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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얀 얼굴 학생 Mar 26. 2023

'도를 아십니까'를 따라갔다 (完)

3 - 논쟁 (말싸움), 다행

 40대로 보이는 아줌마는, 파마를 한 듯 뽀글뽀글 곱슬머리가 어깨 아래로 길게 늘어져 있다. 눈에는 얇은 테의 땡그란 안경을 끼고 있다.


  - 안녕하세요. 반가워요.

  - (썩 내키지 않는다) 네, 안녕하세요.

  - 앞의 분한테 들었겠지만, 저희는 하늘의 기운과 관련된 공부를 하고 있어서요. 좀 더 깊이 있게 얘기를 해보려고요.

  - 아, 네.



 아줌마의 강의가 시작된다. 강의는 꽤 길게 이어졌으며, 속았다는 느낌에 빈정이 상한 그는 꼬투리를 잡기 위해 집중해서 들었다. 전부 다 기억이 나진 않는다. 대강의 골자는 이렇다.


  - 이 세상은, 눈에 보이는 것이 다가 아니에요. 이 세상에는 사실 9개 차원이 있어요.

  - 9개 차원이 있다고요?

  - 네. 1~9차원으로 이루어져 있어요. 저희는 그래서 이걸, 구천이라고 부릅니다.

  - (구천?) 네, 그래서요?

  - 우선, 1차원에서 3차원까지는 동물의 차원이에요. 그리고 4, 5, 6차원이 바로 인간의 차원이에요. 그런데 이 6차원이 끝이 아니라, 위에 더 있어요. 7, 8, 9차원. 바로 신의 차원이에요.

  - 아...

  - 우리 인간들은 4~6차원에 속해 있잖아요. 그래서 동물들을 이해할 수 있는 거예요. 하지만 동물들은 1~3차원에 속해 있기 때문에, 더 높은 차원인 저희 인간들을 이해할 수 없는 거죠.

  - 아...

  - 마찬가지로, 인간들도 신의 차원을 이해할 수 없어요. 신들은 인간보다 높은 7~9차원에 속해 있기 때문이죠.


당시 그는 대입을 위해 게임을 끊었다. 게임은 끊었지만, 대신 게임 스토리 읽는 버릇이 생겼었다. 눈앞의 아줌마가 말하는 것은, 그가 읽었던 게임 스토리와 비슷하다. 이 사람들만의 세계관 같은 건가.


 그를 데려온 사수도 그렇고 아줌마도 그렇고, 말하는 내용이 뭔가 이상하다. 그는 이제, 이들에게 받았던 감동이 사라지고 스멀스멀 의심이 피어오르기 시작한다. 꼬투리를 잡으려 혈안이 된 그, 아줌마는 그에게 두 번 덜미를 잡힌다.




1차전 : 전생

  - 불교 아시죠? 불교에 보면 전생이라는 개념이 있잖아요. 전생은 실제로 있어요. 이게, 전생에 덕이나 업을 어떻게 쌓느냐에 따라 다음 생에 인간으로 태어날지 동물로 태어날지가 정해지는 건데...

  - (옳다구나 싶어) 잠깐만요. 전생이 있는지 어떻게 알아요?

  - (그를 쳐다보며) 전생은 있어요.

  - 그걸 어떻게 알아요?

  - 아니, 전생은 있어요.

  - 태초의 동물과 인간한테도 전생이 있나요?

  - 그럼요. 누구에게나 전생이 있죠.

  - 아니, 태초라니까요?

  - 누구에게나 전생이 있다니까요.

  - 태초인데요? 맨 처음 태어난 동물이랑 인간이 어떻게 전생이 있어요? 그 전의 삶이 전생인데, 그 전에 삶이 없는 건데요?

  - 아니, 전생은 태초와 상관이 없는 개념이에요.

  - 이해가 안 되는데요. 미래의 삶도 전생이 될 수 있다는 건가요? 시간 관계가 막 얽히나요?

