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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얀 얼굴 학생 Sep 29. 2023

12 - 팀장 지시 (2)

모르는 용어

 신문 기사 공유 외에도, S 팀장은 그에게 한 가지 지시를 더 내린다. 이른바 '모르는 용어' 지시다.


  S 팀장 : 얼굴아, 이리 와봐

  그 : 네!

  S 팀장 : 너가 이제 아침마다 기사도 올리고, 일도 배우고 있잖아.

  그 : (일을 배우고 있진 않다) 네

  S 팀장 : 기사도 그렇고, 일을 할 때마다, 너가 모르는 용어들이 나올 거란 말야. 나도 원래는 위층 관리 부서에 있다가 사업부 내려왔거든. 처음 왔을 때 뭐가 뭔지 하나도 몰랐어

  그 : 네

  S 팀장 : 그럴 때마다 나는 그냥 무작정 찾아가서 물어봤어. 영업이든 기술이든 찾아가서, 이게 뭔지, 이게 무슨 말인지. 점심도 같이 먹고, 점심 먹고 나면 커피도 한잔 같이 마시고. 또 저녁에는 같이 술 한잔 하면서. 클라우드팀? 클라우드가 뭔지, 너네는 도대체 무슨 일을 하는지. 계속 찾아가서 물어보고 하면서 배웠단 말야

  그 : 네

  S 팀장 : 그러니까 너도, 모르는 게 있으면 일부러라도 찾아가서 물어봐. 우리 팀은 영업도 알고 기술도 알아야해. 그래야 대화가 될 거 아냐? 그리고 그걸 위해선 사람들을 많이 만나야해. 우리 팀 일은 내가 일을 잘해야하는 것도 있지만, 아는 사람이 많아야 일이 편해. 

  그 : 네

  S 팀장 : 그래. 앞으로는 엑셀 파일로 하나 만들어서, 양식은 그냥 너 마음대로 자유롭게. 매일매일 기사나 일하다가 모르는 단어가 생기면 다 적어서 나한테 제출해. 그러면 내가 이건 누구한테 물어봐라, 이건 누구한테 물어봐라 가이드를 줄 테니까. 그럼 다음날 그 사람을 찾아가서 물어보도록 해.

  그 : 네



 자리에 돌아온 그는, 모르는 용어들을 수집하기 시작한다. 뉴스 기사는 물론, 귀를 세우고 있으면 모르는 용어가 여기저기서 많이 들린다. 아는 것이 없다시피 한 그이지만, 영업이나 기술 관련 용어는 그 정도가 더욱 심하다. 그가 적었던 '모르는 용어' 리스트는 아래와 같다.


 IT : SM / RFI / RFP / 파이프라인 / 헤더 / CDN / 캐시 / 로그 / 백본 등

 게임 산업 : CBT / OBT / 마일스톤 / QA 등

 환율 : FOMC / 매파 / 비둘기파 등

 영업 : Winback / AM / Back to Back / Up-selling / 인바운드 / 아웃바운드 등


 그가 적어간 리스트 옆에, S 팀장은 열을 추가해서 '물어보세요' 열을 만든다. 각 용어마다 물어봐야 하는 사람을 정해준 것이다. 이름을 보고 회사 홈페이지에 검색하니, 기술팀과 영업팀이 모두 섞여있다. 이참에 회사 내 여러 사람들을 두루 사귀라는 뜻인 듯 싶다.



 다음날부터, 그는 S 팀장이 지명한 사람들을 찾아가 무턱대고 용어에 대해 물어본다. 입사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신입사원인 그를 알 리가 없다. 하지만 상관없다. 호주에서 무작정 길거리 상점에 들어가 이력서를 준 것이 100여 차례, 한국에 돌아와 이력서 난사만 수백 번, 면접은 50번이 넘는다. 그에게는 아직 사회 초년생의 열정이 남아있다.


  그 : 안녕하세요. 기술팀 ㅅ 사원님이 누구시죠?

  ㅅ : 아, 저인데요?

  그 : 안녕하세요, 저는 이번에 새로 입사한 사업지원팀 하얀 얼굴 사원이라고 합니다.

