랑이 부위
다리와 몸통이 만나 접히는 부위, 즉 사타구니
몸통이 접히는 부위, 즉 배꼽 부분
그의 경우 팔이 접히는 부위, 즉 팔꿈치 반대편의 팔 안쪽 부위가 단연 압도적이었다. 해당 부위의 가려움이 가장 심하기도 했거니와, 양손이 접근하기가 가장 좋다. 최소한의 에너지만 들여, 언제든지 손톱을 세워 득득 긁을 수 있는 위치인 것이다. 그의 아토피 증세는 여러 요인에 따라 심해질 때와 좋아지는 주기가 있었지만, 1번 부위(팔 안쪽)의 상태는 언제나 심각했다. 호전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팔 안쪽 부위 다음은 바로 목이다. 팔 다음으로 긁기 좋은, 접근성 2위다. 처음에는 어깨와 연결된, 즉 목의 좌우 접히는 부위만 가려웠다. 하지만 긁다 보니, 그의 손톱을 필요로 하는 부위가 점점 넓어진다. 마침내는 목 전체가 골고루 가려워졌다. 뒷목은 그나마 덜하다. 하지만 앞목이 문제다. 그는 손톱을 세워, 목의 앞과 양옆을 득득 긁는다. 다람쥐가 도토리를 먹는데, 입으로 먹는 게 아니라 목으로 먹는 듯한 모양새다.
모든 부위가 그렇지만, 그는 목을 긁고 난 이후의 후유증이 가장 고통스러웠다. 할퀸 것이나 다름없는 손톱자국으로 인해 목이 시리고, 피와 진물이 새어 나와 끈적하면서도 따갑다. 이러한 아리고 시린 느낌은, 얼핏 추운 느낌과 비슷하다. 그래서 그는 목의 노출 부위를 최대한 줄이고자, 목을 몸속으로 밀어 넣으면서 양 어깨를 올려 감싼다. 몸통, 양 어깨와의 접촉면적이 넓어지면서 목의 노출 부위가 최소화된다. 목이 보호받으면서 왠지 따뜻한 듯한 느낌이다. 하지만 이러한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어깨와 목에 부하가 걸린다. 계속해서 자세를 유지하고 싶지만, 점점 힘이 달리기 시작한다. 마지막 순간까지 버티다가, 마침내 어깨와 목의 힘이 풀린다. 양 어깨가 떨어지고 목이 풀려나면서 상체가 원래 상태로 돌아간다.
문제는, 목이 다시 되돌아가는 바로 그 순간이다. 손톱으로 득득 긁어 상처가 나고 갈라진 틈에서는 피와 진물이 배어 나온다. 그가 움츠리고 머리를 밀착한 동안, 피와 진물이 접착제마냥 작용한 듯하다. 인간의 신체는 신비로워서, 그 짧은 순간에도 진물과 피로 상처 부위를 응고시키려는 듯하다. 목에 붙어있던 몸통과 어깨를 떨어트리면서, 응고되었던 피와 진물이 떨어지고 상처 부위가 다시 갈라진다. '쩍' 소리가 나기도 한다. 예상치 못했던 아픔에다가, 풀려난 목은 또다시 시리다. 그는 외부로부터 공격당한 거북이처럼, 다시 목을 움츠리고 어깨를 목에 붙인다.
돌이켜보면 어린 시절부터 이렇게 움츠리는 자세를 지속한 것이, 그에게 정신적으로나 신체적으로나 썩 좋은 영향을 끼친 것 같지는 않다.
아토피는 신체 전반에 골고루 포진했지만, 하체는 비교적 그의 관심 밖이었다. 상체보다는 하체의 감각이 더 둔감한 것인지, 똑같은 상처가 나더라도 하체보다 상체일 때가 훨씬 신경이 거슬렸다.
상체보다 둔하긴 하지만, 하체도 심각해지면 답이 없다. 특히 여름에 땀이 나면, 그가 열심히 긁어 만들어놓은 상처들이 동시다발적으로 따가우면서도 가려워진다. 설상가상 학교 교복은 긴 바지다. 차라리 시원하게 득득 긁어버리고 싶은데, 바지가 이를 방해한다. 어떻게든 바지를 무릎 위까지 걷어올려보려 하지만 쉽지 않다. 수업 시간 내내 바지 위로 긁적거리다가, 쉬는 시간이 되면 화장실로 달려가 바지를 내리고 벅벅 긁는다. 이때의 쾌감은 이루 형용할 수 없다.
겨드랑이 / 사타구니 / 배꼽은 다른 부위보다 늦게 증상이 시작되었지만, 그 심각성과 여파는 목 부위 못지않다. 배꼽 부위가 특히 심각했다. 어느 여름날, 배꼽 부위가 가려워 긁던 그는 도저히 참지 못하고 웃통을 들어젖힌다. 배꼽을 중심으로, 널따란 부위가 이미 붉게 변하고 건조해져 있다. 그가 만들어낸 상처들에서는 피가 방울방울 맺혔고, 그 피가 응고되어 방울방울 딱지가 졌다. 예상치 못한 자신의 신체 상태, 그렇게 딱지가 방울진 상태, 그 모습에 충격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가려움을 참지 못하고 또다시 손톱을 댄다.
그의 아토피는 팔 안쪽 부위부터 발현되었으며, 온몸의 접히는 부위를 중심으로 계속해서 퍼져나갔다. 그나마 상태가 괜찮을 때는 접히는 부위에 가려움이 한정되었지만, 상태가 심해지면 가려움은 온몸을 기어다녔다. 그럴 때는 접히는 부위고 자시고 없이 공평하게 득득 긁었다.
접히지 않는 부위 중에서는, 등이 가장 골칫거리다. 등은 그의 손으로 전부 커버할 수가 없다. 효자손을 사용해 보았지만, 날이 너무 무디다. 사람 손톱에 비할 바가 못 된다. 그는 가족들에게 시도 때도 없이, 손이 닿지 않는 등을 대신 긁어달라고 하며 옷을 젖히고는 등을 내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