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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얀 얼굴 학생 May 29. 2023

4 - S 팀장 (2)

초벌, 다 배울 수 있다, 관리팀

 S 팀장은 처음 며칠 동안 그를 꽤 자주 불러 1대1 교육을 했다. 첫날 회사 소개 이후, 둘째 날에도 그를 불러 약 2시간 가까이 회의실에서 교육을 진행했다. 그는 자신에 대한 팀장의 관심과 열정으로 인식하고는, 신입 특유의 초롱초롱한 눈빛과 기억력/열정으로 보답하고자 했다.



  팀장 : 얼굴 씨, 합격하고 나서 부모님 반응은 어떠세요.

  그 : 좋아하십니다.

  팀장 : 좋네요. 


  팀장 : 오늘은, 회사 조직 구성을 한번 보죠. 우리 회사는 이렇게 구성이 되어 있습니다. 조직도 봤어요? 조직도를 한번 그려보면... 맨 위 회장님, 사장님부터...


 화이트보드 위에 전체 회사의 조직도가 세세히 그려진다. S 팀장은 회사의 모든 사업부, 사업부 구성은 물론 팀장들의 이름과 직급까지 모조리 꿰고 있다. 심지어 누가 예전에는 어떤 보직으로 입사했는데 어떤 보직을 타고 어디어디 팀장을 해왔는지도 다 아는 듯하다. 나중에 알고 보니 S 팀장은 이 회사가 첫 회사다. 첫 회사이니만큼 근속 기간이 길고, 오랜 기간 다녔으니 회사 내부에 대해 빠삭한 것이리라.



  팀장 : 이렇게입니다. 여러 사업부 중에서 우리는 여기 IT사업부, 그리고 그 IT사업부의 IT사업지원팀에 속해 있죠. 사업지원이긴 하지만, 결국은 기획이에요, 실질적으로 우리가 기획을 합니다. 기획팀이라고 봐도 무방해요.

  그 : ...! (기획이라는 말에 왠지 가슴이 웅장해진다)


  팀장 : 조직도를 보면 알겠지만, 맨 위가 회장님이랑 CEO, 그리고 관리부서들이 있어요. 우리 회사 관리팀은 인사총무팀, 재무금융팀, 구매외주팀, 사업관리팀, 안전보건팀 이렇게 있습니다. 팀 이름대로,

 인사총무 - 인사와 총무

 재무금융 - 다른 회사로 치면 재무, 재경

 경영기획 - 전사 기획팀

 구매외주 - 자재 구매, 건설 현장의 외주 등

 사업관리 - 다른 회사로 치면 감사팀

 안전보건 - 건설업에서 민감한 '안전' 관련

을 담당하는 팀이에요. 특히나 안전 같은 경우는, 요즘 '중대재해처벌법' 때문에 중요도가 높아졌죠. 이 관리팀들은, 엘리베이터 타고 올라가면 저기 위층에 모여있어요. 회장님실, 사장님실이랑 같은 층에. 그래서 이 층은 공기부터가 달라요. 올라가봤어요? 올라가자마자 그냥, 여기는 공기의 밀도가 달라. 숨이 턱 막혀. 무슨 찜질방 온 거 같애. 그래서 관리팀 층은 되도록 올라가지 않는 게 좋아요. 나도 특별한 일 없으면 잘 안 올라가려 해요.


 그도 관리팀이 모여있는 층에 사장과 악수를 하러 올라간 적이 있다. 그가 최종 면접을 봤던 대회의실이 있는 바로 그 층이다. 여러 관리팀이 모여있지만 말소리 하나 들리지 않는, 숨도 조용히 쉬어야 할 것 같은 적막. 회사에 입사한 지 며칠 되지 않았지만 그도 팀장의 말이 이해가 간다. 정말 찜질방 같은, 더운 나라에 도착해서 공항 밖으로 나갔을 때 숨이 턱 막히는 느낌과 비슷했다. 