  ㅅ : 아 네, 안녕하세요. 어쩐 일로?

  그 : 아, 저희 S 팀장님께서, 기술 관련 모르는 용어를 ㅅ 사원님께 문의하라고 하셔서요.

  ㅅ : 저한테요? 어... 어떤 거죠?

  그 : (노트를 보여주며) 여기, 이 리스트들이에요.

  ㅅ : 캐시, 퍼지 ... CDN 관련 용어들이네요.

  그 : 잠시 시간 되시나요?

  ㅅ : 네, 여기 앉으세요.

  그 : (의자를 가져와 앉는다) 네 감사합니다.

  ㅅ : ... 뭐부터 알려드려야 되지. 리스트가 뭐였죠?

  그 : 캐시, 퍼지... ... 입니다.

  ㅅ : 캐시? 캐시부터 하죠. 저도 사실 IT 전공자가 아니고, 국비지원교육 받고서 취업했거든요.

  그 : 아, 그렇군요

  ㅅ : 그래서 저는 이런 거 공부할 때 히스토리, 배경이 참 기억이 많이 났는데요. 아 우선 캐시는, 저희 컴퓨터를 보시면 여러 메모리가 있는데, 이 중에 캐시 메모리가...

  그 : (무슨 말인지 모르겠지만 받아적는다)

  ㅅ : ... ... 그래서 간단하게 정리하면, 캐시 메모리는 결국 오리진에서 가져와서 중간 서버에 저희가 저장해 놓은 메모리에요. 이걸 '캐싱'이라고 하죠.

  그 : (오리진? 계속해서 받아적는다)

  ㅅ : 제가 공부할 때 봤던 건데, 사실 CDN 기술 자체가 미국에서 유래했다고 해요. 미국은 아메리카 대륙이 동서로 크잖아요? 예전에 광부들이 금광 찾으러 아메리카 대륙을 건널 때, 거리가 너무 멀어서 짐을 계속 갖고 갈 수가 없잖아요? 그래서 중간 지점에서 땅을 파고 짐들을 묻어놨다고 해요. 그걸 '캐시'라고 했고, 거기서 유래했다고 하네요.

  그 : 아, 네

  ㅅ : 재밌지 않나요? 저는 재밌던데

  그 : 맞습니다. 설명해주신 내용이 머리에 바로 딱 들어오네요.



 이후에도 S 팀장은 그를 여러 차례 'ㅅ'에게 보냈다. 처음에는 약간 어색했지만, 나중에는 그도 ㅅ과 안면이 트고 편안해지기 시작한다. 둘의 나이가 비슷했으며, ㅅ도 입사 1년차 사원이었다. S 팀장의 큰 그림인지도 모르겠다.


  ㅅ : 얼굴님 안녕하세요. 오늘은 또 어떤 것 때문에 오셨나요

  그 : 오늘은 이것들 때문인데요...

  ㅅ : 아, 이건 저보다는 옆에 차장님께 물어보시는 게 빠를 텐데... 차장님?


 그는 ㅅ에게, 바쁜데 자신이 방해가 되는 건 아니냐고 물었다. 말투에서 부산 사투리가 물씬 풍기는 ㅅ은, 전혀 상관없다고 했다. 오히려 자신도 같은 팀 상사들과 친해지기 서먹했는데, 그를 핑계 삼아 모르는 것을 상사들에게 물어볼 수 있었다고까지 말한다. 빈 말이라도 고맙기 그지없다.



 ㅅ에게서 가르침을 받는 것은 수월했으나, 그렇지 않은 경우도 많았다. 직급이 높은 사람일수록 그랬다. 기본적인 태도가 우호적인지 여부도 있었지만, 과장급의 가르침은 듣더라도 이해하기가 힘들었다. 너무 깊이가 깊고 생략이 많아, 초심자인 그에게는 가히 외국어 같다는 인상을 줄 정도였다.


  그 : 안녕하세요, 사업지원팀 하얀 얼굴 사원이라고 합니다. ㅎ 과장님이신가요?

  ㅎ : (화들짝 놀라며) ?? 아 네. 누구시라고요?

  그 : 사업지원팀 하얀 얼굴 사원입니다. 잠시 시간 되시나요?