  - 아니, 그 뜻이 아니라... $##$%^$$%&@#^


 아줌마는 설명한답시고 이런저런 말을 하나, 그의 귀에는 전혀 들어오질 않는다. 제대로 된 증거가 아니다. 그저 전생이 있다는 말의 되풀이일 뿐. 태초의 존재에게는 없고 그 다음부터 있다고 하면 조금이나마 이해하고 넘어갔을 터이나, 태초의 존재에게도 전생이 있다고 하니 그는 태클을 걸었다.

 도무지 이해되지 않는 표정의 그를 보며, 아줌마는 일단 다음으로 넘어간다.



  - 전생에 대해서는 의견 차이가 있네요. 우선은 다른 이야기를 계속해보자면...

그가 가만있으니, 아줌마의 강연이 다시 열정을 띤다.


  - 하늘의 기운을 공부해 보면, 지금의 세상이 이상하다는 것을 알 수 있어요.

  - 어떤 게 이상하죠?

  - 많은 게 이상하죠. 지금 우리나라가, 어떻게 일본한테서 독립을 할 수 있었겠어요? 일본한테서 독립할 만한 힘이 없었잖아요? 그랬던 나라가 이렇게 경제 대국이라는 게 말이 되나요? 이렇게 조그마한 땅덩어리의 나라가, 상식적으로 생각해 보면 어떻게 다른 나라들보다 더 잘 살 수가 있나요?

  - ...

  - 그 외에도, 세상에서 일어나는 많은 일들이 이치에 맞지 않는 것 투성이에요.

  - 왜 그런 거죠?

  - 이게 다, 아까 이야기한, 인간으로서는 알 수 없는 영역이에요. 우리 인간은 4~6차원에 살고 있으니, 더 높은 차원을 이해할 수 없는 거죠. 그러니까, 신의 차원에서 개입한 거예요.

  - ?? ...

  - 역사를 보면, 1900년대 우리나라에 특히나 이런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많이 일어났어요. 일본으로부터 독립하고, IMF를 이겨내고 이렇게 잘 사는 나라가 된 게. 이건 상식적으로는 도저히 일어날 수 없는 일이에요.

  - ...




2차전 : 신이 내려왔다

  - (그의 침묵을 동의로 받아들인 듯) 그 이유가 무엇이냐면. 이게 되게 중요한 부분인데. 구천상제께서 우리에게 도움을 준 거예요. 1938년 0월 0일 김XX 씨가 우리나라에 내려왔어요. (날짜와 이름은 제대로 기억나지 않는다)

  - (도저히 못 참겠다) 누가 내려왔다고요?

  - 김XX 씨요.

  - 구천상제라면...

  - 아까 얘기한, 9개 차원의 신이죠.

  - (옥황상제 같은 건가) 신이 김XX 씨로 내려왔다고요.

  - 네.

  - 그 김XX 씨가 내려와서 뭘 했는데요?

  - 그건 알 수 없죠.

  - ??

  - 4~6차원에 속한 우리 인간들은, 7~9차원에 속한 신의 행위를 이해할 수 없어요. 동물이 인간을 이해할 수 없는 거처럼 말이...

  - (말을 끊고) 아니, 김XX 씨가 내려와서 우리나라가 잘 살게 됐다면서요.

  - 그렇죠.

  - 뭔가 조치를 했으니까 잘 살게 됐을 거잖아요.

  - 얘기했듯이, 신의 행동을 우리 인간은 이해할 수 없.....@#%$!@$^@#^$


 침묵이 흐른다. 도저히 동의할 수 없는 개소리. 어려서인지, 용감한 것인지, 그는 명언을 날린다.


  그 : 죄송하지만... 상당히 깨네요.

  아줌마 : (피식 웃으며) 아 그 깬다는 표현이... 좀 그렇네요.



