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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얀 얼굴 학생 Mar 26. 2023

'도를 아십니까'를 따라갔다

2 - 공부방

 그들의 공부방은 생각보다 외진 위치에 있었다. 약 10분을 넘게 걷는데, 길의 경사가 점점 가파르게 변했다. 그가 슬금슬금 짜증을 느낄 무렵, 사수가 공부방 건물이라며 가리킨다. 경사진 언덕 중턱에 위치한, 주황색 벽돌의 공동주택 건물이다. 공부방은 공동주택 건물에서도 가장 꼭대기에 위치해 있었다. (계단을 올라갔던 기억으로 추측컨대 대략 4~5층이었다)


 꼭대기 방이어서 원체 면적이 좁은 것인지, 아니면 내부의 무언가를 보여주지 않으려 벽을 세운 것인지, 그의 눈에 보이는 꼭대기방은 상당히 비좁다. 딱 현관문 넓이만 한 폭에, 깊이는 3m도 안 되는 것 같다. 공간 구성은 이렇다.


 문 - 신발을 벗어놓는 현관 - 조그마한 앉은뱅이 책상 - 싱크대


 딱 현관문 가로 길이 정도의 폭으로, 사람 두 명이 나란히 설 수 없는 정도다. 조그마한 앉은뱅이 책상조차도 꽉 차서, 사수는 이 앉은뱅이 책상 위로 다리를 올려 넘어간다.



  - 조금 좁죠. 신발 벗고 편하게 앉으세요.

  - 아, 네.


 신발을 벗고, 앉은뱅이 책상과 현관 사이 공간에 앉는다. 현관의 신발들이 엉덩이에 닿을락 말락하다.



  - 물 한잔 하시겠어요?

  - (살짝 당황하여) 아, 네?

  - (부사수에게) 물 한 컵 갖다주세요.


 부사수는 말없이 싱크대 오른쪽 편의 문으로 들어간다. 그는 거절을 하려했으나 얼떨결에 거절도 제대로 하지 못했다. 사수는 가방에서 노트와 종이를 꺼내더니, 슬금슬금 설명을 시작한다.


  - 아까 동양 학문들을 공부하고 있다고 말씀드렸잖아요. 저희는 불교, 동학, 천주교 등 다양한 학문들을 공부하고 있어요. 하늘의 기운이 있는데, (동그랗게 하늘을 그리며) 이 기운을 해석하는 방법을 연구하는 거거든요.

  - (무언가 허접한 설명에 살짝 실망한다) 아 네...



 사수가 설명하고 있는 중, 부사수가 물을 한 컵 가지고 돌아온다. 컵도 식당 컵이 아닌 가정용으로, 꽃무늬가 그려진 하얀 사기 컵이다. 


  - 아, 감사합니다.


 감사하다 말하며 물컵을 받긴 했지만, 그도 무언가 이상하다는 낌새를 눈치챈다. 공부한다는 내용도 그렇고, 둘의 분위기도 이상하고, 이 공간도 이상하다. 이 물을 받아마셔도 되는 건가? 살짝 의심했지만, 경사진 길을 올라오느라 목이 탄다. 그는 물을 마신다. (천만 다행히도 약을 타지 않은 평범한 물이었다)



 부사수는 이 공간에 도착한 뒤로 아예 시야에서 사라졌다. 사수도 개괄적인 설명을 하더니, 뭔가 슬금슬금 다른 이야기를 한다.


  - 네 그래서, 이제 저희 공부방에 다른 분께서 설명을 해주실 거거든요. 아까 연락을 드렸었는데, 잠시만요. (무언가를 찾는 듯 자리를 뜬다)



 사수는 아까 부사수가 사라진, 싱크대 오른편 문으로 나간다. 화장실을 가는 것인가. 그렇게 잠시 기다리고 있는데, 갑자기 문에서 다른 이가 나온다. 뽀글 머리 파마를 하고 안경을 낀, 40대 중반으로 보이는 아줌마다.


 이 부분에서 그는 태세를 바꿨던 것 같다. 자신을 위해준다는 것에 감동해서 따라왔는데, 뭔가 전달하는 내용들이 이상하다. 그나마 반반하다고 생각한 사수라는 여성조차, 이상한 말만 하다가 갑자기 사라졌다. 눈앞에 남은 것은 이상한 공부 방법에 대해 늘어놓을 아줌마뿐. 아줌마의 강의가 시작된다. 빈정이 상한 그는, 아줌마의 이야기에서 꼬투리 잡을 것을 찾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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