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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얀 얼굴 학생 Apr 25. 2023

2023. 04. 25.

머리, 마음

간신히 선택을 했다.


 마지막 순간까지 흔들리고, 번복에 번복을 거듭했다. 너무 많이 번복해서 자신이 한심하게 느껴질 만큼.

그렇게 어렵게 내린 선택임에도 뒷맛이 개운치 않다. 마음을 따르지 않은, 머리를 따른 선택이기 때문일까.


 

 깊게 생각하지 말고 마음이 가는 대로 결정하고 싶었다. 이건 싫고 저게 좋아 보이는데. 내가 싫다는데 뭘 어쩔 건가. 한 번 뿐인 인생, 좋을 대로 살아봐야 하지 않겠나.


 나이 때문인지, 겁이 많아졌는지. 싫다고 하면서도, 스스로조차 어떤 마음인지 확신이 들지 않았다. 저게 좋아 보였는데, 다 버리고 가자니 지금 갖고 있는 것이 눈에 밟힌다. 생각해보니 지금 가진 이것도 나름 좋은 것 아닐까. 지금 이걸 버리면 다시 이 상태로 돌아오기는 힘들텐데, 잘 안되면 어쩌나.



 - 이건 아니잖아. 일단 하고 싶은 거로 뛰어들어

 - 그렇게 하기엔 불확실성이 너무 커. 준비가 필요해

 - 언제까지 준비하려고? 지금까지 봤을 때 준비를 할 수나 있는 상태였나?

 - 지금부터라도 정신 차리고, 정말 정신 차리고 준비를 하면...

 - 지금까지 그랬던 것처럼 준비를 못하면. 그러다가 영영 갇혀버리면

 - 갇힐 것 같으면 그때는 정말로 그만둬야지

 - 지금도 늦었는데. 계속 늦어지다간 영영 못하게 될 거다

 - 그건 알고 있다. 그런데, 그걸 하고 싶은 이유는 뭐냐

 - 그냥... 어렸을 때부터 품었던 로망이니까

 - 반드시 그거여야 하냐

 - 큰 맥락만 같으면... 반드시 그거여야만 하는 건 아닌...

 - 결국, 그거에 대한 확신도 없는 거 아닌가

 - 맞다. 대단한 이유나 계획은 없다. 그냥 하고 싶다



 지금 하고 있는 것은 맞지 않는다. 평생 지금 것만 하다가 인생을 끝낸다? 절대로 용납할 수 없다. 이것만큼은 마음으로나 머리로나 확실하다.


 그렇다면 뭘 해야 하나. 하고 싶은 것은 흐릿하고, 지금의 것이 싫다는 것만 명확하다. 이런 상태에서 그만두는 것이 맞는 걸까. 대다수는 무모하다 했고, 소수는 용기 있다 했다. 용기 있다는 말을 듣고 기분은 좋았지만, 불확실성만 가득한 미래를 생각하면 앞길이 캄캄했다. 이게 맞나. 정말 이게 맞을까. 진정 '나'를 위한 결정은 무엇일까.



 생각해보면 지금까지의 나는, 대부분 마음 가는대로 살았다. 그때그때의 표면적인 기분에 많이 좌우됐던 것 같다. 운 좋게 지금의 상태에 이르긴 했지만, 무언가 가시적인 성과는 없다. 이것저것 나름 여러 경험을 했다는 자기만족뿐. 마음을 따르다가 이렇게 된 것일까. 마음을 따랐기 때문에 이 정도라도 된 것일까.


 마음은 일단 그만두라고, 대책이 없더라도 그냥 부딪혀보라 했다.

 머리는 준비부터 하라고, 계획을 세우고 경험해 보며 확신이 생기면 그만두라 했다.



 나 자신에게 도움이 되는 선택은 무엇일까.


 아닌 것은 빨리 때려치고 용기있는 도전을 할까. 불확실성을 감수한 만큼 성공했을 때의 열매는 욱 커지지 않겠나. 하지만 대책없이 뛰어들었다가 이도저도 아니게 된다면. 취준생 시절의 구렁텅이로, 제대로 할 줄 아는 게 없는 잡캐로 미래의 나를 몰아가는 것은 아닐까


  버텨야 하는 시기라 생각하고, 견뎌내며 다음 스텝을 준비해 볼까. 안정적인 기반 위에서, 새로운 도전에 부드럽게 안착할 수 있다면. 하지만 지난 시간을 생각해보면, 마음이 무너졌었다. 불확실성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나 자신'을 잃어버리게 되는 것은 아닐까



 처음으로 머리가 이겼다. 마음 따라 질렀던 결정과 선언을 번복하고 수습했다. 꼴이 우습긴 하지만, 번복한 결정과 선언을 후회하지는 않는다. 그 결정과 선언 덕분에, 무너졌던 마음이 회복됐다. 마음이 꾀병을 부린 것이었나 싶을 정도로, 때려치겠다 선언한 순간 거짓말처럼 순식간에 회복됐다. 마음이 회복되자, 기능을 상실했던 머리가 다시 작동했다. 이성적으로, 합리적으로 사고한다면 리스크가 너무 크다며.


 마음을 지키고자 한 선택이었는데, 오히려 마음이 회복되자 이를 번복하고 머리를 따랐다. 가장 극단적인 옵션을 고려하고 실행 직전까지 갔으니, 앞으로는 마음의 소리가 더욱 자주 그리고 크게 울릴 것이다. 머리가 이를 언제까지 방어할 수 있을지. 마음이 만족하는 수준으로 준비를 병행할 수 있을지.



 머리로도, 지금의 것이 맞지 않는다는 것은 알고 있다. 버티고 견디며 얻을 성숙과 성장의 의미가 다하면, 더 이상 남아있을 명분은 없다.


 글로 적으면 적을수록, 어떤 선택이 옳았을지 경계가 흐릿해진다. 마음을 따랐어야 했을지도 모른다.


 

 앞으로 어떻게 될지 확실히 알 수는 없다. 최상의 시나리오대로, 안정적인 기반 위에서 준비해서 지금의 것과 도전을 모두 거머쥐게 될지. 아니면 또다시 무너져가는 마음을 부여잡으며 버티고 버티다가, 그때 그만뒀어야 한다며 뛰쳐나가게 될지.

 어떤 상황이 펼쳐지고 어떤 상태가 되던, 고이지 않고 성장하고자 하는 지금의 마음과 머리만큼은 변치 않길 바란다.


 인생에서 처음으로, 마음이 아닌 머리를 따라 결정했다는 것에 의의를 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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