  ㅎ : 네? 뭐 때문에...

  그 : 저... S  팀장님께서 모르는 용어 관련해서 과장님께 문의해 보라고 하셔서요.

  ㅎ : 모르는 용어요? 뭔데요? 아니 근데 누가 저한테 오라고 했다고요?

  그 : S 팀장님이요.

  ㅎ : ?? 리스트 있어요? 일단 줘보세요. ... 아니 근데 이걸 왜 나한테 문의하라고 하지?

  그 : ...

  ㅎ : 앉아보세요. 물어볼 게 뭐였죠?

  그 : 백본이요.

  ㅎ : 백본? 백본은 이 뒤에 깔리는 망을 백본이라고 하는 거에요.

  그 : ... 뒤에 깔리는 것 말씀이신가요?

  ㅎ : 우리가 웹사이트 보면, 우리가 보는 페이지가 있고, 중간에 미들웨어(제대로 기억나지 않는다)가 있고, 그 뒷단에 백본이 있어요.

  그 : (눈치를 보며, 더 묻는 것을 포기한다) 아... 그리고 '로그'는요?

  ㅎ : 로그... 아니 이걸 왜 나한테... 로그라는 건 말이죠... ...

  그 : (받아적는다)

  ㅎ : 이거는, 기본적으로 개발이랑 코딩을 알면 바로 이해가 돼요. 유튜브 보면 코딩 강의 많이 있거든요? 

  그 : 네

  ㅎ : (유튜브를 검색하며) 여기, 괜찮은 코딩 강의 링크 보내줄 테니까, 이 사람 거 한번 들어봐요.

  그 : 알겠습니다.

  ㅎ : 네, 더 물어볼 거 있나요?

  그 : (리스트를 숨기며) 아뇨 다 끝났습니다. 감사합니다!



 이후에도 모르는 용어 탐방은 약 1달가량 이어진다. 그는 매일같이 리스트를 제출했고, S 팀장은 그를 회사 이곳저곳으로 보내어 모르는 것을 물어본다는 미명 아래 인맥을 넓히도록 한다.


 하지만 이때부터도, 그의 마음 한켠에서는 의심과 불안이 올라왔다. 그가 물어보는 이 내용들을 제대로 알려면, 이렇게 피상적으로 물어보는 것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학부 전공생 난이도의 공부를 해야할 터다. IT, 코딩, 개발 공부를 해야하는 것이다. 그는 이 업계를 원해서 들어온 것인가? 아니, 애초에 IT에 입사할 것이라고는 상상조차 못 했다. 그는 IT 업계 공부를 하고 싶은가. 아니면 적어도 의지가 있는가. 잘 모르겠다. 모르는 용어를 물어보며 그 설명을 들었을 때, 흥미롭고 재미있다고 생각한 적이 한 번이라도 있나.



 IT, 코딩, 개발에 관심이 없더라도 괜찮다. 그는 기술이나 영업팀이 아니니까. 그렇다면 그가 몸담고 있는 '사업지원'은 무슨 일을 하는 팀인가. S 팀장의 했던 말 중 그의 귀에 맴도는 말이 있다.


 '우리 팀은 결국 인맥으로 일을 하는 팀이야'


 인맥. 인맥으로 일을 한다. 생각을 거듭할수록 그는 이 말이 부정적으로 인식된다. 물론 S 팀장이 의도한 의미는 다를 수 있다. 설마, 자신은 사회초년생이므로 아직 모르는 부분이 많겠지. 그는 주어진 상황에 적응하고 만족하고자 애써 눈을 감는다. 살짝 불편한 감이 있긴 하나, 눈을 감아버리면 본인에게도 편하다. 당장은 별다른 노력을 하지 않아도 되니까.


 사회초년생 주제에, 주어진 일에 만족하지 않고 다른 것을 바라보는 것은 옳지 않다. 여기서도 이제 막 발을 뗀 참인데, 제대로 파악도 되지 않은 상태에서 결정을 내리는 것은 성급하다. 적응이 먼저다. 지금의 불안은, 누구나 처음 적응기에 겪는 것이다. '무지'에서 오는 불안인 것이다. 부디 그러길 바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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