  팀장 : 어제 설명했지만, 우리 회사는 기본적으로 건설 회사에요. 그런 건설 회사가 IT를 같이 하니, 안 맞는 측면이 있어요. 위에 관리팀 층 분위기랑, IT업계 분위기는 전혀 달라요. 요즘 IT 회사들, 특히 판교 가보면 분위기나 복장이 완전 자율이에요. 출퇴근도 자율이라 점심 이후에 출근도 하고, 반바지에 슬리퍼로 출근하는 회사들도 많아요. 그 정도는 아니지만, 우리 IT사업부도 웬만큼 복장 자율이에요. 지금 저도 이렇게 입었잖아요?

  그 : 정말 자유롭게 입어도 되나요?

  팀장 : 그럼요. 아 물론. 반바지에 슬리퍼만 안 신으면 됩니다.

  


  팀장 : 그래서, 위의 관리팀은 IT를 잘 모릅니다. 그런데 일은 해야 하니까, 그 일을 저희 IT사업지원팀이 하는 거에요. 쉽게 말해서 IT사업지원팀에서, 관리팀들이 해야 할 일들을 한 번 초벌을 해서 올려주는 겁니다.

  그 : ...! (초벌이란 말에 단박에 이해가 된다)

  팀장 : 그래서 우리 팀은, 모든 일을 다 해요. 인사총무, 재무, 기획, 구매, 사업관리, 안전까지 모든 일을 다 해요. 그러니까, 모든 일을 다 배울 수 있는 팀이에요. 

  그 : 오...


 그는 다른 이들에 비해 취업이 늦었다. 그래서 빠른 시일 내에 더 많은 것을 배우고자 하는 조급함이 있다. S 팀장의 설명을 듣고 그는, IT사업지원팀이 자신에게 꼭 맞는 팀이라고 생각한다. 팀장의 말마따나 인사총무/재무/기획/구매/사업관리/안전까지 관리부서 업무를 두루 배우고 나면 이후에 어떤 커리어로 가던지 도움이 되지 않을까.



  팀장 : 우리 팀원들을 보면, 대부분 관리팀 출신이 많아요. 저 같은 경우만 해도 처음에 관리팀으로 들어왔다가, 관리팀 다 한 번씩 돌고 현장까지 나갔다가 지금 팀으로 왔고. T 과장, U 과장도 관리팀 출신이에요. 그러니까, 우리 팀에서 일하면서 배우면 관리팀 일은 오히려 관리팀에서 일하는 것보다 더 제대로 배울 수 있다는 거예요.

  그 : 오...


 첫 직장, 쌩신입인 그는 그저 모든 게 긍정적이고 좋다. 모든 관리팀 업무를 다 배울 수 있다. 오히려 관리팀에서 일하는 것보다도 더 제대로 배울 수 있다. 그가 속한 사업지원팀의 선임들이 한없이 빛나 보이며, 설명을 하고 있는 팀장에 대한 신뢰와 충성심이 하늘을 찌른다.



...

  팀장 : 오늘은 이 정도로 하죠.

  그 : 팀장님 저, 혹시, 제 커리어를 앞으로 어떻게 키우시겠다 하는 방향이 있으신가요?

  팀장 : 그건, 아무래도 얼굴 씨가 이쪽으로 커리어를 키우고 싶다고 하면 그쪽으로 가는 게 맞죠. 다만, 지금 제 생각은... 한 2년 정도. 얼굴 씨가 2년 정도는 제 밑에서 일을 하다가. 사업지원팀에서 2년 일하고 나서는 위에 관리팀을 한번 갔다왔으면 좋겠어요. 

 솔직히 제 입장에서는, 당연히 같이 일하던 사람 계속 데리고 있는 게 좋죠. 하지만, 사업지원팀에 계속 있으면 커리어상 한계가 있어요. 관리팀 가서, 2년 정도 일을 하고 내려오면 그때는 또 보이는 게 다르거든요. 일을 해보면서 '아 나는 인사가 재밌는 거 같다, 구매가 재밌는 거 같다' 라고 생각되는 게 있으면 얘기를 해요. 그쪽으로 밀어줄 테니.

