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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얀 얼굴 학생 Sep 29. 2023

13 - 신입사원 IT 교육

첫 번째 괴리감

 오전에는 신문 기사를 올리고, 오후에는 S 팀장이 지목한 인원들에게 찾아가 모르는 용어를 묻고 다닌다. 하지만 이런 업무들은 그의 하루 중 극히 소수에 해당하는 시간이었다. 이외 대다수의 시간은 신입사원 교육, 이른바 IT 교육을 듣는 데에 할당되었다.


 그의 동기들은 모두 'IT 기술팀'이었다. 그는 동기들과 함께 교육을 들었으며 교육의 비중은 오프라인 30%/온라인 70% 였다. 즉, 교육 중 대부분의 시간이 이전에 녹화해 둔 '동영상 교육 자료'다. 그는 출근하면 하루 종일 교육 영상을 틀어놓고 들여다본다. 오프라인 교육 영상들의 시간을 모두 합치면 대략 30시간 정도 될 것이다.



 그의 입장에서는 편하면서도 불안한 것이, 이러한 신입사원 교육에 대한 피드백이 전혀 없다는 점이다. 가뜩이나 그는 기술팀이 아닌 '사업지원팀'이다. 전공도 IT가 아니기 때문에(물론 그 자신의 전공도 열심히 공부하지 않았으나) 그는 영상의 내용이 제대로 이해가 가질 않는다. 영어를 전혀 모르는 이가 CNN 방송을 틀어놓고 그냥 계속 듣는 것처럼, 듣다 보면 언젠가는 마법처럼 이해가 되겠거니. 그가 어릴 적 다녔던 영어학원의 방식이었다. 그가 초/중학생 시절 다녔던 영어학원 TV에는 항상 CNN 방송이 틀어져 있었다. 하지만 그가 CNN 방송에 관심을 갖고, 어렴풋이나마 듣기 시작한 것은 성인이 된 이후였다.


 사업지원팀은, S 팀장을 제외하고는 그에게 그다지 관심이 없는 듯하다. 팀장도 신문 기사 공유 및 모르는 용어 지시를 내렸을 뿐, 신입사원 교육에는 관여하지 않는다. 가끔 T 과장이 그에게 다가와 무엇을 하냐고 묻는 것이 전부다.


  T 과장 : 얼굴 씨.

  그 : 안녕하십니까!

  T 과장 : 안녕하세요. 아 신입사원 교육 듣는구나.

  그 : 네.

  T 과장 : 어떤 내용 들어요?

  그 : 지금 CDN이랑 Cloud 듣고 있습니다!

  T 과장 : 아. 기술 알아두면 좋으니까. 잘 들어놔요.

  그 : 네!



 T 과장이 떠나면 그는 다시 모니터로 눈을 돌린다. 하지만, 초중학생 시절의 자신이 CNN 방송을 쳐다봤던 것처럼, 멍하니 바라만 볼 뿐이다. 이걸 어느 수준까지 공부를 해야하는 것인가. 혼자 전공책을 사서, 회사가 끝난 뒤 집에서 홀로 열심히 공부를 해야하는 것인가. 물론 그렇게 한다면 좋을 것이다. 공부해서 나쁠 것은 없으니. 하지만 그는 공부가 하기 싫다. 회사 내에서만 귀를 열어놓고, 회사 생활 꾸준히 하다보면 자연스레 모든 것을 깨우쳤으면 좋겠다. 다른 동기들은 어떨까. 집에서도 열심히 공부하고 있을까? 물어보는 것이 괜스레 어색하고, 내심 두렵기도 하여 그는 묻지 않는다.



 동영상 강의를 한창 듣다가, 아주 가끔 Cloud팀에서 신입사원들에게 호출이 왔다. 너무 동영상만 보게 해서 민망했던 것인지, 과장급이 직접 강의를 해주겠다는 것이다. 그는 내심 기대를 품고 교육에 참여했다. 그 혼자만 못 알아듣고 있는 것이 아니라는, 모든 이들이 다 같이 시간을 흘려보내고 있는 것이라는 기대. 군대에서의 이른바 '이등병 2주 대기' (처음 자대에 배치받은 이등병의 부대 적응을 돕기 위해, 그리고 자살 방지를 위해 처음 2주 동안은 선임들이 절대 건드리지 못하도록 하는 조치) 기간과 같다는 것을 확인하기 위해서다. 하지만 그의 기대가 또다시 산산이 깨져버린다.


  ㅊ 과장 : 안녕하세요.

  신입사원 일동 : 안녕하세요.

  ㅊ 과장 : 네, 다들 동영상만 보느라 힘드시죠. 내용이 잘 들어오지도 않을 텐데.. 그래서, 적은 시간이라도 이렇게나마 자리를 마련해서 교육을 진행하려고 합니다. 

  신입사원 일동 : 네!

  ㅊ 과장 : 네, 다들 아시다시피...


 ㅊ 과장의 교육은 3번 정도 있었으며, 전부 2시간이 넘는 강의 형식이었다. 그는 ㅊ 과장의 강의를, 도무지 알아먹을 수가 없었다.


  ㅊ 과장 : 보통 저희가 웹을 구축할 때 보면, 프런트에 웹이 있죠? 그리고 백단에 DB가 있어요. 이 사이에 있는 것을 미들웨어라고 하는데, 이 미들웨어의 성격이 산업마다 다를 수 있단 말이죠. 금융권이나... ...

  동기 1 : 요즘 트렌드는, 온프레미스를 클라우드로 옮기는 형식인가요?

  ㅊ 과장 : 아, 대부분은 그렇죠. 하지만 마이그레이션이 힘든 산업들도 많기 때문에, 그럴 때는 클라우드가...

  동기 2 : 저희는 그럼 SI성이 강한 회사인가요?

  ㅊ 과장 : 해당 부분은... ...

  동기 3 : 지금 설명해주신 부분이, 아이아스(IaaS)인가요?

  ㅊ 과장 : 말씀하신 IaaS도 맞지만, 요즘에는 파쓰(PaaS)나 싸쓰(SaaS)까지도...



 도무지 알아들을 수가 없다. 그는 ㅊ 과장이 화이트보드에 그린 그림을 노트에 베껴 그리기 급급하다. 도무지 알아듣기 힘든 내용들이 난무하니, 그에게 결국 졸음이 찾아오기 시작한다. 이날 교육이 끝난 뒤, 함께 교육을 들은 동기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그는 무언가 잘못되었음을 직감한다.


  그 : 오늘 교육 어떠셨나요?

  동기 1 : 설명을 너무 깔끔하게 잘해주셔서, 이해가 잘 되더라고요.

  동기 2 : 맞아요.

  그 : ...


 그가 동기들과 대화하면서 처음으로 느낀 괴리감이다.



 약 일주일 뒤, 그의 동기들은 어떤 서버를 구축하고 만드는 '실습' 교육을 듣는다고 했다. 그가 사업지원팀 과장들에게 문의하니, 들으면 좋기야 하겠으나 실제 업무와는 상관이 없다고 했다. 그리고 추후에 한번 더, 해당 교육은 쓸모가 없으니 들을 필요가 없다고 답변을 받았다.


 그는 실습 교육을 듣지 않았고, 여태껏 들어온 IT 교육에 대해서도 보고나 발표를 진행하지 않았다. 그의 입장에서 몸은 편했지만, 마음은 그렇지 않았다. 결국 그는 신입사원 교육 때 들었던 대부분의 내용을 그대로 잊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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