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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얀 얼굴 학생 Jul 23. 2023

8 - 배탈

쭈꾸미

 그가 출근을 시작한 첫째주 금요일, 연인과 약속을 잡는다. 퇴근하는 시간에 맞춰, 연인이 직장 앞까지 오겠다고 한다. 오랜 준비 기간 끝에 드디어 성공한 취업, 처음 맞이하는 금요일, 직장 앞으로 오겠다는 연인까지, 모든 것이 완벽하다.


 1주차 신입사원인 그는, 열정이 너무 과하다. 아는 것이 없기 때문에, 앞으로의 미래가 한없이 밝게만 보인다. 이 회사에서 모든 것을 거머쥘 수 있을 것이란 생각이다. 경험도, 실력도, 인맥도, 돈도, 자기계발도, 그리고 건강까지도. 무엇 하나 놓치지 않고 이룰 수 있을 거란 느낌이다. 다른 사람들은 못한다 해도, 그 자신은 해낼 수 있을 것 같다. 그는 허황된 욕심이 꽤 많은 편이다.



 연인을 보기로 한 금요일, 아침 출근길부터 그는 사무실까지 계단을 오른다. 하체 강화 운동을 하겠다는 심산이다. 그의 팀이 자리하고 있는 사무실의 층은 꽤 높다. 아주 못 올라갈 높이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쉽게 올라갈 수 있는 높이도 아니다. 상관없다. 그에게는 주체할 수 없는 열정과 치기가 있으니. 그는 일부러 다리에 더 힘을 주어, 근육에 부하를 주면서 계단을 오른다. 


 오전 일과는 평소처럼, 하는 것 없이 시간만 흘려보낸다. 신입사원 교육용이라는 녹화 영상을 틀어놓고, 졸지 않으려 안간힘을 쓴다. 팀원들이 무슨 이야기를 하거나 임원실에서 회의가 있으면, 엄청난 정보가 있지 않을까 귀를 기울여 듣는다. 그의 노트는 지나다니는 사람들의 이런저런 이야기를 적으며 점점 새까매진다.



 마침내 점심시간이 됐다. 사업지원팀 모두가 기다렸다는 듯 일어나 구내식당으로 내려간다. 이날의 메뉴는 '짜장'이다. 그가 좋아하는 메뉴이므로 식판에 양껏 퍼서 담는다. 그런데 유독 이 날따라, 상사들의 먹는 속도가 빠르다. 그가 식사의 반의 반도 끝내지 못했는데, 상사들은 이미 식사가 끝나있다. 열정이 넘치는 그는 남은 음식들을 버릴 생각이 없다. 안 그래도 빨랐던 식사 속도에 더욱 박차를 가해서, 음식을 모두 먹어버린다. 첫 번째 원인이었다.


 그렇게 급하게 먹고 나서도, 그는 자신의 몸상태를 알아채지 못한다. 상사들의 눈치를 보느라 정신이 팔려서였을까. 식사가 끝나자 상사들은 엘리베이터를 타지 않고 여기저기로 뿔뿔이 흩어진다. 이전까지는 없었던 상황이다. 상사들과 엘리베이터를 타지 않아도 되는 상황, 그에게도 자유가 생겼다. 눈치를 보고 있던 그의 열정이 다시 불타오른다. 점심시간에 주어진 자유, 그는 운동을 하기로 한다. 구내식당에서 사무실 층까지, 그는 엘리베이터를 마다하고 또다시 계단으로 올라간다. 두 번째 원인이다.



 그의 오후 일과는 오전과 동일하다. 신입사원 교육 영상을 틀어놓고, 졸음을 참고, 주위를 스쳐지나가는 수많은 이들의 말에 귀 기울이며 받아 적는다. 그런데 몸 상태가 뭔가 이상하다. 배가 약간 무겁고, 식은땀이 삐질삐질 난다. 앉아있어도, 일어나도 편치가 않다. 상체를 똑바로 세우기 애매한 상황. 하지만 너무 긴장해서인지, 약간 불편한 정도에 그친다.


