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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얀 얼굴 학생 Jul 23. 2023

9 - 소독

첫 임무

 입사한 지 2주차, 그는 여전히 신입사원 교육 영상만 보며 시간을 보내고 있다. 교육인지, 방치인지, 아니면 군대식의 이른바 '2주 대기(처음 들어온 이등병을, 2주 동안은 절대 갈구거나 건드리지 못하도록 지시하는 조치)'인지 헷갈린다. 어느날 T 과장이 그를 부른다.


  T 과장 : 얼굴 씨, 바빠요?

  그 : 안녕하십니까! 아닙니다! (바쁠 리가 없다)

  T 과장 : 그렇군요. 잠깐 와볼래요?

  그 :  네!


 T 과장을 따라간다. T 과장은 자리도 S 팀장과 가장 가깝고, 실무를 가장 많이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는 잔뜩 긴장하여 따라간다. T 과장이 그를 데려간 곳은 다름 아닌 화장실이다.



  T 과장 : 아, 별로 어려운 건 아니고요. 알겠지만, 요즘 전염병 때문에 안전팀에서 지침이 있어서요. 원래는 제가 했었는데, 이제 앞으로는 얼굴 씨가 해줬으면 해요.

  그 : 네!

  T 과장 : 여기 노란색 분무기 있죠? 여기에 소독액을 넣어서 회사 복도랑 엘리베이터 앞에 뿌려주면 돼요. 아, 마침 소독액이 다 떨어졌네요.


 T 과장은 화장실 개수대 아래의 커다란 말통에 튜브를 꽂더니, 튜브에 달린 고무 펌프를 몇 번 펌프질하여 스프레이로 액체를 옮긴다.



  T 과장 : 여기 통에 든 게 소독액이에요. 한... 이 정도. 이 정도 채운 다음에... 뚜껑 잠그고. 이렇게 누르면 분무가 되거든요.

  그 : 네!


  T 과장 : (밖으로 나가 돌아다니며) 이런 식으로 분무기를 뿌리면서, 복도랑 엘리베이터 쪽만 뿌려주면 돼요. 안쪽 사무 공간은 안 해도 돼요. 거기는 관리인이 해주니까.

  그 : (T 과장을 따라다니며) 알겠습니다.

  

  T 과장 : (다시 화장실로 돌아와) 그리고 다 끝나면, 분무기는 다시 여기 놓고. 여기 분무기 옆에 파일 있죠? 여기 보면 매일매일 어디 소독했나 체크하게 되어있어요. 얼굴 씨 이름 쓰고, 싸인하고 체크하면 됩니다. 앞으로 출근하면, 매일 오전/오후 한 번씩 소독해줘요.

  그 : 네, 알겠습니다!



 다음날부터, 그는 T 과장이 시킨 소독을 수행한다. 말통에 고무 펌프 파이프를 꽂아 소독액이 옮겨지는 것도 신기하고, 분무기 조작도 나름 신기하다. 그렇다. 그는 무언가 기술스러운 것, 손기술을 좋아하는 편이다.


 T 과장의 말대로, 오전과 오후 한 번씩 하루 총 2차례 소독을 실시한다. 분무기를 들고 돌아다니며 복도, 엘리베이터 쪽에 쓱 뿌린다. 많이 뿌리지 않아도 되니, 분무기를 틀어놓은 상태로 그냥 걸어서 지나가기만 하면 된다. 그는 처음 배정받은 임무에 나름 열심이다. 매일매일 이름도 적고, 소독한 시간도 정확하게 기입한다. 솔직히 대강대강, 시간도 그냥 일괄적으로 적어버려도 상관없을 것이다. 그래도 그는 그런 작은 습관 하나하나가 모여 걷잡을 수 없게 될 것이라며, 정직하게 하겠다고 다짐한다.



 이상한 점은, 소독을 하는 그를 보는 다른 직원들의 반응이었다. 소독하면서 지나가는 그를 보면, 어느새 얼굴을 익힌 다른 직원들이 꼭 한 마디씩 했다.

  - 안녕하세요. 아니, 뭐하는 거예요?

  - 이런 것도 해요?

  - 누가 시킨 거예요?

  - 허 참, 이런 것도 하는 건가.


 그는 평생 첫 직장인데다 한없이 밝은 신입사원이므로, 다른 직원들의 반응을 제대로 읽지 못한다. 그저 자신에 관심주는 것이 기쁠 따름이다. 서류탈락 수백 번에 면접탈락 수십 번인 자신이다. 그런 자신도 이렇게 쓰임이 있고, 다른 이들이 관심을 가져주는구나.



 하지만 그런 그도, 조금씩 의문이 생긴다. 그에게 첫 임무를 준 T 과장은, 첫 2주 동안만 소독했느냐고 물었을 뿐 이후로는 말이 없다. 소독을 하라고 시킨 '안전팀'이라는 곳은 아예 기억에서 잊혀졌다. 그의 의심을 증폭시킨 것은 두 가지다.

  - 건물 관리인도 하루 2차례 소독을 하며, 심지어 그가 하는 구역과 겹친다.

  - 매일 어디를 소독했는지 체크하는 파일이 갱신되지 않으며, 관리하는 이가 없다.


 그 이외에도, 사업부에서 소독을 하라고 지시받은 직원이 한 명 더 있었던 것 같다. 하지만 그는 그 직원이 소독하는 모습을 한 번도 보지 못했으며, 장부에 써 있는 이름과 시간만 보았다. 3주 정도 지나자, 장부에서조차 이름과 시간이 사라졌다. 



 장부는 A4 크기의 황화일로, 안에는 '소독일자/이름/시간/서명란' 으로 이뤄진 A4 양식이 인쇄되어 있다. 하루에 한 줄씩 작성을 하므로, 대략 한 달 정도 지나면 A4를 새로 출력해야 한다. 그런데, 이 양식을 새로 출력해서 가져다주는 이도, 확인하는 이도 없다. 그는 아직 문서 작업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기 때문에, 해당 양식이 있는지 T 과장에게 조심스레 물었다. 이때 T 과장의 답에서 그는 힌트를 얻는다.


  T 과장 : 아니, 시켜놓고 관리도 안 하네... 지금 주는 양식 뽑아서 끼워놓고, 다음번에도 또 갱신 안되어 있으면 그냥 우리도 하지 마요.

  그 : 알겠습니다. 



 T 과장이 준 양식에 그의 이름과 서명이 빼곡히 들어찬 이후에도, 어떠한 관리나 현황 갱신도 없었다. 그는 T 과장의 지시를 따른다. 그의 첫 임무는 그렇게 싱겁게 끝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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