 명언을 날린 후, 그는 다시 입을 닫는다. 아줌마는 계속해서 그에게 무언가를 설파했으나, 둘 다 자신들의 의견 차이가 크다는 것을 깨달은 상태다. 그는 한 귀로만 듣고 한 귀로 그대로 흘려버린다. 대화 초반에 느꼈던 일말의 흥미, 게임 세계관 비스무리하다는 감상마저도 사라진 지 오래다. 그가 핸드폰으로 시간을 보는 횟수가 늘어난다.


  - 아, 곧 가셔야 하나요?

  - 네, 막차라도 타야 될 시간이네요. (어느새 자정 12시가 넘었다)

  - 아 그래서, 좀 더 얘기해보자면, 저희는 하늘의 기운을... @#@$!@$%#^!@$^#$


그렇게 또 몇십 분이 흐른다.

  

  - (한숨을 쉬며) 이제는 가봐야겠어요.

  - 아 그러시군요. 여기 저희 연락처니까, 또 이야기 나누고 싶으시면 연락 주세요.

  - (명함 같은 것을 받는다) 예




 밖으로 나와, 버스 정류장으로 향한다. 놓친 물고기라는 것을 알았는지, 사수/부사수/아줌마 누구도 그를 따라나오지 않았다. 1시가 넘는 시각까지도 버스가 있어, 그는 무사히 집에 도착한다. 집에 도착한 시각은 새벽 2시가 넘은 늦은 시각. 왜 늦었느냐는 부모님에게, 그는 학원에서 공부를 하다가 늦었노라고 답했다. 왠지 있는 그대로 이야기를 하면 안 될 것 같았다.



 다음날, 그는 학원으로 향한다. 그는 이때까지도, 자신이 따라갔던 사람들이 사이비(도를 아십니까)일 것이라고 확정하지 않고 있었다. 순수한 것인지 멍청한 것인지. 그들의 말 곧이곧대로 동양 학문을 공부하는 모임이겠거니. 조금 특이한 사람들이겠거니. 의견 차이가 있는 것이겠거니 생각하고 있었다.


 학원에서의 하루가 끝난다. 그날따라, 담당 선생이 갑자기 다가와 그에게 근황을 물었다. 요즘 공부는 잘되고 있느냐, 어제 잘 들어갔느냐는 질문이다. 그는 살짝 고민하다가, 담당 선생에게 털어놓는다.



  - 사실 어제 좀 늦게 들어갔어요.

  - 몇시에?

  - 새벽 2시쯤이요.

  - 뭐하다 그렇게 늦게 들어갔어?

  - 아 사실... 집 가다가 누가 저랑 얘기를 하고 싶다고 해서요.

  - 뭐? 무슨 얘기를 하고 싶다는데?

  - 자기네들이 무슨 동양 학문 공부를 하는데, 제가 살이 많다고 얘기를 나누고 싶대요.

  - 야씨 이 새끼 도를 아십니까 따라갔네!

  - 그게 도를 아십니까예요?

  - 그래 임마! 너 공부도 열심히 하는 애가 뭐 그런 걸 따라가고 있어?

  - (뒤늦게 얼굴이 붉어진다)...

  - 막 위협하거나 그러진 않았어?

  - 아... 그런 건 없었어요.

  - 얼굴아 그런 거 막 따라가면 절대로 안돼. 큰일 난다 너

  - 아 네... 쌤 이거 다른 애들한테는 비밀로 해주셨으면...

  - ㅋㅋㅋㅋ 알겠어



 담임 선생은 그의 비밀을 당일날 모두에게 폭로해 버렸다. 당시에는 창피했지만, 조금 특이한 해프닝 정도로 생각하고 그도 대수롭지 않게 넘어간다.


 다만, 정말 다행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만일 정말 이상한 이들이었다면. 덩치 큰 성인 남성들로 둘러싸고 돈이라도 요구했다면. 그가 마신 물에 수면제라도 타 있었더라면.


 이후 그가 도를 아십니까를 따라가는 일은 없었다.

 눈빛이 반쯤 죽은 사람들이 가끔 말을 걸면 들은 체도 하지 않는다. 아주 조금, 저 사람들은 또 어떤 어이없는 세계관을 설파할지 궁금하긴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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