 애매하게 느껴지던 몸 상태는, 퇴근 시간이 다가올수록 점점 더 선명해진다. 긴장이 서서히 풀리면서 몸 상태를 제대로 인식할 수 있었던 것이리라. 명치 쪽과 윗배가 답답하다. 딱 봐도, 급하게 먹어서 체한 증상이다. 이러면 안되는데, 오늘 연인이 오기로 했는데.



 어찌저찌 시간이 지나고, 마침내 퇴근이다. 하지만 그의 상태는 계속해서 악화되어 간다. 애써 괜찮다고 되뇌며, 연인을 만나러 간다. 연인은 그의 직장 바로 앞까지 와있다. 너무나도 아름다운 모습. 모든 걸 잊고 웃음이 나온다.


 그와 연인은 직장 주변을 벗어나, 저녁을 먹으러 간다. 그가 연인과 도착한 장소는 쭈꾸미 볶음 맛집이다. 연인은 쭈꾸미를 좋아하고, 또 술을 좋아한다. 그의 취업 성공을 기념하며, 또 오랜만에 본 것을 기념하며 축하주를 들 예정이다.


 최대한 내색하지 않으려 했건만, 엉킬 대로 엉켜버린 그의 속은 음식을 받아들일 수가 없다. 젓가락을 들고, 쭈꾸미 몇 마리를 겨우 입에 넣는다. 맛은 괜찮다. 매콤한 양념, 쫄깃한 식감, 소주 안주로도 제격이다. 그의 속이 괜찮았다면 말이다. 결국 그는 연인에게, 속이 좋지 않다고 털어놓는다. 음식은 먹지 않더라도 소주는 가능하다고 했지만, 그마저도 반 잔만 마시고 내려놓는다.



 연인은 그의 이런 모습에 속이 상한 듯하다. 약간 나무라는 듯한 투, 간만에 만나는데 몸상태가 왜 그러냐고 말한다. 혼나는 것에 가깝다. 뒤틀린 속을 부여잡고 있던 그, 그가 기억하는 연인의 주된 말은 아래와 같다.

 - 오랜만에 보는 건데 관리를 잘해야 하지 않냐

 - 앞으로도 이런 식이면, 회사 끝난 뒤에 굳이 만나고 싶지 않다


 그는 그저 알겠다며, 별다른 반박 없이 듣기만 한다. 미안할 따름이었다. '이런 식이면 굳이 회사 끝난 뒤 보고 싶지 않다'는 연인의 말은, 너무한 것이 아닌가 싶은 생각도 든다. 그래도 별 말 없이, 알겠다며 잠자코 들었다. 그는 말꼬리를 잡고 말다툼을 할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다. 점점 더 엉켜오는 그의 속 상태 때문이기도 했고, 연인을 향한 그의 마음 때문이기도 했다. 


 그는 연인이 찾아와 준 것이 너무 고마웠다. 마침내 취업에 성공해서, 이렇게 편안하게 만날 수 있다는 것. 다른 커플들처럼, 앞으로는 직장이 끝나고, (의지만 있다면) 매일같이 만날 수 있으리라는 것. 앞으로 펼쳐질 그와 연인의 모습이, 먼 길을 마다하고 찾아와 준 연인이 너무 고마웠다.



 훗날 다시 생각해보자면, 이때 연인이 그에게 약간 지나치게 뭐라고 한 감이 없진 않다. 하지만 이때 그는 개의치 않았다. 먼 길을 찾아와 줬는데, 제대로 맞이하지 못한 것에 대해 오히려 미안함을 느꼈다. 


 결국 저녁 자리는 예정과는 다르게 간단하게 파했고, 연인은 약간 뾰루퉁한 상태로 돌아갔다. 미안하고 아쉽지만 어쩔 수 없다. 그의 속은 계속해서 엉키고 뒤틀리고 있다. 간신히 집에 도착하자마자 자리를 깔고 누워버린다. 몸의 방어 기제인지, 눕자마자 잠이 든다. 다음날 일어났을 때에는, 탈이 났던 속이 말끔하게 나아있었다.


 이때의 경험을 계기로, 그는 식사 속도를 조절하고 점심에 계단을 오르지 않는다. 이후로 그가 회사에서 배탈이 나는 일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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