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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얀 얼굴 학생 Mar 14. 2023

소개팅

 소개팅이라는 것을 주선받았다. 그에게는 첫 소개팅이다. 원래 대학생 시절에 과팅이나 소개팅을 많이 한다고들 하는데, 그는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다. 소개팅이라는 것도 일종의 면접이다. 꾸미고, 차려입고, 가면을 쓰고, 상대방에게 잘 보이고자 어필하는 면접. 그는 대학생 때부터 이미, 자신이 꾸미는 것과 면접에는 젬병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는 '자만추'라는 이름 아래, 진정한 자신을 봐주는 이성과의 만남을 꿈꿨다.


 그랬던 그도 직장인이 되고 나이가 드니 조금씩 조바심이 들었나 보다. 회사-집-운동을 반복하는 일상. 세 가지 장소 모두, 연애할 수 있는 또래 이성을 만날 확률은 희박하다. 자연스럽게 만난다는 것 자체가 불가능에 가까워진다.


 사실 소개 이야기는 제법 꾸준히 나왔었다. 겁이 나기도 해서 거절했다. 지금 하고 있는 일도 확실치 않은데, 직장을 때려치네 마네 하고 있는 와중에 연애가 가당키나 한가. 새로운 사람을 만날 수 있는 정신 상태는 맞는 건가...  몇 번이고 거절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외로움이 엄습해 온다. 소개팅 통해 많이들 만난다던데. 결국 그도 '자만추'에 대한 집착을 내려놓고 소개팅을 받는다.




 연락처를 받고 날짜를 잡는다. 꾸미는 것에는 젬병인지라, 주위의 조언을 구한다. 무조건 코트를 입으라고 한다. 벌써부터 귀찮다. 평소 모습대로, 맨투맨에 털 달린 외투를 입으면 안 되나. 상대방에 대한 예의란다. 맨투맨과 털 달린 외투는 예의 없는 차림인가 보다. 그렇다면 그는 평생 예의 없는 옷만 입어왔다는 것인데.


 조언대로 긴 코트를 입는다. 상대방에 대한 예의를 차린다. 패션에는 워낙 문외한인지라, 또 첫 소개팅인지라 조언을 따르긴 하나, 그는 길게 치렁치렁 늘어진 코트가 무언가 낯설다. 꾸미겠답시고 입은 옷도, 그리고 그 옷을 입은 자신도 낯설다.


 손에는 향이 나는 핸드크림도 발랐다. 사놓고서 안 쓴지 한참 지난, 나름 유명한 브랜드의 제품이다. 향이 좋긴 하나, 평소에는 없던 향이 나니 조금 어색하다. 



 정신없이 준비하다가 집을 나선다. 지하철을 탄다. 그런데 마스크 속, 자신의 숨결에서 역겨움을 느낀다. 

이런, 양치를 하지 않았구나.


 겉은 이래저래 치장한답시고 긴 코트에, 향이 나는 핸드크림까지 발랐다. 그런데 정작, 가장 중요한 양치를 안했구나. 겉을 꾸민다고 정신이 팔려 속을 까먹었구나.

 누구를 만날 만한 상태는 맞는 건가. 본인에게서 무슨 맛이 날지, 어떤 맛을 낼지 정하지도 못한 상태에서, 그저 보기에 맛있어 보이고자 겉만 치장한 꼴 아닌가.


 겉은 번지르르하고 어색하게 꾸며놓았지만, 속에서는 악취가 난다. 덜컹거리는 지하철 유리에 비친 자신의 모습이 낯설다. 얼핏 혐오스럽기까지 하다.




 상대방은 좋은 사람이었다. 그에게 호의적이었다. 다만 그가 상대방에게 호의적이지 않았을 뿐. 아니, 그가 그 자신에게 호의적이지 않았으며, 그랬기에 그런 자신에게 호의를 표하는 상대방에게 물음표가 생겨났다.


 대화를 하면서도, 그는 마음을 그다지 열지 않은 듯하다. 어쩌다 자신도 모르게 말이 튀어나오면, 실수했다는 생각에 뒤늦게 후회한다. 직장과 관련된 생각, 하고 있는 일에 대한 회의감 등은 최대한 억제한다. 처음 보는 이에게 할 만한 이야기가 아니다. 자신의 골칫거리를 떠넘기며 징징거리는 것, 그것이야말로 예의가 아니다. 


 속내를 간파당한 것인지 대화를 이어가기 위해서인지, 상대방이 물었다.

  - 요즘 제일 고민이 뭐예요?

  - (어떻게 대답할까 고민하다) 아무래도... 커리어죠.

  - 커리어 어떤 게요?

  - 이 일이 맞는건가 할 때가 있어요. 사무직 대부분이 느끼는 감정일 수도 있고요.

  - 맞아요. 저도 동감해요.

  - 지금 하고 계신 일이 꿈이라고 하지 않으셨어요?

  - 꿈은 맞는데... 저는 하루하루 일을 끝내다 보니까. 다른 분들 보면 장기적으로 프로젝트 같은 것도 많이 하시잖아요? 그런 게 좀 부럽더라고요. 말씀드린 것처럼 하루하루 일하는 게, 어떻게 보면 하루살이 같기도 하고요.

  - 장기적으로 하시는 것도 있는 거잖아요? 그리고 꿈꾸던 일을 하시는 거니까, 그렇게 생각하지 않으셔도... ...



  - 취미가 뭐예요?

  - 아, 저 운동 좋아해요.

  - 어떤 운동하세요?

  - '특이한 운동' 합니다.

  - '특이한 운동'이요? 와 진짜 신기하네요! 시작한 지 얼마나 되셨어요?

  - 얼마 안 됐어요. 한 1년 됐을 거예요.

  - 와 진짜 특이하네요. 이따 집 가면 머릿속에 '특이한 운동'만 기억날 거 같아요.

  - (웃으며) 아 그런가요.


 그가 하는 운동이 약간 특이하긴 하다. 그는 자신의 부족한 매력을, 특이한 운동이라는 취미로 보완하려는 것은 아닐까. 별 생각이 다 든다.



 전반적인 분위기는 나쁘지 않았다. 헤어짐의 시간이 가까워지며, 상대방이 말한다.

  - 내일이면 출근해야 되네요.

  - 출근? 후- 해야죠.

  - (웃으며) 무슨 한숨을 그렇게 깊게 쉬세요.

  - (치부를 들킨 듯 놀라며) 아 제가 그랬나요




 그가 연락을 더 하고자 하면, 이어갈 수 있었을 터다. 설레발일 수도 있으나 그는 그렇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러지 않았다. 배가 부른 것인가. 미친 것인가. 연락하기가 귀찮았다. 그렇게 이도저도 아닌 상태로 끌다가 끝나버리고 말았다. 


그는 컴퓨터 앞에 앉아, 판타지 회귀 웹툰을 본. 야한 웹툰을 본다. 

핸드폰 속, 아직 지우지 않은 사진을 본다.


예전과 같은 감정의 소용돌이는 없다. 그냥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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