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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얀 얼굴 학생 Jun 11. 2023

7 - 점심 식사

스피드

 점심시간이 되자, 과장 중 한 명이 식사하러 내려가자고 한다. 과장의 말에, 사업지원팀 전체가 기다렸다는 듯 일어난다. S 팀장, V 차장, T 과장, U 과장에 그를 포함하여 총 5명. W 사원은 밥을 함께 먹는 경우가 거의 없다. 회사 생활이 처음인 그가 보기에도, W 사원은 유난히 단독 행동이 많다.



 그의 직장에는 구내식당이 있다. 점심시간이 되면, 직원들은 엘리베이터를 통해 구내식당 층에 내려 밥을 먹었다. 이 구내식당은 '손님을 맞이하는 곳'이다.


 식당 내부는 커다랗고, 벽 한쪽에는 조리를 담당하는 조리원들이 보인다. 배식대의 밥이나 반찬이 부족할 즈음 이따금씩 조리원들이 커다란 스틸 반찬통을 가지고 와서 채워준다. 전형적인 단체 급식의 모양새, 학교 급식 또는 군대 취사장과도 흡사하다.



 그가 겪어온 바에 따르면, 보통의 사람들은 이렇게 대형으로 이뤄지는 단체 급식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급식 업체의 수준이 빼어나지 않은 이상은 말이다. 회사의 구내식당을 이용하는 이들의 표정을 보니, 밝은 이가 별로 없다. 점심시간이 되었다는 기쁨은 있으나, 구내식당에서 식사를 한다는 사실에서는 기쁨을 얻지 못하는 듯하다.


 그의 입맛은 보통의 사람들보다 무던한 편이다. 그는 학교에서도, 심지어 군대에서도 밥을 잘 먹곤 했다. 이 회사의 구내식당도 그에게는 나름 괜찮아 보인다. 고기반찬이 반드시 한 가지씩은 포함되어 있으며, 야채, 밥, 국 등 기본적인 찬이 다 갖춰져 있다. 무엇보다 만족스러운 것은, '자율 배식'이라는 점이다. 그가 원하는 만큼, 양껏 퍼서 먹을 수 있다.


 그도 신입사원이니, 굳이 눈에 띄는 행동이나 발언은 자제해 왔다. 하지만 먹는 것만큼은 예외다. 회사 내에 소문이 어떻게 나던, 그에게는 영양 보충이 중요하다. 먹는 것이 중요하다. 그는 식판이 미어터질 만큼 밥과 반찬을 가득가득 담는다.



 자율 배식이라는 커다란 이점이 있었으나, 그의 식사를 방해하는 장애물도 하나 있다. 그것은 바로 이 회사의 '조직 문화(식사 분위기)'다.


1) 상사들과 함께 식사

 점심시간이 되면 팀 전체가 다같이 내려가서 함께 밥을 먹기 때문에, 식사 분위기가 썩 편하지는 않다. 팀장, 차장, 과장과 함께 밥을 먹으니 말이다.


2) 밥 먹는 속도

 그런데 더욱 문제가 되는 것은, 바로 속도다. 상사들은 입맛이 없는 것인지 이 구내식당에 질릴 대로 질려버린 것인지, 밥을 먹는 둥 마는 둥 한다. 배식을 받아 자리에 앉은 시점부터 식사가 끝날 때까지, 길게 잡아도 식사 시간은 10분 남짓이다.



 그도 밥을 느리게 먹는 편이 아닌데 그런 그에게조차, 이 회사의 식사 속도는 감당하기가 벅차다. 가뜩이나 그는 구내식당 메뉴에 대한 악감정이 형성되지 않았으므로, 양껏 퍼서 양껏 먹으려는 상태다. 그가 식사를 25% 정도 진행했을 즈음, 옆의 상사들은 이미 식사가 거의 끝나 있다.


 구내식당에 내려올 때는 함께 내려오더라도, 식사를 마치고 나서 올라갈 때는 알아서 올라갔으면 그나마 문제가 덜하다. 하지만 이 회사, 아니 적어도 그가 속한 사업지원팀은 전체가 같이 움직이는 분위기다. 그가 식사를 마칠 때까지, 다른 상사들이 모두 자리에 앉아 기다리고 있다. 모두들 스마트폰을 보고 있으며, 그에게 직접적으로 눈치를 주거나 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눈치를 주지 않는다 해도, 사람이라면 어쩔 수 없이 눈치가 보이게 마련이다. 더더군다나 신입사원이니, 그는 옆을 힐끔힐끔 보며 먹는 속도에 박차를 가한다.


  T 과장 : 얼굴아, 천천히 먹어.

  그 : 아 네! 알겠습니다! (허겁지겁)



 그는 패기로운 신입사원으로서, 이 상황을 해결할 기가 막힌 해결책을 떠올린다.


 다들 밥을 적게 드시니, 나는 처음부터 식사 속도를 빠르게 해서 속도를 맞추면 되겠구나!


 배식양을 줄이는 선택지는 아예 고려조차 하지 않는 그다.



 식사를 마치고, 팀장이 그에게 묻는다.

  팀장 : 식사는 잘 했어?

  그 : 네, 입맛에 잘 맞습니다!

  팀장 : 그래? 몇 번 더 먹어봐.


 시간이 지나면, 그도 다른 직원들처럼 구내 식당이 물려버릴 지도 모를 일이다. 하지만 그는 내심 알고 있다. 심지어 군대 밥조차도 맛있게 먹었던 그다. 엥간한 큰 일이 있지 않는 이상, 이 구내식당이 그의 눈밖에 날 확률은 희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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