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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얀 얼굴 학생 Sep 29. 2023

15 - 회계 계정과목, 전표

효율적으로 일합시다

 IT 동기들이 무슨무슨 '실습' 교육으로 넘어간다는 이야기가 들릴 즈음, 그는 자신이 이제 교육에서 슬금슬금 빠질 것이리란 것을 눈치챈다. 상관없다. 그는 원래 이론보다는 실용적인 것을 동경하는 편이다. 계속해서 교육만 듣고 이론만 파는 것보다는, 일단 투입되어 부딪히며 배우는 것이 훨씬 낫다고 생각하는 그다.


 때마침 T 과장이 그에게, 새로운 자료를 하나 보내준다. 당장 무엇을 하라는 것은 아니다. 실무에 많이 쓰이는 용어와 개념이니, 미리미리 숙지해두라는 것이다. 파일은 두 개로, '회계 교육(계정과목 설명)'과 '전표 작성 교육'이다.


 회계, 약 10년 전 전공기초 때 들은 이후로는 기억에 없는 과목이다. 애써 부정해왔지만, 그는 사실 회계를 기피해왔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피하고자 애썼는데, 결국 경영학도는 회사에서 '회계'를 마주할 수밖에 없는 것인가. 그런데 그는 재무팀이 아니다. 사업지원팀, 모든 업무를 하는 팀이니 회계도 해야 한다는 뜻일까?

전표, 그는 이때까지 전표라는 말을 사용해 본 적이 없다. 전표? 뭔가 돈과 관련된 표인가? 


 T 과장이 보내준 자료를 보며, 낯섦에 대한 공포와 설렘이 밀려온다. 하지만 그 밀려오는 감정 저편에는, 약간의 허탈함도 있다. 그가 지금껏 준비해 왔던 직무, 상상해 왔던 일과는 전혀 다른 업무를 할 것 같다는 예감에서다. 뭐, 사업지원팀은 모든 업무를 다 배울 수 있다고 했으니까. 회계와 전표도, 꼭 배워야 하는 것이겠거니. 슬픈 예감 따위는 억누르는 것인지 밀려나는 것인지, 그는 우선 T 과장이 보낸 자료들을 본다.



1. 계정과목의 이해 및 증빙서류

  - 복리후생비 : 학자금 의료비 통신비 중식대 잔무식대 철야숙식대 차실비 행사비 작업복대 등

  - 여비교통비 : 택시비 출장비 등

  - 수도광열비 : 수도료 전기료 기타 등

  - 회의비

  - 수선비

  - 세금과공과

  - 지급임차료

  이외 다수


2. 전자전표

  - 전표처리 : 법인카드전표, 매입전표, 기타채권전표 등

  - 정산내역

  - 전표조회

  이외 다수



 '계정과목의 이해' 파일을 보니, 계정과목들의 분류 / 예시 / 증빙 / 유의점이 적혀 있다. 계정과목들을 훑어보니, 딱 두 가지 종류로 나뉜다. 한 번도 들어보지 못했던 것들, 혹은 딱 한 번 들어봤던 것들. 한자어 위주라, 뭔가 느낌이 딱딱하고 사무적이다. 예를 들어 잔무식대의 경우


  잔무식대

  - 업무 시간 이후 업무를 위해 먹는 저녁식대

  - 팀 코드 아닐 경우 반려

  - 회사 근처 식당이어야 할 것

  - 저녁시간일 것

  - 술이 없을 것

  - OO만원 초과 시 임원 결재


 이런 식이다. 이런 계정 과목들이, 적게 잡아도 수십 개가 나열되어 있다. 과장들은 이 내용들을 전부 다 외우고 있는 걸까? 자료를 읽으며 그는 내심 궁금하다. 그의 속내를 알아챈 것인지, T 과장이 말한다.


  T 과장 : 어차피 자주 쓰는 계정들은 정해져 있어. 시간 날 때마다 보면서 숙지해

  그 : 네!



 두 번째 '전표 작성 교육' 파일을 연다. 해당 PPT 파일의 모든 슬라이드들은, 캡처본이 들어 있다. 회사 시스템을 캡처해서, 이 메뉴에 이 탭을 눌러 전표를 작성하라는 자료인 듯하다. 딱 봐도 복잡하다. 전표라는 것을 작성하기 위해 설정해주어야 할 것이 너무 많다.

  - 정산구분

  - 증빙유형

  - 증빙일자

  - 회계일자

  - 거래처

  - 계좌구분

  - 카드번호

  - 사용내역

  - 계정명

  등등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도 나중에는 전표치는 법을 알게 된다. 전표치는 법을 알고 난 이후의 감상을 말하자면, '전표 작성 교육' 파일은 필요 이상으로 가독성이 떨어지고 복잡하다. 어떤 일이든, 메뉴얼이 필요한 경우가 있고 필요 없는 경우가 있다. 


 메뉴얼이 필요 없는 경우는, 바꿔 말하자면 메뉴얼을 읽느니 차라리 직접 한 번 해보는 것이 훨씬 빠른 경우다. 전표 작성이 바로 이에 해당한다. 그가 전표 작성에 비교적 익숙해진 후에도, 그는 전표 작성 메뉴얼 파일을 다시 열어본 일이 없다. 전표를 자주 치는 이들에게 물어보고 즉각 해결하는 편이 훨씬 빠르다. 전표 작성은 숙달된 이의 경우 1분이 걸리지 않는 경우도 많은데, 메뉴얼을 읽는 시간은 이보다 훨씬 길다. 또 메뉴얼에 너무 많은 내용과 변수까지 담다 보니 오히려 읽는 이로 하여금 혼란을 야기하기 일쑤다.



 계정과목과 전표 교육 자료를 보내주고는, 사업지원팀은 또다시 말이 없다. 그는 자대에 막 배치받은 이등병 마냥, 무언가 해야 할 것 같은데 할 줄 아는 것이 없어 끙끙거린다. 실제로 하는 것이 없더라도, 뭐라도 해야 한다. 하는 것처럼 보이기라도 해야 한다. 그는 노트를 꺼내고, 계정과목과 설명을 똑같이 베껴쓰기 시작한다. 쓰다보면 외워지기라도 하겠지. 못 외우더라도, 뭐라도 하는 것처럼 액션이라도 취해야지.


 그때, 옆자리의 U 과장이 그의 행보를 보고는 경악한다. 


  U 과장 : 아니, 그걸 왜 적고 있어?

  그 : 아, 적으면 더 잘 외워질까 해서... 그렇습니다.

  U 과장 : 기억 안 나면 파일 열어놓고 보면서 하면 되지. 그걸 왜 적어? 적지 마.

  그 : ...

  U 과장 : 그런 거 할 시간에 차라리 유튜브에서 엑셀 강의를 봐.

  그 : 알겠습니다.

  U 과장 : (그를 보며) 효율적으로 일합시다

  그 : 알겠습니다.


 이날부터 그는 시간이 날 때마다 유튜브에서 엑셀 강의를 봤다. 물론, 그다지 큰 도움이 되지는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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