  그 : ..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팀장의 명확한 설명에, IT사업지원팀이 무슨 일을 하는 팀인지 어렴풋이 짐작이나마 할 수 있게 되었다. 관리팀의 모든 것을 하는 팀, 그래서 모든 것을 배울 수 있는 팀이라.


 그는 눈치가 빠르지 않고 감이 둔한 편이다. 또한 지금의 그는, 갓 입사한 신입사원으로써 모든 것이 새롭고 모든 것이 감사한 상태다. 어떠한 일을 시키든 무한히 감사하며 수행하겠다는 콩깍지까지 씌인 것이다.


 하지만 그런 상태인 그조차도, 마음 한켠을 슬그머니 찌르는 듯한 불쾌한 느낌이 있다. 아주 못 견딜 정도는 아니지만, 계속해서 신경을 건드리는 은근한 불쾌함. 그 불쾌함은, 팀장이 그의 향후 커리어를 이야기할 때 조금 더 선명해졌었다. 사업지원팀에 계속 있으면 커리어가 애매하다는, 그리고 2년 뒤에는 위층 관리팀을 다녀오라는 말을 들을 때였다.


 그 불쾌함의 원인은 무엇이었을까. 갓 입사한 신입사원이, 이틀 동안 IT사업부의 자유로운 공기를 맘껏 들이마시고 그새 물들어서 불편한 관리팀 공기에 섞이기 싫어서였을까. 혹은 그의 머리는 아직 인식하지 못했지만, 무언가가 그와는 맞지 않는다는 것을 몸이 먼저 알려주는 것이었을까.




IT사업지원

건설 성향의 관리팀과 IT 사업부의 중간 다리

위층 관리팀들의 업무를 모두 초벌

모든 관리팀들의 업무를 하므로, 모든 관리팀들의 업무를 배울 수 있음

사업지원팀에 계속 있으면 커리어가 애매하다?

2년 정도 있다가, 관리팀으로 올라갔다가 내려왔으면 좋겠다


 입사한 지 고작 이틀밖에 되지 않은, 가뜩이나 눈치나 상황 판단이 느린 그는 아직 제대로 된 그림을 그리지 못한다. 200% 만족스럽지는 않은 것 같다. 하지만 그래도 이게 어딘가. 아주 형편없는 회사는 아닌 것 같고, 동기들이 풍문으로 이야기하는 초봉도 괜찮아 보이고, 무엇보다 눈앞의 S 팀장은 괜찮은 사람인 것 같다.


 이 팀장을 따라가면 되겠지. 벌써 그의 나이가 서른이다. 그런데 아직 직장 생활 경험조차 없다. 그야말로 새파란 애송이, 병아리. 도대체 얼마만에 어떻게 들어온 직장인가. 서류 지원만 800여 차례, 면접만 50번. 이번에도 다 떨어지면 개인사무실에서 사무 보조 알바하며 직장인 코스프레라도 해볼까 했었는데, 그래도 이 정도면 번듯한 직장 아닌가. 


 

 잡념을 집어던진다. 그는 다시 기쁘고 열정 넘치는 신입사원 마인드로 돌아온다. 드디어 합격했다. 드라마에서나 보던 '신입사원'이다. 자신을 뽑아준 면접관 S 팀장에게 한없이 충성하며, S 팀장의 기대에 부흥하고 앞으로 일도 잘하고 돈도 벌고 커리어도 쌓아서 성공할 수 있겠지!



 하지만 그가 겪어온 경험들이 항상 그러했듯, 앞으로의 일이 어떻게 진행될지는 알 수 없는 일이었다. 한없이 열정적인 '하얀 얼굴 사원'의 각오가 어떻게 변하게 될지. S 팀장의 열정적인 교육에도 가시지 않았던 은은한 불쾌감의 정체는 무엇이었을지. 

 그는 무엇이 다가올지 전혀 모르고 있다. 그저 한없이 감사하고 기쁜 마음으로, 취준생을 벗어나 직장인이 되었다는 사실에 취해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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